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7월 14일 로동신문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유격대부부살림집》에 깃든 이야기

강위룡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백두산시절 부부인연을 맺은 우리(나와 김확실)들에게 돌려주신 은혜로운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회상실기 《그이의 품속에서 꽃펴난 사랑》에 상세히 썼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우리 유격대부부에게 더욱더 뜨거운 사랑과 배려를 안겨주시였다.

전번에 다 쓰지 못한 그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를 여기에 더 적는다.

횡산밀영에서 확실동무를 만나 감격적인 상봉을 한 후 겨울군복을 만드는 재봉대동무들을 도와주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곰의골밀영으로 돌아온 나는 그이께 임무수행정형을 보고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의 보고를 받으시고 수고하였다고 치하하신 다음 동무에게 또 한가지 어려운 과업을 맡겨야겠다고 하시면서 집을 지을데 대한 지시를 주시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집을 짓되 빨리 지으며 지금까지 짓던 집들보다 더 훌륭한 집을 지어야겠다고 강조하시였다.

뜻밖의 과업이였지만 나는 선자리에서 힘있게 말씀드리였다.

《알았습니다.사령관동지! 귀틀집을 몇채 지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시는 과업이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오고싶었던 나는 그이께서 특별히 맡겨주시는 과업을 수행하게 된것이 무등 기쁘기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한 나의 대답을 들으시고 만족해하시며 대원 몇사람을 붙여줄테니 래일부터 일에 착수하라고 하시였다.

영예로운 임무를 받은 나는 다음날부터 4명의 대원들과 함께 그이께서 정해주신 《명당자리》에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동무들, 우리가 짓는 집은 사령관동지께서 친히 과업을 주시여 짓는것인데 사소한 부족점도 없도록 알뜰하면서도 춥지 않게 정성을 다해 잘 지읍시다.》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동무들에게 이렇게 호소하였다.그것은 나자신의 결의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걱정도 없지 않았다.어랑촌유격근거지와 처창즈유격근거지에서 그리고 교하원정의 나날에 많은 귀틀집을 지었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 특별히 잘 지으라고 하신 집을 그전날의 례사로운 집들처럼 지을수는 없기때문이였다.

돌이켜보면 그전에 내가 지은 귀틀집들은 벽이 통나무를 그대로 무은것이여서 어둡고 우둥퉁한것이 결함이였다.나는 절대로 그런 집을 지어드릴수 없다고 생각하였다.같은 귀틀집이지만 해도 잘 들고 아늑하면서도 정갈한 집을 지어드리고싶었다.나는 동무들과 토론을 거듭하였다.지혜를 합치니 좋은 방도가 나졌다.

좀 품이 많이 들어도 질이 좋은 나무들을 절반 쪼개서 그 쪼갠 면을 매끈하게 다듬어 방안벽이 되게 집을 짓자는것이였다.

우리는 나무들을 찍어다 도끼로 쪼개였다.그리고 자귀나 대패가 없기에 도끼로 다듬었다.도끼로 《통나무널》을 매끈하게 다듬자니 여간 힘들지 않았다.그러나 우리는 힘과 성의를 다해 웬만한 목수가 대패질을 한것보다 못지 않게 나무를 매끈하게 다듬질했다.이렇게 매끈하게 다스린 나무로 귀틀집을 지으니 안벽이 널판자를 댄것처럼 깨끗하였다.

천정도 판자를 만들어가지고 서까래가 보이지 않게 하였다.벽과 천정이 매끈하고 깨끗하니 집안이 더없이 환하고 알뜰해보였다.

우리는 두 벽면에 뙤창을 내여 해빛이 더 잘 들게 하고 출입문도 판자쪽으로 꼭 맞게 짰다.난로도 놓고 책상, 의자도 만들어놓았다.

우리는 밤낮으로 일을 다그쳐 이틀만에 집을 완공했다.다른 밀영에 일보러 가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집을 지어 그이를 기쁘게 해드리고싶은것이 우리들의 심정이였다.

드디여 그이께서 밀영에 돌아오시였다.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명령대로 집을 다 지었다고 보고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벌써 다 지었는가고 하시면서 가보자고 하시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로 지은 집을 보시고 번듯하게 잘 지었다고 하시면서 방안으로 들어가시였다.

그이께서는 다른 귀틀집들과는 판판 다르게 깨끗하고 환한 집안을 이윽토록 살펴보시고 못내 만족해하시며 《참 수고했소.방안이 밝고 깨끗하여 마음에 드오.》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벽도 만져보시고 책상도 쓸어보시면서 나무다듬질을 어떻게 이렇게 했는가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나의 대답을 들으시고 그러니 도끼 하나로 이렇게 지었단 말이겠소라고 하시면서 항일전쟁은 사람들을 신념과 의지의 강자로, 죽음도 두려움도 모르는 불굴의 투사로만이 아니라 재간둥이로도 키운다고, 정말 재간이 있다고, 나는 강동무에게 일등목수자격을 주어도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였다.

내가 과분한 치하의 말씀에 몸둘바를 몰라하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정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시며 《오늘부터 확실동무와 함께 이 집에서 생활하시오.》라고 이르시였다.

나는 너무도 놀라운 말씀에 자기 귀를 의심하며 한순간 아무 말씀도 올리지 못하였다.꿈에도 생각할수 없는 뜻밖의 일을 당하고보니 어떻게 처신해야겠는지 알수가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는 나에게 다른 생각말고 어서 그렇게 하라고 다시 이르시였다.

《사령관동지! 그것만은 절대로 안됩니다.유격대원이 어떻게 가정생활을 하겠습니까.설사 그렇게 한대도 이 집만은 절대로 안됩니다.이 집은 사령관동지께서 꼭 쓰셔야 합니다.》

나는 목이 메여 떠듬거리면서 애원하듯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는 동무가 횡산밀영으로 갈 때처럼 떼를 쓸것 같아서 무슨 집이라는것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전번에도 말했지만 가정과 혁명은 분리되여있는것이 아니라 밀접히 련관되여있다,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도, 원쑤놈들앞에서 굴할줄 모르는 희생성과 용감성도 바로 가정에 대한 애착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야말았다.

사람들은 흔히 나를 《곰》이라고 하였다.남달리 체통이 크고 힘이 세서만이 아니라 좀처럼 감정을 나타낼줄 모르는 무뚝뚝한 성미때문이기도 한 별칭이였다.그런 나였지만 그 순간에는 하늘같은 은덕, 대해같은 사랑에 감격하여 저도모르게 울음을 터치였던것이다.

그후 장백땅인민들속에서는 백두산장수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들의 결혼을 축복해주시고 백두산기슭 하늘아래 첫 동네에 궁궐같은 기와집을 지어주시였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널리 퍼지게 되였다.

그무렵 내가 지방공작을 나갔을 때인데 사람들은 빨찌산에서도 부부생활을 하면서 재미나게 산다는데 그것이 정말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 한번 손을 드시여 집터를 찍어주시면 이튿날에는 벌써 그 자리에 번듯한 기와집이 솟아나 짝을 무은 유격대부부들이 새살림을 시작한다는데 그게 과연 사실인가고 하였다.

그때 나는 그것이 다 사실이라고 하면서 《유격대부부살림집》에 깃들어있는 사연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그러면서 그 꿈같은 사랑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고 하였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인민들은 과연 위대한 장군님이시라고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 장군님 이야기로 꽃을 피우군 하였다.

항일전의 나날에는 그렇듯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히 안겨주신 《유격대부부살림집》에 유격대신혼살림을 폈던 내가 오늘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호화로운 아빠트에서 수많은 자식들을 거느리고 온갖 복을 다 누리며 인생말년을 보내고있다.

어찌 나뿐이겠는가.나뿐이 아닌 온 나라 전체 인민이 대를 이어 수령복을 누리며 행복하고 보람찬 삶을 꽃피우고있는것이 내 나라, 내 조국이다.

이 복받은 땅에 륭성번영하는 주체의 강성대국이 일떠설 그날은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