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4월 30일 로동신문
주체시대를 빛내이시며 꼭 꿈만 같았습니다 김귀남
꿈만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잘 믿어지지 않을만큼 아주 뜻밖인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줄 압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 가정에 그 꿈만 같은 일이 생겼으니 그날은 주체92(2003)년 6월 13일이였습니다. 황해북도 봉산군 은정축산전문협동농장 3작업반에서 농장원으로 일하고있던 저는 이날 점심때가 되자 집에 들어와 아침시간에 미처 거두지 못한 뜨락을 두루 거두고있었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집가까이 동구길로 웬 일행이 걸어오고있었습니다. 새로 꾸린 우리 은정축산전문협동농장 축산분장을 보러 도안의 여러곳에서 찾아온 손님들이 겸사해서 살림집도 돌아보는 일이 드문했으므로 아마 그런 일행이려니 생각한 저는 하던 일을 마저 끝내려고 부지런히 서둘렀습니다. 그런데 그 일행이 그냥 스쳐지나가는가 싶더니 글쎄 우리 집으로 곧바로 들어서는것이 아니겠습니까.그제서야 저는 찾아온 손님들에게 인사를 차리려고 손을 털며 허리를 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인 일입니까. 일행의 앞장에 서시여 우리 집 사립문으로 들어서시는분은 천만뜻밖에도 경애하는 《잘들 있었소?》 마치 세간난 아들네 집에 찾아온 친아버지의 모습그대로 한없이 소탈하고 다정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음성이였습니다. 너무도 뜻밖의 일에 그만 처음 한순간 몸도 마음도 다 굳어졌던 저는 황망히 장군님께로 다가서며 다년간의 군사복무에서 몸에 배인 병사의 차렷자세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건강하셨습니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시며 물으시였습니다. 《동무는 군사복무를 하였습니까?》 《예,그렇습니다,최고사령관동지.》 《어느 부대에서 복무했소?》 저의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좋은데서 군사복무를 하였다고 하시며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가고 다시 물으시였습니다. 제가 축산전문협동농장 3작업반에서 농장원으로 일하면서 당세포비서사업을 하고있다고 말씀올리자 장군님께서는 그런가고 하시며 저의 등을 가벼이 두드려주시였습니다. 그러시고는 장군님께서 오신것을 알고 어느새 나타난 저의 안해와 두 딸이 올리는 인사를 다정히 받아주시고나서 살림집전경을 바라보시였습니다. 축산업을 발전시킬데 대한 당의 방침을 받들고 온 군이 달라붙어 우리 봉산군 은정리에 현대적인 염소목장을 건설하면서 함께 지은 살림집들인데 와보는 사람들마다 부러워하는 아담하고 쓸모있는 농촌문화주택이였습니다. 지붕이며 나무울타리,집짐승우리들을 차례로 살펴보고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집을 아담하게 잘 지었다고 하시며 천천히 집안으로 들어서시였습니다. 전실에서 부엌간과 방안들을 둘러보신 장군님께서는 살림방이 3칸이고 전실과 부엌을 사이벽이 없이 터쳐놓아 시원해보인다고 하시면서 말씀하시였습니다. 《여름철에는 전실에서 식사하기 좋겠습니다.》 이때 저의 안해가 장군님께 말씀드리였습니다. 《장군님,여름철에도 그렇지만 가을철에도 좋습니다.가을철에 문을 활짝 열어놓고 온 식솔이 둘러앉아 식사를 할 때에는 바람이 슬슬 불어 들어오는것이 정말 좋습니다.겨울에는 겨울대로 전실과 부엌이 터쳐있기때문에 훈훈해서 또 좋습니다.》 그리고는 집이 정말 좋다고 곱씹어 말씀드리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안해를 나무랐습니다. 지난번 첫 나들이를 온 친정어머니에게 침이 마르도록 집자랑을 하더니 오늘은 경애하는 장군님앞에서 분수없이 또 집자랑을 늘어놓는다고.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그럴거요.》라고 하시며 저의 안해의 집자랑에 더없이 기뻐하시였습니다. 이어 이 방은 누구의 방이고 저 방은 또 무슨 방인가고 하나하나 알아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중 한방으로 들어서시였습니다. 옷장과 이불장,텔레비죤수상기를 비롯한 가구들과 문양고운 벽지를 바른 벽과 천정을 둘러보고나신 장군님께서 이번에는 몸을 굽히시더니 방바닥의 여러곳을 짚어보시였습니다.그러시고는 누기는 찬것 같지 않다시며 물으시였습니다. 《겨울에 춥지 않았습니까?》 《춥지 않았습니다.》 《땔감은 무엇으로 합니까?》 《산에서 나무를 해다 땝니다.》 저와 안해가 번갈아 드리는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산이 풀판으로 되였으니 나무가 없겠는데…》라고 뇌이시는것이였습니다. 염소목장을 꾸리며 주변산들을 풀판으로 전환시켰으니 땔감이 바르리라는것을 걱정하여 하시는 말씀이였습니다. 이때 한 일군이 장군님께 여기는 산골짜기를 따라 들어가면 나무가 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그게 정말이냐고 물으시는 눈길로 저를 바라보시였습니다.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지난해 겨울은 례년에 없이 추웠지만 우리는 춥지 않게 지냈습니다.》 그렇지만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걱정을 놓지 못하시며 말씀하시는것이였습니다. 《지난 겨울에 춥지 않게 지냈다는데 땔감을 어떻게 보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불시에 저의 가슴속에서 뜨거운것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저희들이 새집들이를 한 이래 숱한 일군들과 손님들,일가친척들이 다녀갔지만 모두들 무릉도원같은 이곳 마을에서 살고있는 저희들을 부러워하고 함께 기뻐하면서도 누구 하나 땔감을 두고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마을에서 살고있는 저희들조차 이 좋은 살림집을 쓰고사는것만도 큰 복인데 좀 먼데 가서 땔감을 해오는것쯤 무슨 대수랴고 생각하고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복에 복을 덧안겨주고싶으신 심정에서 아직은 아무도 크게 걱정을 하지 않고있는 땔감을 두고 그리도 마음을 쓰시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저희 마을주민들의 땔감문제를 두고 걱정을 하신데 그치지 않고 그를 해결할수 있는 방향과 방도까지 밝혀주시였습니다. 잠시후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가까운 산골짜기에 가서 나무를 해다 땐다는데 여기는 주변산들이 다 풀판으로 되여있으므로 땔감문제가 결정적으로 걸릴수 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습니다. 《농촌살림집들에서는 메탄가스화를 하여 땔감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메탄가스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문제였습니다.솔직히 말해서 저는 작업반의 당세포비서로서 해마다 겨울철이 다가오면 작업반세대들의 겨울나이 땔감문제를 안건으로 토론도 하고 대책도 세웠지만 메탄가스화를 할데 대해서는 상정조차 못하였습니다. 텔레비죤으로 살림집메탄가스화에 대한 과학영화를 보면서도 그랬고 더우기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메탄가스화를 한 어느 한 농촌마을의 살림집을 찾으시고 메탄가스탕크며 메탄가스로 밥을 짓는것을 보시고 못내 만족해하시는 모습을 뵈오면서도 저는 우리 집이나 우리 마을의 경우에는 메탄가스화가 그닥 절박한것으로 생각되지 않았었습니다.우에서 내려오는 일군들도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많이 강조하면서도 메탄가스화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던것으로 보아 아마도 저희들과 같은 생각이였던것 같습니다.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안고서야 저는 우리 마을의 경우에도 멀지 않아 땔감문제가 결정적으로 걸리게 된다는것을 깊이 깨닫게 되였습니다.그러자 모처럼 찾아오신 장군님께 오직 기쁨만을 드릴 대신 땔감문제때문에 걱정을 끼쳐드리게 되였다는 죄책감이 가슴아프게 파고들었습니다. 저만이 아니라 군과 도에서 나온 일군들도 같은 심정인듯 말없이 고개를 수그리였습니다. 제가 가슴아픈 자책과 함께 친부모보다 더 웅심깊고 뜨거운 어버이장군님의 사랑에 목이 메여있는데 그이께서는 저의 안해를 보시고 물으시는것이였습니다. 《아주머니,텔레비죤을 몇시간 봅니까?》 《장군님,텔레비죤을 매일 5시간 봅니다.》 《아니 믿어지지 않아.》 장군님께서는 집에 텔레비죤은 있지만 전기사정이나 텔레비죤수상기의 고장 등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제대로 보지 못할수도 있다는데 대해 마음쓰시는것이였습니다. 이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니 글쎄 맏딸애가 오돌차게도 장군님앞에 나서며 《아버지장군님,정말입니다.》 하고 말씀드리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오,그래!》 장군님께서는 딸애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시며 물으시였습니다. 《지금 몇살이냐?》 《10살입니다.》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 《은정리 소학교에 다닙니다.》 《그런데 오늘은 일요일도 아닌데 왜 학교에 안갔느냐?》 그이께서 이렇게 물으시자 딸애는 대답을 드리지 못하고있다가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학교에 갔다가 아버지장군님 뵙고싶어 뚜꺼먹었…》하고는 고개를 수그렸습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 짐짓 나무라시는 어조로 《학교에 가지 않고 뚜꺼먹으면 되나.》라고 하시자 딸애는 눈물이 가랑해서 발끝으로 방바닥만 허비적거리는것이였습니다. 《하.하.하…》 장군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습니다. 사실 딸애는 아침에 학교에 갔다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농장을 현지지도하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버지장군님께서 종축장에 오셨으면 우리 마을에도 들리실거구 우리 마을에 들리시면 우리 집에도 꼭 찾아오실거야 하는 제나름의 생각으로 휴식종이 울리기 바쁘게 종주먹을 쥐고 집으로 달려왔었습니다.그리고는 다시 수업종이 울렸으나 학교에 갈념을 않고 그때까지 버티고있었던것입니다. 어린 딸애의 말과 거동에서 이런 사연을 헤아려보신듯 장군님께서 허리를 굽혀 그 애의 어깨를 다독여주시자 이만저만한 응석꾸러기가 아닌 딸애는 금시 화색이 돈 얼굴로 그이의 팔소매에 매달리며 재잘재잘 말씀드리는것이였습니다. 《아버지장군님,저는 학교에도 잘가고 공부도 잘해서 꼭 최우등생이 되겠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러는 딸애의 어깨에 손을 얹으신채 이번에는 저희들 부부에게 이애가 내가 온다고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래서는 안된다고,학생은 수업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이애가 공부를 잘해서 최우등생이 되겠다고 하는데 학교에도 잘 다니고 공부도 잘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이르시였습니다. 자식의 창창한 앞날을 바라는 친부모의 진정이 어린 한없이 고맙고 따뜻한 충고의 말씀이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텔레비죤수상기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시더니 씌우개를 벗기시였습니다. 《흑색이구만.》 장군님께서는 리의 한 일군에게 시선을 주시며 농장원세대에 텔레비죤이 얼마나 있는가,그중 천연색텔레비죤을 보는 세대는 몇집이나 되는가에 대해 물으시였습니다. 텔레비죤수상기가 있는 세대는 전체 세대의 70%정도이며 거의나 다 흑색텔레비죤이라는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여기 농장원들이 일을 많이 했는데 모든 세대들에 천연색텔레비죤을 보내주겠으니 텔레비죤을 보며 당정책학습도 잘하고 문화정서생활도 더 잘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습니다. 옮기시는 걸음걸음 인민을 생각하시며 인민을 위해 베푸실수 있는 모든 은정을 다 베푸시고도 더 주고싶어하시는 어버이장군님이시였습니다. 이윽고 방안에서 밖으로 나오신 장군님께서는 울타리와 터밭둘레에 올린 줄당콩을 보시고 농촌살림집주변에 줄당콩을 많이 심는것도 하나의 풍치라고,그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성군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줄당콩을 많이 심을데 대하여 교시하신 다음 한동안 벅적 떠들면서 심느라고 하였지만 지금은 얼마 심지 않는것 같다고 하시면서 집집마다 줄당콩을 많이 심도록 하여야 한다고 일군들에게 간곡히 당부하시였습니다. 그러시고는 장군님과 헤여지기를 못내 아쉬워하는 저와 저희 식구들에게 잘 있으라고 따뜻이 위로해주시고 천천히 집뜨락을 나서시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떠나가셨으나 저와 저희 식구들은 오래도록 서로 말이 없었습니다. 장군님께서 저의 집에 머물러계시는 동안에는 너무도 뜻밖의 영광과 행복에 취해있다나니 느끼지 못했는데 그이께서 떠나가셨다고 생각하자 모든것이 도무지 생시에 있었던 일같지 않고 꼭 꿈만 같았습니다. 어찌 그렇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세간난 자식집에 나들이온 친부모이신듯 철부지 딸애의 응석도,옆에서 듣기에도 민망스러운 안해의 수다스러운 집자랑도 즐겁게 받아주시고 자식들의 장래와 교육,지어 땔감에 이르기까지 그리도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 이것이 다른 나라에서라면 최고령도자와 평민인 한 농민가정의 식솔들사이에 감히 있을번이나 한 일이겠습니까. 이날 밤 저와 안해는 장군님의 사랑의 체취가 그대로 어려있는 집안의 구석구석을 눈물겹도록 보고 또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어버이장군님의 그렇듯 크나큰 은정과 다심한 보살피심속에서 살고있는 우리 인민들이야말로 세상천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가장 행복한 인민이라고. 주체93(2004)년 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