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전승업적 길이 전하는 천리전선길
조국의 최남단 광주에 새겨진 강철의 령장의 거룩한 행로를 더듬어
전화의 포성이 멎은 때로부터 어느덧 64년이 되였다.반세기가 넘는 그 세월속에서 7.27은 선군조선의 모든 승리의 상징으로 우리 인민의 정신력을 힘있게 추동해왔다. 우리 인민은 해마다 7.27을 맞이할 때면 이 세상 그 무엇으로써도 다 전할수 없는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전승업적을 감회깊이 회고하며 높이 칭송한다. 그중에서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전쟁의 제일 어려운 시기마다 가장 위험한 최전선길을 헤치시며 전승의 날을 앞당기신 이야기는 만사람의 눈굽을 뜨겁게 적셔준다. 미제의 내리막길의 시초를 열어놓은 승리의 7.27을 안아오기 위해 우리 수령님께서 헤치신 화선천리길은 그 얼마인가. 림진강철교, 서울, 수안보… 어버이수령님께서 불비쏟아지는 최전선길을 걷고걸으시며 우리 군대와 인민을 전쟁승리에로 이끄신 거룩한 자욱은 조국의 최남단 광주에도 력력히 새겨져있다. 우리는 전화의 나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울을 거쳐 광주에까지 나가시여 전시사업을 지도하시는 과정에 있었던 력사적사실의 일단을 세상에 전하게 된다.
불길속을 뚫고헤치신 사생결단의 행로
《쿵, 쿵-》 점차 남쪽으로 멀어지는 포소리가 둔중하게 들리였다.인민군대의 노도와 같은 진격으로 전선은 이미 락동강계선에 이르고있었다.침략자들에 대한 분노가 온 나라에 차넘치고 전선탄원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울리였다. 불비속을 뚫고 서울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의 승리를 위해 떨쳐나선 인민들의 불같은 열정을 온몸으로 느끼시며 남해안방어부대에 나가보실 생각을 무르익히고계시였다. 그때 대구-부산일대에 압축된 적들은 락동강계선에서 어떻게 하나 인민군대의 공격을 저지시켜보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고있었다.세계의 눈길이 락동강전선을 주시하고있었다.하지만 천리혜안의 예지와 과학적통찰력으로 적들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주시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직은 누구도 주의를 못 돌리고있던 서남해안방어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였다.궁지에 빠진 적들이 참패를 만회해보려고 추종국가군대들까지 끌어들여 상륙작전과 항공륙전대투하를 시도한다면 엄중한 후과가 생길수 있었던것이다.그런 징조가 벌써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광주에 지휘부를 둔 해안방어부대는 조직된지 얼마 안되였고 인민들을 전쟁승리에로 조직동원해야 할 해방지역의 일군들은 갓 임명되여 아직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하고있었다. 우리 나라 남서부에 자리잡고있는 광주는 지도상으로 볼 때에도 적들이 몰켜있던 남동부의 대구보다도 썩 아래에 놓여있다.적패잔병들과 반동들의 준동이 그 어디보다도 우심했던 광주는 해방지역이라고는 하지만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를 험한 곳이였다. 전쟁이 시작된지 한달 남짓한 사이에 세번째로 서울에 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직접 현지에 나가 서남해안방어대책을 세우고 해방지역의 당, 정권기관 사업을 료해하시기 위하여 평양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더 멀고 위험한 광주에로의 최전선길을 떠나시였다. 그날은 주체39(1950)년 8월 10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야전승용차는 한여름의 폭양속을 뚫고 커다란 먼지기둥을 휘감아올리면서 전속으로 달리였다.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떠난 사생결단의 전선길이였다.그 어떤 위험도 각오하신 우리 수령님의 전선행로였고 이렇게 시작된 광주지구에로의 현지시찰길이였다. 저녁해가 서산너머로 기울기 시작할무렵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일행이 충주계선에 이르렀을 때였다.눈과 귀를 곤두세우고 사방을 감시하던 부관이 비행기소리가 들린다고 보고하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비행기소리가 옳다고, 적비행기소리를 제때에 들었다고 하시며 차들을 세우고 빨리 숲속으로 대피하라고 이르시였다. 잠시후 갈가마귀떼같은 적기들이 곧장 도로에 몰려들더니 금방 승용차들이 서있던 곳을 향해 내리꽂히는것이였다.폭음과 기총소리가 어지럽게 울리였다.도로와 숲은 삽시에 삼단같은 불길과 화약내로 뒤덮였다.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수행성원들의 대피를 지휘하고계시였다.폭격이 점점 더 심해져 파편들이 그이께서 계시는 가까이까지 날아왔다.귀뿌리를 스치는 파편이 그이께서 서계시던 곳의 나무가지를 뭉청 잘라버리였다.수행성원들모두가 위대한 수령님을 목숨으로 보위할 일념으로 방탄벽이 되였다. 적비행기들이 사라지자 수행성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 더는 이런 위험한 길을 다니시지 말아야 한다고 눈물을 쏟으며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의 마음을 잘 안다고 하시며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그러나 전선에서 싸우는 전투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있는데 최고사령관이 어떻게 사무실에만 앉아있겠습니까. 위험하더라도 우리가 전선에 나가 지휘관들과 전투원들을 고무해주면 그만큼 전쟁승리의 날이 앞당겨지게 됩니다. 전쟁이 승리한 다음 우리가 준엄했던 이 난국을 어떻게 이겨내고 미제침략자들을 때려부셨는가를 긍지높이 추억합시다. 승리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또 떠납시다.》 이런 아슬아슬하고 위험천만한 고비를 넘기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선사령부가 자리잡고있는 수안보에 도착하신것은 저녁 8시경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의 휴식도 없이 전선형편을 료해하시고 일군들에게 최고사령부의 최종작전방안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주시였다.일군들은 천리혜안의 비범한 군사적예지가 빛발치는 그이의 작전적구상에 접하며 전쟁승리의 그날을 눈앞에 보는것만 같아 격정을 금치 못해하였다. 수안보에서 공화국남반부를 완전해방하기 위한 최종임무를 하달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밤으로 또다시 전선시찰을 떠나려고 하시였다.김책동지와 강건동지를 비롯한 전선사령부의 일군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먼길에 쌓인 피로도 푸실 사이없이 작전회의를 지도하신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이 밤중에 또 어디로 가신단 말인가. 일군들은 그이의 앞을 막아서며 하루밤만이라도 쉬시였으면 하는 간절한 심정을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무엇인가 생각하시더니 전선으로 나오실 때 충주계선에서 적비행기의 항공습격을 받은데 대해 이야기하시였다. 순간 김책동지를 비롯한 전선사령부의 일군들은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그처럼 위험천만한 사생결단의 전선길을 헤쳐오셨다는 사실앞에서 심장이 뚝 멎는것 같았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일동지가 몇몇 동무들과 함께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서울로 가게 하시고 자신께서는 세명만 데리고 광주에 갔다오겠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광주에 가서 서남해안방어대책을 세우고 그곳 당, 정권기관 사업을 료해하여보겠습니다.》 전선사령부의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께 전선 최남단인 광주일대에는 아직도 반동들의 준동이 심하다고, 최고사령관동지의 신변안전이 걱정된다고, 절대로 가시면 안된다고 그이의 최전선길을 거듭 만류해나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타깝게 간청하는 그들에게 일없습니다, 놈들의 준동이 있다고 해도 갈길은 가야 합니다라고 하시며 그밤으로 길을 떠나시였다. 김책동지는 즉시 당시 광주지구위수사령관이였던 주도일동지에게 련락군관을 띄워 최대지급편지를 보내였다. 《김사령이 가신다.대책 요함.즉시 회신할것.책》 다리부상으로 치료중이던 주도일동지는 빨찌산식의 짧은 편지에 실린 엄청난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고 그 자리에서 회답을 보낸 다음 말을 타고 광주로 질주했다.그는 광주지구위수사령부를 비상소집시켜 필요한 대상들의 경비를 강화하는 한편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안전보장을 위해 만전을 기하였다. 일찌기 빨찌산시절부터 위대한 수령님을 조선의 운명으로,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모신 김책, 강건, 박광선, 주도일동지를 비롯한 항일혁명투사들은 남반부의 해방지역에 대한 위험천만한 현지시찰길을 이어가시는 수령님의 안녕을 위해 온넋을 다 바치였다.그들의 가슴속에서는 하나와 같이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제발 이런 험한 최전선길을 더는 걷지 말아주시였으면 하는 간절한 소원이 끓고있었다.빨찌산식으로 조국의 최남단에로 소문없이 이어진 우리 수령님의 천리전선길은 이렇듯 결사의 각오로 헤친 위험천만한 사선의 고비고비였고 불면불휴의 행로였다.
해방지역에 수놓아진 불멸의 자욱
위대한 수령님께서 타신 승용차가 충청북도에 들어선것은 8월 11일 새날이 시작될무렵이였다.기온이 제일 낮은 때였지만 남쪽지대의 찌물쿠는 무더위는 여전하였다. 대전시의 도로에서 승용차를 세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충청북도당위원장과 충청남도당위원장, 충청남북도내무부장들을 만나시였다. 사람들이 모두 굳잠에 든 깊은 밤에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게 된 해방지역 일군들의 놀라움과 감격은 그지없이 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밤이 깊었는데 이렇게 불러서 안됐다고 하시며 얼마간 떨어진 곳으로 그들을 이끄시였다.그러시고는 오늘 동무들과 만나자고 한것은 적들의 책동으로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일련의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라고 하시면서 미제침략자들이 저들의 참패를 만회해보려고 추종국가군대까지 조선전선에 투입하여 대규모적인 무력침공을 시도하고있는데 대하여 알려주시였다. 해방이 되였다고 잠시나마 마음의 탕개를 늦추었던 일군들은 저도 모르게 긴장해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을 바라보시면서 조성된 정세는 전체 인민이 승리에 대한 신심을 더욱 굳게 가지고 적들의 새로운 공격기도를 짓부시기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설것을 요구하고있다고 하시며 구체적인 과업들을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 그이의 교시를 받아안으며 눈앞이 확 트이는것만 같은 흥분에 휩싸인 일군들의 가슴마다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전인민적방위체계를 철저히 세워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임무를 끝까지 관철할 굳은 맹세가 불타오르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도내무부들의 사업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였다. 사실 그때 남반부의 많은 지역이 해방되였으나 인민들은 아직 안정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있었다.도처에서 반동분자들과 괴뢰군패잔병들이 악랄하게 준동하면서 인민들의 생명재산을 위협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 남반부해방지역들에서 공화국정부의 인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시책의 실시로 우리 제도에 대한 인민들의 신뢰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내부에 숨어있는 적대분자들은 날로 높아가는 공화국의 위상에 겁을 먹고 그것을 허물기 위해 악랄하게 책동하고있다고 하시며 이에 대처하여 도내무부들의 역할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떠나실 시간이 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헤여지기 아쉬워하는 일군들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멸망의 위기에 직면한 적들의 발악적인 책동으로 하여 앞으로 정세가 더욱 긴장해질것으로 예견됩니다.동무들은 언제나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춤으로써 미제침략자들의 새로운 해안상륙기도를 포함한 대규모적인 무력침공기도를 철저히 짓부셔버려야 합니다.여기에 승리의 열쇠가 있습니다.》 충청남북도일군들의 바래움을 받으며 대전시를 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라남도 광주를 향해 또다시 밤길을 달리시였다. 론산을 거쳐 이른새벽에 전라북도 전주에 이르신 그이께서는 도로에 차를 세우시고 마중나온 도당위원장과 도내무부장에게 전라북도에서 시급히 수행해야 할 과업들에 대하여 알려주시였다. 온밤 쉬지 못하시고 야전승용차강행군을 하시면서 남반부해방지역의 당, 정권, 내무기관 사업을 지도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틀무렵 전주를 출발하시여 아침녘에 전라남도 광주에 도착하시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 서남해안방어부대 지휘부를 돌아보시면서 당면한 군사작전문제와 관련한 귀중한 교시를 주시고 전라남도당위원회를 찾으시였을 때였다. 산업성 전권대표로 나와있던 리종옥동지가 그이께 인사를 드리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동무를 이렇게 만나니 반갑다고 하시며 그를 데리고 도당위원장방으로 가시였다.리종옥동지로부터 남반부의 산업실태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받으신 그이께서는 전쟁으로 령락된 인민생활을 향상시킬데 대하여 교시하시고 또다시 중요한 과업을 주시였다. 이때 도당위원장으로 사업하던 박영발동지와 도인민위원장, 도내무부장이 방에 들어왔다.그들은 해방된 조국의 최남단 광주땅에서 민족의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게 된것이 너무도 꿈만 같아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고나서 나는 오늘 전라남도사업을 료해하고 대책을 세우기 위하여 여기로 왔습니다라고 하시며 도당사업에 대하여 하나하나 알아보시였다. 도당위원장은 당단체들을 복구하는 사업이 힘들게 진행되고있으며 인민위원회선거와 토지개혁도 반동놈들의 책동때문에 성과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있는데 대하여 사실대로 말씀드리였다. 그의 보고를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반부해방지역에서 당단체를 복구정비하는 사업은 광범한 군중을 당의 주위에 튼튼히 묶어세우며 그들을 민주개혁수행과 전쟁승리에로 조직동원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사업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전라남도당위원회에서는 우선 하루빨리 당단체들을 복구정비하며 당안에 엄격한 규률과 질서를 세워 당사업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와야 합니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정권기관들의 역할을 결정적으로 높일데 대하여서와 남반부지역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는것이 가지는 의의와 중요성, 그 수행방도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그이의 교시를 받아안으며 일군들은 도내 사업에서 나타나고있던 부족점들을 순간에 정확히 포착하시고 나아갈 길을 환히 밝혀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 끝없는 매혹의 정을 금치 못해하였다. 썩 후날 남조선의 한 도서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광주일대에 나오시여 사업하신 내용이 게재되여 사람들을 깜짝 놀래운적이 있었다. 남조선의 출판물까지도 흠모의 정을 안고 서술한 위대한 수령님의 광주일대에 대한 현지시찰은 정녕 력사에 길이 빛날 불멸의 혁명실록이며 위대한 최고사령관의 전투실화인것이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해방지역이라고 하여 결코 후방으로만 남아있을수 없으며 싸우는 전선의 귀중한 한 부분이 되여야 한다는 진리가 그 거룩한 자욱속에 력력히 빛나고있다. 세상에는 한다하는 군사령관에 대한 이야기가 적지 않지만 우리 수령님과 같이 최고사령관으로서 직접 최전방의 해방지역에까지 나가 군인들과 인민들을 전쟁승리에로 불러일으키신 례가 언제 또 있었던가.
《나의 전선길은 곧 승리의 길입니다》
잊지 못할 주체39(1950)년 8월 11일 광주에서의 일정을 마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곳을 떠나실 때는 점심시간이였다. 그이를 모시고 떠난 전선사령부의 일군들은 어느 인민군부대 지휘부나 지방당기관에 들려 위대한 수령님의 식사를 보장해드리려고 마음먹고있었다.그런데 승용차가 달리기 시작하여 얼마 안되였는데 그이께서 작은 바위들이 듬성듬성 보이는 광주천가에 차를 세우게 하시더니 여기서 식사를 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는것이였다. 모두가 자기 귀를 의심할만큼 어리둥절해졌다.조금만 더 달리면 위대한 수령님께 남해의 특산물들을 대접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인가도 없는 광주천가에서 점심식사를 하시게 하자니 서운하기 그지없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는 일군들에게 준비해가지고오신 줴기밥을 나누어주도록 하시였다.수행성원들은 사선의 고비를 헤치면서 광주에까지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 길가에서 줴기밥으로밖에 식사보장을 해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죄송함으로 눈굽을 적시였다. 식사시간은 길지 않았다.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수행성원들은 몇십년을 두고도 익힐수 없는 이민위천의 심원한 뜻을 새기였다. 식사가 끝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광주천으로 나가시며 부관에게 낚시대를 가져오라고 이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잠시나마 휴식하실수 있게 되였다고 기뻐하며 부관은 얼른 낚시대를 가져왔다. 그이께서 광주천에 낚시대를 드리우시자 여기저기서 물고기들이 몰려와 미끼를 물었다.부관이 물고기가 물렸다고 탄성을 올렸다. 하지만 전혀 느끼지 못하시는듯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선사령부의 일군들을 곁으로 부르시여 조성된 정세와 관련한 담화를 나누시였다.그제야 수행성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동안 낚시대를 드리우고계시였지만 여전히 전쟁의 승리를 위한 심원한 사색을 이어가고계시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이께서는 천리혜안의 예지로 적정자료들과 있을수 있는 적들의 무모한 책동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분석하시고 서울에 돌아가서 대책을 세우자고 하시며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이윽고 광주천의 수려한 경치에 인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으신듯 한동안 주변을 부감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볼수록 경치가 아름답다고, 우리 나라는 어데 가나 경치가 좋다고, 말그대로 산좋고 물맑은 금수강산이라고 하시며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오늘 조국의 남쪽끝에 와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명상에 잠겨있느라니 미국놈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불행을 당하고있는 인민들생각이 납니다. 항일의 불길속에서도 우리의 념원은 앞으로 무궁번영하는 새 나라를 세우고 우리 인민을 행복하게 살게 하는것이였습니다.그런데 일제를 때려부시고 나라를 해방하니 이번에는 미국놈들이 덤벼들었습니다.세상에서 가장 슬기롭고 선량한 우리 인민이 날강도 미국놈들때문에 온갖 불행을 강요당하고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시면서 국력이 약했기때문에 제국주의자들의 롱락의 대상이 되였던 수난의 력사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결연히 선언하시였다. 우리 조국을 부강번영하는 사회주의강국으로 일떠세우실 어버이수령님의 원대한 구상은 벌써 최남단 광주천가에도 뜨겁게 새겨진것이다. 수행성원들이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는데 그이의 저력있는 음성이 조국의 최남단하늘가에 다시금 메아리쳤다. 《하루빨리 미제침략자들을 때려부시고 세상에서 제일 강대한 나라를 제힘으로 반드시 일떠세워야 합니다.그래서 나는 위험한 전선길을 걷고 또 걷고있습니다. 나의 전선길은 곧 승리의 길입니다.》 수행성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전선길이 단순한 현지시찰이 아니라 전쟁의 최후승리를 우리의 힘으로 안아오는 력사의 지름길임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우리 수령님의 전선길이 곧 승리의 길이라는것은 불멸의 전승사가 확증한 진리이다.위대한 수령님의 사생결단의 그 전선길의 자욱을 따라 우리 군대와 인민은 미제를 쳐물리치고 승리의 7.27을 안아왔다. 누구나 전승의 7.27은 값비싼 피의 대가라고 말한다.얼마나 많은 유명무명의 영웅전사들이 승리의 7.27을 위해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였던가.하지만 그 빛나는 위훈우에 천만년 대를 이어 길이 전해가야 할 불멸의 공적이 있다.그것이 위대한 수령님의 사생결단의 최전선길이다.전쟁의 제일 어려운 시기마다 위험한 최전선길을 앞장서 걸으시며 전승의 날을 앞당겨오신 강철의 령장의 거룩한 업적이다.그래서 우리의 7.27은 더없이 숭고하고 고귀하며 위대한것이다. 위인의 전승업적은 또 다른 걸출한 위인의 전승사속에 빛난다. 우리 공화국을 세계적으로 몇 안되는 핵무기보유국, 인공지구위성제작 및 발사국, 전략잠수함 탄도탄보유국, 최강의 대륙간탄도로케트보유국으로 되도록 정력적으로 이끄시여 지난 수십년동안 이 땅에 전쟁의 포성이 한번도 울리지 않도록 해주시고 우리 인민들이 전쟁을 모르는 평화롭고 안정된 생활을 누리도록 하신것은 절세의 선군령장들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미제국주의와의 총포성없는 전쟁에서 이룩하신 영원불멸할 전승업적이다. 이 영광스러운 력사의 자욱속에 미제의 내리막길의 시초를 열어놓으신 어버이수령님의 전승업적은 세세년년 빛을 뿌리고있다. 선군조선의 위대한 전승의 력사가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 줄기차게 흐르고있다.
본사기자 김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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