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7월 10일 로동신문

 

지원의 숭고한 뜻을 안고 헤쳐가신 력사의 새벽길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넘쳐나는 7월의 조국강산이다.

이 아침,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의 탄생 122돐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의 가슴뜨거운 이야기가 되새겨진다.

김형직선생님의 탄생 100돐이 하루하루 다가오고있던 주체83(1994)년 7월 5일이였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손수 붓을 드시고 활달한 필체로 한자한자 써나가시였다.

《김형직사범대학》.

붓을 놓고 잠시 생각에 잠겨계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렇게 현판을 쓰고보니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고,아버지는 자신에게 생명을 준 혈육인 동시에 혁명의 길로 끊임없이 인도해준 스승이였고 지도자였다고 회고하시였다.

지원의 숭고한 뜻을 품으시고 한생을 불같이 사시며 조국과 민족앞에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그이의 빛나는 한생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오며 더욱 높이 울려퍼지는 불후의 명작 《남산의 푸른 소나무》와 더불어 우리 군대와 인민의 마음속에 길이 빛나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민중이 총칼을 들고일어나 원쑤와 싸워 나라도 찾고 착취와 압박이 없는 새세상도 세워야 한다.

우리 아버지가 고심하여 찾아낸 결론은 이러하였다.이것이 다름아닌 무산혁명방침이였다.》

1894년 7월 10일 애국적인 가정에서 탄생하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날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오로지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자신의 심장을 깡그리 불태우신 견결한 혁명투사이시였다.

지원의 높은 뜻을 지니시고 혁명의 길에 나서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주체5(1916)년 3월 중순 지금의 평양시 강동군 봉화리로 혁명활동의 거점을 옮기시고 지하혁명조직을 결성하기 위한 준비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시였다.

당시 일제의 조선강점후 반일비밀결사들이 일부 나왔으나 그것들은 핵심대렬이 약하고 로동자,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군중속에 뿌리를 박지 못하여 결국은 일제의 폭압에 견디여내지 못하고 자기의 존재를 마치는 경우가 많았다.

선행한 반일투쟁의 이러한 교훈을 환히 꿰뚫어보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봉화리에서 지하혁명조직을 결성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 벌리시는 한편 국내외의 여러곳에서 혁명조직의 핵심을 키우고 광범한 인민을 교양하고 각성시켜 튼튼한 대중적지반을 구축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벌려나가시였다.그리고 새로 무을 조직의 투쟁목적과 과업,조직의 형태와 조직지도체계들을 하나하나 완성해나가시는 한편 이에 기초하여 혁명조직의 투쟁강령과 활동규범을 규정하고 창립선언을 작성하는데 정력을 기울이시였다.

지하혁명조직을 결성하기 위한 사업을 오래동안 면밀히 준비해오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주체6(1917)년 2월에 지하혁명조직을 결성하기 위한 예비회의를 소집하신데 이어 3월 23일 평양 학당골에 있는 리보식의 집에서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조선국민회를 결성하는 력사적인 회의에서 2천만동포를 굳게 묶어세워 우리의 힘을 키워가지고 민족자력으로 나라의 독립을 성취하자면 강력한 반일지하혁명조직을 결성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직의 명칭과 형태,투쟁목적과 방법,수행방도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조선국민회는 전체 조선민족이 일치단결하여 조선사람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며 참다운 문명국가를 세울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로서 3.1인민봉기를 전후한 시기 조선의 애국자들이 무은 국내외의 조직들가운데서도 가장 규모가 큰 반일지하혁명조직의 하나였다.

조선독립을 위한 투쟁은 외세에 의존할것이 아니라 조선사람자체의 힘에 의거하여야 승리할수 있다는 반제자주적립장이 뚜렷한 조선국민회의 투쟁목적은 우리 인민의 한결같은 념원과 반일운동의 구체적실태를 정확히 반영한 반일민족해방운동발전의 지도적지침이였다.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께서 결성하신 조선국민회는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중추적혁명조직이였다.

조선국민회가 결성됨으로써 우리 나라 반일애국력량의 통일을 이룩할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였으며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은 옳바른 길을 따라 힘차게 전진하게 되였다.

조선국민회에는 로동자,농민,교원,학생,군인(독립군),상인,종교인,수공업자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이 다 망라되여있었으며 그 조직은 국내는 물론 중국의 베이징,상해,길림,무송,림강,장백,류하,관전,단동,화전,흥경 등 외국에까지 널리 뻗어있었다.

이렇듯 김형직선생님의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20세기 초엽 망국의 비운이 무겁게 드리웠던 삼천리강토에 민족자주의 기치가 힘있게 나붓기게 되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고결한 한생을 바치여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가운데서 중요한것은 나라의 독립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을 새 사회건설을 지향하는 무산혁명에로 전환시킴으로써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을 새로운 앙양에로 이끄신것이다.

시위를 하고 만세만 불러서는 침략자들이 물러가지 않는다는 3.1인민봉기의 피의 교훈은 시대앞에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을 새로운 길로 이끌어줄 옳바른 방략을 제시할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있었다.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실태와 력사적교훈,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분석과 우리 인민의 혁명적지향에 기초하시여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주체8(1919)년 7월 중순 청수동회의를 소집하시고 무산혁명의 필연성을 론증하시였다.

그후 8월 선생님께서는 력사적인 관전회의에서 무장을 들고 일제와 싸워 나라를 찾고 착취와 압박이 없는 새세상을 세울데 대한 무산혁명방침을 제시하시였다.

강도 일제와는 오직 무장을 들고 싸워야 한다!

이런 투철한 신조를 지니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새로운 시대적요구를 민감하게 받아들이시여 무산혁명의 방략을 내놓으심으로써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에로의 방향전환의 길을 열어놓으시였다.이것은 오직 새것에 대한 지향과 높은 혁신적안목을 지니신 김형직선생님께서만 내리실수 있는 대결단이였다.

참으로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일제식민지통치를 끝장내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을 민족자주의 원칙에 기초하여 민족자력으로 수행하기 위한 새로운 길로 이끌어주시고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의 길로 방향을 전환시킴으로써 반만년의 민족사와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력사에 거대한 업적을 쌓아올리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가운데서 가장 빛나는것은 아드님을 열렬한 애국자로,위대한 혁명가로 키우심으로써 나라와 민족의 밝은 전도를 열어놓으신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조국과 인민,겨레와 혁명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는 열렬한 애국자,견결한 혁명가,천리혜안의 예지와 령활한 령도예술,고매한 덕성을 지닌 탁월한 령도자로 키우시였다.

이것은 조국과 인민,겨레와 혁명앞에 쌓아올리신 김형직선생님의 민족사적인 공적으로 된다.

아버님으로부터 넘겨받으신 지원의 사상,3대각오,동지획득에 대한 사상과 더불어 두자루의 권총에 담겨져있는 숭고한 뜻과 리념을 깊이 새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항일혁명투쟁을 조직령도하시여 일제침략자들을 때려눕히고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였다.

아버님의 원대한 뜻을 가슴깊이 간직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을 수행하기 위한 새로운 혁명원리를 밝히시고 총대중시,군사중시사상과 리론을 내놓으시였으며 혁명투쟁의 전기간 그것을 일관하게 견지하여오시였다.

일찌기 총대의 심오한 진리를 깊이 체득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독창적인 선군혁명사상을 제시하심으로써 총대를 앞세우고 혁명과 건설을 힘있게 밀고나가는 선군의 새시대를 펼쳐주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력사의 새벽길에서 높이 추켜드시였던 지원의 뜻 어린 민족자주의 기치는 오늘 선생님께서 물려주신 두자루의 권총과 더불어 우리 혁명의 총대력사에서 귀중한 유산으로 되였다.

탁월하고 비범한 령도로 주체혁명위업을 최후승리에로 이끄시는 천하제일명장 김정은동지를 높이 모시여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께서 쌓아올리신 불멸의 혁명업적은 세기를 이어 더욱 빛을 뿌리고있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불후의 명작 《남산의 푸른 소나무》를 심장으로 부르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 따라 이 땅우에 주체의 사회주의강국을 반드시 일떠세우고야말것이다.

본사기자 김일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