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2월 6일 로동신문

 

주체영화예술발전에 쌓아올리신 불멸의 업적 영원하리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 깃든 절세위인들의 령도자욱을 더듬으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영화는 대중교양의 강력한 수단이며 당사상사업에서 영화예술이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오늘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선예술영화촬영소를 창립하여주신 때로부터 70돐이 되는 뜻깊은 날이다.

백두산3대장군의 740여차의 현지지도사적이 깃들어있는 조선예술영화촬영소의 긍지높은 력사속에는 얼마나 가슴뜨거운 사랑의 손길, 크나큰 믿음, 빛나는 령도의 자욱이 어려있는것인가.

진정 그 빛나는 력사속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주체적문예사상을 높이 받들고 우리 영화예술이 빈터우에서 고고성을 터치며 줄기차게 전진해온 영광의 년대들과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영화혁명의 장엄한 포성을 높이 울리며 주체영화예술발전의 빛나는 전성기를 펼쳐온 자랑찬 날과 달들이 아로새겨져있다.

절세위인들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에 조선예술영화촬영소는 관록있는 창작창조집단, 최상급의 촬영기재들과 현대적인 설비들 그리고 방대한 규모의 영화촬영거리까지 갖춘 굴지의 종합적인 영화창작기지로 강화발전될수 있었다.

해방직후 북조선의 영화예술토대는 일제의 악랄한 민족영화말살책동으로 말미암아 사실상 빈터나 다름이 없었다.

영화예술인은 물론 촬영기 하나 변변한것이 없는 형편이였다.

지금도 우리의 귀전에 들려오는것만 같다.주체36(1947)년 2월 6일 조선예술영화촬영소의 전신인 국립영화촬영소가 창립되던 뜻깊은 그날 영화예술을 발전시키는것은 민족문화를 건설하고 인민들을 새 민주조선건설에로 불러일으키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하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절절하신 그 음성이.

해방된 이 땅우에 주체가 튼튼히 선 혁명적영화예술의 새 력사를 펼치시기 위해 그 준비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려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국립영화촬영소가 창립됨으로써 우리 인민은 혁명적이고 인민적인 영화예술을 창조하고 발전시킬수 있는 거점을 가지게 되였으며 영화예술을 중심으로 문학예술전반을 시대와 혁명의 요구에 맞게 강화발전시켜나갈수 있는 확고한 담보가 마련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세심한 보살피심속에 영화촬영소에는 짧은 기간에 록음실과 실내촬영장을 비롯한 영화제작공정에 따르는 물질기술적토대가 튼튼히 갖추어지게 되였다.우리의 영화예술인들은 해방된 새 조선의 첫 예술영화 《내 고향》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인민들에게 커다란 환희를 안겨주었다.

가렬처절했던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자신의 존함이 새겨진 신임장도 안겨주시고 자신께서는 잡곡밥을 드시면서도 영화예술인들에게는 흰쌀과 부식물까지 보내주신 위대한 어버이의 뜨거운 믿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도 전설처럼 전해져오고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그 사랑, 그 믿음이 있었기에 창작조건이 그토록 어려운 전시환경에서도 촬영소의 일군들과 영화인들은 예술영화 《소년빨찌산》, 《또다시 전선으로》를 비롯한 여러편의 영화들을 만들어 싸우는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을 전쟁승리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으며 국제영화축전들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을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간고했던 전후복구건설시기와 가슴벅찬 천리마시대에도 사대와 교조를 반대하고 영화예술부문에서 당성, 로동계급성, 인민성을 확고히 고수하며 우리 당의 주체적문예사상을 창작활동에 구현해나가도록 걸음걸음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스승의 손길아래 우리의 영화예술인들은 예술영화 《어랑촌》, 《붉은 선동원》 등 사상예술성이 높은 수많은 영화들을 만들어 시대와 혁명앞에 지닌 영예로운 사명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주체53(1964)년 12월 8일,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확대회의를 소집하시였다는 뜻밖의 소식에 접하고 사람들은 수령님께서 영화예술을 얼마나 중시하고계시는가에 대하여 더욱 가슴깊이 절감하였다.

력사적인 그날은 주체영화예술발전에서 획기적의의를 가지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되였다.

흰눈이 포근히 내리던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교양, 계급교양에 이바지할 혁명적영화를 더 많이 만들데 대한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시고 영화창작사업에서 제기되고있던 문제들, 창작가, 예술인들의 생활에서 제기되는 문제들까지도 다 풀어주시였다.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와 세심한 손길이 있었기에 조선예술영화촬영소는 주체영화예술사에 빛나는 자욱을 수놓으며 큰걸음을 내짚을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적문예사상을 구현하여 혁명적인 민족영화예술로서의 영예를 빛내여온 우리 영화예술은 위대한 장군님의 정력적인 지도를 받으며 새로운 발전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주체52(1963)년 6월 5일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 나오시여 영화혁명을 일으킬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수행방향과 방도를 환히 밝혀주신 위대한 장군님,

예술영화 《성장의 길에서》를 비롯한 영화창작사업을 직접 지도하시는 과정을 통하여 영화분야에서 부르죠아사상과 수정주의, 사대주의, 교조주의 등 온갖 반동적사상경향을 철저히 극복하고 당의 유일사상체계가 확고히 선 혁명적작품들을 창작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신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주체의 영화예술발전에 쌓아올리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을 어떻게 한두마디로 다 이야기할수 있으랴.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혁명적영화창작의 본보기를 마련하시고 그 경험에 기초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 몸소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영화로 옮기는 사업을 발기하시였으며 그 창조사업을 현명하게 지도하여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예술영화 《한 자위단원의 운명》창조사업을 지도하시면서 작품의 종자와 원작의 심오한 사상적내용과 철학성을 명철하게 밝혀주시고 영화제작에 필요한 물질기술적준비와 예술인들의 후방사업에 이르기까지 따뜻이 보살펴주심으로써 창작에서 속도전을 벌릴수 있는 조건들을 충분히 마련해주시였다.

이런 정력적인 지도, 크나큰 사랑과 배려에 고무된 영화예술인들은 단 40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원작의 요구에 맞게 높은 사상예술적수준에서 작품을 창작완성하였으며 련이어 불후의 고전적명작 《꽃파는 처녀》를 비롯한 여러편의 작품들을 영화로 옮기는 사업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 우리 식의 혁명적인 창작체계와 창작지도체계, 창작원칙을 비롯한 영화예술창조활동에서 나서는 리론실천적문제들이 새롭게 밝혀지고 우리의 영화예술은 가장 고귀한 전통을 가지게 되였으며 그것은 주체영화예술발전의 거대한 추동력으로 되였다.

또한 《〈한 자위단원의 운명〉창조기풍》, 《백두산창작단의 일솜씨》와 같은 혁명적인 투쟁기풍이 창조되고 그것을 문학예술전반에 일반화시켜 문학예술혁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는데 적극 이바지하였다.

일찌기 학창시절에 《조국의 품》, 《축복의 노래》를 비롯한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창작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형상창조를 영화부문앞에 나서는 중요한 과업으로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수령형상창조!

이것은 참으로 주체영화예술발전의 새로운 장을 펼친 력사적인 사변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영화예술부문에서 처음으로 수령형상창조를 전문으로 하는 백두산창작단을 무어주시고 수령형상창조에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과 구체적인 방향과 방도들을 환히 밝혀주시였다.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첫 혁명영화 《누리에 붙는 불》을 창조한데 이어 《조선의 별》, 《민족의 태양》을 수령형상창조의 본보기작품으로 완성해주심으로써 위대한 수령님의 존귀하신 영상을 영화화면에 모시는 력사적위업을 빛나게 실현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영화예술사업을 지도하시는 과정에 이룩하신 업적에서 특출한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우리 시대 영화예술의 대백과전서인 주체적영화예술리론을 창시하신것이다.

영화창작사업에서 나서는 모든 실천적문제들에 완벽한 해답을 준 불멸의 로작 《영화예술론》을 창작의 무기로, 지침으로 틀어쥔 우리의 영화예술인들은 예술영화 《이 세상 끝까지》, 《열네번째 겨울》, 《군당책임비서》, 《그날의 맹세》, 《보증》, 《자신에게 물어보라》와 같이 당과 수령께 끝없이 충실한 시대의 전형들을 형상한 수많은 명작들을 창작하여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사상교양사업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990년대에 들어와 혁명발전의 요구로부터 출발하여 가요 《내 나라 제일로 좋아》를 상으로 한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창작을 몸소 발기하시고 이 사업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와 세심한 지도가 있었기에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의 련속편들은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을 사상예술적으로 훌륭히 형상한 주체문학예술의 성과를 집대성한 정화, 조선영화의 얼굴, 세계적인 걸작으로 창작완성될수 있었다.

선군혁명령도의 바쁘신 나날에도 위대한 수령님께 가장 충직한 전우였던 혁명가 김책동지를 형상한 예술영화 《한장의 사진》을 비롯한 영화창작사업을 지도하시면서 선군시대 영화예술발전에 깊은 관심을 돌리신 위대한 장군님,

촬영소의 창작가, 예술인들은 혁신적인 창작적안목을 가지고 선군시대의 명작들을 창작할수 있게 비약의 나래를 펼쳐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를 높이 받들고 예술영화 《평양날파람》, 《소원》 등을 창작완성하여 사람들을 기쁘게 하였다.

주체영화예술발전에 쌓아올리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불멸의 업적은 오늘 경애하는 원수님의 현명한 령도아래 더욱 빛나고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내주신 력사적인 서한 《시대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주체적문학예술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자》를 비롯한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발표하시여 주체영화예술이 틀어쥐고나가야 할 기본원칙과 과업과 방도를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을 절절히 그리는 우리 영화예술인들의 마음까지 깊이 헤아려주시고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 깃들어있는 당의 령도업적을 길이 빛내일수 있게 현지지도사적비를 건립하도록 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

수천만금을 들여 영화발전의 세계적추세에 맞게 현대적인 촬영설비들을 갖추는 사업과 창작가, 예술인들의 생활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모두 풀어주신 자애로운 그 사랑은 정녕 위대한 수령님들의 사랑그대로였다.백두산절세위인들의 대를 이어 계속되는 크나큰 믿음과 사랑속에 조선예술영화촬영소는 영예의 김일성훈장, 김일성, 김정일, 로력영웅, 인민예술가, 인민배우칭호를 수여받은 세계적인 창작가, 우리 인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관록있는 배우들을 수많이 배출하였으며 당의 사상과 위업을 충직하게 받들어나가는 충정의 대오로 억세게 자라났다.

지금 조선예술영화촬영소의 전체 창작가, 예술인들은 절세위인들의 현명한 령도밑에 주체영화예술의 전성기를 펼쳐온 성스런 70년의 력사를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돌이켜보며 명작창작성과로 우리 당의 선군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갈 불타는 결의에 넘쳐있다.

우리의 영화예술인들은 자신들의 창작적재능과 열정, 온넋과 심장을 깡그리 불태우며 당을 충직하게 받들어온 전세대 영화예술인들처럼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우리 당의 주체혁명위업, 선군혁명위업을 앞장에서 받들어나가는 사상전선의 제일기수, 제일나팔수가 되여 당과 생사운명을 끝까지 같이해나갈것이다.

글 및 사진 김성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