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2월 12일 로동신문

 

[정세론해설]

화학무기개발에 광분한 일제의 죄악

 

언제인가 어느 한 나라의 잡지가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하였거나 위험한 8대섬》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일본의 오꾸노섬을 제일 첫번째로 소개한바 있다.일본 히로시마현 다께하라시의 앞바다에 있는 오꾸노섬은 현재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곳이다.《토끼섬》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야생토끼들이 많이 번식하고있다.과거에 일본이 이곳에 독가스제조공장을 차려놓고 방대한 량의 독가스를 생산하였다는데 대해서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침략전쟁들에서 독가스무기를 사용할것을 획책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은 1929년부터 오꾸노섬에서 독가스제조공장을 가동시키기 시작하였다.

사실 1925년에 채택된 제네바의정서에 따라 국제적으로 질식성, 독성 또는 기타 가스 및 세균학적수단들을 전쟁에 사용하는것은 금지되여있다.그러나 일제는 국제법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때부터 독가스무기연구에 달라붙은 일제는 1920년대에 도이췰란드에서 전문가를 초청하여 개발을 추진하였으며 치사성독가스합성에서 련이어 성공하였다.

이에 토대하여 일제는 독가스를 생산할수 있는 공장을 건설하는 단계에로 넘어갔다.적중한 장소를 물색하던 일제는 오꾸노섬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였다.륙지와 멀리 떨어져있어 비밀보장에도 유리했고 만일의 경우 사고가 발생해도 피해를 극력 줄일수 있었기때문이다.오꾸노섬을 독가스제조공장부지로 정식 확정한 일제는 비밀루출을 방지하기 위해 섬주민들을 강제이주시켰으며 지도상에서도 섬을 지워버렸다.

1929년 5월 19일 군부의 고위인물들과 히로시마현 지사를 비롯한 많은 관계자들이 공장조업을 《축하》하기 위해 섬을 찾았다.

그후 일제는 위험하고 한심한 생산환경에도 불구하고 기술자와 로동자들을 계속 내몰아 끝내 독가스의 완전한 제조법을 확립하였으며 1940년부터는 독가스제조를 전문적으로 담당할 기술자양성사업을 시작하였다.

봉급도 후하게 주고 공부도 시켜주겠다는 유혹으로 10대의 어린 소년들을 섬에 끌어온 일제는 그들에게 독가스제조법을 배워주었다.한 생존자는 처음에 섬에 올라 코를 찌르는 이상한 냄새를 맡으면서도 자기들이 일할 곳이 무기공장이라는것밖에는 알지 못했다고 증언하였다.후에 점차적으로 내막을 알게 되였고 이곳에서 일하는 과정에 그들은 독가스로 사람을 죽이는것쯤은 응당한것으로 간주하게 되였다.이것은 일제가 그들의 머리속에 심어놓은 군국주의독소의 결과였다.

일제는 침략전쟁에서 수세에 몰리게 되자 더 많은 소년들을 《동원》이라는 미명하에 섬에 끌어다놓고 삼엄한 감시속에서 일을 시키면서 독가스생산을 대대적으로 늘이였다.이곳에서 만들어진 독가스무기들은 중국 등 여러 지역들에 보내여져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오꾸노섬에서의 독가스제조는 일제패망과 함께 끝을 맺게 되였다.공장에서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6 000여t의 독가스가 제조되였으며 여기에 종사한 로동자, 학생들의 수는 6 000여명에 달하였다.섬에 저장되여있던 독가스와 가스탄 등은 고찌현 도사앞바다에 버려지거나 섬에 있는 방공호에 매몰되였다.1947년 일본은 저들의 죄과가 알려지는것이 두려워 공장과 저장고를 파괴해버리였다.

원래 섬에서 진행된 작업이 일체 비밀이였고 가족들에게 말하는것조차 금지되여있었으므로 절대다수 일본인들은 오꾸노섬에 독가스제조공장이 있었다는데 대해서 알수 없었다.그러던것이 1952년 독가스제조공장에서 일했던 한 로동자의 사망원인을 놓고 조사를 벌리는 과정에 오꾸노섬에서의 일제의 범죄만행이 폭로되게 되였다.

오꾸노섬에서 일하던 많은 사람들이 독가스에 의한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비명에 세상을 떠났다.2015년 4월현재 일본에서 독가스장애자라는 인정을 받은 이전 학생과 로동자들의 수는 2 150명에 달하였다.

수십년세월이 흐른 오늘 오꾸노섬의 모습은 몰라보게 변하였다.하지만 아직도 범죄의 흔적은 섬의 여기저기에 남아있다.오꾸노섬에 세워진 독가스박물관은 일본의 과거범죄행위를 낱낱이 고발하고있다.

《대동아공영권》을 제창하며 대량살륙무기개발에 광분하였던 일제의 범죄행위는 비단 이뿐이 아니다.

일본본토뿐아니라 우리 나라와 중국을 비롯한 식민지, 점령지들에서 《연구소》, 《방역소》의 간판을 내걸고 인체실험까지 감행하면서 세균무기, 화학무기개발에 열을 올리였던 극악한 죄행은 지금도 계속 폭로되고있다.특히 일제가 패망직전까지 제땅도 아닌 조선반도에서 극비밀리에 원자탄개발을 적극 추진한 사실앞에서 사람들은 치를 떨고있다.일제야말로 침략과 전쟁을 위해 대량살륙무기개발에 피눈이 되여 돌아친 인류의 극악한 원쑤였다.

오늘 일본이 저들을 《핵참화를 당한 유일한 피해국》이라고 하며 국제사회의 동정을 사보려고 교활하게 책동하고있지만 그것은 과거범죄를 가리우기 위한 기만극에 지나지 않는다.미국으로부터 핵참화를 당한 히로시마현내에 무서운 살인무기제조공장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본은 그 무슨 《피해》에 대해 할 소리가 없을것이다.만일 일제의 패망이 조금만 늦추어졌더라면 인류는 군국주의광신자들이 휘두르는 원자탄과 세균 및 독가스무기에 의해 더 큰 참화를 입었을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범죄로 얼룩진 이 모든 력사적사실들을 부정하고있다.오히려 군사대국화책동에 열을 올리며 방대한 량의 핵물질을 비축하는 등 위험천만한 움직임들을 보이고있다.이것은 언제든지 과거범죄를 되풀이하려는 기도의 발로로밖에 달리는 볼수 없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일제의 죄악은 지울수도 덮어버릴수도 없다.국제사회는 과거죄악을 한사코 부정하며 범죄행적을 답습하는 길로 나아가려는 현 일본반동들의 책동을 예리하게 주시하고있다.

본사기자 안철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