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4월 10일 로동신문

 

태양의 빛발아래 만발하는 애국인재양성의 대화원

총련 조선대학교가 걸어온 60년의 자랑찬 로정을 더듬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총련이 걸어온 자랑스러운 력사에는 총련을 전체 재일동포들의 권리와 리익을 대표하는 주체적해외공민단체로 강화발전시켜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현명한 령도와 크나큰 심혈과 로고가 깃들어있습니다.》

애국위업의 찬란한 미래를 품어안고 재일조선인운동의 튼튼한 기둥감들을 자래워온 애국인재,민족인재양성의 원종장!

세계유일의 해외교포대학으로서 그 존엄과 영예를 높이 떨쳐온 총련 조선대학교가 오늘 창립 60돐을 맞이한다.이 기쁜 소식에 접한 조국인민들도 열렬한 동포애가 넘치는 뜨거운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위대한 수령님들에 대한 열화같은 그리움이 더더욱 사무치는 이 시각 온 나라 전체 인민들과 재일동포들은 태양의 빛발아래 총련 조선대학교가 걸어온 빛나는 력사를 감회깊이 돌이켜보고있다.

 

위대한 교육자,자애로운 학부형

 

세상에는 우리 재일동포들처럼 어머니조국의 따사로운 사랑속에 자식들을 부럼없이 대학공부까지 시키는 해외동포들은 없다.

돌이켜보면 세계에는 오랜 력사나 배출한 명인들의 수,교직원,학생규모와 부지면적,도서관의 장서 등에서 제노라하는 대학들이 많다.하지만 총련 조선대학교처럼 이 세상 가장 걸출한 위인들의 비범한 령도밑에 주체성과 민족성으로 일관된 자기의 교육강령을 가지고 해외교포운동과 조국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해온 대학은 없다.

몇해전 총련 《조선신보》에 조선대학교창립기념 련재수필 《목련의 추억》이 실리여 동포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적이 있다.대학의 창립과 그 발전과정을 체험한 증견자들의 글을 읽으며 재일동포들은 민족교육사에 금문자로 아로새겨진 력사의 나날이 사무쳐와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예로부터 황금 천냥이 자식교육만 못하고 자식 살리는것이 부모구실중에서도 제일 큰 구실이라고 하였다.망국노의 구슬픈 운명을 탄식하며 이역땅에 끌려와 모진 학대와 멸시속에 학교문전에도 가보지 못한 재일동포들에게 있어서 자녀들만이라도 대학공부까지 시키려는것은 더없이 간절한 소원이였다.바로 그래서 조국이 해방된 후 이를 악물고 허리띠를 조이며 일본땅 곳곳에 우리 학교들을 세웠던것이다.

하지만 일본반동들의 악랄한 민족차별정책으로 하여 동포자녀들의 대학진학의 길은 꽁꽁 막혀있었다.조선대학교가 세워지기 직전 조선고급학교 졸업생들의 대학진학률이 불과 4%였다는 사실이 당시의 실태를 잘 보여주고있다.사랑하는 자식들이 진학의 길이 막혀 몸부림치고 앞날이 기대되는 제자들이 단지 조선사람이라는 한가지 리유로 대학문전에도 가보지 못하고 서리를 맞는것을 보는 부모들과 교원들의 심정이 과연 어떠했으랴.

재일동포들의 이 피타는 숙망을 헤아려주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일찌기 항일혁명투쟁시기 삼광학교,진명학교를 비롯한 수많은 학교들을 세우시여 이역땅에서 버림받던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시던 그 사랑으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수난당하는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해 대학을 세워주실 단호한 결심을 내리시였다.그때로 말하면 아직 총련이 결성되기도 전인 주체43(1954)년 9월이였다.

아무리 조건이 어렵다 해도 애국인재와 민족간부를 양성할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의 대전당을 마련하여 재일조선인운동을 주체의 궤도따라 강화발전시키고 재일동포들의 세기적념원을 풀어주어야 한다는것이 우리 수령님의 뜻이였다.온 동포사회가 격정으로 들끓었다.어디서나 우리 대학에 대한 이야기였고 동포들의 애국열의는 하늘을 찌를듯 하였다.

당황망조한 일본반동들은 《도꾜의 중심에 평양의 공화국기가 날리는 조선대학교가 일떠서는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라고 아우성치면서 미쳐날뛰였다.하지만 도도히 굽이치는 애국의 격랑은 그 어떤 반동의 방파제로도 막을수 없었다.

주체45(1956)년 4월 10일 마침내 총련 조선대학교가 창립되였다.아름드리거목도 하나의 작은 씨앗에서 시작되듯이 오늘 수만㎡의 드넓은 부지에 보란듯이 일떠서 1만 수천명의 졸업생을 낳은 총련 조선대학교는 도꾜조선중고급학교안에 림시로 꾸린 가설교사에서 불과 10명의 교원과 60여명의 학생으로 고고성을 울리였다.개학날 강의실들에 차고넘친 환희와 열정은 그 어느 명문대학에서도 찾아볼수 없는것이였다.재일동포들은 이처럼 거치른 일본땅우에 자기 대학의 첫 터전을 닦았다.력사상 처음으로 되는 주체형의 해외교포대학의 탄생,그것은 재일조선인운동의 밝은 앞날을 담보한 의의깊은 사변이였다.

대학은 창립되였어도 그 토대는 몹시 빈약하였다.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벽이 흔들리고 장마철이면 물이 스며들어 신발이 젖는 교사였다.하지만 자기의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마음은 마냥 즐겁기만 하였다.

이러한 실태를 두고 몹시 가슴아파하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불비한 교사문제를 두고 마음쓰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두번째로 보내주신 거액의 교육원조비를 통채로 새 교사건설비로 쓰도록 하시였다.머나먼 외국방문의 길에서도 수령님께서는 조국의 일군을 전화로 찾으시여 조선대학교의 새 교사건설을 빨리 추진시킬데 대한 강령적인 교시를 주시였다.그 은정에 떠받들려 주체48(1959)년 6월 13일 마침내 본관과 사무당,후생당,각종 실험실습실들을 그쯘하게 갖춘 새 교사가 일떠섰다.람홍색공화국기가 펄펄 휘날리는 국기게양대밑에서 조국의 하늘을 우러르며 재일동포들은 《김일성원수님 고맙습니다.정말 고맙습니다.》라고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또 올리였다.

언제인가 총련 조선대학교대표단을 만나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대학창립의 나날을 감회깊이 돌이켜보시며 다른 나라에 자기의 대학을 가지고있는 나라는 우리 나라밖에 없다고,총련이 적들의 파괴암해책동을 짓부시고 억세게 싸워올수 있은것은 조선대학교에서 민족간부들을 끊임없이 양성하고있기때문이라고 교시하시였다.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시느라 그토록 바쁘신 속에서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국을 방문한 대학의 교직원,학생들을 만나주시고 사업과 생활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고귀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사랑의 기념사진도 찍어주시였으며 성대한 연회까지 마련해주군 하시였다.

총련 조선대학교에 깃든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은정은 또 그 얼마나 크고 따사로운것인가.대학의 교육교양사업과 관련하여 우리 장군님께서 주신 수많은 강령적인 가르치심들과 뜨거운 은정에는 동포대학생들을 애국의 신념과 의지가 투철한 민족간부로,총련의 대를 굳건히 이어나가는 새 세대 역군으로 키우시려는 그이의 웅심깊은 사랑이 어려있다.

포괄하는 시기와 내용,전시품에 있어서 조금도 나무랄데가 없어 세상사람들이 그토록 경탄을 금치 못해하는 총련 조선대학교의 조선력사박물관과 자연박물관도 우리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것이다.그 뜨거운 사랑은 조국에 꾸려진 총련 조선대학교 교원,학생들을 위한 교수강습소와 실습학교들,통신연구원과 통신박사원제도,겸임연구사제도에도 어려있다.정녕 절세의 위인들의 자애로운 사랑의 손길은 조선대학교가 해외교포민족교육의 최고전당으로 빛날수 있게 한 은혜로운 젖줄기였다.

예로부터 부모의 은덕은 낳아서 기른 은덕이요,스승의 은덕은 가르쳐 사람 만든 은덕이라고 하였다.우리 수령님과 장군님은 진정 위대한 교육자,자애로운 학부형이시였다.

 

이역땅에 무성하는 충정의 해바라기들

 

이역땅에 몰아치는 가혹한 시련과 도전의 광풍이 총련이 헤쳐나가는 애국의 항로를 끈질기게 막아나서고있다.하지만 뿌리깊은 나무가 폭풍에도 끄떡없듯이 탄압의 광풍이 아무리 모질고 세차도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애국의 신념은 굳건하다.예나 지금이나 애국위업의 앞장에는 총련 조선대학교 졸업생들이 서있다.절세위인들에 대한 열화같은 흠모심과 애국충정이 그들의 신념의 원천이다.

선물책장에 깃든 사연도 그들의 불같은 애국충정을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이다.

원격조종기로 자동적으로 문을 여닫을수 있게 한 책장안에 차곡차곡 꽂혀있는 어버이수령님의 고전적로작들과 그이의 혁명활동내용을 수록한 록화테프들,독특한 형식의 천연색텔레비죤수상기와 음향,록화설비들…

이 책장은 주체61(1972)년 4월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60돐을 맞으며 총련 조선대학교 학생들이 삼가 올린 선물이다.선물을 만드는데 쓸 800년 자란 희귀한 아름드리나무를 구하는데도 많은 품이 들었지만 그보다 난문제로 된것은 텔레비죤수상기로 볼수 있는 록화편집물제작이였다.정보산업시대인 오늘에는 별로 큰일이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쉽지 않았다.당시 첨단기술을 자랑하던 일본에서도 천연색텔레비죤방송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던 때였던것만큼 그들의 착상자체가 사람들을 놀래웠다.대학의 교직원,학생들은 민족의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님께 자기들의 지성이 깃든 선물을 기어이 최상의 수준에서 만들어올리려는 일념안고 모두가 낮이나 밤이나 선물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그들이 마련한 선물은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60돐을 맞으며 일본에서 맨 선참으로 조국에 보내여졌다.

뜻깊은 그해 봄 조국을 방문한 재일조선인축하단 성원들과 함께 이 선물을 보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선대학교 학생들의 재간이 대단하다고 높이 평가하시면서 그들에게 자신의 감사를 전달하여줄것을 거듭거듭 당부하시였다.온 대학이 감격과 환희로 끓어번지였다.오늘도 이 대학 졸업생들과 교직원,학생들의 가슴마다에는 그날의 격정이 소중히 간직되여있다.

10여년전 뜻깊은 광명성절을 맞으며 총련 조선대학교에서는 대합창공연 《김정일장군님께 드리는 노래》가 성대히 진행되였다.

무대에 선 1 000명의 대학생들은 바다멀리 조국의 하늘가를 우러러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의 노래를 절절히 부르며 정치사상적으로,과학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하여 믿음직한 총련의 역군이 될 불같은 결의를 다지였다.그들의 공연을 록화물로 보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못내 대견해하시면서 분에 넘치는 평가의 말씀을 주시고 조선대학교의 교육교양사업을 위해 거액의 자금까지 보내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이 사랑의 소식에 접한 총련일군들과 동포대학생들은 목청껏 만세의 환호성을 터치며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

반동의 아성에서 매일,매 시각 원쑤들의 탄압공세를 겪어야 하는 총련 조선대학교 교직원,학생들에게 있어서 절세위인들에 대한 그리움은 이처럼 참기 어려운 시련도 웃으며 뚫고나갈수 있게 하는 사상정신적활력소이다.그 힘이 있었기에 총련 조선대학교는 온갖 퇴페적인 사상조류가 범람하고 반총련책동이 악랄하게 감행되는 속에서도 주체형의 애국인재와 해외민족간부들을 키우는 자기의 영예로운 사명과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올수 있었다.

지난 60년간 조선대학교의 지붕아래서 자라난 미더운 민족간부,애국인재의 대부대가 드놀지 않는 기둥이 되고 주추돌이 되여 재일조선인운동을 앞장에서 믿음직하게 이끌어왔기에 총련은 지난 기간 막아나서는 온갖 엄혹한 시련과 난관을 과감히 물리치고 세계해외교포조직의 자랑스러운 본보기로서 승리와 영광의 로정을 수놓아올수 있었다.하기에 세상사람들은 《조선대학교는 곧 총련의 얼굴이다.총련을 보려거든 조선대학교를 보라.》,《해외의 조선청년들도 그처럼 씩씩하게 자라나고있으니 조선의 미래는 휘황찬란하다.》고 말하고있는것이다.

조국의 부강번영에도 참답게 이바지하고 총련의 애국위업도 믿음직하게 담당수행하며 일본사회의 어느곳에 나서도 제일가는 주체형의 민족간부,애국인재들을 수많이 키워내고있는 바로 여기에 총련 조선대학교가 인류력사와 더불어 존재해온 수많은 대학들과 구별되는 고유한 특징이 있고 성스러운 사명이 있으며 남다른 긍지와 영예가 있다.

뜻깊은 창립기념일을 맞으며 총련 조선대학교의 전체 교직원,학생들과 졸업생들은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영원히 백두산절세위인들을 높이 받들어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 자신들의 모든것을 다 바쳐나갈 불타는 결의를 굳게 다지고있다.

조국인민들은 그들의 불같은 결의를 믿어의심치 않는다.

본사기자 허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