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7월 16일 로동신문

 

혁명전통교양의 대전당 조선혁명박물관을 찾아서(10)

2천만을 조국해방성전에로 불러일으킨 민족대단결의 기치

 

조선혁명박물관에 대한 참관을 이어갈수록 선군혁명의 험난한 초행길을 헤치시며 민족자주의 새 기원을 열어놓으시고 백전백승의 고귀한 전통을 마련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세출의 위인상에 대한 격정으로 우리의 심장은 세차게 높뛰였다.

참관자들과 걸음을 함께 하며 우리가 들어선 곳은 10호실이였다.백두산밀영의 사령부귀틀집(모형)을 지나 넓은 방으로 들어서니 백두산기슭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조국광복회운동이 온 나라 방방곡곡에 료원의 불길처럼 번져가던 그 나날이 숭엄한 격정속에 되새겨졌다.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본듯 강사는 이렇게 해설을 시작하였다.

《이 호실에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전국적범위에서 당창건준비사업을 추진하며 조국광복회운동을 확대하기 위한 투쟁을 이끄신데 대하여 해설해드리겠습니다.》

강의는 1930년대 후반기 당조직지도체계도앞에서부터 시작되였다.국내외에서 활동하는 모든 당조직들과 혁명가들에 대한 조직적련계를 보장하여 당창건준비사업은 물론 전반적조선혁명에 대한 통일적령도를 확고히 실현하시려는것이 그때 우리 수령님의 의도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잊을수 없는 력사의 나날을 추억하시며 하신 교시의 글발이 우리의 눈앞에 확 안겨들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전국적판도와 전민족적범위에서 당조직건설사업이 힘있게 추진되는 과정을 통하여 분산적으로 활동하던 공산주의자들이 조직적으로 결속되고 전반적조선혁명에 대한 당적령도가 더욱 강화되게 되였다.》

강사의 이야기는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로부터 지방당조직에 이르기까지 정연한 당조직지도체계가 세워지고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조선혁명이 힘있게 추진되던 1930년대 후반기의 기슭에 우리를 세워주었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많은 정치공작원들을 장백과 국내의 여러 지역에 파견하시여 당조직을 확대해나가도록 하시였다.그가운데는 주력부대의 선전과장으로 사업한 권영벽동지도 있었다.

장백현당은 백두산밀영에서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를 열고 무슨 로선을 세우거나 긴급한 과업을 제기하면 그것을 제일먼저 접수하고 집행하는 중추적인 당조직의 하나였다.

장백현당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이 중요하였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권영벽동지를 위원장으로 선정하시였다.권영벽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그 믿음을 목숨보다 귀중히 간직하였다.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나는 동무를 믿는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그 말씀을 한시도 잊지 않고 혁명에 충실하였다.

우리의 눈앞에 백두의 울울창창한 밀림을 배경으로 국내혁명가를 만나 투쟁방향을 밝혀주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형상한 영상미술작품이 안겨왔다.

눈덮인 밀영에 찾아온 국내혁명가와 무릎을 마주하신 위대한 수령님, 조성된 국내형편도 물으시고 조국해방을 위한 투쟁방략을 환히 밝혀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으며 신심에 넘쳐있는 국내혁명가,

우리가 자주 보아오던 혁명영화 《민족의 태양》의 한 장면을 다시금 보는듯 하였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견실한 혁명가들을 찾아내여 그들과의 공동노력을 통하여 조국광복회망을 빨리 늘이는것은 국내혁명운동을 더 높은 단계에로 추켜세우기 위한 중요한 사업이였다.

그런 적임자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박달동지를 물색하시였다.

《조국을 사랑하며 일제를 반대하여 싸우는 국내의 애국자동무들 앞》

위대한 수령님께서 국내혁명가들에게 보내신 친서를 한자한자 읽어내려가는 강사의 목소리를 듣느라니 어둠속에서 광명을 받아안은듯 너무 기뻐 《무툴쇠》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눈물까지 흘리던 박달동지의 모습이 안겨왔다.

그후 밀영에 찾아온 박달동지를 만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은 그 누구의 승인을 받고 하는것이 아니라는데 대하여 교시하시면서 자주적으로 당을 건설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주체25(1936)년 그해도 다 가는 12월 31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내당공작위원회를 결성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를 높이 받들고 국내당공작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한 박달동지의 사진과 수령님께서 국내혁명가들을 만나신 장백현 19도구 삼개골, 국내당공작위원회가 결성된 곰의골밀영의 사진을 참관자들은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곰산밀영에서 진행된 국내당공작위원회 제2차회의는 국내에서 당조직건설과 혁명투쟁을 발전시켜나가는데서 뚜렷한 리정표로 되였다.바로 이 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조직건설과 당생활에서 사대주의와 교조주의를 반대할데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시였다.

《이 회의후 국내외의 각지에는 수많은 당조직들이 나오게 되였는데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결성하신 신갈파지구당소조도 그런 당조직들중의 하나였습니다.》

강사는 이렇게 말하며 신갈파지구당소조가 결성된 석전양복점의 사진을 가리켰다.

진정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에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와 권영벽, 김주현, 마동희, 리동학, 최경화, 김운신, 리창선, 리경운, 리병선동지들을 비롯한 성원들을 망라한 정치공작대는 북부조선의 여러 지역들에 파견되여 당조직건설사업과 군중과의 사업에서 성과를 거둘수 있었다.

일본잡지 《동양》까지도 《1936년 김일성 장백현에 들어와있으면서 반년동안에 조선안에 57개의 지부와 500명의 당원을 획득한 경이적인 사실이 있다.》고 밝히였다.

혁명력사학습을 통하여 항일혁명투쟁사에 대하여 알고있었지만 하나하나의 사적물들과 반증자료들을 통하여 백두산의 전설적영웅이신 우리 수령님의 천출위인상을 더더욱 가슴뜨겁게 절감하는 참관자들이였다.조국광복회 장백현위원회 책임자 리제순동지의 사진과 그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안해에게 보낸 편지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혁명가가 한생을 보람있게 사는것도 중요하지만 죽을 때 값있게 죽는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가 심장에 파고들며 얼마전 이 유물앞에서 리제순동지의 딸이 읊었다던 시구절이 되새겨졌다.

 

청사초롱에 불밝혀라

그리운 장군의 모습

다시 보자

리제순동지가 최후를 앞두고 감옥에서 지은 이 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받들어 조국해방을 위하여 귀중한 목숨을 아낌없이 바쳐싸운 열혈투사의 불굴의 신념의 분출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고 각계각층 군중을 조국광복회조직에 묶어세우기 위해 투쟁한 권영벽, 지태환, 리동걸동지들도 30대, 40대의 한창나이에 길지 않은 한생과 최후를 통하여 참된 혁명가의 삶의 본보기, 불굴의 신념에 대한 교과서를 우리 후대들에게 남기였다.

김일성장군님은 우리모두의 태양이십니다.우리모두 김일성장군님의 해발이 됩시다.》

위대한 수령님을 받드는 길에서 충정의 해발이 되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뜻깊은 말씀이 새겨져있는 벽면에서 강사는 김정숙동지께서 장백현 도천리에서 조국광복회조직을 확대해나가신데 대하여 해설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장백현 하강구일대와 국내 동해안일대에 조국광복회조직들을 확대해나갈데 대한 임무를 받으시는 모습을 형상한 영상미술작품과 조국광복회 지하조직책임자들에게 사업방향을 주시고 조국광복회 신갈파지회산하 부녀회원들을 조직동원하시여 조선인민혁명군에 원호물자를 보내신것을 비롯하여 김정숙동지의 활동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들은 사령관동지께서 맡겨주신 혁명임무를 어떤 어려운것이라도 무조건 해내신 그이의 높은 책임감을 말없이 전해주고있었다.

《무산집새애기》 엄옥순, 이것이 그때 도천리인민들이 정담아 부르던 김정숙동지의 이름이였다.

국내의 북부지역인 신파지구에 혁명조직을 내오는것이 그처럼 어려운 일로 나섰을 때에도 김정숙동지께서는 적들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압록강을 넘나드시며 지하활동을 벌리시였고 드디여 석전양복점에서 조국광복회 신갈파지회를 결성하시였다.

김정숙동지의 체취가 어려있는 우물터, 빨래터, 연자방아자리, 그이께서 넘나드시던 압록강나루터와 물레방아간집, 광선사진관, 기념인장, 그이께서 도천리, 신파지구에서 활동하신 회상자료들…

김정숙동지께서 진행하신 지하공작사업과 관련한 자료들중에서 특별히 참관자들의 눈길을 끄는것은 그이께서 옥중투쟁을 견결히 벌리신데 대한 회상자료였다.그때 김정숙동지께서는 한몸이 희생되는 한이 있어도 조직과 인민을 구원할것을 결심하시고 이런 편지를 보내시였다.

《안심하십시오.나는 죽을것입니다.그러나 조직은 살것입니다.나의 재산의 전부인 2원을 보냅니다.조직의 자금으로 써주십시오.》

먼 후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500명의 량민보증서에 의해 김정숙동지께서 석방된데 대하여 회고하시면서 강권이나 금권보다도 더 위력한 인민의 절대적신뢰와 지지가 그런 기적을 낳게 한것이라고 감회깊이 교시하시였다.

강사는 당시 도천리에서 구장을 하던 정동철동지가 해방후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동지를 만나뵙고 뜨거운 믿음과 사랑을 받아안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방의 사법기관에서 일하고있던 정동철동지가 평양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가하게 되였는데 《장백현 도천리에서 살던 정동철동지가 참석하였으면 휴계실로 찾아오십시오.》라는 소리가 회의장을 울리는것이였다.

일군을 따라 아담한 벽돌집에 이른 정동철동지는 뜻밖에도 언제 한번 잊은적 없는 김정숙동지를 만나뵙게 되였다.《옥순이!》 하고 스스럼없이 부르며 정동철동지는 기뻐 어쩔줄 몰라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도 바쁜 일정을 미루시고 정동철동지를 만나시고 이게 얼마만인가, 어데 있다가 인제야 나타났는가고 하시며 무척 반가와하시였다.

강사의 목소리는 뜨거운 격정을 안고 울리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제일 큰 기쁨이 인민의 사랑을 받는것이라면 제일 큰 고통은 그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증오를 받는것이라고,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동무가 〈구장〉노릇을 하자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고, 그래서 자신께서는 도천리〈구장〉을 잊을수 없다고 따뜻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습니다.

주체61(1972)년도 다 저물어가던 섣달 그믐날 정동철동지는 또다시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을 받아안았습니다.정동철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수여해주시는 새 당원증을 받아안게 되였습니다.그런데 당원증의 입당보증란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활달한 친필존함이 새겨져있고 입당년월일은 1936년 5월 5일로 되여있었습니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동철동지가 조국광복회를 내올 때 당에 들었던것만큼 입당년월일을 1936년 5월 5일로 하였다고 깊은 뜻을 담아 교시하시였습니다.》

반일민족통일전선조직인 조국광복회가 창건된 뜻깊은 날을 정동철동지의 입당날자로 하여주신 위대한 수령님,

여기에는 조국광복회 특수회원이였던 정동철동지에 대한 한량없는 믿음과 함께 조국광복회조직건설을 위해 무수한 피와 목숨을 바친 유명무명의 열혈투사들과 애국자들에 대한 우리 수령님의 뜨거운 추억도 비껴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창립하신 조국광복회 주요조직분포도》라고 씌여진 조선지도가 모두의 눈길을 끌었다.만주전역과 조국땅 방방곡곡은 물론이고 일본땅에까지 조국광복회의 씨앗이 뿌려졌음을 무수히 반짝거리는 점들이 직관적으로 보여주고있었다.10호실에는 또한 조선인민혁명군을 성의껏 원호한 인민들의 투쟁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되여있었다.

조선인민혁명군을 원호한 사람들가운데는 지주 김정부도 있었는데 그는 자기를 애국지주라고 불러주시고 밀영에서 생일상까지 차려주도록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고매한 인품에 매혹되여 많은 자금과 천, 식량을 원군물자로 보내왔다.

강사는 당시 잡지 《삼천리》에 실린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부와의 회견기와 그밖의 자료들을 구체적으로 해설해주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휘날린 민족대단결의 위대한 기치, 그 기발아래 굳게 뭉쳐 우리 인민은 불후의 고전적명작 《조국광복회10대강령가》를 높이 부르며 조국해방을 위한 성전에 떨쳐나섰다.

《위대한 수령님을 받들어 전민족이 총동원되여 원쑤 일제를 때려부시고 조국해방을 안아온것처럼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 따라 사회주의강국건설의 최후승리를 위한 전민총돌격전에서 혁신을 일으켜가겠습니다.》

《항일혁명선렬들이 끝까지 지켜싸운 불굴의 혁명신념을 피끓는 심장에 간직하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충정다해 받들겠습니다.》…

10호실에 대한 참관을 마친 사람들속에서 이런 심장의 맹세가 끝없이 울려나왔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백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