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4월 19일 로동신문
전설같은 후대사랑의 서사시 영원히 높이 울려퍼지리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의 60년 력사를 더듬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이 언제나 격정속에 부르고 자식들에게도 피줄처럼 심어주는 한편의 노래가 있다.가슴마다에 공화국의 해외공민된 크나큰 긍지와 높은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힘의 원천,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의 귀중한 생명수로 되여온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노래한 가요 《조국의 사랑은 따사로워라》이다.백두산절세위인들의 숭고한 민족애, 동포애가 뜨겁게 어려있어 재일동포들 누구나 이 노래는 눈물없이는 부를수도 들을수도 없다고 격정속에 뇌인다. 《총련이 걸어온 자랑스러운 력사에는 총련을 전체 재일동포들의 권리와 리익을 대표하는 주체적해외공민단체로 강화발전시켜주신 주체46(1957)년 4월 19일, 이날은 재일동포들이 어머니조국으로부터 첫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받아안은 참으로 못 잊을 날이다.일본땅의 우리 동포들이 예나 지금이나 총련결성일 못지 않게 뜻깊게 기념하는 력사의 그날로부터 어느덧 60년세월이 흘렀다. 그 성스러운 년대기는 해외동포들의 운명과 미래에 대해서도 끝까지 책임지고 보살펴주는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없이 뜨거운 민족애와 동포애, 어머니조국의 은혜로움을 온 세상에 소리높이 구가하는 사랑과 충정의 서사시이다.
세상에 없는 예산항목
동서고금에 없는 예산항목이 우리 공화국의 국가예산에 포함되여 60년간이나 실시되고있다.《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 세상사람들모두가 놀라고 거기에 깃든 가슴뜨거운 사연에 더더구나 경탄을 금치 못한다. 지혜는 돈을 주고 못 사고 황금 천냥이 자식교육만 못하다고 하였다.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배움에 대한 열망이 남달리 높았다.아득바득 자식들을 공부시켜 남부럽지 않게 내세우려는것은 오랜 세월 이 나라 백성들의 간절한 소원이기도 하였다. 일제식민지통치의 암담한 시기 이역땅에 끌려가 민족적멸시와 학대, 가난과 무권리속에서 살아오던 재일동포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였다.아마도 그래서 조국해방후 그들이 제일먼저 시작한것도 민족교육이였으리라. 어려운 형편에서도 한푼두푼 돈을 모아 도처에 학교들을 세웠지만 그 토대는 너무나도 빈약하였다.판자집이라도 자체의 교사를 가지고있는 학교는 몇개 안되였고 대부분의 학교들이 일본학교의 교실들이나 초라한 건물들에서 불편한 곁방살이를 하고있었다.교구비품도 변변한것이 없어 소학교 1학년생이나 앉을 작은 걸상에 중학생들이 웅크리고앉아 공부하는 형편이였다.게다가 조선민족에 대한 차별과 박해, 집요하고 악랄한 동화정책을 국책으로 삼은 일본반동들은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에 대한 지원은 고사하고 그를 말살하기 위해 총칼탄압도 서슴지 않았다.바로 이것이 1950년대 중엽 총련의 민족교육실태였다. 어머니는 멀리서도 자식의 불행을 감촉하는 법이다.거치른 이역땅에서 동포들이 겪는 수난, 그중에서도 민족교육이 처한 어려운 실태를 깊이 헤아려보신분은 우리 주체44(1955)년 9월 29일 조국해방 10돐경축 재일조선인축하단 성원들이 순간 축하단성원들은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아직도 전쟁의 상처가 깊은 조국의 엄혹한 현실을 직접 목격한 그들이기때문이였다.더우기 그때로 말하면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이 《정전협정의 페기》를 떠들면서 새 전쟁을 도발하려고 미친듯이 날뛰고있던 준엄한 시기였다.그토록 어려운 조건에서 이역의 동포들까지 돌보시겠다고 하시니… 그들이 얼마전 평안북도 창성군 약수리를 현지지도하시던 그때 총련축하단 성원들은 우리 항일전의 나날 강반석어머님에 대한 못 잊을 추억이 어려있는 귀중한 돈으로 헐벗은 마안산아동단원들에게 새옷을 입혀주시던 그 뜨거운 후대사랑으로 주체46(1957)년 1월말 평양에서는 국가예산을 심의하는 내각전원회의가 열리였다.이날 국가예산초안을 보아주시던 한두번 보내주고 그만둘 일이 아니다.일본에 우리 동포가 있고 배워야 할 어린이가 있는 이상 계속 보내주어야 한다.그렇기때문에 림시적인 사업으로 하여서는 안된다.국가예산에 새로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라는 항목을 내오고 항구적인 사업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한다.… 주체46(1957)년, 그해는 제1차 5개년계획수행이 시작되는 첫해였다.달성해야 할 방대한 목표에 비해볼 때 자금, 자재, 로력은 엄청나게 모자랐다. 하지만 메마른 대지를 적셔주는 생명수와도 같은 그 사랑의 젖줄기는 동포들모두의 몸과 마음을 뜨겁게, 뜨겁게 적셔주었다.차디찬 방에서 곱아드는 손가락을 입김으로 녹이며 우리 말 교과서를 한권한권 만들던 교원들이, 눈물겨운 돈 한푼한푼을 모아 판자집교사의 지붕이나마 얹으며 쓰라린 가슴을 달래이던 부모들이 당시 총련 《조선신보》에는 이런 글이 실리였다. 《지금 일본의 방방곡곡 동포들이 사는 그 어디서나 조국에서 보내준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에 대한 화제로 광활한 희열과 기쁨에 들끓는 장면에 부닥친다.둘이 만나나 셋이 앉으나 동포가 모인 장소라면 이 화제로 꽃이 핀다.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감격의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모두는 내가 조선공민으로서 무슨 일을 얼마나 하였는가에 대한 자기반성과 함께 앞으로는 가만히 앉아있을수 없다는 결의를 터친다.》 온 동포사회가 감격과 흥분으로 설레이던 그때
나라에서 나라에서 돈을 보낼줄은 꿈결에도 꿈결에도 생각을 못했지요 교육원조비 장학금의 많고많은 귀한 돈을 바다너머 저 멀리 조국에서 보내왔어요 … 가요 《조국의 사랑은 따사로워라》는 이렇게 세상에 태여났다.은혜로운 사랑의 생명수를 부어주시여 주체적민족교육의 대화원을 펼쳐주신 백두산절세위인들께 드리는 이역의 아들딸들의 다함없는 감사의 정이 가사와 선률에 실려있기에 이 노래는 6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러간 지금도 사람들의 눈시울을 축축히 적셔주고있는것이다. 어두운 구름장을 뚫고 비쳐든 은혜로운 소생의 빛발은 재일동포들의 애국열의를 폭발시키고 민족교육의 발전을 힘있게 추동하였다.기세충천한 동포들은 저들이 《따라지학교》로 멸시하고 조롱하던 조선학교들이 놀라운 모습으로 일신되는 광경에 일본반동들은 아연실색하였다.악에 받친 남조선괴뢰들은 어용언론들을 동원하여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 《정치공작금》이라느니 뭐니 하는 고약한 모략나발을 불어대다가 여론의 된매를 맞았다. 낡을대로 낡고 비좁던 학교대신 사랑의 교육원조비로 건설된 현대적인 학교로 씩씩하게 등교하는 자식들의 환희에 넘친 모습을 보며 동포들은 《이 세상에 우리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우리 주체63(1974)년 재일동포들은 다시금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토록 하늘같은 은정을 베풀어주시고도 노래가사에도 있듯이 재일동포들에게 베풀어주신 우리 … 우리 학교에서 힘껏 배우기에 지난날까지 우리 말과 글도 모르던 재일청소년들이 어머니조국을 노래합니다 … 아 우리에게 이 모든 행복을 마련해주신
예로부터 부모의 은덕은 낳아서 기른 은덕이고 스승의 은덕은 가르쳐 사람 만든 은덕이라고 하였다.정녕 우리 … 이역에서 이역에서 나서자라는 아들딸도 아들딸도 지덕체 갖추어서 사회주의조국의 역군이 되여라 어버이심정으로 아 산이나 바다에 그 어이 비기랴
《아까울것이 없습니다》
언제인가 총련의 한 책임일군은 《교육원조비는 70만의 영원한 생명수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많은 사람들이 해외동포들을 이역땅의 광풍에 흩날린 《락엽》으로, 민족의 《파편》으로 방심하고 외면하는 이 차거운 하늘아래서 해외동포들의 운명을 그토록 귀중히 여기시고 그 자녀들에게 막대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까지 보내주어 제 민족의 영원한 아들딸로 키우는 은혜로운 사랑의 이야기는 기나긴 총련민족교육력사의 갈피갈피마다에는 주체76(1987)년 12월 어느날 《총련의 후대를 키우는 일이라면 나는 나라의 재부를 다 보내주고싶습니다.우리가 돈을 벌었다가 이런데 쓰지 않고 어디에 쓰겠습니까.총련에 보내는 교육원조비라면 아까울것이 없습니다.》 재일동포들을 아끼고 사랑하시는 주체78(1989)년 봄에 있은 일이다.당시 나라의 긴장한 외화사정으로 그해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한번밖에 보내주지 못하였다는것을 아신 …받아야 할것을 제때에 받지 못하고서도 왜 아무말없이 가만히 있는가.그래서는 안된다.… 조국에 늘쌍 부담을 끼쳐드리는것을 송구스러워하는 이역의 자식들에게 친부모의 심정으로 하시는 사랑의 책망이였다.총련의 책임일군은 그만 격정으로 목이 꽉 메여 《예, 알았습니다.》라고 간신히 대답올리고는 고개를 떨구었다.그 책임일군으로부터 이 가슴뜨거운 이야기를 전해들은 총련일군들모두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였다. 총련에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는것은 인민경제부문에 투자하는것과는 성격이 다른 문제이다.이 문제를 가지고 흥정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이역의 동포자녀들을 위하시는 우리 …총련에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는 문제는 그 누구보다도 상실의 아픔이 크신 우리 총련에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는것은 단순한 재정적문제가 아니라 우리 공화국이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을 위하여 막대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수십년간 끊임없이 보내주고있는 이 전대미문의 사실은 남조선과 세계인민들에게도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10여년전 6.15통일시대가 열어준 길을 따라 총련일군들이 남녘땅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그때 남조선인민들이 제일 놀라고 감동을 금치 못한것은 《민단》동포들은 우리 말을 잘하지 못하는데 총련동포들은 아주 류창하게 하는것이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는 나라도 많고 나라마다 해외교포들을 가지고있다.하지만 우리의 재일동포들처럼 유치원으로부터 대학까지 정연한 교육체계를 보란듯이 세워놓고 자녀들에게 민족교육을 시키고있는 해외교포들이 그 어디에 있는가.이역만리에로 끝없이 굽이치는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없이 숭고한 후대사랑이 이런 경이적인 현실을 펼쳐놓았다. 사실 지난 60년간 미제와 그 주구들의 북침전쟁도발과 제재봉쇄책동으로 하여 이 땅에서는 어느 하루도 전쟁의 검은구름이 가시여질줄 몰랐고 우리 인민은 언제 한번 허리띠를 풀어본적이 없었다.하지만 아무리 곤난하여도 이역의 아들딸들을 위해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어야 한다는것이 바로 애국애족의 최고화신이신 전설적위인들의 체취가 뜨겁게 어려있고
교육원조비와 장학금, 참으로 그것은 재일조선인운동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래일을 주체의 피줄기로 꿋꿋이 이어주는 애국의 생명수이며 그 성스러운 60년 력사는 주체적인 민족관, 숭고한 후대관을 천품으로 지니신 천만년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을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어버이사랑을 길이 전하며 이역의 아들딸들은 애국의 화원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갈것이며 그들이 부르는 다함없는 감사의 노래, 경모의 노래는 세월의 끝까지 높이높이 울려퍼질것이다.《조국찬가》의 숭엄한 선률과 더불어. 본사기자 허영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