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6월 12일 로동신문

 

혁명의 령도자를 받드는 길에 바치신 불같은 한생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철주동지의 생애를 더듬으며

 

온 나라에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 결정관철을 위한 만리마속도창조열풍이 세차게 휘몰아치는 격동적인 시기에 우리 군대와 인민은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철주동지의 불같은 한생에 대하여 더듬어보고있다.세월은 흘러 세기는 바뀌였어도 김철주동지의 고귀한 생애는 오늘도 우리 천만군민을 혁명의 최후승리를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력사는 자기 인민과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한 사람들의 업적은 영원히 남아있으며 그들의 위훈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난다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철주동지의 한생은 실로 불같은 인생이였다는데 대하여 뜨겁게 회고하시였다.

불같은 인생, 바로 여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혁명위업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 조국과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성, 백절불굴의 혁명정신과 강의한 의지, 혁명적락관주의로 고귀한 삶을 빛내이신 김철주동지의 한생이 집약되여있다.

이 땅에 망국의 비운이 무겁게 드리웠던 주체5(1916)년 6월 12일 만경대에서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과 강반석녀사의 둘째아드님으로 탄생하신 김철주동지께서는 어려서부터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교양을 받으며 성장하시였다.

일찌기 부모님을 따라 고향 만경대를 떠나시여 강동, 중강, 림강, 팔도구, 무송과 안도에서 파란곡절과 시련에 찬 청소년시절을 보내시면서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설음과 불행을 뼈저리게 체험하시였고 일제침략자들에 대한 끝없는 증오와 항거의 정신으로 가슴 불태우신 김철주동지이시였다.

부모님의 혁명적인 교양과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는 김철주동지에게 있어서 열렬한 혁명투사, 견결한 애국투사로 성장하게 한 귀중한 밑천이였고 자양분이였다.

김철주동지는 주체혁명위업이 개척되던 첫 시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결성하신 우리 나라의 첫 소년혁명조직인 새날소년동맹의 핵심성원으로 성스러운 혁명투쟁의 길에 나서시여 영광스러운 항일의 결전장에서 고귀한 생을 마치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이시며 참된 청년전위이시였다.

세월이 흐를수록 빛을 뿌리는 김철주동지의 숭고한 풍모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투철한 혁명적수령관을 지니시고 위대한 수령님의 의도,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로선과 방침을 결사관철하신 끝없는 충실성이다.

위대한 수령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모시고 따라야 빼앗긴 나라를 찾을수 있고 민족의 밝은 래일이 펼쳐지게 된다는것을 확고한 신념으로 간직하시고 수령님의 가장 가까운 혁명전사, 믿음직한 혁명동지가 되시여 투쟁의 불바람을 세차게 일으켜나가신 김철주동지의 불같은 혁명열을 말해주는 가슴뜨거운 이야기는 참으로 많다.

강반석어머님의 령전에서 몸이 찢겨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손에 무장을 잡고 혁명위업에 끝까지 헌신할 비장한 맹세를 다지신 김철주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기 위해 멀리 량강구까지 찾아가시였다.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철주동지의 청을 들어주실수 없으시였다.공청대오를 튼튼히 꾸리는것도 무장투쟁 못지 않은 중요한 사업이기때문이였다.

동생의 마음을 돌려세워보시려고 여러모로 마음쓰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량강구의 못가에 있는 객주집으로 함께 가시였다.

싸늘하게 식은 언두부접시 두개와 그사이에 놓인 술병, 그것을 보시는 김철주동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하게 고이였다.술을 드시지 않는 형님께서 역시 마실줄도 모르는 자신에게 권하는 그 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되시기때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철주동지에 대해 애절하게 추억하시며 그 음산하고 처량한 못가의 가을을 회상할 때마다 나는 그날 내 손을 살그머니 잡았다놓고 가던 동생의 손을 더 오래 그리고 더 뜨겁게 잡아주지 못한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군 하였다고 하시면서 만일 그때 내가 철주의 청을 들어주었더라면 동생은 스무살도 채 되지 못한 나이에 일찌기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고 교시하시였다.

혈육의 정을 누르고 자신에게 맡겨진 과업을 충실히 수행하는 그 길이 바로 혁명의 령도자를 진심으로 받드는 참다운 길임을 깊이 새기신 김철주동지는 이렇게 우리 수령님께 마지막모습을 남기신채 준엄한 혁명전구에로 발걸음을 내짚으시였다.

김철주동지의 투철한 혁명정신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24(1935)년 2월과 3월에 다홍왜회의와 요영구회의에서 제시하신 방침을 받들고 반《민생단》투쟁에서 발로된 좌경적편향의 후과를 가시기 위한 투쟁에서 높이 발휘되였다.

김철주동지께서는 생애의 마지막시기 처창즈유격구에 계시였다.여기에서도 혁명의 탈을 쓴 좌경분자들은 일제의 침략을 반대하는 공동투쟁에서 패권을 추구하려는 저들의 리기적이고 민족배타주의적목적실현에 반《민생단》투쟁을 교묘하게 리용하고있었다.

주체23(1934)년 11월 화룡유격대창건자의 한사람인 김일환이 처창즈에서 《민생단》루명을 쓰고 학살된 하나의 사실을 통해서도 《숙반》의 사나운 회오리가 얼마나 집요하고 포악하였는가를 잘 알수 있다.

좌경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망동은 김철주동지라고 결코 《민생단》대상에서 례외로 하지 않았다.그자들은 이미전부터 김철주동지에게 씌울 《민생단》감투를 만들어놓고 《숙반》의 심판대에 올려세울 기회만 노리고있었다.

처창즈사람들은 권력자들의 처사가 부당하다는것을 알면서도 속에 있는 말을 하지 못하였다.정의를 주장하면 그들자신도 《민생단》으로 되기때문이였다.

김철주동지께서는 이것을 모르지 않으시였다.그러나 좌경분자들의 포위속에서 자신에게 들씌워질 위험에 대하여서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반《민생단》투쟁을 극좌적으로 벌리고있는자들과의 대결에서 맹호가 되고 우뢰가 되시였다.

어느날 김철주동지께서는 이자들의 반혁명적책동이 일제놈들의 《토벌》이나 봉쇄보다 더 위험하다는것을 간파하시고 그를 분쇄하기 위해 처창즈유격구의 책임적인 자리에 있던자를 만나시였다.

김철주동지께서는 먼저 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불사르고 략탈하는 일제의 만행과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어 유격구를 허물어버리는 당신의 행위가 무엇이 다른가고 격하신 음성으로 들이대시였다.그러시면서 당신을 어떻게 보아야 하겠는가, 그래도 혁명가라고 해야 하겠는가, 아니면 일본놈의 개라고 해야 하겠는가, 어디 말해보라고 준렬히 단죄하시였다.

론박할 여지없는 김철주동지의 말씀에 그자는 입을 열지 못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유격구인민들은 김철주동지를 두고 혁명을 위해서라면 칼날우에도 서슴없이 올라서는 뛰여난분이라고 한결같이 이야기하였다.

김철주동지께서 《숙반》의 미친 칼날이 사방에서 목숨을 노리고있는 살벌한 속에서도 위험을 무릅쓰시고 서슴없이 좌경분자들과 벌리신 대결,

그것은 오직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으신 김철주동지의 강의한 희생정신과 원칙성, 자기 위업의 정당성에 대한 억척같은 신념의 분출이였다.

김철주동지의 불굴의 모습은 혁명의 령도자가 밝힌 자주의 사상과 로선을 심장으로 받들고 추호의 동요도 없이 견결히 투쟁할 때 최후의 승리가 반드시 온다는 투쟁의 진리를 천만군민에게 다시금 뚜렷이 새겨주고있다.

혁명적수령관으로 일관된 투철한 신념과 애국애민의 정신으로 심장을 불태우며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김철주동지는 주체24(1935)년 6월 처창즈근방에서 불의에 맞다든 적들과 치렬한 전투를 벌리시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시였다.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자신의 고귀한 청춘을 서슴없이 바치신 김철주동지께서는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께 가장 충직한 혁명전사였으며 우리 민족이 낳은 훌륭한 아들이시였다.

정녕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철주동지는 길지 않은 자신의 한생을 통하여 천만군민의 심장마다에 혁명적수령관이란 무엇이고 조국과 민족에 대한 가장 열렬한 사랑이란 어떤것인가에 대해서 깊이 새겨주시였다.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철주동지는 오늘도 열혈혁명투사의 빛나는 모습으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의 령도따라 주체혁명위업의 최후승리를 위하여 힘차게 전진하는 우리 혁명대오의 전렬에 서계신다.

조국과 인민을 위한 성스러운 위업에 불같은 청춘을 서슴없이 바치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철주동지의 빛나는 한생은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참된 혁명전사의 귀감으로 우리 천만군민의 심장속에 길이 빛날것이다.

본사기자 한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