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4월 2일 로동신문

 

우리 수령님과 조국의 미래

 

무릇 봄은 아이들의 계절인듯싶기도 하다.그래서 봄은 그들에게서부터 온다는 말도 있는것이리라.

뜻깊은 태양절을 맞으며 산과 들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4월의 화창한 봄풍치에 앞서 우리 아이들의 얼굴에 먼저 웃음꽃이 활짝 피였다.

우리가 만든 《소나무》책가방을 메고 새 교복을 입고 배움의 꽃대문에 들어선 기쁨으로 장난마저 잊어버린듯 한 나어린 신입생들이며 당의 은정어린 콩우유를 먹으면서 또 한해 키도 마음도 몰라보게 성장한 행복동이들, 륙지와 멀리 떨어져있어도 전반적12년제의무교육의 혜택속에 무료교육의 글소리 랑랑히 울리는 섬마을학생들이며 사랑의 통학렬차를 타고 원수님을 노래하며 학교로 가요라고 노래부르는 산골마을아이들의 얼굴마다에도 행복의 웃음꽃이 만발하게 피여났다.우리 아이들의 그 밝은 모습으로 하여 산천도 거리도 더 환해지고 만리마속도창조로 들끓는 일터마다에서 흥겨운 노래소리가 그칠줄 모르며 내 조국은 더욱 활력에 넘쳐 어버이수령님 탄생 105돐을 마중해가고있는것이다.

조국의 미래인 우리 후대들이 세상에 부러운것없이 온갖 행복을 누리면서 명랑하고 랑만에 넘쳐 학교길에 오르는 모습을 보시는것이 그리도 기쁘신듯 어버이수령님께서 온 나라 아이들에게 4월의 따뜻한 축복을 보내시며 태양의 모습으로 환히 웃으신다.우리 아이들을 위해 감동깊은 사랑의 전설을 수놓으시며 후대사랑의 위대한 모범을 창조하신 어버이수령님의 고귀한 혁명생애가 4월의 눈부신 태양빛에 실려 천만군민의 가슴을 더더욱 뜨겁게 적셔주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후대들에 대한 사랑은 인간이 지니고있는 사랑가운데서도 가장 헌신적이고 적극적인 사랑이며 인류에게 바쳐지는 송가가운데서도 가장 순결하고 아름다운 송가이다.공산주의자들은 바로 이 송가를 만들어내는 창조자들이며 이 송가를 위해 투쟁하는 복무자들이다.》

우리 수령님께 있어서 아이들은 웃음이고 꽃이며 자랑이고 기쁨이였다.아이들이 아무런 구김살없이 터치는 행복한 웃음소리에서 제일가는 기쁨을 찾으시며 그들을 위해서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주고싶어하신것이 우리 수령님의 심정이였다.

사람들은 지금도 어버이수령님께서 손수 사진기를 드시고 새옷입은 학생들에게 사진을 찍어주시던 자애로운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있을것이다.

주체66(1977)년 4월 12일에 있은 일이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아침 새옷입은 학생들의 모습이 보고싶으시여 안주군 연풍고등중학교(당시)를 찾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학생들의 새옷입은 모습을 만족스럽게 보아주시면서 한 학생이 입고있는 옷이 몸에 꼭 맞는가 헤아려보시였다.그러시고는 다른 학생이 쓴 모자의 모표도 바로잡아주시고 반짝거리는 혁띠고리를 보시며 잘 만들었다고 못내 기뻐하기도 하시였다.

새옷을 해입히고 옷차림을 살펴보는 친부모의 심정그대로 학생들의 옷맵시며 책가방과 넥타이, 그들이 신은 구두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보살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우러르는 아이들의 눈가에도 뜨거운것이 고여올랐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산마루에 솟아오른 해가 더욱 눈부신 빛을 뿌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허리에 손을 얹으시고 다시금 학생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시다가 사진을 찍자고 하시였다.

기쁨에 휩싸여 어쩔줄 몰라하는 학생들을 정겹게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내가 학생들의 사진을 직접 찍어주고 그 사진을 나도 한장씩 가지고가겠습니다라고 하시였다.몸소 사진기를 드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허리를 굽히시고 가까이의 배경을 가늠해보시며 사진찍을 자리를 정하시였다.

그때의 사실에 대해 당시 인민반학생이였던 한 교원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때 우리들의 키는 너무도 작았습니다.의자에 앉으시여 사진기의 초점을 맞추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사진기를 내리우시더니 글쎄 운동장의 바닥에 한 무릎을 대시고 나어린 우리들의 모습에 사진기의 초점을 맞추시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진기를 드신 우리 수령님과 그이앞에 행복에 겨워 함뿍 웃음을 담고 선 학생들, 진정 그것은 이 세상 어느 력사의 갈피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가장 고결한 사랑의 화폭이였고 목메이도록 행복한 순간이였다.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학생들의 개별사진을 찍어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문득 사진기를 내리시였다.그러시더니 잘 보이지 않는구만라고 하시며 학교뒤산의 푸른 하늘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는것이였다.벌써 수십차례나 사진기의 샤타를 누르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교원들까지 다 찍어주시고서야 사진기를 놓으시였다.

돌아오시는 길에서도 그이께서는 후대들속에 계시던 행복의 순간이 잊혀지지 않으신듯 오늘처럼 기쁘기는 정말 처음이요라고 거듭 외우시였다.

항일무장투쟁의 나날에는 강반석어머님께서 남기신 사연깊은 돈 20원에 숭고한 사랑을 담아 추위에 떠는 마안산아이들을 포근히 덥혀주시였고 해방후에는 새 조선의 아들딸들이 입을 교복의 옷감과 도안을 보아주시며 누구보다도 마음쓰시던 우리 수령님이시였다.그러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 천만시름을 다 잊으신듯 만족한 웃음을 환하게 지으시였으니 참으로 이날은 우리 수령님의 제일 기쁜 날이였고 가장 행복한 날이였다.

한평생을 오로지 후대들과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아낌없이 바치시며 기쁨도 행복도 오직 인민들의 보람넘친 삶과 새 세대들의 미더운 성장속에서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

어버이수령님의 그 기쁨, 그 행복은 혁명과 건설의 오늘만이 아니라 먼 앞날에 대해서까지 끝까지 책임지시는 무한한 헌신성의 표현이였으며 승승장구할 미래에 대한 확신에서 오는 크나큰 만족이였다.그이께서는 후대들이 없으면 우리 생활에 그 어떤 락도 없다고 보시였기에 한평생 아이들을 끝없이 사랑하시며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들을 자욱자욱에 수놓으시였다.

어느해 여름에 있은 일이였다.

지방의 한 공장을 현지지도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탁아소를 꼭 보고 가겠다고 하시며 공장탁아소를 찾으시였다.그이께서 갓난애기들의 방에 들어서시였을 때 젖먹을 시간이 되여서인지 애기들이 몹시 보채였다.급해난 보육원은 어찌할바를 몰라하였다.여기저기에서 애기들이 우는것이 자기의탓인것만 같아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내돋았다.

보육원의 모습을 지켜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아이들은 기뻐도 울고 좋아도 울고 싫어도 울며 잠이 와도 운다고 하시면서 그의 마음을 눅잦혀주시였다.그러시다가 문득 보육원에게 애기들의 직업이 무엇인지 아는가고 물으시였다.

뜻밖의 질문이여서 보육원은 몸둘바를 몰라하였다.어버이수령님께서는 보육원에게 애기들은 우는게 직업이요라고 호방하신 어조로 말씀하시더니 환히 웃으시였다.

보육원은 너무도 신통하여 《어쩌면…》 하고 탄성을 올리였다.이 세상 그 어느 어머니도, 그 어느 보육원도 알지 못한 애기들의 《직업》을 어버이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것이다.세상에 갓 태여난 애기들의 직업까지도 아시고 그들을 위해 마음쓰신 위대한분이 한평생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고 보살펴주고 사랑해주시며 조국의 미래를 풍요하게 가꾸시였다.그래서 이 나라의 아이들은 웃음만을 아는 행복동이로 떠받들리운다.

사람들은 아이들의 웃음에 사회의 모습이 비낀다고 말한다.새 세대들의 웃음소리 높은 곳에 생활의 랑만이 있고 미래에 대한 락관이 넘쳐나는 법이다.

아이들이 웃으면 부모들도 웃고 온 가정에 생기발랄한 향기가 넘친다.이 땅 어디서나 작으면서도 큰 메아리로 울리는 그들의 웃음을 위해 우리 수령님께서는 한평생을 사시였다.

주체58(1969)년 새 학년도를 몇달 앞둔 어느날이였다.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하루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을 보시고 차를 멈추게 하시였다.

뜻밖에 어버이수령님을 뵙게 된 그들은 환성을 올리면서 달려와 저저마다 인사를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랑스러운 눈길로 아이들을 바라보시며 어느 학교에 다니는가, 몇학년인가, 집은 어디에 있는가를 하나하나 물으시였다.그러시다가 어디 너희들 책가방을 좀 볼가라고 하시며 한 아이의 등에서 책가방을 친히 벗기시였다.어버이수령님께서는 가방속에 있는 필갑도 열어보시고 교과서와 학습장도 펼쳐보시며 교과서를 깨끗이 거두고 글씨도 아주 잘 썼다고 치하하시였다.

칭찬받은 아이는 너무 좋아 싱글벙글하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제 집으로 가면 학습반을 하는가, 학습반을 하면 무엇이 좋은가고 물으시였다.

한 아이는 모르는것을 서로 가르쳐주어 좋다고 하고 다른 아이는 또 무엇이 좋다고 하며 저마끔 승벽내기로 한마디씩 하였다.그중에는 교과서를 함께 나누어보아 좋다고 하는 아이도 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아이들의 대답을 들으시고 손수 책이랑 학용품들을 가방안에 넣어 다시 메워주시며 공부를 잘하라고 거듭 이르신 후 그들과 헤여지시였다.달리는 차안에서 방금 있은 사실을 두고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아이들이란 참 솔직하오라고 혼자말씀처럼 조용히 외우시더니 교과서를 나누어보아 좋다는 말은 결국 교과서가 모자란다는것을 말해준다고 하시며 차창밖으로 시선을 보내시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학년도준비사업문제를 가지고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를 소집하시였다.

일군들로부터 새 학년도준비사업정형을 구체적으로 보고받으신 후 학교건설문제, 부족되는 교원문제를 비롯하여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 필요한 대책들을 다 세워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학생들의 교과서문제에 대하여 중요하게 제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과서를 얼마나 더 찍어야 하며 그러자면 종이가 얼마나 있어야 하는가를 하나하나 알아보신 후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교과서를 받는 재미가 제일 좋은데 빈 가방만 메고다니게 하면 되겠습니까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그러시고는 당면하게 다른 출판물인쇄는 좀 뒤로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교과서용종이만은 꼭 풀어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종이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을 세워주시였고 교과서인쇄능력을 타산해보시고는 어느 한 단위에서 가지고있는 인쇄공장까지 동원시켜주시는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중앙과 도, 시, 군에서 책임적인 일군들로 새 학년도준비위원회를 내오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 문제토의를 결속하시면서 우리야 학부형이 아닙니까, 오늘의 이 정치위원회는 학부형회의를 한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모여서 아이들 공부시키는 문제를 풀지 못하면 되겠습니까라고 절절히 교시하시였다.

이렇게 후대들을 위해, 그들의 밝은 웃음과 행복을 위해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마저 학부형회의로 전환시키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생애의 마지막시기에도 우리 아이들의 얼굴에 그늘이 지고 웃음이 적어질세라 유치원어린이들과 학생들의 한명당 하루 물고기공급량까지 알아보시며 마음쓰시였고 또 어느날에는 그들에게 사과와 콩우유를 정상적으로 공급해줄데 대하여 간곡히 이르신 어버이수령님.

그 사연을 전해들은 우리 아이들은 철모르는 마음에도 끝끝내 울음을 터뜨리였다.하지만 그들의 두볼로 흐르는 방울방울의 눈물은 단순한 감정의 분출이 아니였다.그것은 위대한 어버이의 품속에서 충정의 해바라기로 활짝 피여나는 조선의 어린이들이 자랑높이 터치는 이 세상 가장 고귀하고 행복한 웃음이기도 하였다.

후대들은 조국의 미래이다.나라와 민족에게 있어서 후대문제는 참으로 중요하다.미래가 없는 인민은 얼마나 불우하며 미래가 없는 혁명은 얼마나 무의미한것인가.조국의 미래를 누구보다도 귀중히 여기시며 세상이 알지 못하는 가슴뜨거운 사랑의 전설을 이 땅우에 새기시였고 후대들속에 계시는것을 제일 큰 기쁨으로, 락으로 간직하시고 주실수 있는 모든 행복을 다 안겨주신 어버이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이 그이의 태양과도 같이 환하신 웃음에 실려 온 나라 아이들에게 따뜻이 안겨지고있다.

미래는 바란다고 해서 저절로 마련되는것이 결코 아니다.온 나라 새 세대들이 수령을 어버이라 부르며 따르고 사회주의강국의 대들보로 억세게 자라고있는 우리 조국의 현실은 위대한 수령, 위대한 령도자를 높이 모실 때에만 조국과 혁명의 미래가 마련되고 담보된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우리 인민의 행복과 기쁨이고 우리 아이들의 희망과 미래의 상징이기도 한 어버이수령님의 환하신 그 웃음이 온 세상에 더욱 빛을 뿌리도록 하시기 위하여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오늘도 끊임없는 전선길, 현지지도의 길을 걷고계신다.

그 거룩한 자욱과 더불어 어버이수령님의 후대사랑, 미래사랑의 력사는 이 땅에 변함없이 이어지고있다.

평양애육원과 육아원, 만경대혁명학원과 중구역 창전소학교, 경상유치원, 장재도와 무도, 월내도 등 이 나라의 복받은 아이들이 있는 곳 그 어디에서나.

본사기자 김준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