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상계관도서 《인민들속에서》를 펼치며 (2)
수령님은 인민과 함께, 인민은 수령님과 함께
흐르는 세월은 류수와도 같아 이 땅의 세대도 끝없이 바뀌우고있다.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이 땅의 인민이라면 누구나 도서 《인민들속에서》를 애독하고있으며 귀중한 생활의 진리도 여기에서 찾고있다. 도서에는 한평생 인민과 함께 계신 우리 수령님의 모습이 감동깊은 이야기들로 정히 그려져있으며 수령님의 품속에서 세상에 부럼없는 존엄과 행복, 영광을 받아안으며 성장한 인민이 거대한 군상을 이루고있다. 100권을 넘어선 도서 《인민들속에서》의 총적주제를 구태여 론한다면 그것은 《수령님은 인민과 함께, 인민은 수령님과 함께》일것이다. 인류력사에는 걸출한 명인들과 정치가들을 회억하는 문인재사들의 저서들이 많지만 우리의 《인민들속에서》와 같이 평범한 인민들이 소박한 필치로 력사의 진실과 진정을 담아 위대한 수령의 한평생을 칭송한 전인민적인 도서는 없다. 위대한 생애의 1994년 7월에 우리 수령님께서 남기신 교시가 력사의 자막처럼 떠오른다. 《나는 지금까지 인민을 믿고 인민을 위하여 투쟁하였으며 인민들속에서 살아왔습니다.나의 한생은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바쳐온 한생이였으며 인민들과 함께 투쟁해온 한생이였습니다.나는 앞으로도 언제나 우리 인민들과 함께 있을것입니다.》 어제와 오늘만이 아니라 이 땅의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는 인민의 고귀한 추억을 도서 《인민들속에서》의 갈피들은 펼치여준다. 《〈꼭 우리의 힘으로 복구해봅시다〉》, 《용해공의 소박한 의견을 들으시고도》, 《몸소 소금밭을 찾으시여》, 《소문없이 우리 집에 찾아오시여》, 《잊지 못할 추억을 더듬어》, 《수령님은 언제나 인민들속에 계시였습니다》 … 한페지 번지면 우리 수령님 주신 땅에 봄씨앗을 묻어가던 해방조선의 전야가 《밭갈이노래》의 흥겨운 선률속에 어려오고 또 한페지를 번지면 우리 수령님 태워주신 천리마를 타고 격동의 영웅시대의 창공을 날으던 제철소며 제강소, 기계공장이며 화학공업기지의 벅찬 숨결이 들려온다.또 다른 한권을 펼쳐들면 이름모를 두메산촌의 수수한 살림집부엌에 내려서시여 가마뚜껑이며 쌀독까지 열어보신 우리 수령님의 사랑의 이야기가 울려나오고 압록강 2천리에 떼를 몰아가던 류벌공의 신발까지 헤아려주시고 철없는 아이들의 귀속말도 들어주시던 자애로운 어버이의 웅심깊은 마음도 어리여온다. 도서의 5권, 92권에서는 전후복구건설시기 락원의 로동계급속에 계시며 그들을 불러일으켜 맨손으로 양수기와 굴착기를 만들어내도록 이끌어주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모습이 회상되고있다. 주체47(1958)년 6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다시 력사의 땅 락원을 찾으시였다. 기양관개와 어지돈관개를 비롯한 크고작은 수리화공사들이 진행되고 천리마를 탄 기세로 사회주의건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있던 그 시기 어디에서나 요구하는것들중의 하나가 양수기와 굴착기였다. 이때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믿고 의지하신것은 이웃나라의 그 어떤 도움이 아니라 오직 인민의 힘, 우리 로동계급의 자강력이였다. 공장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든 직장들에 들리시여 로동자들과 담화를 나누신 후 공장일군들이 모시려고 하는 지배인실이 아니라 《로동자동무들이 일하다 앉아쉬군 하는 여기가 좋소.》라고 하시면서 나무그늘이 진 마당에 있는 널판자로 만든 걸상에 앉으시였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 굴착기문제가 아주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고있습니다.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에서는 굴착기생산문제에 대하여 최근에만도 세번씩이나 심중하게 토의하였습니다. … 다음해에는 굴착기 100대가 있어야 하겠는데 아무리 토의하여보아도 사올수는 없고 우리자체의 힘으로 만들수밖에 없습니다.동무들이 만들기만 하면 당중앙위원회가 안타까와하는 굴착기문제는 해결됩니다.》 그것은 인민에게 하시는 우리 수령님의 호소였다.우리 수령님의 호소에는 번개가 있고 우뢰가 있었다.혁명이 준엄한 력사의 언덕을 넘어야 할 때마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인민들속에 들어가시였고 그들에게 나라의 사정을 덜지도 보태지도 않고 그대로 알려주시면서 방도를 제시하시였고 인민에게 호소하시였다.인민에게 하시는 불같은 호소, 거기에는 언제나 인민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인민의 힘에 대한 절대적인 숭상이 있었다. 우리 수령님을 제일 잘 알고 그이의 마음을 제일 잘 리해한것이 인민이였다.력사의 난파도를 헤쳐온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인민을 위하시는 수령님의 마음은 곧 인민자신의 마음이였고 수령님의 맥동은 언제나 인민의 숨결로 높뛰였다. 락원로동계급의 심정을 대변한 힘있는 목소리가 울리였다. 수령님, 만들수 있습니다.우리가 꼭 만들어내고야말겠습니다! 그 대답이 기쁘시여 온 공장이 환해지도록 웃으시면서 대담하게 만들어보아야 하겠습니다라고 고무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천리마를 타면 기계공업부문에서는 만리마를 타고나가야 합니다.천리마의 대고조를 한번 더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수령의 호소따라 맨손으로 수백대의 양수기를 만들어낸 락원로동계급은 그해에 굴착기도 만들어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락원로동계급이 완성된 굴착기를 끌고 평양에 올라왔다는 보고를 받으신것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집행하시던 때였다. 그이께서는 갑자기 중대한 일이 생겨 전원회의를 잠시 중단하겠다고 하시며 전원회의참가자들에게 량해를 구하시였다. 더 중대한 일이 그이를 기다리고있다는 사실에 장내는 술렁거리였다.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보다 더 중대한 일은 무엇일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얼른 가볼데가 있는데 회의는 갔다와서 계속하겠다고 하시였지만 몇시간후에야 돌아오시였다. 락원로동계급이 만들어낸 양수기와 굴착기때문이였다.양수기와 굴착기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뒤로 미룰만큼 수령님의 심혼을 사로잡은 귀중한 창조물이였다.그날 해는 벌써 서산에 기울어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깃들었으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굴착기의 안팎과 밑바닥이며 운전실을 살펴보시고 만져보시면서 거듭 치하하시였다.그것은 수령의 부름에 충정으로 화답해나선 락원로동계급의 심장들이 탄생시킨 희한한 창조물이였다.그날 미루어진 전원회의의 안건자체도 금속공업과 기계공업의 발전과 관련된 의제였다.… 천리마시대의 이름을 달고 태여난 첫 뜨락또르의 출현도 우리 수령님을 얼마나 기쁘게 하였던가.수천년세월 가대기로 밭을 갈던 이 땅의 농민들의 굽은 허리가 금시 펴이는것 같아 우리 수령님께서는 그토록 환히 웃으시였고 수령님의 그 미소는 농민들만이 아닌 인민의 얼굴에 그대로 꽃펴나 온 나라는 경사속에 흥성이였다.기양의 로동자, 기술자들이 그 뜨락또르를 몰고 우리 수령님 계시는 평양으로 올라올 때 청산리까지 와서 길가에 멍석을 펴놓고 사흘동안이나 기다렸다는 증산군의 한 로인, 기양의 로동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로 벼이삭으로 묶은 다발을 안겨주었다는 청산리농민들… 어찌 양수기와 굴착기, 뜨락또르만이랴.자동차, 불도젤, 탑식기중기들을 비롯하여 이 땅 이르는 곳마다에서 수령의 호소에 심장으로 화답해나선 인민이 만들어낸 력사의 옥동자들이 줄줄이 태여났다. 도서 《인민들속에서》중에는 청산리와 관련한 이야기가 적지 않다. 3권, 35권, 44권, 88권, 89권… 진정 위대한 한평생 청산리를 깊은 심중에 안고계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온 세상이 다 알게 소문났을 때의 청산리이야기를 하려는것은 아니다.3권에는 《청산리가 걸어온 길》이라는 제목으로 조국해방전쟁이 끝난 후 어느 가을날에 있었던 이야기가 실려있다. 청산리를 또다시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벼탈곡을 하고있는 조합원들이 미처 인사도 올리기 전에 그간 얼마나 고생들을 하였는가고 하시며 탈곡장 한켠에 무져놓은 북데기우에 허물없이 앉으시였다.그이를 한자리에 모신 40여명의 조합원들, 아무 말씀없이 그들의 얼굴과 옷차림을 찬찬히 눈여겨보시던 우리 수령님께서는 한 조합원에게서 시선을 멈추시였다. 《옷이 다 해졌구만.》 고개를 숙이는 조합원을 한동안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사정이 일시나마 곤난을 참고나가야 할 형편에 처한데 대하여 기탄없이 이야기하시였다. 그때 나이많은 조합원이 우리 수령님께 말씀드리였다. 《수상님, 예로부터 나라와 백성은 한목숨이라고 일러왔습니다.그런데 지금 나라의 형편이 그렇다면야 우리가 이만한 곤난을 무슨 곤난이라고 하겠습니까.고생끝에 락이 온다고 일만 잘하면 우리의 살림이 또 인차 펴이겠지요.수상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수령님께서는 나이많은 조합원의 말을 평생 잊지 못하시였다.자신을 위로해주고 고무해준 인민의 진정이 고마와서만이 아니였다. 더없이 소박하고 순박한 인민의 충정스러운 말속에서 우리 수령님께서는 인민의 식의주문제를 푸셔야 할 수령의 사명감에 대해서 자각하시였고 자신에게 끝없이 높은 요구성을 내세우시며 분발하시였다. 언제인가 인민들이 죽이나 강낭밥만 먹는것이 사회주의라면 나는 그런 사회주의를 그만두겠다고 하신 우리 수령님, 하기에 그이께서는 1970년대부터는 몸소 농업전선의 사령관이 되시였다.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의 전로정에서 거의 절반에 해당되는 로정이 농촌길이라는 사실을 두고 오늘도 인민은 격정에 목이 메인다. 우리 수령님 한생에 제일 기쁜 날이 과연 어떤 날들이였던가. 온 나라에 대풍이 든 1970년대의 어느 가을날 서해안의 한 농장을 돌아보신 우리 수령님께서는 기쁨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협동농장에 가보았는데 분배몫이 호당 평균 벼로 7t이요.현금분배는 내놓고도 말이요.그만하면 내각의 상들보다 더 잘살수 있소.서해지구 벌방이 다 그렇소.그이께서는 이제는 쌀문제가 풀릴것 같다고 하시고는 올농사 대풍이로세라고 노래를 부르시였다. 사회주의전야마다에 풍년나락이 물결쳐 온 나라가 환희로 설레이던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은덕으로 흰쌀밥을 먹는 시대가 왔다고 어버이수령님께 말씀드리시였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환한 웃음속에 위대한 장군님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시였다. 내 덕은 무슨 내 덕이겠소.로동당덕이지.하긴 쌀때문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게 수령인것 같애.… 도서 《인민들속에서》 1권의 《비날론에 깃든 이야기》에는 비날론을 발명한 로학자의 회상실기가 있다. 우리 수령님과 로학자와의 첫 상봉은 총포성이 울부짖던 전화의 나날 평양에서 열린 전국과학자대회에서 이루어졌다.우리 수령님을 모신 대회주석단에 그도 앉아있었다.첫 상봉은 그날이였지만 우리 수령님과 로학자와의 인연은 민족수난의 그 시기부터 은연중 맺어졌다. 전설적인 빨찌산장군과 화학의 세계에서 사는 불우한 민족의 과학자, 한번 만난적은 없었지만 서로서로 그리움에 젖고 기이한 인연이 맺어지게 된것은 바로 인민때문이였다. 항일의 나날 우리 수령님께서 아시는 리승기는 비날론섬유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때 토스레나 베잠뱅이같은것을 걸치고 가난에 우는 우리 민족을 먼저 생각한 민족적자존심이 강한 애국적인 과학자였다.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령도자와 학자의 이 마음들이 하나로 합쳐져 결국은 비날론이라는 인민을 위한 위대한 창조물을 낳은것이다. 주체50(1961)년 5월 6일은 비날론공장준공식이 거행된 날로 력사에 기록되여있다.이날은 인민을 잘 입히려고 온갖 로고를 다 바쳐오신 우리 수령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신 날이였던가.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비날론을 위해 기울이신 자신의 로고는 다 묻어두시고 모든 공로를 리승기선생에게 돌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준공테프를 끊으신 다음 로학자를 바라보시며 《오늘은 리선생의 소원이 풀리는 날입니다.》라고 하시였다. 비날론이 현대과학의 걸작품으로 완성되는 전기간 그 성장을 촉진시켜준 해빛으로 된 우리 수령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민족의 량심적인 한 인간의 과학적성공이 있었고 인민은 그 거대한 사랑의 혜택을 세세년년 보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손길아래 비날론삼천리가 펼쳐졌을 때 인민은 우리 수령님의 하늘같은 은덕을 《돌에서 수령님 꽃피운 사랑》이라는 더없이 소박하면서도 깊은 뜻이 담긴 인민적인 시어로 노래하였다. 로학자는 준공식날에 사람들에게 터치고싶었던 격정을 그대로 적는것으로써 회상실기를 끝맺었다. 《여러분들! 당신들에게 비날론옷감이 차례질 때 그것을 무심히 대하지 마시오.그것이 어느 한사람의 과학자나 기술자나 또 몇사람의 로동자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이라고는 더우기 생각지 마시오.그 비날론에는 자식에게 더 좋은 옷을 입히고싶어하는 어버이의 심정그대로인 위대한 수령님의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높은 사랑이 깃들어있음을 잊지 마시오.먼 앞날 당신들의 자손들이 만약 비날론의 래력을 물어보거든 그 어떤 과학자나 기술자의 이름을 대줄것이 아니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직접 창건하시고 령도하시는 조선로동당의 력사를 말하여주시오.그러면 아마 그들은 비날론이 어떻게 우리 시대에 나타났는지 알수 있을것입니다.》 도서 《인민들속에서》 16권의 어느 한페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당 제5차대회에서 7개년계획의 높은 고지를 승리적으로 점령한 자랑찬 성과들을 총화하시고 또다시 6개년계획의 웅대한 강령을 펼쳐주시면서 온갖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된 우리 인민을 어렵고 힘든 로동에서까지 해방하여주시기 위한 3대기술혁명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유해로운 가스냄새가 적지 않게 풍기던 어느 한 화학섬유공장, 바로 이 공장을 우리 수령님께서 대화학섬유공장으로, 유해를 모르는 공장으로 전변시켜주시려 마음쓰신 이야기가 있다. 주체36(1947)년 9월 우리 수령님의 발걸음은 인견사를 뽑아내던 한 화학섬유공장에도 미치였다.유해가스속에서 일하는 로동자들의 모습은 우리 수령님의 마음에 짙은 그늘을 남기였으니 그이께서는 유해로동에서 그들을 해방시키는 문제를 자신께서 푸셔야 할 과제로 맡아안으시였다. 그때로부터 근 10년이 지난 주체45(1956)년 6월 당 및 정부대표단을 인솔하시고 어느 한 나라를 친선방문하신 우리 수령님의 발걸음은 공업도시의 화학섬유공장으로 옮겨졌다. 유해가스 풍기는 방사기밀봉창을 열어도 보시고 로동자들과 담화도 하시면서 우리 수령님께서는 매 공정을 주의깊게 살펴보시였다.더욱 심해지는 역한 가스냄새속에서 마지막 5층도 다 돌아보시였을 때 외국의 벗들까지 만류하였지만 그이께서는 지붕우에까지 올라가보자고 하시였다.벽에 붙어있는 가파롭고 위험한 수직사다리를 잡으시였다.동행하던 그 나라 정부수반도 공장지배인도 놀랐다. 그 공장의 보수공들조차 한해에 한두번 올라가나마나한 지붕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르시다니… 보슬비가 내려 푹 젖은 지붕은 미끄러웠다.근 10년전 스스로 맡아안으시였던 유해가스문제해결을 위해 머나먼 외국방문의 길에서조차 많고많은 공장들가운데서 화학섬유공장을 찾으시고 지붕우에까지 오르신 우리 수령님, 지붕우에서 우리 수령님과 기술일군이 나눈 대화가 있다. 《수령님, 비가 내립니다.… 그 모든 일은 저희들에게 맡기시고 어서 아래로 내려가주십시오.》 그것은 모두의 간절한 소원이였다. 《일없소.비야 좀 맞으면 뭐랍니까.헐벗었던 우리 인민이 비단옷을 입게 되고 우리 로동자들이 그 역한 냄새를 모르고 일하게 된다면 무엇을 가리겠습니까.》라고 하시며 지붕의 한쪽 모서리로 걸어가신 그이께서는 손으로 바닥도 깐깐히 만져보시였다.보실데를 다 보시고서야 자리를 뜨시였다. 우리 수령님 그 시각 계신 곳이 어찌 머나먼 이국땅이라고 하랴.조국에서 수만리 떨어진 곳에 계시였어도 우리 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들속에, 인민과 함께 계시였다.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여도 우리 수령님 이야기로 인민의 추억은 더욱 뜨겁다. 황해남도 봉산땅에 가면 전후시기 우리 수령님께서 불발탄이 박혀있는 위험지대를 누비시며 세멘트생산방도를 밝혀주시던 추억이 되살아난다. 서해기슭에 서서 갈매기소리를 듣느라면 그이께서 인민들의 먹는 문제해결을 위해 걸음을 옮기실 때마다 사정없이 튀여오르는 시꺼먼 감탕물도 아랑곳 않으시고 감탕판을 밟으신 간석지개간의 길들이 선히 떠오른다.연백벌을 비롯한 분계연선지역에 가면 피살자, 월남자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해 찾으신 그이의 발자취들이 소중히 밟혀오고 조국의 최북단 두만강지구의 국경마을을 거니느라면 그이께서 인민들에게 더 많은 고기를 먹이기 위해 진펄길로 승용차를 밀고 끌면서 목장들을 돌아보신 인민행로정들이 그리움속에 사무쳐온다. 잊지 못할 추억으로 깊이 새겨진 그 모든 과거의 영상과 사연들을 인민은 도서 《인민들속에서》에 심혈을 기울여 적어넣었다. 인민이 체험하고 인민자신이 쓴 회상실기처럼 뜨겁고도 진실하며 무한한 생명력을 가지는 도서는 없다.어버이수령님을 위대한 태양으로 영원히 모시고 사는 인민의 그리움이 이 땅, 이 하늘을 꽉 채우기에 도서 《인민들속에서》는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는것이리라. 이 땅에 굽이치는 력사는 이렇게 웨친다. 우리 수령님은 인민과 함께, 인민은 수령님과 함께!
본사기자 리금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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