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6월 5일 로동신문
《남산의 푸른 소나무》노래여,혁명의 천만리길에 영원히 울려가라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의 서거 90돐에 이 글을 삼가 드린다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를 승리자의 대회,영광의 대회로 빛내이고 조선혁명의 최후승리를 향하여 진군해가는 우리 천만군민모두의 심장에 간직되여있는 불멸의 형상이 있다. 남산의 푸른 소나무! 온 누리를 영원히 묻어버릴듯 강설은 끝없이 쏟아지고 사나운 눈보라의 회오리는 광막한 천지를 휩쓴다.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얼어붙고 숨질듯 한 그속에서도 오직 소나무,남산의 푸른 소나무만이 푸른빛을 떨치며 양춘을 부르고있다.마침내 승리의 봄을 안아온 력사의 언덕에서 푸르른 소나무는 민족의 영광,조선의 강성을 영원히 선언하며 장엄히 설레인다. 남산의 푸른 소나무,그것은 우리 민족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래일이다. 위대한 수령 《나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간다.그러나 너희들을 믿는다.너희들은 언제든지 나라와 민족의 몸이라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뼈가 부서지고 몸이 쪼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라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 그날은 주체15(1926)년 6월 5일이였다. 지난 3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김형직선생님께서 지으신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수령님께 물려주신 두자루의 권총은 선군혁명의 시원이며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는 조선혁명에 관통되여있는 민족자주사상과 백절불굴의 혁명정신,계속혁명사상의 시원입니다.》 《남산의 푸른 소나무》! 이 한편의 노래는 조선혁명의 시원이 열린 력사의 새벽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국과 민족을 백승에로 이끌어오신 절세위인들의 철석의 신조였고 좌우명이였으며
조선아 불러다오 독립만세를!
아름드리거목도 떠받드는 뿌리가 있고 용용한 대하도 시원이 있다. 중중첩첩한 시련과 암운속에서 력사의 새벽길을 헤치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을 떠나 민족의 수난사에 종지부를 찍고 세기와 세기를 빛내이는 승리와 기적만을 떨쳐온 우리 혁명에 대하여 말할수 없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조국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과 혁명승리에 대한 신념으로 나라의 해방을 위해 꿋꿋이 싸워오실수 있은 정신적원천은 바로 남산의 푸른 소나무의 넋과 기상이였다. 어리신 시절부터 고향 만경대를 사랑하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그가운데서도 남산에 언제나 깊은 애착을 간직하고계시였다.남산이 다른 산들에 비해 특별히 아름답거나 웅건해서가 아니였다.남산에 있는 푸른 소나무를 특별히 사랑하시였기때문이였다. 남산에는 예로부터 소나무가 많아 산에 오르면 싱그러운 솔숲향기가 풍겨오고 겨울에도 푸른 잎새우에 흰눈을 떠이고 선 모습은 멀리서 보아도 장관이였다.김형직선생님께 있어서 남산의 소나무는 시련속에서도 굴함없는 민족의 상징이였다.김형직선생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과 함께 자주 남산에 오르시여 소나무처럼 강의한 의지를 지니고 곤난과 시련을 두려움없이 맞받아나가 나라의 독립을 이룩해야 한다고 늘 이르군 하시였다. 세상에는 나무가 많지만 그가운데서 소나무가 제일이다.다른 나무들은 겨울에 잎이 떨어지고 생기를 잃지만 소나무만은 눈서리를 이겨내고 사시장철 푸르다.사람도 이렇게 변함없이 깨끗이 살아야 한다.너희들은 소나무와 같은 절개를 꼭 지켜야 한다.목숨이 끊어질지언정 나라와 인민을 배반해서는 안된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명신학교 학생들에게 하신 이 말씀은 곧 그이의 한생을 관통하고있는 신조였다.눈서리를 이겨내고 사시장철 푸르른 소나무에서 선생님께서는 꿋꿋하고 대바른 뜻과 불굴의 기상을 보시였으며 그것을 자신의 지원의 사상에 담으시고 높은 뜻과 굽히지 않는 기개로 삼으시였다. 돌이켜보면 일제가 총칼로 조선을 강점한 후 우리 인민은 나라를 찾으려고 필사의 몸부림을 해왔다.의병들이 창을 들고 《왜멸복국》을 웨쳤고 독립군은 화승대로 왜적들과 싸웠다.인민봉기의 만세함성이 삼천리를 진감하기도 하였고 애국렬사들이 침략의 원흉들을 처단하기도 하였다.국권수복을 위해 국채보상운동이라는 눈물겨운 운동도 벌려보았고 세계의 량심에 호소하여 자결의 길을 택하기도 하였건만 나라의 독립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국내와 간도를 비롯한 각지를 종횡무진하시며 장차 독립운동의 방략을 무르익히시던 선생님께서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시였다.조선독립은 조선사람자체의 힘으로 이룩해야 한다는 자주적립장이였다. 하기에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시면서 그 목적에 대하여 전체 조선민족이 일치단결하여 조선사람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며 참다운 문명국가를 세우는데 있다는것을 밝히시였다. 《우리가 2천만 겨레를 하나로 묶어세워 일제를 물리치고 나라를 광복하려면 멀고 험한 길을 지나 바다로 가는 샘물처럼 뜻을 멀리 두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바위도 벼랑도 극복하며 꾸준히,완강히 싸워야 하오.》 김형직선생님께서 지원의 사상을 피력하시면서 강반석어머님께 하신 이 말씀은 곧 혁명에 대한 선생님의 자각이였다. 그이의 투쟁행로는 그야말로 흰눈속에서도 자기의 푸름을 잃지 않고 봄을 다시 만나 소생할 때까지도 변함없이 푸르러 설레이는 소나무의 굳건한 기상 그대로였다.평양을 중심으로 한 평안남북도와 황해도일대를 비롯하여 압록강,두만강연안 북부국경지대는 물론 남만과 동만의 광야에는 선생님께서 걸으신 발자취가 력력히 아로새겨져있다. 주체7(1918)년 가을 감옥에서 출옥하시였을 때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제대로 걸으실수 없는 형편이였다.하지만 지금 제 한몸을 생각하고 걸음을 지체하면 조선독립이 그만큼 멀어진다고,가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떠나야 하겠다고 하시며 그이께서는 결연히 파괴된 조선국민회조직을 복구하기 위하여 길을 떠나시였다.그때 만경대를 떠나시기에 앞서 김형직선생님께서 지으신 노래가 《남산의 푸른 소나무》이다. 여름은 가고 어느덧 겨울을 예고하며 찬바람이 불고있었지만 예나 다름없이 푸르청청한 남산의 푸른 소나무,닥쳐올 겨울의 눈서리를 이겨내고 다시금 양춘을 만나 소생할 소나무의 굳센 모습을 바라보시는 김형직선생님의 심장이 불을 뿜는것인가 한자 또 한자 가사가 흘러나왔다.
남산의 저 푸른 소나무가 눈서리에 파묻혀서 천신만고 괴롬받다가 양춘을 다시 만나 소생할줄을 동무야 알겠느냐 … 도탄에 빠진 민족의 운명을 한가슴에 부여안으시고 남달리 뼈아프게 목격하고 체험하는 과정을 거치시면서 그리고 오랜 기간의 혁명투쟁과정을 통하여 더욱 굳히신 지원의 사상을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의 구절구절에 담으시였던것이다.조국과 민족의 운명은 그 어떤 외세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선민족자체의 힘으로 개척해야 한다는 민족자주사상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는 몸이 찢겨 가루가 된다고 하여도 불사신처럼 굴함없이 싸우겠다는 백절불굴의 혁명정신,대를 이어 싸워서라도 금수강산 삼천리에 밝은 세상을 안아오겠다는 계속혁명의 사상이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에 맥동치고있다. 혁명활동의 거점을 압록강연안 북부국경일대에 옮기시고 옥중에서 무르익히신 무산혁명로선을 관철해나가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시면서도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남산의 푸른 소나무의 사상과 정신으로 심장을 불태우시였다.주체8(1919)년 7월 청수동회의에서 무산혁명의 력사적필연성을 론증하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그해 8월에 관전회의에서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을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에로 방향전환할데 대한 방침을 정식 선포하시였다. 어느해 가을 조선국민회 각 조직들에서는 김형직선생님께서 보내시는 서한을 전달받게 되였다.그런데 관전회의정신을 관철하기 위하여 그이께서 보내신 서한이 적힌 종이의 한쪽 여백에 한그루의 소나무가 그려져있는것이였다. 그이께서 활달하신 필치로 새기신 소나무는 곧 지원의 사상으로 기어이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시려는 김형직선생님의 불타는 애국의 열정과 백절불굴의 투지,강의한 혁명정신의 상징이였다. 진정 김형직선생님께서 수령님께 물려주신 두자루의 권총이 선군혁명의 시원이라면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는 조선혁명에 관통되여있는 민족자주사상과 백절불굴의 혁명정신,계속혁명사상의 시원인것이다. 지원의 사상을 혈맥으로 하여 조국해방을 이룩하고 혁명의 무수한 언덕들을 자랑스럽게 헤쳐온 만경대혁명가문의 불굴의 기상이 어려있는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는 오늘도 천만심장에 깊이 새겨주고있다.뜻을 원대하게 가지라고,그 길에 최후승리가 있다고.
승리의 새봄을 불러
새것을 창조하는 혁명은 언제나 시련과 우여곡절을 동반한다. 제국주의자들의 항시적인 위협으로 하여 우리 혁명은 준엄한 시련속에서 전진하지 않으면 안되였다.시련과 난관이 겹쌓이는 속에서도 조선혁명이 오직 승리의 한길로만 줄달음쳐올수 있은것은 절세의 위인들께서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에 맥박치는 사상과 정신을 신념으로 간주하시였기때문이다. 언제인가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해외교포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자신께서는 지금까지 김형직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지원의 뜻을 품고 혁명을 하여왔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나는 아버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1926년에 《ㅌ.ㄷ》를 결성하였으며 그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근 70년동안 조선혁명을 위하여 일관성있게 투쟁하여왔습니다.나는 앞으로도 지원의 높은 뜻을 받들고 조선혁명을 끝까지 완성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할것입니다.… 우리 수령님은 김형직선생님 새겨주신 지원의 뜻을 한생토록 간직하시고 모든것을 조국과 혁명을 위해 바치신 절세의 위인이시였으며 민족자주사상,백절불굴의 혁명정신,계속혁명사상의 위대한 체현자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구현하여오시는 나날은 고난과 시련의 련속이였다.제국주의자들의 책동에 맞서 자립적민족경제건설로선과 전후 사회주의경제건설의 기본로선,경제건설과 국방건설병진로선과 같은 력사적의의를 가지는 로선들로 우리 조국을 이끄실 때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형직선생님께서 남기신 고귀한 유언에 대하여 생각하시였으리라. 1950년대 중엽 위대한 수령님께서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을 방문하실 때였다.대국주의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 우리 나라도 쎄브에 망라될것을 요구하면서 조선에서 자체로 기계설비를 생산하려면 원가도 많이 들고 수지도 맞지 않을것이다,어느 한 나라에 계약을 맞물려놓고 필요한 기계를 만들어가는 대신 조선의 무진장한 철광석을 주면 어떻겠는가고 하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가 기계공업이 없는 조건에서 국제분업에 참가한다면 쎄브성원국들에 원료나 대주어야 할것이다,그렇게 되면 우리에게는 빈 굴밖에 남는것이 없게 되고 밤낮 다른 나라에 빈 쪽박을 차고 빌러 다니게 될것이다,우리가 갈길은 우리가 안다라고 단호하고도 명백한 대답을 주시였다. 전후 모든것이 파괴되고 경제건설에서 요구되는것이 많던 시기에도 남의 힘을 넘겨다보며 그 무엇을 마련하는 쉬운 길이 아니라 비록 멀고 어려운 길이더라도 민족만대의 영원한 행복을 쌓는 그 길을 선택하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우리 인민의 힘과 우리 나라의 기술과 원료에 의거하여 경제를 건설하는 길만이 강국에로 가는 길임을 확신하시였기에 단호히 그 길을 택하시였던것이다. 뼈가 부서지고 몸이 쪼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민족과 조국을 위하여 뜻을 멀리에! 이런 굳센 의지로 한생을 조국과 혁명을 위해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이시기에 생의 마지막시기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에서도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가야 한다는데 대하여 그토록 절절히 교시하시였다. 혁명의 계승은 곧 수령의 위업의 계승이며 혁명의 대는 곧 수령의 대이다. 지난 세기 90년대 그처럼 복잡다단한 세계정치정세속에서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룡남산마루에서 조선을 누리에 떨치실 굳은 결의를 다지시던 그날을 마음속에 새기시고 선군의 기치높이 어버이수령님께서 전진시켜오신 주체혁명위업을 계승완성해나가시였다. 이전 쏘련에서 수십년동안 휘날려온 사회주의의 붉은기가 내리워지는 비극적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사람들은 사회주의의 재생의 봄이 과연 오겠는가고 안타까움에 모대기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그에 대답을 준 력사적사실이 펼쳐졌다. 어버이수령님 탄생 80돐 경축행사준비로 들끓던 어느날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준비사업을 료해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를 잘 형상하여 첫 종목으로 부르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에서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한 조국해방위업은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께서 시작하시였고 수령님께서 계승완성하시였으며 그 과정에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은 오늘 자신께서 계승해나가고있다고,이 혁명위업은 이렇게 대를 이어 계승해나가야 한다고 힘주어 교시하시였다.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개막공연의 첫 종목으로 힘있게 울려퍼진 합창 《남산의 푸른 소나무》를 들으며 외국의 벗들은 《진통을 겪는 사회주의위업에 활력을 부어주고 행성에 사회주의의 〈양춘〉을 불러온 노래》라고 격찬하면서 사회주의에 대한 확신을 가다듬었다.력사적인 평양선언이 채택되고 거기에 세계의 수많은 정당대표들이 서명한것은 그로부터 얼마후였다. 이것은 위대한 장군님 계시여 남산의 푸른 소나무의 사상과 정신은 영원하며 조선은 오직 주체의 한길,사회주의길로 나갈것이라는 불변의 진로를 밝힌 력사적사변이였다. 만경대3대위인들의 력사의 발자취가 새겨진 혁명의 천리길로정의 직령마루에서 위대한 장군님께서 하신 교시가 우리의 가슴을 세차게 두드린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지원의 높은 뜻을 안으시고 걸으시였으며 수령님께서 조국광복의 큰뜻을 품으시고 걸으시였던 이 길로 오늘은 내가 우리 인민들에게 락원을 안겨주려고 걷고있습니다.이 길에는 대대로 조국의 해방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는 만경대가문의 열렬한 조국애와 무한한 헌신성이 그대로 수놓아져있습니다.… 그토록 원대한 포부를 안고 걸으시는 지원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그이께서 한공기의 죽마저 드실수 없어 맹물 한고뿌로 끼니를 에우시며 전선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신 사연들을 우리 어찌 눈물없이 외울수 있으랴. 준엄한 나날이 흐르는 이 땅의 열점중의 최대열점지대에 위치한 판문점에 대한 현지시찰,집채같은 파도속을 작은 쾌속정으로 찾아가신 초도,천길낭떠러지로 야전차를 몰아가신 152굽이 오성산,낮에도 넘고 밤에도 넘었으며 새벽에도 넘으신 철령… 위대한 장군님 걸으신 선군의 그 길은 김형직선생님께서 헤쳐가신 력사의 새벽길,아버님으로부터 물려받으신 두자루의 권총을 밑천으로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고 이 땅우에 사회주의락원을 펼쳐놓으시려 어버이수령님께서 걸으신 혁명의 길과 잇닿은 로정이였다. 세계가 조선의 운명을 두고 우려를 표시하던 그때 어떻게 되여 우리 장군님의 심장속에서는 사회주의강국이라는 봉우리가 솟구칠수 있었고 시련의 어둠속에서 선군승리의 려명이 환희롭게 펼쳐질수 있었는지 오늘도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는 우리에게 말해주고있지 않는가. 대를 이어 계속되는 혁명의 길,투쟁의 길에 새겨진 위대한 수령님들의 불멸의 생애속에 남산의 푸른 소나무의 사상과 정신은 영원히 살아 높뛰였다. 온 나라 천만군민은 절세의 위인들께 삼가 숭고한 경의를 드린다.
혁명의 길 끝까지 가리라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가 단순한 예술작품으로가 아니라 우리 혁명의 근본정신을 새겨주는 기념비적대작으로,혁명적인 가요로 남을수 있게 된것은 노래가 안고있는 사상이 위대하기때문이다. 10여년전 5월 어느날 만경대가 맞이하였던 영광의 시각에 우리 잠시 서보자.그날은 평범한 하루였다.하지만 우리 조국력사에 참으로 잊지 못할 력사의 날로 새겨질줄 사람들은 그때는 알수 없었다.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혁명의 성지 만경대를 찾으신것이였다. 경애하는 그이를 모신 승용차가 소나무가 설레이는 남산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생각깊은 눈길로 한동안 남산을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남산을 바라보면 김형직선생님께서 지으신 시 《남산의 푸른 소나무》부터 생각난다고,그 시에서 제일 가슴을 울리는것은 3절이라고 말씀하시였다.그러시고는 조용히 그 대목을 읊기 시작하시였다. … 이 한몸 싸우다 쓰러지면 대를 이어 싸워서도 금수강산 삼천리에 양춘을 찾아올제 독립만세를 조선아 불러다오
5월의 그 봄날 《남산의 푸른 소나무》를 읊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마음속에는 지원의 높은 뜻을 안으신 김형직선생님께서 만경대를 떠나시던 그 가을날이,사생결단의 의지를 안으시고 우리 수령님 용약 광복의 천리길에 오르시던 그 겨울날이 밟혀오시지 않았던가. 돌이켜보면 혁명의 먼 앞날을 내다보시고 남산의 푸른 소나무의 정신을 애국의 혈통으로 이어주신것은 만경대혁명일가분들께서 쌓아올리신 위대한 업적이다. 《너희들은 앞으로 한몸이 찢겨 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도 왜놈들을 쳐없애고 나라를 광복해야 한다.》,《일제놈들과 싸워 나라를 찾자면 무장을 잡아야 한다.맨주먹으로는 신식무기를 가진 왜놈들을 당하지 못한다. 말만 하여가지고서는 독립을 이룩할수 없다.총을 잡은 몇몇 사람의 힘만으로는 조국을 광복할수 없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늘 위대한 수령님께 이런 뜻깊은 말씀을 하시며 수령님의 심장속에 남산의 푸른 소나무의 정신과 기상을 심어주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일을 맞으며 회중시계를 선물로 주신데도 깊은 뜻이 있었다.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것을 예감하시고 시계와 함께 평생의 로고가 바쳐진 독립의 위업을 위대한 수령님께 넘겨주시였던것이다. 자기를 생각하기에 앞서 겨레를 생각하고 가정을 생각하기에 앞서 조국을 먼저 생각하며 찬바람을 맞받아 일생을 쉬임없이 걸으시고도 림종의 시각 자제분들에게 뼈가 부서지고 몸이 쪼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라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엄숙한 당부를 남기신 김형직선생님, 한생의 순간순간을 오로지 조국과 민족을 위한 참된 삶과 투쟁으로 이어가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지원의 사상,3대각오,동지획득에 대한 사상,두자루의 권총을 조선혁명의 고귀한 력사적재보로,유산으로 남기시였다. 여러 사회주의나라들에서 수령의 후계자문제를 바로 해결하지 못한탓으로 혁명이 급속히 변색변질되고 사회주의건설에서 일대 혼란을 가져오는 후과가 초래되던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위대한 장군님에 의하여 남산의 푸른 소나무의 사상과 정신이 대를 이어 계승되고있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가렬처절하던 시기 김형직선생님의 탄생일을 맞으며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최고사령부 작전실에서 력사에 유명한 대화를 나누시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장군님께 김형직선생님의 지원의 뜻이 어린 권총을 넘겨주시면서 이 권총을 혁명의 계주봉으로 알고 받는것이 좋겠다고 교시하시였다. 후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때를 회고하시며 나는 곡절많은 혁명의 길을 걸어오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왜 어린 나에게 권총을 주시였으며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것을 가슴깊이 느끼게 되였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화의 불길속에서 심어주신 총대에 대한 관점과 립장은 그후 위대한 장군님의 드팀없는 신조로 되였으며 고난과 시련이 겹쌓였던 나날에도 남산의 푸른 소나무를 마음속에 간직하시고 선군의 기치높이 사회주의강국건설의 만년토대를 닦아놓을수 있게 한 힘의 원천으로 되였다. 《남산의 푸른 소나무》의 노래높이 위대한 수령님들의 혁명위업을 받들어 이 땅우에 최후승리의 휘황한 미래를 안아오시려는것은 경애하는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를 우리 당력사에 특기할 승리와 영광의 대회로 빛내여주시고 당대회결정관철에로 온 나라 천만군민을 산악같이 불러일으키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모습에서 천만군민은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에 담겨져있는 사상과 정신을 불멸의 기치로 삼고 우리 당과 혁명을 위대한 수령님식,장군님식대로 전진시켜나가시려는 그이의 억척불변의 신념을 다시금 심장깊이 새기고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혁명의 길이 아무리 멀고 험난하다고 하여도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에 담겨져있는 사상과 정신을 심장에 새기고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야 합니다.뼈가 부서져 가루가 될지언정 나라의 독립을 위한 투쟁의 한길에서 굴함없이 싸우겠다는 굳은 결심을 품으시고 력사의 새벽길을 헤쳐가신 김형직선생님처럼,아버님으로부터 물려받으신 두자루의 권총을 밑천으로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고 이 땅우에 사회주의락원을 펼쳐놓으신 위대한 수령님처럼,우리 조국을 그 어떤 대적도 범접하지 못하는 군사강국으로 일떠세우신 위대한 장군님처럼 나도 혁명의 총대를 틀어쥐고 자주의 길,선군의 길,사회주의길을 변함없이 가려고 합니다.》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 여기에 절세의 위인들의 위대한 혁명철학이 있고 우리모두가 영원히 안고 살아야 할 혁명정신이 있다.그래서 우리 인민은 설한풍속에서도 그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절세의 위인들의 넋과 숨결이 맥맥히 살아 높뛰는 소나무를 우리 나라의 국수로 그토록 사랑하며 중히 여기는것이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조선혁명의 다음단계의 웅대한 목표를 제시하시는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의 높은 연단에서 온 사회의 우리가 갈길은 의연히 험난하다.온 나라 천만군민모두가 당 제7차대회에서 제시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의 돌파구를 열어나가기 위한 충정의 200일전투에 일제히 진입하였다.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에 맥박치고있는 사상과 정신으로 만장약되고 선군의 신념으로 백배해진 우리 혁명대오의 전진을 가로막을 힘은 그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뜻을 더 원대하게 가질것이다.불후의 명작 《남산의 푸른 소나무》를 천만군민이 한목소리로 부르는 우리 혁명의 영원한 교향곡으로 높이 울리며 계속혁신,계속전진해나갈 때 최후승리는 반드시 이룩될것이다. 본사기자 백영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