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7월 21일 로동신문
혁명전통교양의 대전당 조선혁명박물관을 찾아서(12) 백두의 공격정신으로 항일대전을
조선혁명박물관을 쉬임없이 찾는 참관자들속에 섞여 우리는 12호실에 들어섰다. 우리의 참관은 중일전쟁의 발발을 보여주는 벽면에서부터 시작되였다. 강사의 해설을 통하여 우리는 1937년 7월 7일 일제가 조작한 로구교사건에 의해 중일전쟁이 일어났으며 그로 하여 본격화된 침략전쟁과 우리 혁명앞에 조성된 정세를 파악할수 있었다. 중일전쟁을 도발한 일제는 기고만장하여 미친듯이 날뛰였다.세계5대강국의 하나, 3대해군국의 하나라고 자처하면서 만주를 침략하고 그것을 채 소화하기도 전에 중국본토까지 삼키겠다고 욕심사납게 덤벼치고있었다. 《전진도상에 난관이 가로막아나설 때마다 나는 그앞에서 주저앉거나 동요하지 않았다.그것을 에돌거나 피하지도 않았다.우리는 어려운 때일수록 신심을 잃지 않았고 불굴의 의지와 완강한 노력으로 그것을 극복하였다.》 적배후교란작전, 9월호소문, 동해안지구를 혁명의 보루로, 전민항쟁준비를 위하여,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학습은 첫째가는 의무이다… 매 벽면들의 맨우에 씌여진 글발들이 12호실의 사상주제적내용을 말해주고있었다. 강사는 적배후교란작전이라는 글발이 새겨진 벽면을 가리키며 중일전쟁에 대처하여 우리 혁명의 전략적방침들을 제시하신 주체26(1937)년 7월 중순 백두산밀영에 나오신 일제가 중국관내에로 전면적인 무력침공을 확대하는 때에 그리고 국제당의 일부 좌경모험주의자들이 열하방면으로 원정할데 대한 무모한 로선을 집요하게 강요하고있던 시기에 열린 회의에서 백두산밀영회의에서 론의된 문제들가운데서 핵은 중일전쟁에 대처하여 혁명의 주체적력량을 튼튼히 꾸리고 적배후교란작전을 강화하며 전민항쟁준비를 다그치는것이였다. 백두산밀영회의에 이어 그해 8월 1일에는 장백현 초수탄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 8월 12일에는 장백-림강현경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 및 병사대회를 소집하시여 앞으로의 투쟁방략을 밝히신 우리 전시대의 유리함속에 있는 우리는 벽면에 게시된 적들의 비밀문건을 통해서도 조선인민혁명군의 적극적인 활동방향에 대하여 잘 알수 있었다.거기에는 초수탄회의에서 새로운 활동방침이 세워진데 대해서와 부대를 개편하고 활동지역을 분담한데 이어 8월 29일 국치일을 계기로 만주의 주요도시들을 공격하고 국내에로 일제히 쳐들어갈것을 협의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여있었다.이에 당황망조하여 적들은 그 대응책을 세우느라 복닥소동을 피웠다고 한다. 우리는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 및 병사대회에서 연설하시는 강사는 적배후교란작전의 나날에 언제인가 우리는 강사는 우리를 주요지역도는 조선인민혁명군이 벌린 눈부신 적배후교란작전과정을 보여주고있었다.수많은 전투들가운데서 참관자들의 각별한 관심을 끈것은 신방자전투, 무송-서강매복전투, 장백현 12도구전투, 림강현 6도구전투의 승리도 통쾌하였지만 쌍산자전투에 대한 강사의 이야기는 참관자들의 심금을 세차게 울리였다. 주체27(1938)년 4월 어느날 6도구를 들이치고 이동하던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쌍산자부근에서 추격해오는 적들과 전투를 벌리게 되였다. 적들은 6도구에서 당한 참패를 만회하려고 기마대를 비롯한 수많은 무력을 전투에 들이밀었다.이른아침부터 시작된 전투는 오후까지 계속되였는데 이때 적의 병력은 1 000여명이나 되였다.적들은 여러곳에서 모여든 경찰들과 일만혼합군으로 력량을 증강하여 검질기게 달려들었다.가렬한 전투가 계속되는 속에 적들의 일부 병력이 아군의 익측뒤면을 위협하였다.그때 거기에는 신입대원 7~8명이 있었다.정황보고를 받으신 적배후교란작전에서 적들에게 심대한 군사적타격을 주고 안아온 빛나는 승리들은 우리 이런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있는 우리의 눈앞에 9월호소문이란 글발이 안겨왔다.강사가 벽면에 모셔진 나라를 사랑하고 독립을 바라는 2천만 조선동포들이여! 일제와 싸우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혁명적신념과 백절불굴의 투지를 가지고 반일민족통일전선의 기치하에 일치단결하여 각종 형태의 투쟁으로 적의 후방을 교란하며 결정적인 반일항전으로 일제침략자들을 소탕하고 피바다에 잠긴 조국을 광복하자. 이 시기 강사의 해설에서 참관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것은 마동희동지에 대한 내용이였다. 혜산일대에서 활동하던중 변절자의 밀고로 체포되였으나 혁명적지조를 굽히지 않은 마동희동지였다.보름동안에 적들이 들이대는 48가지의 고문을 이겨낸 투사, 사령부의 안전을 지켜 자기의 혀를 끊은 의지가 강한 혁명가의 투쟁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것을 새겨주었다.마동희동지에게 국내정치공작임무를 주시는 다음벽면에서 우리는 북부조선일대의 동해안지구를 혁명의 보루로 다지기 위한 투쟁이 힘차게 벌어진데 대한 자료들을 볼수 있었다. 강사는 벽면에 전시된 자료들을 가리키면서 벽면의 중심에는 항일의 녀성영웅 벽면에는 반일애국단체인 신간회 총무부장이였고 단천로조지도성원의 한사람이였던 리주연동지, 애국렬사 리준선생의 아들 리용동지의 사진도 있었다. 강사는 이들이 걸어온 생활경력을 들려주었다.특히 리용동지에 대한 이야기가 가슴을 울리였다.그는 망국의 한을 품고 떠나간 부친의 애국의 뜻을 잇자고 참으로 곡절많은 인생길을 걸어왔다.일찍부터 중국관내와 동북, 쏘련 연해주일대에서 반일투쟁을 벌렸으며 당시 북청농조사건으로 체포되였다가 두문벌을 받고 감시속에 있던 그였다.그러다가 조국광복회 북청지회성원들이 《금란계》라는 말은 합심을 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같고 향긋함이 란초와 같다는 의미로 친구간의 두터운 정의를 이르는 말이다.《금란지계전》이란 그 조직성원들에게 전하는 자료라는 뜻이다. … 정통령은 우리의 복되도다 우리의 조선족 오매에도 그리던 당당한 기상 영생불멸이로다
우리는 다음벽면들에서 사선의 고비를 헤치시고 신흥지구와 양덕지구를 찾고찾으신 12호실참관을 마친 우리의 앞에 항일혁명투사들의 조각군상이 안겨왔다.행군을 다그치는 속에서도 학습에 열중하는 투사들, 승리에 대한 신심에 넘쳐 피리를 부는 투사와 그 피리소리를 들으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남녀대원들의 형상에서 우리는 항일혁명투쟁사에 새겨진 력사의 진리를 다시금 새겨안았다. 백두의 공격정신, 바로 이것이 우리의 심장을 높뛰게 하여주었다. 중일전쟁이 일어난 후 우리 혁명이 방어나 후퇴, 우회하는 방법에 매달렸다면 우리앞에 가로놓였던 난국을 타개할수 없었을것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신심을 잃지 않고 역경을 맞받아 순경으로 전환시키는 혁명적전략을 항일대전의 실천속에서 빛나게 구현하신 12호실을 나서는 참관자들의 락관으로 충만된 모습에서 우리는 글 본사기자 림정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