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7월 20일 로동신문

 

격동의 영웅시대와 더불어 빛나는 고귀한 삶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 고문지배인이였던
리재천동무가 받아안은 믿음과 은정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 혁명사적관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당과 혁명력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당중앙위원회 1956년 12월전원회의직후 이곳을 찾으시였을 때의 영상사진문헌이 여러상 모셔져있다.그 영상사진문헌들에는 위대한 천리마시대와 강선에 대한 추억을 더듬을 때마다 우리 수령님께서 잊지 못해하신 당시 강선제강소 지배인이였던 리재천동무의 모습도 있다.

집단적혁신운동의 봉화가 되고 기발이 되여 기적의 년대, 격동의 영웅시대에 그 이름 당당히 아로새긴 천리마공장들의 자랑찬 영예속에는 우리 수령님께서 품들여 키워주신 일군들의 공적이 별처럼 빛나고있다.

얼마전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에 대한 취재과정에 우리는 옛 고문지배인 리재천동무가 남긴 부피두툼한 수기집을 보게 되였다.색날은 그 수기집에는 어제날의 천리마시대와 오늘의 만리마시대를 이어주는 귀중한 혁명의 진리가 담겨져있었다.

 

믿음으로 키워주신 천리마고향의 지배인

 

천리마운동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는 리재천지배인의 빛나는 삶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수령님께서 력사적인 당중앙위원회 1956년 12월전원회의를 준비하시던 그해 11월 15일로부터 시작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해부터 시작될 5개년인민경제계획수행에서도 강선의 로동계급을 믿고 부닥친 난관을 뚫고나갈 결심으로 강선제강소를 찾으시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시 제강소 기사장이던 리재천동무를 허물없이 곁에 앉히시고 나라에 조성된 정세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시면서 믿을데는 강선밖에 없다고, 그래서 협의회를 중단하고 찾아왔다고 하시면서 강선에서 해내지 못하겠는가고 안타까우신 어조로 물으시였다.

순간 리재천동무는 뜨거운것이 울컥 치밀어올랐다.어이하여 우리 수령님께서 고향 만경대를 지척에 두시고 강선을 찾으시였던 해방직후 그때처럼, 전쟁이 끝난지 한주일만에 자기들을 찾아오시여 복구건설방도를 의논해주시던 전후의 그때처럼 또다시 이곳에 오시였는지 알게 되였던것이다.

그것은 강선의 로동계급에 대한 믿음, 수령님께서 각별한 신임을 베풀어주시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지난날 일제의 민족적차별과 천대속에 나라없는 식민지지식인의 불우한 운명을 뼈에 사무치게 체험해야 했던 리재천동무를 새 삶이 약동하는 공화국북반부로 불러주시여 곡절많은 그의 운명을 따사로운 한품에 안아주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때로는 외국방문의 길에도 데리고 가시며 큰일을 맡아하도록 걸음걸음 이끌어주신 우리 수령님의 하늘같은 신임에 의해 그는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 되였고 수령님께 직통전화로 제강소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직접 보고드리는 특전도 지니였다.

혁명앞에 나선 중대한 과업을 두고 강선의 로동계급과 일군들을 굳게 믿어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웅심깊은 의도를 심장으로 절감한 리재천동무는 수령님께 념려마십시오, 우리 로동자들이 꼭 해내겠습니다라고 힘있게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하늘같은 믿음이 있었기에 리재천동무는 당중앙위원회 1956년 12월전원회의에서도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당의 방침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여나설수 있었다.

《수상님, 1만t을 우리 강선제강소에서 해보겠습니다.아직 구체적인 타산은 못해보았지만 최대한으로 증산해보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 이런 말씀을 올릴 때 리재천동무에게는 수령님께서 바라시는 일이기에 무조건 해내야 한다는 생각만이 꽉 차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재천동무를 향해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그렇소?! 아주 잘 생각했소.강선의 동무들이 결심하고 달라붙으면 꼭 해낼거요.》라고 지지해주시였다.그러시고는 자신께서 강선제강소 로동계급을 찾아가 호소하겠다고, 지금까지 타산한것보다 강재 1만t을 더 생산할것을 전원회의 결정서에 박아넣고 그것을 해내기 위한 투쟁을 벌리자고 교시하시였다.

12월 28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원회의때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강선땅을 또다시 찾으시였다.함박눈이 펑펑 쏟아져내리던 날이였다.

제강소의 지도일군, 모범로동자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이 다음해에 강재를 1만t만 더 생산하면 나라가 허리를 펼수 있다고 교시하시였다.

《강선제강소 로동계급은 당중앙위원회 12월전원회의 결정을 높이 받들고 집단적혁신운동의 불길을 더욱 높이 추켜들어야 하겠습니다.그리하여 그것이 우리 나라 전체 근로자들을 사회주의건설의 대고조에로 불러일으키는 불길로 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이런 불같은 호소로 강선땅에 위대한 천리마운동의 봉화를 지피신 뜻깊은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리재천동무를 제강소 지배인으로 임명하시였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리재천동무는 또 얼마나 크나큰 사랑과 믿음이 자기를 기다리고있는지 다 알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재천동무의 집에서 그와 점심식사를 함께 나누시였다.전후 어려운 때여서 모든것이 변변치 못해 그가 송구스러워하는데 그이께서는 문득 쑥갓을 좋아하는가고 물으시였다.뜻밖의 물으심에 그는 영문도 모르고 《예, 좋아합니다.》라고 대답을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가 쑥갓을 좋아하는것 같기에 우리 집 온실에서 기른것을 좀 가져왔으니 맛이나 보라고 하시였다.몇해전 위대한 수령님의 외국방문때 동행하였던 리재천동무가 어느 한 오찬에서 쑥갓을 맛있게 먹은 일을 그이께서는 잊지 않으시였다가 사랑하는 전사를 위해 몸소 가지고 오신것이였다.

눈이 강산같이 쌓인 한겨울에 상우에 오른 푸르싱싱한 쑥갓을 마주한 리재천동무는 목이 메여올라 선뜻 수저를 들수가 없었다.

식사를 마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의 휴식도 없이 그에게 나라의 어려운 형편을 다시금 이야기해주시면서 우리 당은 강선의 로동계급과 같은 영웅적인 로동계급을 가지고있기때문에 부닥친 난관을 얼마든지 자체의 힘으로 뚫고나갈수 있다, 강선의 로동계급은 당중앙위원회 12월전원회의 결정관철을 위한 투쟁에서 다시한번 본때를 보여야 하겠다고 격려해주시였다.

우리 조국땅우에 바야흐로 펼쳐지게 될 위대한 새시대를 가슴벅차게 느끼는 리재천동무의 심장은 세차게 고동치고있었다.

그날 오후에도 로동계급과 흉금을 터놓으시고 나는 동무들을 믿고 동무들은 나를 믿고 조성된 혁명의 난국을 뚫고나가자고 호소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강소를 떠나실 때는 밤이 퍼그나 깊었다.그때까지도 눈은 쉬임없이 내리고있었다.

《지배인동무, 증산예비를 더 탐구하여 최대한의 증산과 절약투쟁에서 앞장서겠다는것을 온 나라에 호소하시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고 차에 오르시였다.

그런데 차가 얼마 못 가서 멈춰서는것이였다.차에서 내리신 그이께서 흰눈을 밟으시며 리재천동무를 향해 다시 걸어오시였다.허둥지둥 마주 달려간 리재천동무에게 그이께서는 조용히 물으시였다.

《지배인동무, 자신있소?》

어버이수령님의 무거우신 심중이 가슴이 뻐근하게 안겨드는 순간 리재천동무는 그만 눈물이 쿡 솟구쳐 아무 말씀도 드릴수 없었다.그러는 그의 어깨를 힘있게 잡아주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교시하시였다.

《나는 강선의 로동계급이 1만t의 강재를 더 증산할것이라는것을 굳게 믿소.나는 동무들을 믿고 떠나겠소.》

이렇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리재천동무에게 혁명앞에 난국이 닥쳐왔을 때 령도자가 전사에게 주실수 있는 가장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돌아오시는 길에 조용히 혁명가요 《적기가》를 부르시였다.

그 믿음에 리재천동무는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깡그리 바쳐 강선의 지배인의 책임을 다하는것으로 충직하게 보답하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쇠바줄을 우리의 힘으로 생산하던 때를 회고하시며 한번 쇠바줄기계를 만들어보라고 하였더니 리재천동무가 강선제강소 지배인으로 있을 때 책을 보고 자체로 설계하여 만들었다고 깊은 추억을 담아 교시하시였다.

그때가 주체46(1957)년 11월이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선제강소에서 쇠바줄을 생산할데 대한 과업을 리재천동무에게 주시였다.

당시 형편에서 자체의 힘과 기술로 쇠바줄을 만든다는것이 너무도 어려운 일이라는것을 리재천동무는 알고있었다.그자신도 쇠바줄을 꼬는 강삭기를 본적이 없었고 참고할 기술문헌조차 없었다.있다면 어느 한 잡지에서 오려낸 강삭기의 그림 한장이 전부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만 있으면 그만이지 우리에게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리재천동무는 이런 신념으로 로동자들과 침식을 같이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과업을 집행하기 위해 온넋과 심혈을 깡그리 바쳤다.드디여 강선땅에서는 사대주의, 기술신비주의를 짓부시고 쇠바줄을 자체로 생산해내는 또 하나의 기적이 창조되였다.

천리마운동이라는 혁명적대고조의 거세찬 불길은 바로 이렇게 과업을 주시기에 앞서 믿음부터 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동지애와 그 믿음에 결사보답하기 위해 집단적혁신운동의 기수가 되였던 리재천동무와 같은 일군들의 고결한 충정을 밑불로 하여 이 땅에 타올랐다.

그 거세찬 불길과 더불어 제강소는 2중천리마공장의 영예를 지니였으며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라는 이름으로 자랑스럽게 불리우게 되였다.

주체78(1989)년 10월 9일, 천리마의 고향 강선을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기업소 고문지배인으로 사업하는 리재천동무를 알아보시고 시련의 시기였던 1950년대에 강선의 로동계급이 당과 수령을 받들어 영웅적으로 투쟁한 사실을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이튿날에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때 당과 수령을 받들어 한몫한 강선동무들이 아주 좋은 동무들이라고, 그래서 자신께서는 강선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아주 좋은 동무들, 사랑하는 강선사람들!

우리 수령님께서 한생토록 잊지 못해하신 미더운 강선사람들속에 바로 지배인 리재천동무도 있었다.

 

영원히 그때 그 나날처럼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에서 오래동안 일해온 사람들을 만나 취재하는 과정에 우리는 리재천동무의 생활에서 매우 인상깊은 하나의 세부를 알게 되였다.그것은 리재천동무가 생전에 사랑하며 즐겨 부르던 노래와 관련한 이야기였다.

그때처럼 영원히 우리 살리라

그때처럼 영원히 우리 살리라

굳게 다진 그 맹세 심장으로 지키던

그때 그 나날처럼

 

한시절 당과 혁명을 위해 충실했다고 해서 그 삶이 생의 마지막까지 저절로 빛나는것은 아니다.리재천동무의 인생에는 곡절도 있었다.그의 사업에서 엄중한 결함이 나타났을 때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며 채찍질해주시고 그가 강선지배인이라는 고귀한 영예를 소중히 안고 살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신 스승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리재천동무가 생산은 마치 자기만이 다 아는것처럼 생각하면서 대중을 무시하고 주관과 독단을 부려 로동자들과 기술자들의 가치있는 기술혁신안들을 묵살하고 나중에는 생산계획까지 미달하는 엄중한 과오를 범하였을 때였다.제강소당위원회 확대회의에서 그의 당생활과 사업작풍을 전면적으로 검토하게 되였다.바로 그 회의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참석하시였다.

그처럼 아끼고 사랑하던 일군의 결함을 두고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오전회의가 끝나자 1956년의 그날처럼 그의 집을 찾으시였다.얼마나 믿고 사랑하시였으면 그렇듯 괴로와하시랴 하는 죄스러움으로 하여 리재천동무의 마음은 천갈래만갈래로 찢기는듯 하였다.

밥상을 가운데 놓고 위대한 수령님과 마주앉았지만 리재천동무는 수령님의 두터운 신임과 사랑을 저버린 자기의 잘못이 뼈저리게 가슴을 에이여 수저를 들지 못하였다.이윽토록 그를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부르시였다.그러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는 내가 여러번 만나서 일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대주었는데 이렇게도 안하고 저렇게도 안하고…

이제는 남의 비판이나 받으니 어떻게 된 일이요?》

방안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머리를 푹 수그리고 눈물을 삼키는 리재천동무의 고르롭지 못한 흐느낌만이 이따금씩 정적을 깨뜨렸다.

가을빛이 짙은 창밖으로는 말라버린 나무잎이 금시라도 떨어질듯 가지에 매달려 바람결에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괴로운 안색으로 한동안 창밖을 내다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격하신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동무는 지난날 미국놈들이 마사놓은 제강소도 앞장서서 복구하고 압연기의 공칭능력을 타파하느라고 로동자들과 함께 밤잠도 자지 않고 뛰여다니면서 적지 않은 일을 해온 사람이 아니요.그래서 나는 동무를 믿고 많은 일을 맡겼소.그런데 왜 최근에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오.자기의 총명만을 믿고 군중을 무시했기때문이요.…

리재천동무는 참고참아오던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어깨를 세차게 떨었다.

그를 지켜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울긴 왜 우오, 이제는 그만하고 식사를 하오, 어서 하고 친부모가 자식에게 이르듯 따뜻이 말씀하시였다.

어느덧 떠날 시간이 다되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이제 강선을 떠나가면 리재천동무가 절망과 비관에 빠져 다시 일어서지 못할것 같은 무거운 심정때문에 선뜻 걸음을 내짚지 못하시였다.그런데 뼈저린 자책속에 위대한 수령님을 바래워드리고 집에 들어선 리재천동무는 깜짝 놀랐다.수령님께서 자기의 모자를 바꿔쓰고 가시였던것이다.

불민한 자기때문에 얼마나 속태우시였으면 이런 일이 다 생기였으랴.그는 다급해진 나머지 전화로 수령님께 이 사연을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뀌였으면 뭐라는가, 이제부터 내가 동무의 모자를 쓰고 동무가 내 모자를 쓰면 되지 않는가고 너그럽게 말씀하시였다.그때부터 우리 수령님께서는 바뀌여진 모자를 그냥 쓰고 다니시였다.하지만 리재천동무는 수령님의 모자를 정히 간수하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비둘기 한쌍을 리재천동무에게 보내주시였다.어버이수령님의 다심하고 사려깊은 사랑이 어려있는 그 비둘기를 애지중지 기르면서 리재천동무는 인간성이 부족한 사업작풍을 고쳐나가기 위해 애썼다.그 옛날 강남갔던 제비는 흥부에게 보은박씨를 물어다주었다지만 우리 수령님 보내주신 한쌍의 비둘기는 리재천동무의 가슴에 일군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따뜻한 인간미를 새기게 해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재천동무가 과오를 범한 후에도 변함없는 신임을 베푸시여 중요한 새 초소를 맡겨주시였다.그의 안해가 장기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하고있다는것을 아시고는 그곳 일군에게 전화를 거시여 가정일때문에 리재천동무가 일에서 지장을 받지 않도록 잘 돌봐주라고 당부하시였다.

하지만 그의 고질적인 결함은 쉽게 고쳐지지 못했다.일판을 통이 크게 벌린다면서 치밀한 조직사업이 없이 일하다보니 당대회를 앞두고 나라에 손실을 끼치는 과오를 또다시 범하게 되였던것이다.모두가 그의 병집은 더는 고칠수 없는것이라고 단정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은 리재천동무의 결함은 얼마든지 고칠수 있는것이며 또 반드시 고쳐야만 한다고 생각하시였다.전후의 어려운 시기 당의 믿음에 천리마의 봉화를 지펴올리는것으로 보답하였던 어제날 강선지배인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정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가 또다시 엄중한 결함을 범했어도 열렬하시였다.

리재천동무가 어느 한 기계공장 로동계급속에서 자신을 단련하던 나날에도 그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관심은 변함이 없으시였다.

어느날 한 일군이 리재천동무를 찾아와 가슴뜨거운 사실을 알려주었다.리재천동무의 그동안의 사업과 생활을 알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가 결함을 고치고 일을 잘한다는것을 아시고 이제는 그 동무가 《인민학교》(당시)를 졸업한셈이니 《중학교》에 올려보내야겠다고 하시면서 그러나 단번에 큰 공장을 맡기면 또 과오를 범할수 있으니 지금은 자그마한 공장을 맡기라고 은정어린 교시를 하시였다는것이였다.

이렇게 되여 리재천동무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손수 정해주신 공장에 가서 힘과 지혜를 다 바쳐 일하였다.얼마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좀더 큰 공장의 지배인으로 임명해주시였고 얼마후에는 더 큰 공장의 지배인사업을 맡겨주시였다.그야말로 한걸음한걸음 이끌어주는 자애로운 스승의 다심하고 뜨거운 손길이였다.

세월은 흘러 리재천동무도 어느덧 60나이를 가까이하게 되였다.어제날 강선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도 옛 지배인에 대한 기억이 삭막해지고 본인자신도 천리마의 고향 강선을 늘 생각하면서도 체념하고있던 어느날이였다.

리재천동무의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것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걱정어린 음성으로 그 동무가 언제부터 그렇게 앓는가를 일일이 물으시고나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그 동무는 강선제강소에서 일할 때에는 앓지 않던 동무였는데 지금 앓는것을 보면 아마도 동해지방의 물이 그의 몸에 잘 맞지 않는것 같습니다.》

그러시고는 그를 아무래도 강선으로 데려와야 할것 같다고 하시며 리재천동무가 강선제강련합기업소(당시)에 다시 돌아와 병치료를 하면서 능력에 맞게 일할수 있도록 고문직제까지 새로 내오게 하시였다.

(아, 내 언제면 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은덕에 천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수 있으랴!)

상처입은 자식, 허물있는 자식을 더 위하는 친부모의 심정으로 생일상도 차려주도록 하시고 높은 국가수훈의 영예도 거듭 안겨주시였으며 중요한 대회들에도 참가시켜주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은덕에 심장의 마지막박동까지 깡그리 바쳐 보답할 일념으로 리재천동무는 로동자, 기술자들속에 들어가 천리마시대의 벅찬 나날의 체험을 이야기해주면서 그때처럼 모든 열정을 강철생산을 위해 바쳤다.

우리는 리재천동무의 가족과 함께 어제날 강선지배인의 모습이 생동한 화폭으로 형상된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로동계급편)을 새삼스러운 감정을 안고 감상하였다.위대한 장군님께서 20세기 문예부흥의 총화작으로 완성시켜주신 예술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위대한 천리마시대와 더불어 영생하는 한 일군의 값높은 삶에 대하여, 한번 믿음을 주고 내세워주신 일군은 천만자루의 품을 들여서라도 그 생을 영원히 빛내여주시는 어버이품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였다.

우리와 만난 리재천동무의 손자인 리광호동무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를 찾으시고 초고전력전기로를 보아주시며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봉화를 지펴주신 9년전 12월의 그날을 잊을수 없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날 할아버지는 온밤 잠들지 못했습니다.너무도 큰 충격을 받고 할아버지는 어버이수령님의 체취가 아직도 느껴지는것만 같은 사연깊은 침대를 쓸어보고 또 쓸어보며 수령님께서 꼭 다시 오셨던것만 같다고 절절하게 이야기하는것이였습니다.그러면서 이제는 우리 세대가 천리마대고조시기의 그때처럼 당을 충직하게 받들어야 한다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격동의 영웅시대와 함께 키워주고 내세워주신 강선지배인, 그의 심장이 부르는 《그때처럼 우리가 살고있는가》의 노래구절은 오늘날 만리마시대의 새 력사를 펼쳐가는 전민총돌격전의 앞장에 선 우리 일군들에게 이렇게 당부하는것만 같다.

자신을 혁명의 지휘성원으로 품들여 키워주신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은덕을 자나깨나 순간도 잊지 말고 위대한 시대에 당앞에 지닌 자기의 책임을 다하라! 당과 수령을 위하여, 인민을 위하여 자신을 초불처럼 깡그리 불태우라!

본사기자 백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