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3월 27일 로동신문
기행 백두의 칼바람은 계속혁명의 행군길로 천만군민을 부른다
백두산! 이 나라 북변에 거연히 솟아 강토우에 굽이친 민족의 반만년력사를 증견한 백두산이 우리를 부른다. 백두산의 칼바람소리가 들려온다.광막한 우주공간을 꽉 채우며 끝없이 폭풍치는 백두의 칼바람, 칼바람… 그것은 이 나라 천만군민을 부르는 조종의 산, 혁명의 성산의 목소리이다.력사의 흐름과 더불어 더더욱 깊어지고 풍부해지는 의미를 안고 인민의 마음속에 더 높이 솟아 빛나는 백두산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해주고있는것인가. 우리는 백두산기행길에 올랐다.조선팔경의 으뜸인 백두산의 장엄함과 신비함을 전하기 위한것도 아니였고 민족과 함께 세월의 만고풍상을 겪어온 조종의 산의 력사를 글에 담기 위해서도 아니였다. 세기의 백발을 날리는 백두산이 《백두산은 얼마나 성스러운 우리 조국의 5년간이였던가.선군조선의 기상이 응축되여있고 선군혁명의 영원한 등대인 백두산은 자기의 성스러운 칼바람으로 우리 조국을 위해, 세계의 정의를 위해 쌓으신 백두산의 령장
우리
우리는 삼지연못가에서부터 기행의 첫걸음을 떼였다. 흰눈덮인 한겨울의 삼지연대기념비는 볼수록 숭엄하였다. 싸창갑을 차시고 쌍안경을 드신 드넓은 교양마당에 서니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 높이 올라 천지조화로 구름을 휘감아 첩첩준령도 한걸음에 건너짚던 전설적영웅의 투쟁사가 어려오고 두갈래 봇나무 설레이는 사연깊은 이곳에 우리 당의 만년재보, 혁명전통교양의 거점을 일떠세워주신 교양마당에서 우리와 만난 삼지연혁명사적관 교양과장 강정옥동무는 4년전 11월 생눈길, 그 말이 우리의 가슴을 치며 또 다른 추억을 불러오는것이였다. 청천벽력같이 뜻밖에도 우리 새로운 주체100년대의 생눈길에서 우리 조국을 수호하고 주체혁명의 혈통을 지켜준 백두산의 칼바람이였다.무엄하게도 당에 도전해나선 현대판종파분자들을 무자비하게 징벌한 혁명의 칼바람이였고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병진로선의 돌풍으로 우리 공화국을 압살하려던 미제와 온갖 잡것들에게 철추를 내린 정의의 칼바람이였다. 우리는 력사의 생눈길에 새겨진 만단사연을 생각하며 백두산으로 향하였다.대기념비의 《진격의 나팔수》가 성지의 하늘가에 울려주는 혁명의 나팔소리가 우리의 심장에 들려왔다. 이 땅에 나서자란 사랑하는 아들딸들이여, 선렬들이 걸은 눈보라만리길을 변함없이 이어가라.원쑤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것이 그대들이 이어가는 백두의 행군길이다.그 길을 가로막으려는것은 멸망에 직면한자들의 마지막발버둥질이라는것을 명심하라.오르라, 오늘의 빨찌산 력사의 그 부름을 들으며 우리는 백두산으로 걸음을 다그쳤다.백두산으로 가는 길에는 흰눈이 소리없이 쏟아지고있었다. 백두의 뭇봉우리들과 천고의 밀림, 깊은 계곡들에 내려쌓이는 흰눈… 해묵은 거목에 송라가 흐느적이는 소리마저 느껴지는듯싶고 어디선가 툭-툭 나무아지 부러지는 소리, 눈사태 쏟아지는 소리도 들려왔다.뽀얀 운무의 장막을 헤치는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가리라 백두산으로》의 노래가 끝없이 울리고있었다. 다른 계절에는 여러번 백두산에 올랐던 우리들이 칼바람 몰아치는 한겨울에 생눈길을 헤치며 백두산에 오를 용단을 내리게 된것은 무엇때문이였던가. 우리 조국의 운명을 걸머지시고 력사의 생눈길을 헤치시는 백두산은 한해치고 태반이 겨울이다.하지만 백두산에도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있고 꽃이 만발하는 여름이 있으며 단풍이 불타는 가을도 있다. 어이하여 우리 이태전 백두산에는 8월이 제일 좋고 그때 가면 비행사들이 무척 좋아할것이라고 하는데 백두산에는 그렇게 가는것이 아니다.백두산에는 꽃바람이 아니라 칼바람을 맞으러 간다. 시계를 들여다보시며 오히려 전사들을 걱정하시는 행군대오가 출발했소? 지금 어디까지 왔소? 이 날씨에 일없을가? 자기들의 정예로운 전투기를 탔다면 순간에 백두산에 와닿을 비행사들이였다.하지만 사랑하는 전투비행사들이 굳이 걸어서 백두산에 오르게 하신 백두산칼바람의 진짜맛을 모르고서는 순간도 하늘초소를 지킬수 없기에 비행사들이 백두산에 올라갈 때에는 도보행군을 하여 올라가도록 하여야 한다고, 비행사들이 백두산칼바람을 맞아보아야 한다고, 백두산칼바람을 맞으며 전투비행사들과 사진을 찍자고 하시며 이른새벽 백두산에 남먼저 오르신 세상에는 나라마다 일러주는 명산과 명소가 있다.하지만 그 어느 나라의 그 정신을 안고 살면 세상에 무서울것도 못해낼 일도 없게 하는 백두의 칼바람, 정녕 그것은 우리의 맹세는 불길처럼 타올랐다.오르리라, 겨울에도 오르리라.백두산, 우리 조선혁명의 만단사연이 아로새겨진 력사의 지점들과 사적비들이 련이어 다가들었다.《갑무경비도로》, 무포, 백두산갈림길헌시비, 신무성, 무두봉명제비… 그것은 그대로 이 나라 조종의 산마저 지켜내지 못했던 민족수난의 어제로부터 백두산대국의 찬란한 오늘에 이르는 무두봉명제비를 지나 산림한계선에 들어서니 하늘이 안 보이게 내리던 눈은 멎고 대신 백두산특유의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년중 산마루에서 불어내리는 센 바람때문에 높이 자라지 못하고 그나마도 나무가지가 한쪽으로만 치우친 이깔나무들이 인상적이였다.웃가지들은 작고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가지들이 길게 자라 삼각기발모양이였다.산림한계선의 이깔나무군락은 백두산마루를 향하여 전진하고있는 행군대오의 무수한 기발들인듯. 그 모습은 봄날에도 겨울에도 백두산에 오르는 답사자들 아니 세월의 모진 광풍속에서도 우리 당만을 따라 한길을 가며 그 길에서 승리떨치는 천만군민의 형상으로 안겨들었다. 우리가 혁명의 성산이 바라보이는 백두다리부근에 도착했을 때에는 땅거미가 짙어가고있었다. 흩날리는 눈가루속에서 삽시에 눈뿌리 아득하게 뻗어나간 천산만악을 거머쥐고 휘저어놓는 백두산바람의 엄엄한 기세와 위용은 정말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우리는 그날 백두산지기들과 함께 하루밤을 보내게 되였다.
강성조선의 기적과 행운을 불러오는 곳
성산의 천변만화하는 조화는 중요하게 백두산바람때문이라고 한다. 백두산지기들의 말에 의하면 바람이 일단 터지면 20여일동안 멎지 않는다는것이였다. 우리들은 온밤 잠들수 없었다.방안은 훈훈했지만 창밖의 바람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더욱 요란해졌기때문이다.이러다가는 백두산정에 오르지 못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위구심마저 들었다. 바닥없이 깊어가는 백두의 밤은 우리들에게 백두산은 결코 마음만 내키면 아무때건 갈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가고싶어도 마음대로 갈수 없다는 여기에 백두산이 가지는 참의미가 있었고 가지 못할수록 더 가고싶어진다는 여기에 바로 백두산이 가지는 참매력이 있었다고 하신 난생처음 백두산의 눈보라맛을 보고 당황해하는 일군들에게 《그래 백두산이 호락호락 문을 열어줄줄 알았소? 아마도 우리의 담을 시험해보고야 열어줄 심산인가보오.》라고 하시며 백두산정에로의 행군길을 앞장에서 헤치신 동서천리를 넘나든다는 백두산바람은 밤새껏 잦을줄 몰랐다.우리는 다음날 어뜩새벽에 백두산길에 올랐다.설사 그 길에서 눈속에 묻히고 온몸이 얼음덩이로 변한다 해도 기어이 올라야 할 백두산정이였다. 하늘을 나는 새마저 돌덩어리처럼 얼어 떨어지게 한다는 추위가 온몸에 엄습해왔다.무수한 바늘이 드러난 피부를 찌르는듯 하고 산마루에서 불어내리는 바람에 얼굴을 들수 없었다.순식간에 턱밑에는 성에가 하얗게 불리였고 눈섭에는 허연 고드름이 앉았다.다행인것은 밤새껏 지동치던 바람이 한결 수그러진것이였고 하늘이 쾌청한것이였다. 서로 의지하며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쳐가느라니 어느덧 사위가 훤해지며 먼동이 터오기 시작하였다.우리는 백두의 공기를 한껏 심호흡하며 해돋이순간을 기다렸다.백두산해돋이, 생각만 해도 흥분이 앞섰다. 려명전야는 가장 어두운 법이다.캄캄칠야속에서도 미래를 락관하며 천신만고를 이겨낼 때만이 장쾌한 해돋이순간을 맞이할수 있고 백두산의 해돋이만이 승리에 대한 가장 큰 희열을 준다는 진리를 혁명의 성산에 올랐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심장에 새겼으리라. 암회색을 띠고 어둠속에 잠겨있던 아아한 산발들이며 가없는 밀림도 해돋이순간을 기다리는듯. 드디여 동녘하늘에 아침노을이 피여오르며 강산을 붉게 물들였다.누리를 뒤덮는 붉은 노을이 백두산의 웅건장중함을 더해주고있었다. 잠시후 지평선끝에서 빨간 점이 보이더니 시뻘건 불덩이가 서서히 솟기 시작하였다. 천만가닥의 찬연한 빛발을 뿌리며 온 강산을 밝히는 백두산해돋이, 세상에는 아름답고 매혹적인것으로 하여 손꼽히는 해돋이광경들이 있다고 하지만 눈보라폭풍속의 해돋이, 동토대인듯 얼어붙은 드넓은 대지에 강렬한 열과 빛으로 순간에 생의 환희와 활력을 주는 그지없이 신비로우면서도 장엄한 일출장관은 없다. 천하의 으뜸가는 백두산해돋이장관에 21세기의 태양 백두산마루에 거연히 서시여 해돋이를 보시며 백두산해돋이를 보니 혁명의 승리가 보이는것만 같다고, 정말 용기가 나고 힘이 솟구친다고, 혁명의 멀고 험한 길을 끝까지 가자면 우리의 신념은 백두산해돋이처럼 붉고 강렬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오늘 백두산에 올라 해돋이를 보니 조국과 인민을 위해 멸사복무하려는 나의 혁명열, 투쟁열은 저 붉은 화광처럼 더욱 세차게 타오른다고 하시던 혁명의 성산에 메아리치던 우렁우렁하신 음성, 백두산장군의 철의 의지를 안고 붉게붉게 타번지는 백두산의 해돋이, 우리 우리는 용기백배하여 백두산정으로 걸음을 내짚었다.로정은 답사도로가 아니라 성산의 정점으로 향한 지름길이였다.백두산의 칼바람을 맞으며 백두산의 험한 산발을 타보아야 투사들이 지녔던 혁명적신념과 불굴의 정신세계를 다소나마 체험할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길은 간단치 않았다.잦을것만 같던 바람이 산길을 톺아오르는 우리의 의지를 검증하려는듯 기승을 부리며 마주 불어와 숨쉬기가 가빴다.게다가 한번 발을 잘못 내짚으면 몇길 되게 눈이 쌓인 계곡에 묻힐수도 있었다.숨이 차고 힘들어 주저앉을 때도 있었고 나약한 생각이 머리를 쳐드는 순간도 없지 않았다. 한겨울의 백두산길은 사나운 칼바람앞에 자기를 랭정히 세워보고 엄격히 검증하며 이겨내는 과정이였다. 우리 일행은 나이가 서로 달랐지만 느낌과 생각은 혁명대학과정안을 거치고있다는 오직 한곬으로 흘렀다. 우리가 한번 걷는 이 길도 힘겨운데 항일혁명투사들은 오죽했으랴.몇달, 몇해도 아니고 기나긴 세월 헤쳐야 했던 백두광야의 눈보라만리길에서 투사들은 생눈을 삼키며 힘을 내야 했고 풍찬로숙하여야 했다.게다가 앞뒤에서 이리떼처럼 달려드는 일제야수들과 격전을 벌리며 한치한치 열어가야 하는 피어린 싸움의 길이 아니였던가.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라! 선렬들이 백두의 후손들에게 남긴 절절한 당부가 들려오는 길이였다.자욱자욱 걸음을 옮길수록 영광스러운 백두의 혁명전통이 결코 투사들이 남긴 구호나무들과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우에 글줄로만 새겨져서는 안된다고 하신 향도봉에 새겨진 맞받아 불어오던 백두산바람이 방향을 바꾸어 우리의 등을 떠밀어주는것이였다.학자들은 그것을 백두산에서 형성된 상승기류의 특성으로 설명하겠지만 우리에게는 시련의 고비를 이겨낸 승리자들을 백두산이 자기의 품에 끌어안는것처럼 느껴졌다.백두산칼바람은 매 인간의 신념과 의지를 검증할뿐만아니라 혁명의 먼길에 심장이 식을세라 신념을 억세게 벼려주고 몸도 마음도 떠밀어주는 따스한 바람인것이다. 산상봉의 눈속에서도 푸르름을 간직한 만병초가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자연의 기적처럼 느껴지는 흰눈속의 만병초자태가 소중할수록 우리는 그 만병초에 억센 생명력을 준 백두의 공기, 백두의 물, 백두의 바람이 더더욱 신성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백두의 만병초가 되고싶었다.그것이 어찌 우리의 마음뿐이랴.내 만일 한점의 티라도 낀다면 어디서나 다시 백두산에 오르리, 여기 올라 다시 필 자리 찾으리 하고 격정을 터친 룡성의 처녀선반공처럼 이 나라 천만아들딸들은 백두산의 만병초가 되고저 한다. 백두산의 만병초는 력사의 그 심오한 진리를 우리에게 새겨주고있었다.
태양의 성산은 불멸의 그 업적 전하며 폭풍친다
우리는 마침내 칼바람부는 백두의 아아한 산정에 섰다.가리라, 가리라 맹세다지며 마음부터 달리던 흰눈덮인 백두산마루에 드디여 오른것이다. 머리우에는 찬란한 태양, 굽어보면 조국삼천리.우리는 경건한 마음을 안고 백두산사적비앞에 다가갔다. 천지의 맑은 물로 총검을 갈아 강대한 두 제국주의를 한칼에 쓸어눕히신 강철의 령장 돌이켜보면 이런 생각에 잠겨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백두산을 숭상해온 민족의 5천년사가 환히 굽어보이는것만 같았다.우리 선조들은 태고적부터 백두산은 성산이라 조선강토가 마련된 근본이고 조선의 신성한 정기와 생기가 일어번지는 근원이라고 숭배하였고 국토가 광대했던 고구려시기의 조상들은 백두산이 힘찬 오른팔로 북쪽을 휘둘러 문질러놓은것이 광대한 벌판이고 지혜로운 왼손을 남으로 뻗쳐 재주를 피운것이 삼천리금수강산이라고 하였다.근세에도 이 땅의 어디에서나 이마에 스치는것은 백두산의 바람이요, 목을 추기는것은 백두산샘물이요, 갈고 심고 거두고 다듬는것은 백두산의 흙이라고 썼다. 우리는 산정에 오르는 길에 백두산탐험과정에 발굴된 이 비석은 나라의 생존이 심히 우려되였던 20세기초에 세워진것인데 비문의 내용은 백두산을 지키는 천지의 《룡신》이 이 나라 사람들을 무궁토록 안정하게 해줄데 대한 기원이였다.세월의 풍운에 닳고 모지라진 그 비석은 백두산에 의탁하여 민족의 밝은 미래를 바라고바라온 우리 인민에 대하여 말해주었고 이 조선을 이끌어줄 위인출현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강렬했던가를 보여주고있었다. 조종의 산 백두산의 력사는 절세의 위인들을 기다리고 맞이한 력사이다. 수천년동안 기다리고기다려온 백두산이 맞이한 절세의 위인은 어느분들이시였던가.조선의 성산 백두산은 민족의 태양, 사회주의조선의 시조 백두산정에서는 대연지봉과 소연지봉이 보이고 검푸른 밀림의 바다에 솟은 소백산과 사자봉, 선오산, 곰산, 간백산, 포태산을 비롯한 그악한 산봉우리들이 한폭의 그림처럼 안겨들었다. 그것을 어찌 백두화산의 분출과 더불어 솟아오른 대자연의 뭇봉우리들이라고만 하랴.그것은 피어린 항일무장투쟁사였고 백두산장군들을 따라 엮어진 영광찬란한 조선혁명사였다.이 땅에 굽이친 만고의 항쟁사와 혁명전통계승사를 증견하려고 천산만악을 한줌에 걷어쥐고 오늘도 세기의 백발을 날리며 거연히 솟아있는 혁명의 성산이 바로 백두산인것이다.하기에 백두산의 공기, 백두산의 물, 백두산의 바람이 그토록 신성한것이리라. 오늘날 백두산은 약동하는 기운에 넘쳐 신성한 정기를 끝없이 뿜어올리며 환희와 긍지로 설레이고있다. 우리 조국을 강성한 미래에로 이끌어가시는 만고절세의 영웅 백두산정에 올라 혁명전통교양의 바람, 승리의 바람인 백두의 칼바람으로 우리 조국의 존엄을 지켜주시고 모든 영광과 행복을 마련해가시는 바람도 칼바람, 벼랑도 칼벼랑, 바위도 칼바위, 산릉선도 칼릉선, 얼음도 칼얼음, 백두의 봉우리들도 칼봉우리… 백만년전 지심깊이 끓어번지던 용암이 활화산으로 터져오른이래 백두의 모습은 의연하였지만 태양의 성산은 산정이라 기온은 령하 31℃였고 바람이 세차 걸음을 옮기기도 쉽지 않았다.관측원들의 말에 의하면 초당 11m정도의 바람이라고 한다.그런데 칼바람이 몰아치던 그날의 광경이 밟혀왔다. 백두산정에 거연히 서시여 그처럼 사나운 칼바람을 기꺼이 한몸에 맞으시던 우리의 귀전에 백두산의 칼바람을 맞으시면서 지금같이 눈보라치는 백두산에 올라 백두의 칼바람을 맛보아야 백두산의 진짜맛을 알수 있으며 조선혁명을 끝까지 완성하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지게 됩니다라고 하시던 백두산이 높이 솟아 유구한 세월이 흘렀지만 백두산칼바람에 조선의 넋과 필승의 기개를 숨결로 주신 절세의 위인이 그 언제 있었던가. 진정 그이께서는 백두의 칼바람으로 승리떨치시는 백두산의 우리 백두산정에서 력력히 보이는 우리 조국의 지난 5년간이 그것을 말해주고있다. 생눈길과 더불어 터쳐오른 백두의 칼바람폭풍은 해가 바뀔수록 더욱 거세여만 갔다.인공지구위성들인 《광명성》호들이 대지를 박차고 련이어 날아올라 우주에 닿은 우리 조국의 국력을 과시하였다.완전성공한 지하핵시험들과 첫 수소탄의 장쾌한 폭음으로 우리 나라를 세계적인 핵강국의 전렬에 당당히 올려세운 민족사적쾌거도 있었다. 어찌 그뿐인가.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화성》, 《북극성》계렬의 탄도로케트, 전략탄도탄들의 성공적인 발사만이 아니라 대륙간탄도로케트시험발사준비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른것을 비롯하여 국방력강화를 위한 경이적인 사변들이 다계단으로, 련발적으로 이룩되여 우리 조국의 존엄과 자주권을 지켜냈고 세계평화에 이바지하였다. 백두산의 칼바람에 돛을 단 우리 혁명은 세상에 없는 군사강국, 청년강국을 탄생시켰다. 백두산의 칼바람맛을 본 인간들은 또 그 얼마나 몰라보게 성장하였던가.백두산에 올랐던 새 세대 조선인민군 지휘관들은 백두산호랑이들로, 백두산장군의 펄펄 나는 맹장들로 자라났으며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우리와 만났던 백두산혁명전적지 강사는 백두산에 올라 칼바람맛을 본 후 영웅청년신화, 선군청년문화를 창조한 영웅청년돌격대원들에 대한 생동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우리의 애젊은 녀자축구선수들이 백두산칼바람을 맞고 월드컵들을 들어올렸다고 하면서 백두산칼바람은 숨막히는 적도의 무더위도 이겨내게 하는 필승의 바람이라고 하던 그의 말이 인상적이였다. 백두의 칼바람속에 만리마시대가 펼쳐져 려명전역에서도 원쑤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승전소식이 마련되고있는것이다.… 정녕 우리 백두산에 올라야 혁명이 전진하고 시련이 막아설수록 선군의 장검을 높이 들라는 력사의 절절한 당부를 들을수 있고 정의의 돌풍에 전률하고 세상밖으로 내쳐지는 제국주의자들의 비명소리도 들을수 있다.백두의 칼바람은 혁명가들에게는 혁명적신념을 더 굳게 벼려주고 모든 기적과 승리를 가져다주는 따스한 바람이지만 혁명의 배신자, 변절자들에게는 돌풍이 되여 철추를 내리는 예리한 바람인것이다. 강성조선에 전진의 벅찬 숨결을 주고 천만군민에게 혁명열, 투쟁열을 주는 내 조국의 승리의 바람, 백두의 칼바람의 고향인 태양의 성산 백두산, 백두산은 이렇게 새로운 주체100년대에 백두의 칼바람정신이라는 격동적인 시대어로 자기의 성격과 의미를 더욱 풍부히 하고 승화시켰다. 그이께서는 이날도 백두의 칼바람을 맞으시며 백두산은 세계의 그 어느 산과도 대비할수 없는 천하제일의 명산이라고, 조선의 혁명가들이 백두산에서 시작된 우리의 행군길을 끝까지 이어 선군혁명위업을 빛나게 완성하자면 백두산의 억센 기상을 닮아야 한다는 뜻깊은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일찌기 자신께서는 백두산의 칼바람을 사랑한다고 하시며 백두의 칼바람에 열화같은 애정을 주시고 무한한 친화력으로 자신의 열정의 세계를 깡그리 주신 위대한분, 이 세상 온갖 불의를 단숨에 날려보내듯 지동치는 백두의 칼바람에서 따뜻한 바람결을 느끼시고 혁명의 최후승리를 락관하시며 그토록 귀중히 여기시는 우리 백두산으로 오르는 길은 그 어떤 핵무기의 위력에도 비할수 없는 귀중한 정신적량식을 안겨주는 길, 백두의 혁명전통을 빛내여가는 길, 영광넘친 조선혁명의 명맥을 꿋꿋이 이어가는 길이다. 좋은 날, 맑은 날에 백번을 오르기보다 한번 올라도 심신을 흰눈처럼 정화시켜주고 옷자락이 기폭처럼 나붓기는 한겨울에 백두의 칼바람을 맞으러 오르라. 백두는 이렇게 웨친다.백두산은 이렇게 부른다. 본사기자 박일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