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7월 7일 로동신문
항일무장투쟁의 출발점으로 된 혁명적무장조직
조국방선을 지켜선 병사들과 자력자강으로 사회주의강국건설의 뢰성을 힘차게 울려가는 영웅적 어찌 이들만이라 하랴. 조국해방을 위하여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친 혁명선렬들이 7월의 승리를 두고 터치는 환호성도 대성산의 유정한 바람소리에 실려오는듯싶다. 그래서 더더욱 뜨거운 7월 조선혁명가들의 첫 무장조직인 조선혁명군결성기념일을 맞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감회는 류다르다. 10대의 그 시절에 새 세대 혁명가들로 첫 무장조직을 결성하시고 일제를 반대하는 조직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하신 《조선혁명군의 활동은 항일무장투쟁의 출발점으로 되였습니다.》 망국의 비운이 드리웠던 수난의 그 세월 의병들의 화승총마저 땅에 묻히고 독립군의 투쟁도 스러지고있을 때 백의민족은 참다운 인민의 무장력을 갈망하였다. 강도 일제의 가혹한 총검밑에서 신음하는 겨레의 운명을 구원하자면 새 세대 혁명가들의 손으로 새형의 군대를 창건하여야 하며 무장투쟁만이 가장 철저하고 혁명적인 반일항전으로 될수 있다는것을 절감하신 우리 력사적인 카륜회의에서 불멸의 선군사상을 창시하신 당시 새 세대 혁명가들에게는 무장투쟁을 벌리는데 필요한 지식도 별로 없었으며 본보기로 삼을만 한 군사교범이나 경험이 있는것도 아니였다. 무장투쟁의 밑천이 있었다면 독립군과 화성의숙을 다닌 몇몇 동지들과 몇자루의 권총이 있었을뿐이였다. 무기도 자체로 획득하고 군사적경험도 축적하여야 했던 그때 카륜과 고유수일대를 활동거점으로 하시고 조선혁명군결성을 준비하시던 나날 우리 주체19(1930)년 7월 6일 조선혁명군의 결성을 알리는 력사의 날은 밝아왔다. 혁명전통교양의 대전당 조선혁명박물관에는 조선혁명군결성과 관련한 회상자료, 이통현 고유수 리가툰의 마을전경사진을 비롯하여 당시의 력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들이 전시되여있다. 가없이 넓은 벌판의 한가운데에 작은 강을 끼고앉은 이통현 고유수 리가툰마을, 반제청년동맹원들이 군사훈련을 하고 소년탐험대원들이 비밀모임을 가지던 풀향기 싱그럽게 풍겨오는 삼광학교 운동장에서 조선혁명군결성식이 진행되였다. 조선의 새 세대 혁명가들이 조선혁명군의 첫 대오에 있었다. 무기를 수여하기에 앞서 조선혁명군은 항일무장투쟁을 조직준비하기 위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정치 및 반군사조직이라고, 조선혁명군을 기초로 하여 앞으로 상비적인 혁명무력이 창건될것이라고 선언하신 우리 조선혁명군의 기본사명은 도시와 농촌에 들어가 인민대중을 교양하고 각성시켜 그들을 항일의 기치아래 묶어세우면서 무장투쟁의 경험을 쌓고 장차 본격적인 무장대오를 결성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어나가는것이라고 우리 격정으로 설레이는 그들앞에서 우리 이어 혁명의 무기를 억세게 틀어잡은 조선혁명군 대원들은 커다란 흥분속에 백두산청년장군의 두리에 어깨성을 쌓고 신념의 맹세를 다지며 투쟁의 구호를 웨치였다. 선군의 기치밑에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하는 조선혁명가들의 첫 혁명적무장조직은 이렇게 태여났다. 조선혁명군 결성,이는 오직 총대로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실 원대한 뜻을 품으신 조선혁명군이 결성됨으로써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을 조직적인 무장투쟁단계에로 발전시키기 위한 준비사업을 더욱 힘차게 다그쳐나갈수 있게 되였다. 카륜과 고유수, 오가자일대의 농촌들에 나가신 그이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서나 얼어붙었던 대지에 봄이 오듯 활기가 돌고 생활이 약동하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머슴군으로 가장하여 마을을 혁명화하기도 하시고 적들의 경계와 추격을 피해 로동자나 농민 등으로 변장하기도 하시였으며 사방에서 원쑤들이 달려드는 위급한 고비에서는 기지있고 마음씨고운 한 녀인의 희생적인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기도 하신 우리 부닥치는 난관과 시련을 앞장서 타개해나가시면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기 위한 전반적투쟁을 현명하게 조직령도하신 조선혁명군은 조직된 후 여러 소조로 편성되여 각지에 파견되였다.국내에도 몇개의 소조가 파견되였다. 《본군(주-조선혁명군을 말함)은 김성주, 차광수, 김혁, 최효일 등 청년투사들을 망라하여 길림성 이통현을 중심으로 활동을 개시하였다.청년들의 집결이니만치 그 운동은 대단히 용감하였다.장춘의 금강관사건에 백신한의 아까운 희생을 내이고 할빈 도리사건… 이를 계기로 그후 동군의 발전은 조선내에까지 미쳐 홍원, 단천사건을 비롯하여 서북선일대에 일대 경동을 일으키고 각 방면으로 영웅적투쟁을 전개하여 당시 혁명운동선상에 많은 공헌을 남기였다.》 비록 글은 길지 않아도 조선혁명군의 결성이 얼마나 거대한 력사적의의를 가지는 사변이였는가 하는것을 알수 있다. 카륜회의결정을 관철하는 길에서 청춘을 서슴없이 바친 수많은 전우들을 우리 류수같은 세월은 모든것을 망각속에 덮어둔다고 한다.하지만 우리 우리 혁명의 행군로를 피로써 개척한 조선혁명군 대원들의 업적은 참으로 거룩하고 숭고한것이였다.조선인민혁명군은 이들의 영웅적투쟁경험과 교훈에 기초하여 그들이 흘린 성스러운 피의 대가로 이 세상에 상비적인 혁명무장력으로 태여나게 되였다.… 조선혁명군 대원들의 눈부신 정치군사활동에 의하여 불과 2년도 못되는 기간에 반일인민유격대가 창건되였으며 우리 민족은 그토록 갈망하던 참다운 인민의 군대로 항일대전을 벌릴수 있게 되였다.항일무장투쟁의 출발점으로 된 조선혁명군의 결성은 혁명적무장력의 기틀을 마련한 력사적장거였다. 선군혁명의 한세대에 두 제국주의를 타승하시고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혁명, 사회주의건설을 령도하시는 전로정에서 총대중시사상과 자위의 군사로선을 일관하게 구현하시여 인민군대를 일당백의 혁명강군으로 강화발전시키신 우리 항일의 빛나는 전통을 이어 백두의 대업을 믿음직하게 옹위해나가는 우리 혁명무력이 있기에 원쑤들이 제아무리 발악하여도 무진막강한 자위적국방력으로 지구상의 온갖 불의를 죽탕쳐버리며 백두산대국의 장쾌한 뢰성이 누리를 진감하는 7월, 사회주의조국의 하늘가에 본사기자 리금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