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5일 로동신문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죽음을 이겨낸 힘 김성국
1943년 7월경이였다. 위대한 수령 우리들은 공작과정에 적지 않은 난관들을 겪었으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근거지로 돌아갈 차비를 서둘렀다. 그것은 우선 근거지까지 돌아가는데 필요한 식량을 마련하는 일이였다.당시 형편으로 보아 돌아가는 도중에 식량을 해결하기가 매우 곤난하였을뿐만아니라 시급히 보고해야 할 적정도 나타났으므로 행군도중 지체할수 없었기때문이였다. 우리는 지방조직을 통하여 필요한 식량을 준비할수도 있었지만 모처럼 복구한 조직들의 안전을 념려하여 다른 방도를 택하였다.그 방도란 이미 두차례나 식량을 보장받은 일이 있는 산막로인들을 통하여 비싼 값을 주고 구입하는 길이였다. 우리는 그들과 미리 약속한 날자에 농막으로 갔다.농막이 바라보이는 옆산봉우리에 올라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얼마동안 농막의 동정을 살펴보았지만 이렇다 할 별다른 징조를 발견할수 없었다. 곽동지와 기타 3명의 대원은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농막 50m밖에서 대기하기로 하고 나는 농막으로 다가갔다. 《놀라지 마십시오.전번에 왔던 사람입니다.》하면서 나는 방문을 열었다. 이 순간에 나는 방안으로부터 불의사격을 받았다.이찰나에 부상을 당한 나는 뒤로 물러서며 권총을 빼들고 발사하였다.그러나 곧 권총을 땅에 떨어뜨리고말았다.오른손목에 적탄을 맞았던것이다.동시에 왼팔과 왼쪽다리목에도 부상을 입었다.그야말로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였다. 나는 급히 동무들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려고 했다.그러나 이미 다리와 두팔에 부상을 입어 뛸수도 없었고 기여갈수도 없었다.농막앞 언덕배기를 굴러내리려고 몸을 땅바닥에 던지는 순간 꽁무니에 찼던 수류탄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나는 그것을 왼손으로(왼손은 다행히 뼈가 성했다.) 뽑아서 안전장치를 입으로 물어뜯고 방안을 향하여 힘껏 내던졌다.그리고 요란한 폭발소리를 들으며 언덕배기밑으로 디굴디굴 굴었다. 이사이에 대기하고있던 우리 동무들은 집중사격을 퍼부어 놈들을 전멸시켰다.그러나 뜻밖에도 곽동지가 적탄에 맞고 장렬히 희생되였다. 혁명동지를 잃은 우리들의 가슴은 미여지는것 같았다.오랜 기간 고락을 함께 하며 사선을 같이 넘으면서 싸워온 혁명동지를,더우기 나를 구원하려다가 자기가 희생된 전우를 이름없는 이국땅 수림속에 묻자니 북받쳐오르는 비통한 심정을 참을수가 없었다.그러나 비분에 잠겨있을 때가 아니였다. 나는 동무들의 도움을 받아서 나무를 꺾어다가 뼈가 부서진 손목과 다리목에 대고 각반을 풀어서 동여매였다. 우리는 곽동지의 시체를 땅에 묻고 떠났다. 그리고 그길로 여기를 떠났다.동무들은 여러곳에 부상을 입은데다가 심한 출혈로 운신하지 못하는 나를 업고 베차거우산을 넘었다.우리는 간신히 샘물이 흐르는 뒤골짜기에 도착했다. 동무들은 그곳에서 숨을 돌릴 작정으로 나를 샘물터에 눕히였다.심한 출혈로 나의 정신은 자꾸 희미해졌다.여기에서 근거지까지 돌아가려면 건강한 몸으로도 10일은 잘 걸릴것이였다.더우기 근거지로 돌아가려면 놈들의 경계망을 돌파해야 했다.더구나 놈들의 수색대가 전몰한것을 안 일제놈들이 언제 또 달려들지 모르는 판이였다.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했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후닥닥 몸을 일으켜세웠다. (사업보고를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에 떠올랐던것이였다.《왜 그러오?》하며 유동무란 신대원이 나를 부축했다. 《동무들은 지체말고 어서 떠나야 하오.》하며 나는 동무들을 돌아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요?》 동무들은 한결같이 놀라는 기색이였다. 《나때문에 지체되여서는 안되오.나를 여기에 남겨두고 곧 출발하시오.》 나는 일부러 랭정히 말을 했다. 동무들은 말없이 내 얼굴만 쳐다볼뿐이였다. 《하루이틀에 갈수 있는 곳도 아닌데 나를 업고 가다가는 우리모두가 희생될수 있소.적들이 언제 달려들지 모르오.》하고 나는 다시 되뇌이며 그들을 설복하려 했다. 《우리가 모두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동무를 여기에 남겨두고 갈수는 없소.》하고 유동무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것이였다. 《죽고사는게 문제가 아니요.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를 손꼽아 기다리고계실거요.한시바삐 사업보고를 해야 하오.이것이 우리의 생명보다 더 귀중하오.내 걱정은 말고 어서 떠나시오.》 그러나 묵묵히 앉아있는 동무들의 얼굴들에서는 나의 말에 응하려는 기색을 찾아볼수가 없었다.나를 데리고 가지 않고는 떠날념도 내지 않는것 같았다.하기는 그들로서 어찌 부상당한 전우를 위험속에 홀로 버리고갈수 있었으랴.그러나 혁명과업은 그보다 더 귀중한것이다.그들을 속히 떠나보내는것이 나의 의무였다. 나는 동무들의 뜨거운 동지애를 가슴깊이 느끼고 마음속으로 흐느끼면서 애써 랭정하고 엄격하게 말을 이었다. 《왜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오.이것은 명령이요.혁명의 이름으로 동무들에게 주는 명령이요.》 비로소 동무들은 나의 결심을 움직일수 없음을 깨달은것 같았다.그래도 그들은 2명만 떠나고 1명을 나와 함께 남기려고 하였으나 나는 도중에 있을수 있는 적들의 추격을 념려하여 억지로 모두 떠나보내였다.동무들은 떠나기 전에 주변의 봇나무에서 껍질을 벗겨다가 땅에 펴고 나의 자리를 마련하여주었다. 《근거지에 도착하여 보고하고 곧 돌아올테니 그때까지 꼭 기다려주시오.》 그들은 몇번이고 같은 말을 되뇌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그곳을 떠났다. 나는 그들이 무사히 그리고 하루라도 속히 근거지에 도착하기를 바랐다. 그들의 뒤모습이 수림속에 사라지자 나는 긴장되였던 마음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그만 그 자리에 쓰러지고말았다.벌써 이틀전부터 식량이 떨어져서 굶은데다가 심한 중상으로 그이상 몸을 지탱할수 없었던것이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린것은 3일후였다.몹시 무덥고 답답했다.목에서는 불이 이는것 같았다.상처들에는 그사이에 벌레가 쓸었다.징그러운 생각에 저도모르게 얼굴을 찌프렸으나 이상하게도 아프기는 고사하고 다만 무덥고 답답할뿐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시간이 가는지오는지도 알수 없었다.몸은 구름우에 둥둥 떠있는것만 같았다. (떠난 동무들은 지금 어디쯤이나 갔을가? 모두 신입대원들이고 길을 잘 가리지 못하여 많은 고생을 겪을것이다.그들이 다시 나를 찾아 되돌아오자면 아무리 빨리 서둔다 해도 20여일은 걸릴것이다.) 중상을 입어 운신하지도 못하는 몸으로 한알의 식량도 없이 20여일을 어떻게 견딜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벌써 기진맥진하였고 며칠씩이나 정신을 잃지 않았던가? 설사 동무들이 찾아올 때까지 목숨이 붙어있는다 하더라도 여러곳에 중상을 입은 몸은 회복되기 힘들것이며 다시는 전투대렬에 서지 못할는지도 모른다.오히려 사령관동지와 전우들에게 걱정만 끼치게 될것이다. 나는 한동안 걷잡을수 없는 착잡한 생각에 빠져서 그냥 누워있었다.머리속에서는 가지가지 지난 시기의 일들이 떠올랐고 그것이 꼬리를 물고 련속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유격대에 입대한 해인 1937년의 10월혁명기념일을 생각하고 나는 자기도 모르게 《아니,이래서는 안된다.》고 자책하면서 상반신을 일으켰다. 이날 위대한 수령 나의 정신은 또릿또릿해지기 시작하였다.나는 보다 랭정하게 그리고 침착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나는 유격대에 입대할 때 사령관동지앞에서 어떠한 곤난,어떠한 역경에 처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그이의 전사답게 끝까지 원쑤들과 싸우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나는 지금 곤난앞에서 주저하고있지 않는가? 나는 살아야 한다.아무리 곤난할지라도 견디여내야 한다.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에게 백번 넘어져도 백번 다 일어나라고 가르치시였다.혁명의 승리는 아직 멀었으며 그것을 쟁취하기 위하여 끝까지 싸워야 하지 않는가! 나는 가슴속깊이 거듭 맹세를 다지였다. 이리하여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팔굽으로 배밀이도 하고 디굴디굴 굴기도 하면서 먹을만 한 풀잎을 찾아다니였다.나는 오직 살아서 싸워야 한다는 일념과 사령관동지께서 내가 간고한 역경속에서 죽음을 이겨내는것을 지켜보고계신다는 확신으로 하여 새로운 힘을 얻었던것이였다. 나는 풀잎을 뜯어먹으면서 27일이란 시일을 이를 악물고 살았다.그때 겪은 일들과 느낀 사연들을 여기에 다 적을수는 도저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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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후에 안 일이지만 나와 갈라진 우리 동무들은 온갖 간난신고를 겪으면서 보름만에 근거지에 도착하였다.한알의 식량도 없이 적들의 집요한 추격을 받으면서 근거지에 돌아간 그들의 면모도 말이 아니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로부터 사업보고와 그 기간 사업정형을 자세히 들으시고 곧 훈춘지방을 가장 잘 아는 임철동지에게 나를 찾아올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임철동지는 의사를 포함한 8명의 대원을 데리고 그날로 근거지를 출발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의 출발에 앞서 《성국이를 꼭 찾아서 구원해야 한다. …찾지 못하면 찾을 때까지 돌아오지 말라.》고 당부하시였다고 한다.이 얼마나 지극한 사랑이 담긴 말씀인가! 임철동지의 일행은 낮에 밤을 이어 8일만에 훈춘현 베차거우에 도착하였다.그러나 도착한지 4일이 되는 동안 그 일대를 헤매였으나 나를 찾지 못하였다. 그들은 내가 이미 잘못된것으로 간주하고 시체라도 찾아서 묻고 돌아갈 작정으로 계속 베차거우수림속을 샅샅이 훑고있었다. 이런 사정을 알바 없는 나는 그날도 혼미상태에 빠졌다가 눈을 떴다.밤이였다.맑은 하늘에는 뭇별들이 총총했다.그러나 모든것이 희미한 그림자처럼 어른거릴뿐 똑똑히 보이질 않고 다만 몹시 춥고 몸이 와들와들 떨릴뿐이였다.이젠 그만 끝장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먼저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자기를 채찍질했다.그리고 이를 갈며 간신히 몸을 움직이여 깔고 누웠던 봇나무껍질들을 모아놓고 불을 붙였다.이윽고 나는 전신이 나른해져서 또다시 혼미상태에 빠져들어갔다. 《성국동무.》 《성국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가? 나는 내 몸을 다급히 흔들며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들어 눈을 떴다. 《성국이,네가 살았구나.》 낯익은 그 목소리는 틀림없는 임철동지의 음성이였다. 그들은 이 근방에서 나를 찾다가 연기를 보고 찾아왔던것이다. 《임철동지.》 나는 이 한마디를 겨우 입밖에 내고 다시 정신을 잃고말았다. 전우들은 그 이튿날 나를 업고 여기를 떠났다.우리들은 행군도중에 적들에게 발각되여 추격을 받았다.전우들은 나를 번갈아 업어가면서 전투를 진행하였다.근거지에 돌아온것은 그후 10일만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보초선에까지 나오시여 우리를 맞아주시였다. 《성국동무.잘 싸웠소.훌륭하오.용히 살아왔소!》 하시며 그이께서는 나의 상처를 하나하나 만져보시는것이였다. 나는 한동안 감격과 기쁨에 목이 메여 아무말도 못했다. 이리하여 나는 사령관동지의 극진한 보살피심과 전우들의 따뜻한 간호를 받으면서 몸을 회복할수 있었으며 다시금 전투대렬에 서서 원쑤들과 싸울수 있었다. 지난 항일무장투쟁시기를 회상할 때면 의례히 이때 겪은 일들이 무엇보다먼저 머리에 떠오른다.실로 나는 공산주의자는 절해고도에 홀로 남을지라도 살아서 끝까지 혁명을 해야 한다는 위대한 수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