주체105(2016)년 3월 2일 로동신문

 

[정세론해설]

절대로 덮어버릴수 없는 피비린내나는 반인륜적죄악

 

1919년 3월 1일 우리 인민의 강한 자주정신과 불굴의 기개,열렬한 애국정신을 남김없이 보여준 3.1인민봉기가 폭발하였다.

그때로부터 9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그러나 지금도 우리의 눈앞에는 일제의 폭압정치에 항거하여 거리를 메우며 시위에 분연히 떨쳐나섰던 시위자들의 모습이 방불히 떠오르고 《조선독립 만세!》,《일본인과 일본군대는 물러가라!》는 구호를 웨치던 그들의 함성이 귀가에 쟁쟁히 들려온다.

조선독립을 얼마나 목마르게 갈망하였으면,이 땅을 날강도적으로 가로타고앉은 일제가 얼마나 가증스러웠으면 평화적인민들이 일제히 반일애국항쟁에 떨쳐나섰겠는가.

3.1인민봉기야말로 일제의 야만적인 무단통치하에서 모진 수모와 학대를 받으며 살아온 우리 민족의 쌓이고쌓인 울분과 원한의 폭발이였다.

지난 세기초 우리 나라를 비법적으로 강점하고 식민지화한 일제는 중세기적인 공포정치,총칼통치를 실시하였다.

초대《조선총독》이였던 데라우찌는 《조선사람은 일본의 법률에 복종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라고 떠벌이면서 우리 인민을 무자비하게 탄압할것을 일제교형리들에게 명령하였다.이에 따라 일제침략자들은 우리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 살인폭압기구들을 대대적으로 만들어놓았다.온 조선땅은 말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감옥으로 전변되였다.

일제는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잡아가두고 고문,학살하였으며 우리 나라의 풍부한 자연부원을 마구 략탈하였다.그야말로 고통과 수난의 시대,암흑의 시대였다.이것을 그대로 감수할수 없었기에 우리 인민은 일제의 야만적인 식민지폭압통치에 결연히 항거해나섰다.

평양에서 일어난 대규모적인 반일시위투쟁을 봉화로 하여 시작된 력사적인 3.1인민봉기는 삽시에 서울을 비롯한 전국각지로 노도마냥 번져갔다.봉기가 일어난 때로부터 석달동안에만도 무려 200여만명의 각계각층 인민들이 반일항쟁에 참가하였다.그해말까지 3 200여회의 시위와 봉기가 일어났고 투쟁의 불길은 전국각지를 휩쓸었으며 만주와 상해,연해주,하와이 등 해외에 있는 동포사회에까지 파급되여 전민족적인 반일애국항쟁으로 확대발전하였다.

우리 인민은 3.1인민봉기를 통하여 조선사람은 남의 노예로 살기를 원치 않는 자주정신이 강한 인민이며 나라를 찾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기개와 열렬한 애국정신을 지닌 인민이라는것을 온 세상에 과시하였다.

자기의 강토,민족의 자주권,인간의 존엄을 되찾으려는 애국적인민들의 정당한 요구에 잔악무도한 일제는 무력진압으로 대답해나섰다.

저들의 야만적인 식민지통치를 밑뿌리채 뒤흔드는 우리 인민의 거족적인 반일애국항쟁에 당황망조한 일제는 봉기가 시작된 첫날에 벌써 평양과 서울에서 수많은 헌병,경찰들을 긴급출동시켰으며 완전무장한 수비대병력까지 인민봉기탄압에 내몰았다.일제는 그것도 부족하여 조선주둔 일본군과 재향군인,일본본토병력을 동원하였으며 지어 우리 나라에 있던 일본인거류민들에게까지 살인흉기들을 쥐여주며 인민봉기를 무지막지하게 탄압하였다.

일제살인귀들은 시위행진에 참가한 나어린 한 녀학생에게 피에 주린 이리떼처럼 달려들어 기발을 쥔 그의 오른팔을 칼로 뭉청 잘라버렸으며 그래도 그가 기발을 왼손에 바꿔쥐고 앞으로 나아가자 그의 왼팔마저 잘라버리였다.놈들은 그것도 성차지 않아 나중에는 그를 칼탕쳐죽였다.

심지어 일제야수들은 총살하는것은 《흥미없는 일》이며 조선사람에게는 칼을 쓰는것도 아깝다고 하면서 팔다리를 네마리의 소나 말에 매고 채찍으로 내몰아 사지를 찢어죽이거나 작두로 목과 팔다리를 잘라 나무에 매달아놓았다.검거한 봉기자들을 앉혀놓고 쇠몽둥이와 갈구리로 뒤통수를 때려 머리뼈를 바스러뜨렸으며 단도로 온몸을 마구 찔러 피범벅을 만들었는가 하면 독립만세를 불렀다고 하여 어린 소년의 입을 칼로 찢어죽이는 몸서리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일제의 만행에 대해 일일이 꼽자면 끝이 없다.

일제의 야수적인 살륙만행으로 3.1인민봉기때 10여만명의 조선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평화적인민들의 시위를 그렇듯 무차별적인 탄압으로 짓뭉갠것은 극악한 살인귀인 일본제국주의자들만이 감행할수 있는 반인륜적죄악이였다.오죽했으면 일제의 한 어용학자까지도 《일본인들은 차마 볼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탄압에 광분하였다.…일본헌병의 포악성은 형언할수 없는바 그들은 늙은이와 부녀자,어린이들까지 총검으로 찔러죽이고 목을 달아매여 죽이였다.》라고 실토하였겠는가.

일제의 잔인한 탄압학살만행은 봉기를 진압한 후에도 계속되였다.일제는 조선사람들속에서 반일요소의 근원을 없애버린다고 하면서 시위참가자들과 그 가족,친척들,그밖에 조금이라도 련관된 사람들을 모조리 감옥으로 끌어다 악형을 가하여 학살하였다.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끌려나가 집단적으로 살해당하는 사건도 수다하였다.평안북도 정주에서는 500여명이 한꺼번에 학살되는 참사가 빚어졌다.일제의 야수적인 학살만행으로 하여 삼천리강토는 피바다로 변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그 무엇으로써도 우리 인민의 반일정신,애국정신을 꺾을수 없었다.

일제의 총칼에 찔려 수십곳에 부상을 입고 숨지는 순간에 나어린 한 소년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저의 가슴에 칼자욱이 몇이나 됩니까? 내 가슴의 뜨거운 피가 점점의 불꽃이 되여 섬나라를 태워버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을 어찌 그 소년 한명의 피의 절규라고만 하랴.일제의 총칼에 선혈을 뿌리며 숨진 선렬들의 피타는 원한의 웨침,복수의 웨침인것이다.

력사에는 나라의 독립과 해방을 요구하여 떨쳐나선 인민들을 탄압한 식민주의자들의 범죄행위에 대한 자료가 수많이 기록되여있지만 일제와 같이 가장 야수적인 방법으로 적수공권의 평화적시위참가자들을 무참히 살륙한 례는 찾아볼수 없다.

3.1인민봉기에 대한 가혹한 탄압은 식민지통치기간 우리 민족앞에 저지른 일제의 과거죄악의 일단에 불과하다.

일제는 조선강점시기 수백만명에 달하는 조선사람들을 강제련행,랍치하여 전쟁대포밥으로 써먹거나 죽음의 고역장에 내몰아 마소와 같이 부려먹었으며 100여만명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성노예로 만들었다.

3.1인민봉기가 있은 때로부터 한세기가 가까와오고 일제가 패망한지도 70년이 넘는다.하지만 오늘까지도 일본반동들은 지난날 우리 인민앞에 저지른 특대형반인륜적범죄에 대하여 성근하게 인정하고 사죄,배상할 대신 그 모든것을 한사코 부정,외곡해나서며 뻔뻔스럽게 놀아대고있다.

최근에도 일본군성노예문제와 관련하여 일본반동들은 《전면적인 진상조사》결과 그 어디에서도 《군과 정부기관에 의한 위안부의 강제련행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라고 뇌까렸다.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을 《매춘부》로 모독하다 못해 성노예의 강제련행증거가 없다고 생떼를 쓰는 일본반동들의 후안무치한 《증거》타령이야말로 도덕적저렬아들의 속된 근성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력사는 결코 세월이 흐른다고 하여 사라지거나 퇴색되지 않는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 련이어 세워지고있는 성노예피해자들을 상징하는 조각상들은 일본이 저지른 과거죄악을 신랄히 폭로하고있다.

일본반동들은 피비린내나는 과거 반인륜적죄악을 절대로 덮어버릴수 없다.

지난날 우리 인민에게 수난의 력사를 강요하고도 반성하려 하지 않는 일본반동들의 파렴치한 행위를 우리는 절대로 용서치 않을것이다.

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