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3월 3일 로동신문

 

박근혜를 신속히 탄핵하라, 황교안은 퇴진하라

서울에서 30만여명의 군중 18차 범국민초불투쟁 전개

 

【평양 3월 2일발 조선중앙통신】남조선에서의 보도들에 의하면 1일 서울의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의 주최로 《3.1절맞이 박근혜퇴진 18차 범국민행동의 날》초불집회가 진행되였다.

괴뢰공안당국이 202개 중대 약 1만 6 000명의 경찰병력과 차량들을 투입하여 광장주변에 삼엄한 경계망을 펼친 가운데 진행된 집회에는 시민사회단체 성원들과 야당의원들을 비롯한 30만여명의 각계층 군중이 참가하였다.

초불집회에 앞서 광장의 곳곳에서 《리재용구속이후 삼성의 해결과제! 삼성직업병문제 옳바른 해결을 요구하는 1만인 서명》, 《박근혜탄핵 완수! 민주평화정부 수립! 3.1국민주권선언》 등의 주제로 사전집회들이 진행되였다.

사전집회에 이어 군중은 찬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박근혜탄핵》 등의 구호판들을 들고 초불집회를 시작하였다.

집회에서는 각계층 단체 성원들과 인사들, 일본군성노예피해자, 서울시장 등이 발언하였다.

발언자들은 98년전 3월 1일에도 수십수백만의 《초불》이 켜졌다고 하면서 오늘 각계층 시민들은 진정한 독립과 새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하였다.그들은 출발부터 잘못한 박근혜《정권》이 정보원의 《대통령》선거개입사건,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방해하였다고 하면서 이것만으로도 박근혜는 퇴진해야 마땅하다고 절규하였다.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온상인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이 좋은 뜻에서 나왔겠는가, 재벌들이 아무런 리익도 바라지 않고 재단들에 수백억을 냈겠는가고 그들은 성토하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가 《헌법재판소》의 최종변론에서조차 자기의 죄과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그들은 강하게 비난하였다.

그들은 1 000만이상의 초불과 이를 지지하는 국민이 있었기에 박근혜탄핵결정을 눈앞에 두고있는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하였다.그들은 《헌법재판소》가 핵심범죄자인 박근혜를 파면시키는것외에 다른 선택은 있을수 없다고 하면서 초불민심을 받아들여 반드시 탄핵안을 결정하라고 요구하였다.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있기 전까지 대규모초불투쟁을 계속 전개할것이며 탄핵안이 기각되는 경우 로동자들의 총파업과 농민들의 농기계시위, 학생동맹휴업 등 강력한 항의행동으로 대답할것이라고 그들은 경고하였다.그들은 황교안이 특검수사기간연장을 거부한데 대하여 언급하고 이것은 수사범위가 박근혜와 재벌우두머리들, 공범자들로 확대되는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까밝혔다.

그가 이전에 정보원의 《대통령》선거개입사건, 《세월》호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가로막고 통합진보당강제해산을 주도하였다고 그들은 규탄하였다.

그들은 박근혜의 호위무사로서 박근혜없는 박근혜체제에서 우파들의 집결을 추구하는것이 바로 황교안이라고 하면서 그가 퇴진, 구속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것이라고 선언하였다.그들은 일본군성노예범죄의 증인들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본의 과거죄악에 대한 사죄와 법적배상을 요구하였지만 박근혜가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아먹고 반인륜적범죄를 눈감아주었다고 단죄하였다.

뿐만아니라 지금 당국이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 군부대와 경찰, 군용직승기들을 내몰아 군사작전하듯 《싸드》배치를 추진하고있다고 그들은 항의하였다.그들은 일본의 과거죄악청산을 외면하는 박근혜를 당장 탄핵하고 후손들에게 옳바른 력사를 넘겨주어야 하며 《싸드》배치는 반드시 중지되여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와 함께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도 페기되여야 한다고 하면서 그들은 자주독립, 평화를 위해 초불시민들이 함께 나서자고 호소하였다.

그들은 박근혜탄핵이 이루어지고 《정권》이 교체되며 민주주의가 회복되는 그날까지 투쟁할 립장을 표명하였다.

집회가 끝난 다음 참가자들은 《박근혜대통령 신속탄핵!》, 《황교안퇴진!》, 《특검법 직권상정!》, 《헌법재판소는 탄핵을 인용하라. 박근혜를 즉각 구속하라!》, 《초불이 요구한다.황교안은 퇴진하라!》, 《적페청산 가로막는 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은 해체하라!》 등의 구호를 웨치며 청와대와 《헌법재판소》를 향해 시위행진을 하였다.

외신들은 박근혜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시작된 이후 토요일이 아닌 평일에 대규모초불집회가 열리기는 처음이라고 하면서 이날의 투쟁소식을 상세히 보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