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7월 14일 로동신문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유격대부부살림집》에 깃든 이야기 강위룡
전번에 다 쓰지 못한 그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를 여기에 더 적는다. 횡산밀영에서 확실동무를 만나 감격적인 상봉을 한 후 겨울군복을 만드는 재봉대동무들을 도와주고 뜻밖의 과업이였지만 나는 선자리에서 힘있게 말씀드리였다. 《알았습니다. 영예로운 임무를 받은 나는 다음날부터 4명의 대원들과 함께 그이께서 정해주신 《명당자리》에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동무들, 우리가 짓는 집은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동무들에게 이렇게 호소하였다.그것은 나자신의 결의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걱정도 없지 않았다.어랑촌유격근거지와 처창즈유격근거지에서 그리고 교하원정의 나날에 많은 귀틀집을 지었지만 돌이켜보면 그전에 내가 지은 귀틀집들은 벽이 통나무를 그대로 무은것이여서 어둡고 우둥퉁한것이 결함이였다.나는 절대로 그런 집을 지어드릴수 없다고 생각하였다.같은 귀틀집이지만 해도 잘 들고 아늑하면서도 정갈한 집을 지어드리고싶었다.나는 동무들과 토론을 거듭하였다.지혜를 합치니 좋은 방도가 나졌다. 좀 품이 많이 들어도 질이 좋은 나무들을 절반 쪼개서 그 쪼갠 면을 매끈하게 다듬어 방안벽이 되게 집을 짓자는것이였다. 우리는 나무들을 찍어다 도끼로 쪼개였다.그리고 자귀나 대패가 없기에 도끼로 다듬었다.도끼로 《통나무널》을 매끈하게 다듬자니 여간 힘들지 않았다.그러나 우리는 힘과 성의를 다해 웬만한 목수가 대패질을 한것보다 못지 않게 나무를 매끈하게 다듬질했다.이렇게 매끈하게 다스린 나무로 귀틀집을 지으니 안벽이 널판자를 댄것처럼 깨끗하였다. 천정도 판자를 만들어가지고 서까래가 보이지 않게 하였다.벽과 천정이 매끈하고 깨끗하니 집안이 더없이 환하고 알뜰해보였다. 우리는 두 벽면에 뙤창을 내여 해빛이 더 잘 들게 하고 출입문도 판자쪽으로 꼭 맞게 짰다.난로도 놓고 책상, 의자도 만들어놓았다. 우리는 밤낮으로 일을 다그쳐 이틀만에 집을 완공했다.다른 밀영에 일보러 가신 드디여 그이께서 밀영에 돌아오시였다.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명령대로 집을 다 지었다고 보고드리였다. 그이께서는 다른 귀틀집들과는 판판 다르게 깨끗하고 환한 집안을 이윽토록 살펴보시고 못내 만족해하시며 《참 수고했소.방안이 밝고 깨끗하여 마음에 드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나의 대답을 들으시고 그러니 도끼 하나로 이렇게 지었단 말이겠소라고 하시면서 항일전쟁은 사람들을 신념과 의지의 강자로, 죽음도 두려움도 모르는 불굴의 투사로만이 아니라 재간둥이로도 키운다고, 정말 재간이 있다고, 나는 강동무에게 일등목수자격을 주어도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였다. 내가 과분한 치하의 말씀에 몸둘바를 몰라하는데 나는 너무도 놀라운 말씀에 자기 귀를 의심하며 한순간 아무 말씀도 올리지 못하였다.꿈에도 생각할수 없는 뜻밖의 일을 당하고보니 어떻게 처신해야겠는지 알수가 없었다. 나는 목이 메여 떠듬거리면서 애원하듯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야말았다. 사람들은 흔히 나를 《곰》이라고 하였다.남달리 체통이 크고 힘이 세서만이 아니라 좀처럼 감정을 나타낼줄 모르는 무뚝뚝한 성미때문이기도 한 별칭이였다.그런 나였지만 그 순간에는 하늘같은 은덕, 대해같은 사랑에 감격하여 저도모르게 울음을 터치였던것이다. 그후 장백땅인민들속에서는 백두산장수이신 그무렵 내가 지방공작을 나갔을 때인데 사람들은 빨찌산에서도 부부생활을 하면서 재미나게 산다는데 그것이 정말인가, 그때 나는 그것이 다 사실이라고 하면서 《유격대부부살림집》에 깃들어있는 사연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그러면서 그 꿈같은 사랑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고 하였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인민들은 과연 항일전의 나날에는 그렇듯 어찌 나뿐이겠는가.나뿐이 아닌 온 나라 전체 인민이 대를 이어 이 복받은 땅에 륭성번영하는 주체의 강성대국이 일떠설 그날은 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