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2월 1일 로동신문

 

혁명전통옹호고수의 불멸의 업적 전하는 백두산의 관문도시

백두산지구에 새겨진 위대한 장군님의 거룩한 자욱을 따라(1)

 

위대한 장군님의 탄생 75돐을 맞으며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을 온 세상에 소리높이 전하고저 기행길에 오른 우리의 마음을 담고 승용차는 달리고달리였다.후치령을 넘어 량강땅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는 진짜겨울맛을 체험하게 되였다.우리의 눈앞에 흰눈의 세계가 펼쳐졌다.소소리높은 산발들과 골짜기들에는 온통 흰눈이 쌓였는데 기다린듯 다가서는 령길들과 밋밋한 등판으로 흰갈기를 치켜든 눈보라가 끝없이 몰아치고있었다.

우리 인민의 정신적기둥으로 되고있는 혁명의 성지를 찾으려는 사람들은 혜산시를 거쳐야 한다.

량강도 소재지인 혜산시는 한마디로 말하여 백두산관문도시이다.

우리가 혜산시에 이르니 시내중심에 모셔져있는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이 제일먼저 안겨왔다.위대한 수령님들께서 백두산을 찾아 먼길을 달려온 우리들을 따뜻이 맞아주시는것만 같아 마음은 절로 뜨거워졌다.

량강도는 가는 곳, 이르는 곳마다에 백두산절세위인들과 만경대혁명일가분들의 혁명사적이 력력히 새겨져있다.흰눈을 떠이고선 한그루한그루의 이깔나무, 봇나무들과 진대나무, 강대나무에도 애국에 불타고 혁명열로 높뛰던 백두산위인들의 거룩한 체취가 슴배여있고 소중한 사적이 깃들어있는듯싶어 천만의 정신세계를 승화시켜주는 량강땅의 관문이 혜산시인것이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동상을 우러르느라니 지난해 11월 삼지연군을 찾으시였던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할데 대하여 강조하시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금시 귀가에 들려오는듯싶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하여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주체의 혁명전통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해나가야 합니다.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전사, 제자들인 우리들의 숭고한 의무이고 도덕의리입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그날의 말씀의 깊은 뜻을 새길수록 여기 량강땅의 수많은 혁명전적지들을 세월의 흐름속에서도 변함을 모르게 원상대로 꾸리도록 하여주시고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정중히 모시도록 하시여 백두의 혁명전통이 영원히 빛을 뿌리게 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이 뜨겁게 되새겨졌다.우리는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으로 오르는 길에 괘궁정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혜산땅에 파몰아친 력사의 풍운을 말하여주는 유적이였다.

괘궁정은 본래 혜산진성 남문의 문루였다.우리 선조들은 혜산을 압록강연안의 중요한 요새지로 꾸리고 이곳에 진을 두었다.괘궁정이라는 이름은 옛날 혜산진성에 주둔한 군인들이 이 루정에 활을 걸어놓고있다가 침입해오는 외적을 막았다는 뜻에서 붙인것이라고 한다.그런데 일제가 지난 시기 조선을 강점하였을 때 이른바 《압록강국경경비포대건설》이니 뭐니 하면서 고의적으로 혜산진성의 성벽을 파괴하고 괘궁정에도 불을 질렀다.일제의 악착스러운 민족말살정책에 의해 그 존재마저도 잃을번 했던 괘궁정은 위대한 장군님의 은정어린 손길에 떠받들려 자기의 모습을 되찾게 되였다.오늘은 그 마루에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보여주는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이 높이 모셔진것으로 하여 온 세상이 다 아는 영광의 언덕으로 빛을 뿌리게 되였다.

우리는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이 우뚝 솟아있는 괘궁정마루에 섰다.운주봉과 제당령등판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곳에 로동당시대와 더불어 몰라보게 변모된 혜산시의 전경이 유정하게 안겨들었다.유구한 세월을 말하여주며 키높이 자란 비슬나무, 종비나무들이 동서천리 넘나드는 세찬 바람을 잠재우는 교양마당에서는 은은한 음악소리가 울리고있었다.

괘궁정마루에 높이 세워진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을 바라보느라니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무장대오를 이끄시고 오늘도 백두의 눈보라길을 헤치시는듯 숭엄한 감정이 솟구쳐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혁명투쟁의 영광찬란한 로정과 불멸의 업적을 형상한 이 대기념비는 흰 화강석기단과 나붓기는 붉은 기발을 형상한 탑신, 그 정면에 모신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과 탑신두리에 청동부각으로 형상한 60명의 군상으로 이루어져있었다.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은 보천보전투를 위주로 하면서 항일혁명투쟁과정에서 이룩된 우리 당의 혁명전통의 기본내용을 폭넓게 담고있었다.

한손에 쌍안경을, 다른 손에 쥐신 군모를 싸창갑에 얹으시고 멀리 앞을 내다보시는 백두산청년장군의 동상을 우러르느라니 조국해방을 위한 항일혁명투쟁을 승리의 한길로 조직령도하여오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며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걸출한 위인상이 숭엄히 안겨들었다.

좌우에 형상된 남녀대원의 모습은 사령관동지를 견결히 옹호보위하여 싸워가려는 항일혁명투사들의 철석같은 신념과 의지를 반영하고있었다.부주제군상들에 있는 유격대원들과 허리에 물고뿌를 드리우고 배낭에 피리를 넣은 소년중대원, 정치공작원과 부두로동자, 농민, 유격대를 찾아가는 자위대원과 부녀회원 등 다른 인물들의 형상을 보아도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과 절대적인 흠모심,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혁명적동지애, 원쑤에 대한 끝없는 증오심에 대해 생동하게 알수 있었다.

참으로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련하신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이야말로 조선로동당의 억년 드놀지 않는 력사적뿌리이며 조선혁명의 종국적승리를 위한 결정적담보이라는 사상을 조형예술적으로 구현하고있었다.

백두산쪽에서 한줄기의 청신한 바람이 불어왔다.백두의 바람결을 타고 거대한 탑신의 붉은기가 더욱 세차게 휘날리는듯싶었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진두에 모신 대군상이 진군해나가는듯 하였다.

우리의 생각은 깊어졌다.백두산의 전설적영웅을 따라나선 군민이 어찌 저 60명뿐이며 그것이 어떻게 만고의 항쟁사가 엮어지던 시기의 일이라고만 하랴.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천보에 지펴올리신 혁명의 홰불을 따라 수많은 이 나라의 아들딸들이 해방성전에 용약 떨쳐나섰고 성스러운 반미대결전과 사회주의건설대전의 년대들에 그이의 두리에 더욱 철통같이 뭉친 우리의 혁명대오는 천만을 이루었다.

그것은 위대한 전통의 힘, 백두의 혁명전통의 위력이였다.조선혁명의 이 성스러운 피줄기를 천추만대로 굳건히 이어주신분은 우리의 위대한 장군님이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45(1956)년 여름 평양제1중학교 학생들을 이끄시고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의 첫길을 개척하신 그때로부터 백두산지구의 혁명전적지들을 한생토록 찾고 또 찾으시였다. 김일성종합대학시절에도 가시였고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 첫 시기와 우리 당과 인민의 령도자로 분망한 나날을 보내시던 때에도 중단없이 가시였다.눈보라치는 겨울이나 폭우쏟아지는 삼복의 계절을 가리지 않으시고 혁명의 중대한 력사적시기마다 혁명의 시원이 열린 백두산부터 찾으시였다.항일대전시기의 하많은 추억을 펼쳐드린 곳이 여기 혜산이였다.

우리와 동행한 량강도의 한 혁명사적일군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혜산시를 처음으로 찾으시였을 때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순간도 잊지 말고 영원히 빛내여나갈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데 대하여 들려주었다.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발자취가 력력히 어려있는 백두의 산발들과 만주광야를 눈앞에 그려보시는듯 오래도록 압록강너머로 눈길을 주시였다고 한다.그이의 심중에 저 멀리 카륜으로부터 안도와 소왕청, 남호두와 동강, 남패자와 소할바령 등 잊지 못할 항일의 전구들이 련이어 안겨들었으리라.

혜산시의 하늘중천에 휘영청 밝은 달이 걸려있던 주체61(1972)년 6월 어느날에도 괘궁정마루에 오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압록강의 푸른 물결을 바라보시며 일군들에게 저 압록강을 보라고, 얼마나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가고 하시면서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조용히 읊으시였다.

이렇듯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을 소중히 마음에 안고계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생애의 마지막시기에도 이곳에 거룩한 자욱을 새기시였으니 정녕 항일의 전설적영웅의 동상을 높이 모신 괘궁정마루는 백두의 혁명전통을 끝없이 빛내이기 위해 바치신 그이의 거룩한 혁명생애를 얼마나 뜨겁게 전하여주고있는것인가.괘궁정마루는 항일혁명사의 갈피들을 굽어보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그중에는 일제가 조작한 《혜산사건》의 회오리도 있다.

지금은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안치되여있지만 어머니와 아들인 장길부녀사와 마동희동지의 유해도 당시에는 이곳에 있었다.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60여년전 찾으시였던 마동희동지의 비가 있던 곳으로 향하였다.괘궁정기슭이였다.오늘날에는 포석을 깔아 번듯하지만 해방전에는 여기에 혜산경찰서에서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자그마한 오솔길이 나있었다고 한다.

장길부어머니는 혜산경찰서에 갇힌 아들이 놓여나오기를 이곳에 앉아 이제나저제나 기다렸지만 결국 이 자리에서 싸늘하게 식은 아들의 시신을 맞게 되였다고 한다.떠나간 투사의 넋은 세월이 흐른 뒤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도덕의리의 세계에 떠받들려 영생의 빛을 뿌리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첫 혁명전적지답사대오를 이끄시고 혜산에 오시였을 때의 일이다.도의 일군이 위대한 장군님께 혜산시참관일정을 알려드리자 그이께서는 이렇게 교시하시였다고 한다.

백두산줄기의 높은 산들과 깊은 골짜기들에는 일제를 반대하여 용감히 싸우다 희생된 수많은 혁명투사들이 잠들어있습니다.수령님께서는 언제나 조국의 오늘을 보지 못하고 먼저 간 혁명투사들을 잊지 못하고계십니다.우리모두 항일혁명투사 마동희동지의 비를 먼저 찾아가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합시다.…

우리 장군님의 도덕의리의 세계는 10대의 그 시절부터 이렇듯 고결하였다.

답사대오가 마동희동지의 비앞에 이르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답사대원들을 둘러보시면서 마동희동지는 사령부의 안전을 위하여 일제놈들앞에서 자기 혀를 끊었다, 자기 이발로 자기 혀를 끊는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하였던 항일혁명선렬들을 따라배워야 한다고 하시였다.

력사의 사연이 깊이 새겨진 혁명사적비의 글발들을 읽어내려가는 우리에게는 위대한 장군님을 우러르며 근엄한 표정으로 혁명전통고수의 굳은 맹세를 다지던 답사대원들의 얼굴이 눈에 선히 어려오는것만 같았다.위대한 장군님을 따라 백두의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기 위한 혁명의 행군길을 개척한 첫 세대가 다름아닌 10대의 소년들이라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뇌리를 쳤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백두산의 관문도시인 혜산시에 대한 력사적인 첫 자욱을 10대의 학생소년들과 함께 떼시였고 그들과 혜산제1중학교(당시) 학생들과의 뜻깊은 상봉모임을 조직하시였으며 혜산시에 대한 마지막현지지도자욱도 량강도의 학생소년들을 가르치는 교원들을 키워내는 김정숙사범대학에 새기시였다는 사실이 새로운 의미로 안겨들었다.

괘궁정을 내린 우리는 김정숙사범대학을 찾았다.우리와 만난 김미남학장은 어버이장군님께서 대학을 찾으시였던 영광의 그날을 잊을수 없다고 하며 그때 있은 사실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다.

뜻깊은 그날 오랜 시간에 걸쳐 대학의 여러곳을 돌아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정숙사범대학에서는 후대교육사업을 맡아할 직업적인 혁명가들을 키워내야 하는것만큼 대학교육사업을 강화하여 학생들을 당에 충실한 견결한 혁명투사들로 준비시킬데 대하여 간곡하게 교시하시였다고 한다.

량강도안의 학생소년들을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빛내여가는 믿음직한 계승자들로 키우는데서 김정숙사범대학이 맡고있는 임무가 그처럼 중요하기에 크나큰 영광을 대학에 안겨주시고도 주신 사랑 부족하신듯 후날에는 은정어린 뻐스들을 선물로 보내주신 위대한 장군님,

우리는 압록강가표식비며 영웅혜산제1중학교, 혜산신발공장을 비롯하여 위대한 장군님의 거룩한 자욱이 어린 그 어디서나 백두의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고 빛내이신데 대한 감동깊은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백두산관문도시 혜산시의 아침풍경은 이채롭다.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의 앞 교양마당에서는 혁명의 성지에로의 답사행군길을 기어이 헤쳐갈 불같은 결의를 다진 답사대원들이 《총폭탄》, 《결사옹위》, 《백두의 칼바람》 등의 글발들이 붙은 배낭들을 지고 붉은기를 높이 날리며 백두산으로 떠나고있다.

전국각지에서 찾아오는 근로자들과 청년학생, 군인들이지만 그들의 가슴마다에는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 군상의 선렬들처럼 경애하는 원수님 따라 백두의 행군길을 끝까지 이어갈 일념이 넘치고있는것이다.진정 백두산의 관문도시 혜산시는 세월이 흐르고 산천은 변해도 오직 우리 당을 따라 주체혁명위업완성의 한길만을 걸어가려는 충정의 맹세가 선서처럼 엄숙히 다져지는 성스러운 땅이다.

우리도 그들과 함께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전통옹호고수의 불멸의 업적이 새겨진 다음혁명전적지를 향하여 기행길을 이어갔다.

본사기자 박일민
본사기자 김준혁
본사기자 김일권

(현지에서 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