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5월 11일 로동신문

 

혁명전통교양의 대전당 조선혁명박물관을 찾아서(2)

캄캄한 밤하늘에 솟아오른 조선의 별

 

19세기 후반기, 20세기 초엽 우리 나라의 반침략투쟁사와 망국사에 관한 자료들과 함께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의 혁명투쟁자료가 전시된 1호실 참관에 이어 다음호실로 발걸음을 옮기는 우리의 생각은 깊었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던 우리 인민이 어이하여 식민지노예의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되였던가.

우리 조국강토의 지정학적위치때문인가, 산천경개 수려하고 금은보화 가득하기때문이였던가 아니면 우리 겨레에게 애국애족의 마음이 부족해서였는가.

아니다.근면하고 슬기롭고 강의한 우리의 민족성은 조상대대로 변함없었지만 그 인민을 이끌어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지키고 빛내여줄 걸출한 위인, 위대한 수령을 모시지 못하였기때문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님의 탄생은 우리 민족의 력사에 일찌기 없었던 대통운이였으며 대경사였습니다.수령님께서 탄생하심으로써 우리 민족의 새 력사가 시작되고 주체의 새시대가 열리게 되였습니다.》

참관자들과 함께 2호실에 들어서니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나라찾을 원대한 뜻을 품으시고 압록강을 건느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미술작품이 안겨왔다.

흰눈덮인 압록강, 기승을 부리는 찬바람에 옷자락을 날리시며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비장한 맹세를 다지시는 우리 수령님.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시여 칠골 창덕학교에서 공부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버님께서 일제놈들에게 체포되시였다는 놀라운 소식을 받으시고 주체14(1925)년 1월 고향 만경대를 떠나시였다.

강사 강진아동무의 해설은 력사의 그 나날에로 참관자들을 이끌어갔다.

광복의 천리길!천리중 500리이상은 무인지경이나 다름없었고 오가산을 비롯하여 해종일 톺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령들도 있었다.

강의한 담력과 의지로 눈보라 휘몰아치는 천고의 밀림을 헤치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경대를 떠나신지 13일째 되는 날인 주체14(1925)년 2월 3일 마침내 포평나루터에 이르시였다.

폭이 백자도 되나마나한 강만 건느면 팔도구시가이고 그 강안거리에 어머님이 계시는 집이 있었지만 우리 수령님께서는 선뜻 걸음을 옮기지 못하시였다.이 땅을 하직하면 언제 다시 이 강을 건너보겠는가 하는 절통한 심정으로 조국산천을 몇번이고 돌아보시는 우리 수령님의 심경은 얼마나 쓰리고 아프시였던가.

조선아, 조선아, 나는 너를 떠난다.너를 떨어져서는 한시도 살수 없는 몸이지만 너를 찾으려고 압록강을 건는다.압록강만 건느면 남의 나라 땅이다.그러나 남의 땅에 간들 내 너를 잊을소냐.조선아, 나를 기다려다오.…

이런 애국의 의지를 가다듬으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누군가가 지은 《압록강의 노래》를 부르시면서 걸음을 옮기시였다.

망국은 순간이고 복국은 천년이라는 력사의 진리도 있지만 나라찾는 길에 나서신 우리 수령님의 앞길에 그 얼마나 험한 가시덤불길이 막아서고 전대미문의 시련과 난관이 중중첩첩으로 가로놓이겠는가를 당시로는 누구도 알리 없었다.하지만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험로역경의 그 길에 결연히 나서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경건한 마음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하신 모습을 심장에 새기며 다음벽면의 사적자료들을 주의깊게 보면서 우리는 화전거리의 전경사진앞에 이르렀다.높낮은 산발들을 배경으로 크고작은 집들이 처마를 맞대고 들어앉은 거리의 옛 모습은 우리에게 이채로운 정회를 자아내게 하였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강도 일제의 칼도마우에 올라 몸부림칠 때 싸움의 길에 나섰던 애국지사들은 많았건만 투쟁을 이끌어줄 탁월한 령도자가 없고 뭉치려고 해도 단결의 중심이 없어 혁명이 쓰라린 실패와 우여곡절을 겪던 1920년대 중엽이였다.

민족이 가슴치며 애타게 바라고 부른것은 도탄에 빠진 조선의 운명을 구원해줄 절세의 위인이였다.바로 이러한 시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 민족의 피타는 열망과 기어이 나라를 찾아야 한다고 하신 아버님의 유언을 새기시며 주체15(1926)년 6월 화전으로 가시여 화성의숙에 입학하시였다.

선진사상을 탐구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미술작품, 화전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실 때 계시던 집과 화성의숙의 기숙사외경, 기숙사내부를 보여주는 사진…

우리는 사적자료들도 보고 강사의 해설도 들으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혁명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하여 이어가신 탐구의 낮과 밤들을 그려보았다.

선행운동자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혁명활동을 벌려나가실 원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침내 주체15(1926)년 10월 17일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시였다.

벽면중심에는 그날의 감동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영상미술작품이 모셔져있었다.연탁도 없는 수수한 온돌방, 삿자리를 깐 소박한 방을 등잔불이 밝혀주는데 주체적인 혁명강령을 열정적으로 제시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영상미술작품아래에는 타도제국주의동맹의 당면과업과 최종목적을 밝힌 위대한 수령님의 그날의 교시가 부각되여있어 금시 수령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들려오는듯싶었다.

타도제국주의동맹의 결성은 성스러운 조선혁명사에서 특출한 지위를 차지하는 사변이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교시하신바와 같이 《ㅌ.ㄷ》는 우리 당의 뿌리이고 선군의 시원이며 단결의 전형이고 우리 혁명의 승리의 기치였다.

우리 수령님의 격동적인 연설을 받아안고 자그마한 그 방에 차넘치던 활기와 열정, 혁명에 한몸 다 바칠 비장한 맹세를 다지던 《ㅌ.ㄷ》 성원들의 환희에 넘친 모습이 불멸의 화폭속에 그대로 어려있었다.강병선, 김원우, 최창걸, 계영춘, 박근원동지들의 사진이 벽면아래에 있었다.

《ㅌ.ㄷ》의 첫 성원들, 이들중에는 언변이 좋은 사람도, 서투른 사람도 있었지만 우리 수령님을 타도제국주의동맹 책임자로 모실것을 제의하고 모두가 혁명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치겠다고 굳게 맹세한 새 세대 열혈청년들이였다.

그이를 알게 된것은 비록 오랜 기간은 아니였지만 실지체험을 통하여 《ㅌ.ㄷ》의 산아들은 위대한 수령님이시야말로 조국의 운명을 구원하실 민족의 태양이심을 절감하였기에 우리 수령님을 단결의 중심, 령도의 중심에 높이 모시고 주체의 새시대를 개척해나갈수 있었다.

화성의숙시절 우리 수령님의 혁명활동을 적극 도와주었던 김시우선생의 사진도 있었다.조국이 해방되고 3년간의 전쟁도 우리의 승리로 끝났을 때 조국으로 돌아와 전천군에서 살고있던 김시우선생은 림종을 앞두고서야 자식들에게 김형직선생님, 우리 수령님과의 연고관계를 이야기하면서 너희들도 수령님을 잘 모시고 받들라고 당부하였다고 한다.

강사의 이야기는 혁명의 수령을 받들어나가는데서 한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많은 의미를 안겨주고있었다.

타도제국주의동맹의 활동규모를 보다 넓은 지대에로 확대해나가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활동내용을 다음벽면들에 대한 강사의 해설을 통하여 잘 알수 있었다.

반년만에 화성의숙을 중퇴하시고 길림으로 향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송에 들리시였다.무송은 우리 수령님께서 일생의 라침판으로 되는 아버님의 유언을 받아안으신 잊지 못할 고장이였다.

이곳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송시내와 그 일대의 애국적인 소년들로 주체15(1926)년 12월 15일 새날소년동맹을 결성하시였다.그리고 12월 26일에는 어머님을 도우시여 우리 나라에서의 첫 혁명적녀성대중조직인 반일부녀회를 조직하도록 하시였다.

우리는 무송에서 진행하신 위대한 수령님과 강반석어머님의 혁명활동을 돌이켜보게 하는 영상미술작품들과 사적자료들, 회상자료, 사적물들에 대한 강사의 해설을 들으며 다음벽면으로 발걸음을 옮기였다.

우리 수령님의 혁명활동의 중심지로 된 길림,길림은 혁명활동을 벌리는데서 보다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있었다.

당시 길림은 공산주의운동자들가운데서 제노라고 하는 인사들과 진리를 찾아 모대기는 수많은 청년들이 모여드는 곳이였다.

새 세대 핵심육성이라는 주제로 전시된 벽면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회의를 지도하시는 영상미술작품을 중심으로 하여 사적자료, 사진자료, 회상자료, 사적물들이 전시되여있었다.

아버님친지들의 도움으로 주체16(1927)년 1월 길림육문중학교 2학년에 편입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진사상을 깊이 탐구하시였다.

《자본론》, 《공산당선언》, 《철의 흐름》 , 《어머니》 …

리론가로 자처하는 사람들도 리해하기 힘들어하는 맑스-레닌주의서적들은 물론 혁명적인 소설들을 단순히 읽는데만 그친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의 현실과 결부하여 깊이 탐독하신데 대한 해설을 듣느라니 우리 수령님은 그때 벌써 세계혁명의 탁월한 수령으로서의 리론적자질과 뛰여난 품격을 갖추신 절세의 위인이시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한 격정은 《나와 소년시절의 김일성원수와의 력사적관계》라는 제목으로 육문중학교시절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활동에 대하여 쓴 당시 어문교원이였던 상월선생의 글을 보면서 더욱 승화되였다.

이 모든것은 김일성원수님께서 이미 소년시기에 일제를 몰아내고 조국을 해방할 중하를 한몸에 지니시였을뿐아니라 이때부터 이미 자신을 단련하고 자신이 지닌 력사적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여러모로 지식과 경험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대중을 묶어세워 간고하고도 위대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노력하시였다는것을 말하여준다.…

이 글을 통하여서도 우리는 길림육문중학교시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벌리신 혁명투쟁의 폭과 심도에 대하여 잘 알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시기 비록 학생의 몸이시였지만 해박한 지식과 심오한 리론, 능숙한 수완을 지니신것으로 하여 인민들과 청년학생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으시였다.

그이의 명성이 날을 따라 높아가자 더 많은 청년학생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무어주신 비밀독서조와 조선인길림소년회, 조선인류길학우회 등 혁명조직들에 망라되여 새 세대의 청년혁명가들로 자라났다.이에 따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16(1927)년 8월 《ㅌ.ㄷ》를 보다 광범한 청년들을 망라하는 대중적조직인 반제청년동맹으로 개편하시고 다음날인 8월 28일에는 혁명적전위조직인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결성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청년학생들을 선진사상으로 무장시켜 조직적으로 결속하는데만 그치지 않으시였다.

인민들속으로 들어가라!우리 수령님께서 한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시였던 불멸의 글발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돌이켜보면 민족해방운동을 한다고 하던 초기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은 인민대중과 동떨어져 령도권싸움과 빈말공부로 세월을 보내고있었다.어떤 사람들은 큰 나라의 도움으로 독립을 이루어볼 허황한 꿈을 꾸고있었다.

일부 운동가들마저 인민대중을 우매하고 미개한 계몽대상으로만 보아오던 시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이야말로 선생이며 혁명을 추동하는 기본동력이라는 독창적인 사상을 천명하시고 혁명투쟁을 인민들속으로 들어가는것으로부터 전개해나가시였다.

그 글발을 바라볼수록 어버이수령님께서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쓰신 추억깊은 대목이 우리의 뇌리에 삼삼히 떠올랐다.인민의 권리가 최대한으로 보장되고 인민의 지혜와 창조력이 무한정 발양되는 오늘의 우리 사회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나는 우리를 인민행렬차에 처음으로 태워준 길림시절에 감사를 드리군 한다.…

길림에서 혁명활동을 하시던 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청년들과 인민들을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에로 이끄시였다.

학교안의 반동교원들을 반대하는 청년학생들의 동맹휴학, 일제의 길회선철도부설반대투쟁을 비롯한 대중적인 반일투쟁에로 인민들과 청년학생들을 불러일으키시여 승리를 이룩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령도를 보여주는 사적내용들도 참관자들의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나날에 인민대중의 무궁무진한 힘과 혁명에서 믿을것은 오직 인민밖에 없으며 인민에게 의거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것을 깊이 절감하시였다.

그것은 그대로 우리 수령님의 가슴속에 인민을 하늘같이 여기시는 한생의 좌우명으로 간직되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으신 혁명의 진리들은 새로운 혁명사상을 창시할데 대한 새시대의 력사적과제를 빛나게 해결할수 있는 사상리론적기초로 되였다.

길림에서 청년학생운동이 적극화되여가자 새로운 운동선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만주각지는 물론 국내와 중국관내에까지 퍼져갔다.바로 이 길림바람을 타고 차광수, 김혁동지를 비롯한 열혈청년들이 우리 수령님을 찾아왔다.옳바른 투쟁로선과 참다운 령도자를 찾아 그토록 애타게 헤매다가 우리 수령님의 품에 안긴 이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조선혁명의 태양으로, 령수로 높이 받들어모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도 조선혁명의 향도성이 되여달라는 소망에서 《한별》로, 그후에는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줄 태양이라는 의미에서 날일자에 이룰성자를 써서 김일성 이라고 지어올렸다고 강사동무는 격정에 넘친 목소리로 말하였다.유구한 인류력사의 갈피에 명인들도 많고 위인들도 많았지만 우리 수령님처럼 10대의 나이에 동지들로부터 태양의 존함과 위인칭송의 찬가를 받으신분은 없다.새날이 동터오는 천고의 밀림을 배경으로 불멸의 혁명송가 《조선의 별》의 가사가 부각된 벽면을 바라보느라니 우리의 가슴은 더없이 설레였다.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

삼천리강산을 밝게도 비치네

우리는 주체혁명의 려명기에 위대한 수령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통일단결의 중심으로 높이 받들어모시였던 청년공산주의자들의 고결한 정신세계를 다시금 가슴깊이 새기면서 참관을 이어갔다.

본사기자 채히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