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7월 11일 로동신문

 

로동당시대의 불사조

하반신불구의 몸으로 30여년세월 값높은 애국헌신의
자욱을 새겨온 로동자영웅 리평규동무에 대한 이야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당은 모든 사람들이 다 영웅이 될것을 요구하며 또 우리 사회에서는 누구나 다 영웅이 될수 있습니다.》

평범한 로동자가 창조한 인생의 기적이 메아리로 울려온다.

대동강구역 사곡경로동직장관리위원회 로동자 로력영웅 리평규동무,

그는 이미 38년전에 죽음을 선고받았던 사람이며 오늘까지도 하반신마비의 불구자로 침상에 매여있는 몸이다.

하지만 그는 30대 한창나이때부터 70고개를 넘어선 오늘에 이르는 기나긴 세월 두손에 마치를 억세게 틀어잡고 애국헌신의 자욱을 새겨왔으며 지금 이 시각도 로동당과 운명의 피줄을 잇고 사는 영웅적 김일성김정일로동계급이 어떤 사람인가를 불사조와도 같은 자신의 삶으로 증명하고있다.

2만여대에 달하는 각종 륜전기재들의 발전기와 시동기를 수리하고 수도의 중요대상건설장들과 전국의 수백개 단위들에 막대한 량의 지원물자를 보내주었으며 인민군군인들에 대한 원호사업을 헌신적으로 진행하여온 그의 한생에서 우리는 보았다.

로동당시대가 낳은 로동자영웅,불사조의 모습을.

 

최후가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금으로부터 38년전인 주체67(1978)년 5월 어느날 리평규동무는 병원침상우에서 추간판탈출증에 척수염으로 인한 전신마비라는 진단을 받았다.

억이 막혔다.

온몸의 감각이 깡그리 사라져버린 현실,삶과 죽음을 다같이 안고있는 육체를 두고 어느 무쇠심장인들 나약해지지 않을수 있으랴.

더우기 그는 운전사출신이였다.

보람찬 인생의 길,할 일도 많고 갈길도 구만리처럼 멀고먼 인생길을 두발로 걷기에는 성차지 않아 중학교시절부터 운전대를 잡고있는 자신의 모습을 꿈꿔온 그였기에 졸업후에는 뜨락또르를 몰고 기름진 취야벌을 갈아엎었고 군사복무의 나날에도 운전대를 잡고 오성산의 칼벼랑길을 제 집문턱 넘나들듯 했다.제대후에는 조선과학교육영화촬영소(당시)에서 운전사를 거쳐 운수직장장으로 사업하면서 자동차를 몰고 온 나라 방방곡곡을 메주밟듯 하던 그였다.

그러던 그가 졸지에 전신이 마비되여 침상에 쓰러졌으니 그 괴로움을 더 말해 무엇하랴.

불행중 다행으로 상반신의 마비는 풀렸지만 대지를 짚고 다녀야 할 하반신은 1년이 넘도록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런 속에 고향인 벽성군에 내려가 고려치료를 받던 리평규동무는 하반신마비라는 최종적인 진단을 받게 되였다.

온몸의 기운이 깡그리 잦아드는것만 같았다.

창밖에서는 봄기운이 완연하였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차디찬 서리가 내렸다.

이전에는 정답게 들려오던 생활의 모든 음향이 그의 심장을 아프게 허비였다.포전으로 나가는 농장원들의 웃음소리며 대지를 갈아엎는 뜨락또르의 힘찬 동음,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의 노래소리…

그 모든것을 안고 거침없이 흘러가는 생활의 흐름속에서 오직 자신만이 락오자가 되여 밀려났다는 쓰라린 괴로움…

옹근 사흘동안 한잠도 자지 못한 리평규동무는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다.잠을 자면 그 순간만이라도 모든 괴로움속에서 벗어날것만 같았지만 칼끝처럼 예리해진 신경이 말을 듣지 않았다.그는 머리맡에 있는 약함에서 잠약이 든 통을 꺼내들었다.약통뚜껑을 열고 손바닥에 대고 기울이자 알약들이 굴러나왔다.하얗고 또글또글한 그 알약들을 보는 순간 리평규동무는 이 약을 얼마나 먹으면 자신이 시름없이 편히 잘수 있을가 하는 생각에 빠져 어느새 손바닥우에 잠약이 수북이 쌓이는것도 의식하지 못한채 넋없이 바라보기만 하였다.바로 그 순간 누군가가 그의 손을 호되게 후려쳤다.손에 든 알약들이 방바닥에 후추알처럼 흩어져버리고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안해 오금선동무의 얼굴이 눈앞에 비껴드는 순간 그는 웨쳤다.

《난 죽은 몸이요.죽은 몸! 다시는 날 건드리지 마오.》

그 말에 안해는 왈칵 울음을 터치며 그의 왼쪽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도대체 누가 죽었다는거예요.여기서 심장이 뛰고있지 않아요.여기에 당원증이 있지 않아요!》

순간 리평규동무는 돌처럼 굳어졌다.심장이 뛰고있고 당원증도 그대로 있다는것은 육체적생명도 정치적생명도 다같이 살아있다는 의미가 아닌가.그 의미를 깨우쳐준 안해 역시 당원이였다.

그날 밤 자신의 당원증을 쓰다듬으며 잠 못 드는 그의 귀전에는 군사복무시절의 련대장이였던 백원제동무가 들려주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최춘국동지가 지휘하던 사단에서 대대장으로 복무했던 백원제동무는 자기의 운전사였던 리평규동무에게 최춘국동지의 최후의 5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군 하였다.

안동해방전투를 지휘하다가 치명상을 입고 사경에 처한 순간에 군의에게 자신의 생명을 5분만 연장시켜달라고 부탁한 최춘국동지,전투승리를 위한 작전적의도와 최고사령부의 명령을 기어이 완수해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남긴 그 5분은 결코 그 어떤 의술이나 약물의 힘으로 연장된 생의 시간이 아니였다.당과 혁명앞에 지닌 본분을 다하기 전에는 죽을 권리가 없다는 강철의 신념과 의지가 낳은 시간이였다.

참된 인간의 최후는 한생의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라는 진리가 그 짤막한 5분속에 담겨져있었다.

자신이 너무도 천만뜻밖의 불행에 짓눌려 그 귀중한 생명의 진리를 저도 모르게 잊고 살았다는것을 깨닫는 순간 리평규동무는 자신의 심장속에 살아있는 《로동당원 리평규》에게 이렇게 웨쳤다.

그렇다.이제부터 시작이다.로동당원의 생명이 얼마나 강한가를,참된 로동계급은 육체적능력이 아니라 정치적생명의 힘으로 일한다는것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

다음날부터 리평규동무는 침상에 엎드려 운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힘에 부쳤다.

1년동안 침상에 누워있느라 근육이 풀리고 나른해진 두손은 상반신을 추켜올리기도 힘겨워했다.

하지만 리평규동무는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잠약을 담아들었던 그 손에 이제부터 새롭게 시작된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의탁해야 했던것이다.

하나,둘,셋,넷… 이렇게 나직이 외우며 모지름을 쓰다가 열번도 채우지 못하고 쓰러질 때면 영화며 회상기에서 보았던 투사들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혁명을 위해 기어이 살아야 했기에 생눈을 씹어삼키며 삶을 지켜내고 제손으로 자기의 두발을 자르며 죽음과 싸워 이긴 항일의 불사조들을 생각하며 정신과 힘을 다시 가다듬었다.그럴 때마다 온몸을 적시며 흘러내린것은 결코 땀이 아니였다.

혁명을 위하여,당과 수령을 위하여 기어이 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안고 고동치는 불굴의 심장에서 뿜어져나오는 붉은 피였다.

며칠후 평양으로 올라온 리평규동무는 대동강구역의 어느 한 편의사업소에 직장수속을 하였으며 나라에 보탬이 될수 있는 일들을 찾아하기 시작하였다.자투리천들을 모아 끈도 꼬았고 아이들에게 보내줄 학습장도 묶었다.남들같으면 심심풀이로나 여길 별치않은 일거리였지만 그에게는 너무나도 힘에 겨운 《중로동》이였다.조금만 일하고나면 베개를 고인 가슴이 아파나고 숨이 찼다.그때마다 돌아누워 한숨 돌리고나서는 또다시 엎드려 일하던 어느날 리평규동무는 병문안을 왔던 촬영소의 일군으로부터 어버이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자동차들이 여러대나 발전기고장으로 주저앉았다는 소식을 전해듣게 되였다.인민들과 아이들에게 더 많은 과학영화와 아동영화를 만들어주라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자동차,자신의 살붙이처럼 애지중지하던 그 차들이 멎어버렸다는 사실을 외면할수 없어 어제날의 운수직장장은 생소한 발전기수리에 달라붙었다.지식이 모자라면 중학교물리교과서까지 들여다보며 거듭되는 실패끝에 그는 발전기를 살려내고야말았다.

축구공만 한 발전기 한대를 살리는데 한달이 걸렸다.

하지만 남들은 한생이 걸려도 할수 없는 일을 자신이 해낸것만 같은 희열이 가슴가득히 차올랐다.이때부터 리평규동무는 자동차수리공으로 일하기 시작하였다.

 

로동수첩이 없는 자동차수리공

 

70고개를 넘은 오늘까지도 자동차수리공으로 일하고있는 리평규동무에게는 로동수첩이 없다.

로동으로 부를 창조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다 있는 로동수첩,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얼마나 성실히 일하여왔는가가 기록되는 법적증거문건이 그에게 없는것은 바로 로동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리평규동무에게 사회보장의 권리만 있을뿐 로동의 의무는 부여되여있지 않기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 어느 로동자에게도 없는 류다른 《출근부》가 있다.

인생의 새 출발과 더불어 자기스스로가 만든 《출근부》,《리평규》라는 한사람의 이름만이 새겨진 기록장에 그는 하루일을 마치고서야 수표를 한다.

오늘은 자신과 함께 자동차수리공으로 일하고있는 두 아들의 이름도 새겨져있는 그 《출근부》는 리평규동무에게 있어서 량심으로 펼치는 《로동수첩》이였으니 그 《로동수첩》에 불사조의 의지로 새겨온것이 어찌 《리평규》라는 이름 석자뿐이랴.

높은 정밀도와 정결도를 요구하는 발전기수리를 하반신마비의 불구자가 해낸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손끝에서 불과 몇㎝ 떨어진 공구도 잡기 힘들어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도움받을 손길이 없을 때는 기름묻은 두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기여다녀야 했다.일요일이면 발전기의 고정자와 회전자를 분리하기 위해 안해와 아들이 발전기들이 들어있는 무거운 배낭을 지고 기계공장을 찾아가야 하였고 로동일에는 직장일로 바쁜 어머니와 오빠를 대신하여 막내딸 금희가 아버지의 일손을 도와주어야 했다.

하루는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금희가 놀이터에서 동무들과 함께 줄넘기놀이를 하다가 날이 어둑해져서야 집에 들어온적이 있었다.그날따라 급한 발전기수리가 제기되였는데 도와줄 일손이 없어 속을 태워야 했던 리평규동무는 해가 져서야 얼굴이 발깃해서 집에 들어선 금희를 자기도 모르게 호되게 질책했다.

기름이 묻어나는 발전기부속품보다는 장난감을 먼저 찾을 애어린 나이,아버지의 시중을 들어줘야 하는 비좁은 방안보다는 잠자리가 날아예는 시원한 풀밭이 더 그리웠던 그 시절에 아버지의 옆에 앉아 자신의 팔다리를 대신해주는 어린 딸에게 아픈 소리를 한것이 너무도 마음에 걸려 그날 밤 리평규동무는 한잠도 자지 못했다.그날 그는 딸에게 이렇게 말하고싶었다고 한다.

금희야,아버진 정말 할 일이 많구나.로동당원의 본분을 다하자면 이 몸이 열백이 되여도 모자라는데 아버지에겐 두손밖에 없구나.

이 말은 어린시절의 리금희동무에게만 하고싶었던 말이 아니였다.매일 아침 밥을 짓고 남편을 거들어주고 네명이나 되는 아들딸들의 출근과 등교를 보장해주고서야 직장까지 땀에 젖어 달려가던 안해에게 하고싶었던 말이였다.시집갈 나이가 차도록 고운 옷 한벌 마련해주지 못한 맏딸 경희에게도,침상에 엎드려있는 몸이여서 언제 한번 따뜻이 안아보지 못한 막내아들 광수에게도 하고싶었다.운신하지 못하는 자신을 대신하여 세 동생의 아버지구실을 해주고 마음의 의지가 되여준 맏아들 경수에게도 하고싶었던 이 말을 리평규동무는 육체적인 괴로움보다 사랑하는 처자들이 겪는 고충을 보는것이 더 힘들었던 수십년세월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왔다.

그 나날 리평규동무가 살려낸것은 2만여대의 발전기와 시동기만이 아니였다.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어느날이였다.

그날도 발전기수리에 전념하던 리평규동무는 벌써 30분이 되여오도록 들려오는 자동차발동소리에 일손을 멈추었다.분명 시동기고장으로 해서 한번 걸어놓은 발동을 끄지 못하는것이 분명했다.함께 일하던 맏아들을 시켜 운전사를 데려오도록 한 리평규동무는 저런 식으로 발동을 걸어놓고있으면 하루에 연유가 얼마나 랑비되는가고 물었다.

애젊은 운전사는 흔연한 어조로 8㎏쯤 소비된다고 대답하였다.

《적지 않은 량이구만.그런데 왜 시동기를 고치지 않소.》

《부지깽이도 뛰여야 할판인데 언제 차를 뜯어놓고 주무를새나 있습니까.… 천천히 하지요.》

대수롭지 않은 그 대답에 리평규동무는 울컥 치밀어오르는 격정을 가까스로 내리누르며 당장 시동기를 가져오라고 말했다.

정류자편과 철심이 다 녹아붙은 시동기는 수리라기보다 새로 만들어야 할 정도로 한심한 상태였다.당장 수리해야 할 발전기도 있는 형편에서 그것까지 수리할 시간적여유도 없었다.하지만 리평규동무는 운전사에게 말했다.

《한주일후에 오라구.10년은 끄떡없이 쓰도록 고쳐주겠소.》

침상에 엎드린채 자신을 올려다보며 말하는 리평규동무를 놀라운 눈길로 바라보던 운전사는 더 다른 말을 못하고 돌아갔다.

한주일후에 다시 찾아온 운전사를 놀라게 한것은 새것처럼 수리한 시동기보다도 너무나도 수척해진 리평규동무의 모습이였다.

며칠밤을 꼬박 새느라 입술에 조갈이 들고 볼이 훌쭉 들어간 모습이 가슴을 찔렀다.남들처럼 한자리에 오래 앉아있지도 못하는 몸으로 불과 한주일사이에 시동기를 새로 만들다싶이 한 그 수고가 어려와 머리를 들지 못하는 운전사에게 리평규동무는 말했다.

《운전사동무,내 소원중의 하나가 뭔지 아오? 우리 나라에서 원유가 터져나오는 날 가슴이 후련하게 만세를 부르는거요.》

그래서였다.나라의 식량과도 같은 연유,귀중한 외화를 주고 사들여오는 그 연유를 자신의 피방울처럼 귀중히 여기는 뜨거운 애국의 마음,그 마음앞에서 운전사는 고맙다는 인사대신 잘못했다고 머리숙여 사죄하였다.

이렇게 리평규동무는 발전기나 시동기같은 쇠붙이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도 다듬어주었다.

부속품타발,도로타발을 하며 나라에서 맡겨준 귀중한 자동차를 되는대로 다루던 운전사들도 침상에 엎드려 밤새워 일손을 다그치는 그의 모습앞에서는 자신을 돌이켜보지 않을수 없었다.

아마도 사람들은 한자리에 누워 운신하지 못하는 환자가 어떤 상처에 시달리는지 잘 알것이다.그런 상처가 30여년을 하루와 같이 엎드려 일하는 리평규동무에게는 더욱 심했다.총상자리를 방불케 하는 험한 상처를 6~7군데,어떤 때는 10군데이상이나 품고서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다는것이 과연 보통인간의 정신력으로 가능할수 있겠는가.상처를 걱정하는 사람들앞에서 그자신은 아무런 아픔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흔연히 웃어넘겼지만 그 상처들로 하여 리평규동무는 항시적인 미열에 시달렸으며 때로는 심한 염증으로 인한 고열로 의식까지 잃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이겨내며 두다리가 성한 사람들도 가기 힘든 먼길을 걸어왔다.

광복거리,통일거리,5월1일경기장,녕원발전소,희천발전소를 비롯한 중요대상건설에 참가한 수많은 륜전기재들의 발전기와 시동기를 수리하였다.이 과정에 여러 운수단위의 일군들을 알게 된 리평규동무는 그들과의 련계밑에 빈차들의 운행을 합리적으로 리용하여 10여만㎥의 골재를 수도의 건설장들에 보장해주었다.30여년세월 누가 보건말건 묵묵히 김일성광장 돌포장공사로부터 려명거리건설에 이르는 전국각지의 수백개 건설장과 공사장,협동농장,인민군부대들에 대한 지원사업과 원군사업을 진행하였을뿐만아니라 수많은 수리공들을 양성하여 대건설장들과 중요운수단위들에 보내주었다.

고대의 한 학자는 자기에게 지지점만 주면 지구를 들겠다고 말했다.육체적지탱점을 잃은 리평규동무에게는 지구가 아니라 하늘이라도 떠받들수 있는 지지점이 있었다.그것은 남을 위해 바치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것을 인생의 락으로 여기며 한몸 깡그리 바치는 로동계급의 순결한 량심이였고 강의한 의지였다.

비록 로동수첩은 없어도 이런 량심과 의지를 안고 로동의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그에게 나라에서는 생활비를 준다.

남편을 대신하여 그 생활비를 받아올 때마다 오금선동무는 리평규동무가 편의사업소 로동자가 되여 첫 생활비를 타던 날을 돌이켜보군 한다.

생활비가 든 봉투를 받아안고 물기어린 눈으로 웃음짓던 남편의 모습!

그때 안해는 물었다.첫 생활비를 받은게 그렇게도 기쁜가고.

남편의 대답은 안해의 가슴을 울렸다.

《이제부턴 떳떳하게 당비를 바칠수 있게 되였구만.》

당비! 액수를 따진다면 많지 않은 돈이였다.하지만 나라의 혜택으로 받는 보조금이 아니라 자신의 성실한 로력이 스민 생활비로 당비를 바치게 된것이 그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기쁨이였으니 리평규동무는 바로 이런 진짜배기로동자였고 로동당원이였다.

 

《동무의 나이는 로동당의 나이와 같소》

 

리평규동무는 1945년생이다.그가 입당할 때 당원증에 새겨진 생년월일을 본 부대의 정치일군은 말했다.

《동무의 나이는 로동당의 나이와 같소.》

우리 당대렬에 들어선 격정과 환희에 젖어 례사롭게 들었던 그 말을 리평규동무는 수십년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금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통일거리건설로 온 나라가 들끓던 주체79(1990)년 봄이였다.대동강구역 문수3동 44인민반에 자리잡은 리평규동무의 집문을 두드리는 나이지숙한 일군이 있었다.

대동강구역당위원회 책임일군이였던 리광범동무였다.며칠전 해당 부서의 일군을 통해 사곡경로동직장관리위원회 로동자인 리평규동무의 소행자료를 처음 보게 된 리광범동무는 그를 직접 만나고싶은 충동을 금할수 없어 집으로 찾아왔던것이다.잠시후 문을 열어준 금희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서던 리광범동무는 침상에 엎드린채 시동기의 정류자편을 연마하고있는 리평규동무를 보고 그 자리에 굳어졌다.

하반신마비의 불구자라고 할 때 세바퀴차를 타고 건설장들을 찾아가 경제선동을 하던 영예군인들의 모습이 표상의 전부였던 그에게 있어서 보통사람들이 리용하는것의 몇배는 실히 될 큼직한 베개를 고이고 기름투성이,땀투성이가 되여 일하는 리평규동무의 모습은 너무도 상상밖이였던것이다.

그는 본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리평규동무가 덮고있는 모포자락을 조심히 들춰보았다.오랜 기간 쓰지 못하여 상반신에 비해 너무도 약해진 하반신이 드러났다.총탄이 뚫고나간것 같은 상처들도 보였다.

무엇인가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것을 억제하며 모포를 덮어주던 리광범동무의 눈길이 침상옆에 놓여있는 치료함에 가멎었다.뚜껑을 열어보니 핀세트며 약솜,가제천 등 처치에 필요한것들이 있었다.그것을 눈여겨보던 리광범동무는 가제천의 색갈과 재질이 어딘가 다르다는것을 느꼈다.

《이게 가제천이 옳소?》

그 물음에 리평규동무가 머리만 긁적이며 대답을 피하는데 어린 금희가 끼여들었다.

《그건 모기장이예요.아버진 지원사업이랑 많이 하자면 절약을 해야 한다면서 가제천도 마음대로 못쓰게 해요.》

어딘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어린듯 한 대답에 다시 놀란 리광범동무가 격한 어조로 되물었다.

《모기장을 가제대용으로 쓴단 말이요?》

할수없이 리평규동무는 사실대로 말했다.여러군데나 되는 상처를 매일 처치해야 하는데 거기에 드는 약솜과 가제가 적은 량이 아니라고,침상에 매인 몸이 되여 나라의 혜택만 받고있는데 어떻게 병원에서 그냥 주는 가제라고 김장철 무우썰듯 하겠는가.그래서 모기장을 가마에 찐 다음 소독처리해서 써보았는데 아무 탈도 없었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들으며 리광범동무는 자기의 눈귀에서 뜨거운것이 흘러내리는것도 의식하지 못하였다.

너무나도 크나큰 충격이 그의 심장을 통채로 울렸던것이다.

이튿날 구역인민병원의 의료일군들이 많은 량의 의약품을 안고 찾아왔고 얼마후에는 리평규동무의 집앞에 발전기수리소가 새로 꾸려졌다.

식구들과 함께 자는 방안에서 수리작업을 하는 리평규동무를 위해 구역당위원회에서 취해준 조치였다.

이때부터 리광범동무는 지나가던 길이면 의례히 들려 몸상태도 알아보고 그의 가정에서 제기되는 애로들을 한가지라도 풀어주기 위해 애썼다.어느해 설날 아침에도 제일먼저 집으로 찾아온 그는 리평규동무에게 이렇게 말했다.

《평규동무,동무는 나에게 있어서 예술영화 〈군당책임비서〉에 나오는 최관배로인과도 같소.힘들고 지쳤다가도 동무를 보면 힘이 나거던.내 이제 박우필이같은 일군들이 나타나면 동무에게 보낼테니 동무는 그저 다른 말 말고 자기가 일하는 모습만 보여주면 되오.》

이렇게 한개 구역을 책임진 당책임일군과 한 로동자당원은 서로의 의지가 되여주며 어깨를 겯고 한길을 걸어오게 되였다.

잊지 못할 첫 상봉이 있은 때로부터 10여년세월이 지난 주체92(2003)년 리광범동무는 리평규동무를 선군시대공로자로 추천하는 문건에 수표하였다.

그 문건은 평양시당위원회의 일군들을 놀래웠다.이 동무야말로 선군시대공로자가 될 자격이 있다면서 리평규동무를 찾아왔던 시당위원회 일군 역시 10여년전 리광범동무와 꼭같은 체험을 하고 돌아갔다.

그후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일군들이 수리소의 문을 두드렸고 또 며칠이 지나서는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찾아와 고무해주었다.수리소의 키낮은 문으로 련련히 들어서는 일군들을 맞이하고 보내면서도 리평규동무는 자신에게 얼마나 뜨겁고 강렬하며 위대한 사랑과 영광이 마주 오고있는가를 예감하지 못하였다.

주체92(2003)년 8월 리평규동무는 사륜차를 타고 만수대의사당에 들어섰다.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나라의 중대사가 토의결정되는 그곳에서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력영웅칭호를 수여받았다.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일군이 로력영웅증서를 랑독하고 그것을 내밀었을 때 리평규동무는 선뜻 받아들지 못했다.두손을 내밀수 없었던것이다.

1만대가 훨씬 넘는 발전기며 시동기를 수리하느라 험해진 손,이제는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기계기름이 꺼멓게 배이고 아직도 디젤유냄새가 물씬 풍겨오는것만 같은 그 손으로 감히 신성한 영웅증서를 받아안을수 없어 두손을 감싸쥔채 흐느껴울었다.그러는 그의 손을 따뜻이 잡아끌며 로력영웅증서를 꼭 쥐여준 일군이 이어 마치와 낫이 새겨진 로력영웅메달을 가슴에 달아주었다.

리평규동무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눈물이 앞을 가리웠던것이다.

하지만 그의 심장은 자신의 두손을 잡아 걸음걸음 이끌어준 고마운 어머니당의 손길을 력력히 느끼고있었다.

자기때문에 리평규동무의 당생활에 공백이 생겨서야 되겠느냐며 앓는 몸으로 찾아와 당정책을 알려주던 당세포비서(당시)로부터 험한 상처를 직접 쓰다듬으며 동무같은 사람이야말로 진짜배기당원이고 애국자라면서 저 먼저 눈굽을 적시던 당중앙위원회 일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당원들과 당일군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은 당의 모습이였다.자신의 정치적생명에 끊임없는 활력을 부어주며 영광에로 떠밀어준 위대한 어머니의 모습이였다.

만수대의사당에서 나온 길로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찾은 리평규동무는 불구의 몸이 되여 영영 쓰러질번 한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고 시대의 영웅으로 내세워준 위대한 당을 따라 걸어서 못 가면 기여서라도 끝까지 가겠다는 신념과 의지의 맹세를 굳게 다졌다.

그날 저녁 리광범동무가 찾아왔다.

10여년전 리평규동무에게 마련해주었던 수리소건물을 처음 보는듯 새삼스런 눈길로 바라보던 그는 자책어린 어조로 말했다.

《난 동무를 선군시대공로자로 추천하는것만으로도 내 할바를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당에서는 나라의 영웅으로 내세워주었구만.》

그후 리광범동무의 발기로 수리소의 건물을 현대적으로 개건하기 위한 공사가 진행되여 탑제발전기수리소는 어제날의 모습을 찾아볼수 없게 자기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새로 개건된 수리소에서 리평규동무는 두 아들과 함께 8,000대가 넘는 자동차발전기와 시동기들을 수리하였다.그 나날 리경수동무는 구역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성장하였다.

나이가 들수록 리평규동무의 심장에 간직된 정치적생명의 힘은 더욱 강해졌다.지난해 년로한 몸에 뇌출혈로 쓰러졌던 그가 너무도 빠른 기일내에 건강을 회복했을 때도 사람들은 정치적생명의 힘으로 살아온 불사조가 다르다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영웅이 된 때로부터 어느덧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그동안 대동강구역당위원회의 책임일군들도 여러명이 바뀌였다.하지만 그들이 안고 오는 당의 사랑과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지난해 봄 새로 임명된 대동강구역당위원회 책임비서(당시) 전금철동무가 리평규동무를 찾아왔다.마치 구면지기나 되는듯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던 젊은 책임비서는 리평규동무의 나이가 70살이라는것을 알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 우리 당과 나이가 같은셈입니다.》

순간 그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 당과 자신의 나이가 같다는것이 그 어떤 우연한 일치로 안겨오지 않았다.

조선로동당과 운명의 피줄을 잇고 살아온 자신의 한생이 돌이켜졌다.평범한 로동자를 시대의 영웅으로,불사신으로 키워준 조선로동당이 있는 한 자신의 생명도 영원할것이라는 확신이 가슴가득 차올랐다.그의 눈앞에는 당원증을 처음 수여받던 그날이 어제런듯 떠올랐다.이 세상 그 누구도 빼앗을수 없는 영원한 정치적생명을 받아안던 못 잊을 그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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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리평규동무에게 여러차례에 걸쳐 은정어린 감사와 선물을 보내주시고 그를 선군시대영웅대회를 비롯한 여러 뜻깊은 대회들에 불러주시였으며 리평규영웅을 비롯한 10명의 영웅을 배출한 벽성군 벽성중학교(당시)를 영웅벽성중학교(오늘의 영웅벽성고급중학교)로 명명해주시고 그 명명식에 참가하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지난해 6월 16일 리평규동무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보내주신 뜻깊은 생일상을 받아안았다.리평규동무가 당창건 70돐을 경축하기 전에는 자기의 생일을 쇨수 없다면서 일속에 파묻혀있을 때 우리 당은 그의 생일을 잊지 않고 뜨거운 은정을 안겨주었던것이다.

이 나라 천만아들딸들에게 천금주고도 바꿀수 없는 정치적생명을 안겨주어 죽음을 모르는 혁명의 불사조로 키워주는 위대한 조선로동당,로동계급을 나라의 맏아들로 내세우고 이끌어주는 위대한 어버이의 품속에서 영웅으로 자란 리평규동무,

불구가 되였다고 로동을 포기할것이 아니라 당이 준 심장이 고동치는 한 영원히 계급의 마치를 놓지 말아야 한다는 진리로 그는 자기를 지켜냈고 조선로동계급의 영웅적성격을 자랑스럽게 과시하였다.

오늘도 대동강구역에 자리잡은 탑제발전기수리소를 찾는 사람들은 침상에 엎드려 일을 하는 리평규동무의 모습을 보게 된다.온 나라 인민이 위훈으로 새겨가는 충정의 200일전투기록장에는 그의 고귀한 땀방울도 스며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승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