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3월 26일 로동신문
백두산위인들의 품속에서 혁명가의 한생을 항일혁명투사들인 박우섭, 리정인동지들이
인간의 삶이 아름답고 고상한것은 사랑과 의리, 믿음과 보답을 무엇보다도 귀중히 여기기때문이다. 우리 당이 혁명가의 귀감으로 내세우고 존대하는 항일혁명투사들은 백두산위인들의 슬하에서 혁명의 눈을 틔우고 투쟁의 진리를 배우며 혁명적사랑과 의리의 세계를 빛내인 조선혁명의 자랑스러운 첫 세대이고 인간중의 참인간들이다. 《항일혁명투사들에게 있어서 항일혁명투사들인 박우섭동지와 그의 안해 리정인동지의 한생은 지난날 천대받고 억압받던 사람들을 한품에 안아 조국과 인민이 아는 참된 애국자, 진정한 혁명가로 키워주시고 영생하는 삶을 안겨주신 절세의 위인들의 한없이 고귀하고 은혜로운 사랑에 대하여 감동깊이 새겨주고있다.
백두산녀장군의 손길아래
온 나라가 당창건 70돐을 앞두고 부글부글 끓고있던 때인 주체104(2015)년 8월 22일이였다. 우리 혁명의 원로들인 항일혁명투사들을 끝없이 아끼고 극진히 보살펴주시는 뜨거운 격정에 잠긴 리정인동지의 눈앞에는 백두산위인들의 슬하에서 인간의 참다운 사랑이 무엇인가를 깨닫던 잊지 못할 나날들이 소중히 떠올랐다. 해방전 이역땅에서 태여나 철부지소녀시절부터 지주집 민며느리로 갖은 천대와 멸시를 받다가 혁명의 대하에 용약 뛰여든 리정인동지에게 있어서 운명에서의 전환은 주체22(1933)년 연길현 장재촌에서 있었다. 일찌기 독립군의 딸인것으로 하여 남달리 고초도 겪었고 혁명조직성원이였던 오빠의 영향을 받아 반일투쟁에도 참가했던 리정인동지는 바로 이해 가을 장재촌유격구에서 그처럼 명성이 자자했던 항일의 녀성영웅 리정인동지는 그 나날 리정인동지는 동지들에 대한 사랑과 혁명위업에 대한 헌신성이야말로 리정인동지가 삼도만유격구에 있을 때였다. 극좌적인 반《민생단》바람이 온 동만땅을 휩쓸고있었다.밥을 짓다가 가마치가 좀 눌어붙어도 《피로써 구해온 낟알을 이처럼 태웠으니 〈민생단〉이 분명하다.》고 하며 마구 잡아들이는 판이였다.하지만 좌경기회주의자들의 비렬한 음모를 꿰뚫어보신 어느날 산에 오르는 녀성들을 발견한 적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쫓아왔다.적탄이 앙칼진 쇠소리를 내며 앞뒤에 떨어졌다.초연과 흙먼지가 눈앞을 흐리게 하였다.죽솥을 받쳐든 손도 금시 떨어져나갈것 같았다. 리정인동지는 이때 처음으로 사람이 마음을 강하게 먹으면 못해낼 일이란 없으며 그 의지를 꺾을수는 더구나 없다는것을 페부로 느끼였다.그리고 자신의 생명보다도 동지들의 때식을 더 중히 여기시는 이날 산고지에 오른 리정인동지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생명을 내대고 가져온 점심식사를 받는 사람들이 다름아닌 《민생단》혐의자들이였던것이다.《감방》에 갇혀있던 그들은 적들이 유격구에 달려들자 문을 부시고 산으로 올라와 놈들에게 돌벼락을 안기며 싸우고있었다. 그들은 죽솥을 받자마자 그런데 그때 리정인동지가 모두가 죽그릇을 손에 든채 울었다.동지들을 위하는 뜨거운 그 심정, 혁명전우들을 끝까지 믿으시는 그 마음, 자신에게 부닥칠 그 어떤 고통도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오직 혁명의 리익을 위하여 모든것을 바치시는 불같은 그 헌신성에 전우들은 목이 메였다. 그럴수록 리정인동지는 조국땅을 빼앗다 못해 유격구마을까지 불바다로 만들어버린 일제원쑤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과 귀중한 혁명동지들을 《민생단》혐의자로 몰아붙인 좌경기회주의자들에 대한 치솟는 증오심으로 더더욱 가슴을 끓이였다. 사랑과 증오! 이것은 서로 상극되는 개념이면서 동시에 서로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자기 조국에 대한 사랑이 강하면 강할수록 원쑤에 대한 증오는 창끝처럼 날카로와질것이며 원쑤에 대한 증오가 강하면 강할수록 자기 고향, 부모처자, 자기 조국에 대한 사랑은 비할바없이 강해지는것이다.이럴 때 비로소 진정한 애국심이 발현되며 그것은 무비의 영웅성을 낳게 되는것이다. 리정인동지는 사랑과 증오란 무엇인가를 뼈저리게 체험하고 참다운 인간, 진정한 혁명가, 그는 모든것을 장재촌유격구의 나날 리정인동지는 한몸을 내대고 적《토벌대》의 습격으로부터 마을인민들을 구원한 소년혁명가 김기송동지의 장렬한 최후를 목격하면서 나어린 소년혁명가의 가슴속에서 끓고있던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 혁명에 대한 높은 책임감, 인민에 대한 무한한 희생정신과 함께 일제놈들에 대한 치솟는 분노심을 더욱 뼈속깊이 간직하였으며 피를 흘리면서라도 혁명을 해야 한다고 하신 위험을 무릅쓰고 적통치구역에 들어가 혁명조직에서 주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용감한 공청원으로 더욱 세련되여 갔고 그후 항일의 녀성영웅 참으로 항일혁명투쟁은 류례없이 간고하고 피어린 투쟁이였지만
혁명적의리로 빛나는 사랑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우며 열렬하고 공고한 인간관계는 지금으로부터 19년전인 주체87(1998)년 9월 어느날이였다. 한시간 또 한시간… 날이 어두워지자 어느덧 박우섭동지의 돌사진앞에 이르시였을 때였다. 우리 박우섭동지에 대한 새 조국건설이 한창이던 주체36(1947)년 3월 어느날이였다. 라진시(당시)에서 녀맹사업을 맡아보던 리정인동지는 그가 세살잡이 아들애를 앞세우고 리정인동지는 그때 리정인동지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산에서 함께 싸운 녀투사들도 찾아와 상봉의 기쁨을 나누며 잊지 못할 항일전의 나날들을 감회깊이 추억하였다. 그중에는 백두산장군들의 깊은 관심속에 박우섭동지와 리정인동지가 가정을 이루던 이야기도 있었다.우연하게도 그날이 박우섭, 리정인동지들이 결혼식을 한지 네해가 되는 날이였던것이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원동에 훈련기지를 정하고 중국 동북지방과 국내에서 적극적인 소부대활동을 벌리고있던 때였다. 박우섭동지는 훈련기지에서 처음으로 전설처럼 들어오면서 마음속으로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박우섭동지의 고향은 당시의 함경북도 성진군(오늘의 김책시)이였다.그는 두살때 일제의 가혹한 착취와 억압때문에 더는 살아갈수 없어 고향을 떠나는 부모의 등에 업혀 낯설은 이국땅인 연해주로 가게 되였다.하지만 연해주에서도 편안히 살수 없었던 그의 일가는 낯설은 이역땅에 박우섭동지의 어머니를 묻고 다시 중국 동북으로 들어가 지주집고용살이를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박우섭동지는 그후 동북항일련군에 입대하여 일제와 싸우다가 어렸을 때 쏘련에서 생활한 연고로 하여 쏘련원동군 사령부산하의 정찰대 부대장으로 복무하게 되였던것이다. 그날 그의 이야기를 들으신 그런데 쏘련원동군 사령부에서 복무하는 박우섭동지가 조선을 찾는 길에 한몸바칠 각오를 품고 이렇게 되여 박우섭동지는 정찰소대장으로서 조국해방을 위한 참다운 성전에 나서게 되였다.오래동안 다른 나라 군인들속에서 생활했던 박우섭동지에게 있어서 만나보는 대원들도 하나하나가 모두 혁명선배처럼 돋보였다.특히 훈련기지에서 처음 보게 된 조선인민혁명군 녀대원들의 모습은 그를 무척 감동시켰다. 녀대원들은 무전훈련에도 직심스러웠지만 스키훈련, 수영훈련, 락하훈련, 도하훈련에도 남자들과 꼭같이 참가하였다.훈련강도가 대단히 높았지만 그들은 타발 한마디 하지 않았다.그중에는 군인식당의 음식을 입에 전혀 대지 못하면서도 무전대앞을 한시도 떠나지 않은 녀대원도 있었고 몸무게를 불구느라고 배낭속에 벽돌을 넣고 락하훈련에 참가하는 키작은 녀장부들도 있었다.훈련기지에 들어오면서 남의 집 삽짝문앞에 어린 자식을 두고온 녀인도 있었고 해산을 하고나서도 맹훈련을 하는 산모도 있었다. 비록 녀성의 몸이지만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 한몸을 깡그리 바쳐가며 피끓는 열정과 불타는 투지로 만난을 헤쳐가는 그들이야말로 박우섭동지뿐이 아닌 훈련기지사람들모두가 처음 알게 된 녀성혁명가, 녀투사의 전형들이였다.그 맨 앞장에 항일의 녀성영웅 녀대원들의 훈련모습은 누구나의 관심사로 되였다.박우섭동지도 정찰임무를 수행하고 와서는 저도모르게 훈련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어찌할수 없었다. 그러다가 은연중에 워낙 성격이 호방하면서도 일단 결심하면 담벽도 문이라고 내미는 성미인 박우섭동지는 며칠후 이 사실을 알게 된 리정인동지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한때 일제 관동군참모장이란자를 처단한 무훈담으로 이름을 날린 그에 대하여 호감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사랑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것이다.그런데 일단 사랑의 불이 달린 박우섭동지는 막무가내였다. 리정인동지는 그를 피해 훈련기지의 여기저기로 숨어다니지 않으면 안되였다.그러면서도 날이 갈수록 봄물처럼 차오르는 박우섭동지에 대한 애틋한 정을 어찌할수가 없었다.그의 이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신분이 그이의 따뜻한 손길에 이끌려 박우섭동지와 리정인동지는 점차 사랑의 정을 나누게 되였다. 혁명을 한다고 해서 사랑까지도 못한다는 법은 없다.거창한 혁명의 테두리안에서도 생활은 생활대로 흐르고 사랑은 사랑대로 꽃피기마련인것이다. 박우섭동지와 리정인동지의 사랑은 혁명을 방해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고무하고 떠밀어주는 추동력으로 되였다. 리정인동지의 열정적이면서도 단아하고 청초한 모습은 억센 사나이인 박우섭동지에게 비상한 기지와 용맹을 낳게 하는 샘으로 되였고 박우섭동지의 불같은 진정은 리정인동지가 남자들도 힘에 부쳐하는 훈련에서 앞장설수 있게 하는 원천으로 되였다. 사랑은 역시 열정의 샘이고 창조의 원동력이며 생활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염색소인것이다.하지만 그들은 아직 결혼이라는 사랑의 절정에 올라설 용단까지는 내리지 못하고있었다.조국해방작전을 눈앞에 둔 때인지라 결혼식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였기때문이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되신 항일의 녀성영웅 얼마후 훈련기지에서는 백두산위인들의 뜨거운 축복과 동지들의 열렬한 축하속에 박우섭동지와 리정인동지의 결혼식이 진행되였다. 결혼식이라야 밥 한그릇에 몇가지 음식이 오른것이 전부였다.하지만 빨찌산신랑신부는 백두산장군들을 한자리에 모시고 혼례를 치르는것으로 하여 더없는 영광과 행복의 무아경에 휩싸여있었다. 이깔나무, 봇나무가 설레이고 흰눈덮인 아무르강의 흐름소리가 들려오는 훈련기지에서 마련된 투사들의 소박한 결혼식, 박우섭동지와 리정인동지는 친혈육의 정으로 사연깊은 결혼식까지 마련해주신 가렬처절했던 전화의 나날에는 서울해방작전에서 큰 공을 세운 박우섭동지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시여 사단장의 중책을 맡겨주시면서 부인인 리정인동지도 야전병원에서 근무하도록 하시여 항일의 그 나날처럼 부부간이 어깨겯고 준엄한 전쟁을 이겨나가도록 해주시였다. 박우섭동지는 남편인 박우섭동지는 떠나갔지만 진정 항일혁명투사들인 박우섭동지와 리정인동지는 백두산위인들의 품속에서 성스러운 조선혁명과 더불어 인생을 빛내인 항일유격대의 부부혁명가였고 백절불굴의 혁명투사들이였다. 그들부부는 민족의 태양이신 그들이 오늘도 항일의 영웅전사로 조국과 함께 영생하며 영광속에 빛나고있는것은 지난해 3월 22일 인생의 시작도 끝도, 운명도 미래도 절세의 위인들께 맡기고 그 품에서 값높은 삶을 빛내인 사람들이 그 얼마인가. 본사기자 김준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