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8월 6일 로동신문

 

혁명전통교양의 대전당 조선혁명박물관을 찾아서(15)

자력독립의 기치아래 온 강토에 타오른 전민항쟁의 불길

 

참관자들과 함께 15호실에 들어선 우리의 눈에 먼저 안겨든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사진문헌이였다.

무성한 잎새를 펼친 나무들을 배경으로 머지않아 다가올 조국해방의 그날을 그려보시는듯 확신에 넘쳐계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력사적인 사진문헌에서 이윽토록 눈길을 떼지 못하는 우리에게 강사는 소부대활동시기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이시라고 하면서 이 방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밑에 일제와의 최후결전을 위한 전민항쟁준비사업이 적극 추진된데 대한 자료들이 전시되여있다고 말하였다.

15호실에 대한 강의에 앞서 이런 이야기를 한 강사는 벽면에 정중히 모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읽어내려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최후결전의 날이 다가옴에 따라 우리는 전민항쟁을 위한 작전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벽면에는 조국해방3대로선이라는 제목밑에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 전인민적봉기, 배후련합작전이라는 글발이 뚜렷이 부각되여있었다.

강사는 그밑에 있는 사진을 가리키며 참관자들에게 력사적인 두무봉회의가 진행된 곳이라고 알려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2(1943)년 2월 신흥군 서곡리 두무봉밀영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 소부대, 소조 및 혁명조직책임자회의를 소집하시고 조국해방3대로선과 그 실현을 위한 과업과 방도를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강조된 문제들중의 하나가 전민항쟁준비사업이였고 그를 위하여 소부대, 소조들과 정치공작원들을 전국도처에 더 많이 파견하여 전민항쟁의 대중적지반을 튼튼히 닦을데 대한 문제가 제시되였다.

신흥군 서곡리 두무봉의 전경사진을 눈여겨보느라니 두무봉과 잇닿아 전국각지에로 뻗어있을 조국의 산발들이 더듬어지고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안고 험산준령도 단숨에 넘어 나래돋쳐 달려가던 투사들의 모습이 금시라도 보일듯, 전설적인 빨찌산대장께서 계시는 백두산을 향하여 수천수만의 애국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는 발구름소리도 들리는듯 하여 참관자들은 흥분된 심정을 금치 못하였다.

전민항쟁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던 력사의 나날에로 마음달리며 우리는 다음전시물들에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부대와 소조들은 광범한 반일력량을 결속하기 위한 정치활동을 강화하여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높이 받들고 정치공작원들과 혁명조직성원들이 벌린 적극적인 활동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참관자들은 주의깊게 보았다.

김일성 민족의 태양 조선의 태양 만민의 구거성》, 《독립조선령수 김일성 만민이 일심으로 따르고 높이 모시자》, 김일성대장은 조선민족 최고령도자 모두 단결하여 일본놈 치자》의 구호문헌들과 인민들속에 우리 수령님의 위대성을 선전하는 정치공작원을 형상한 미술작품, 인민들속에서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와 절대적인 신뢰의 정이 날을 따라 더욱 높아가고있는데 당황망조하여 비명을 올린 일제의 《특고월보》자료를 비롯하여 일본에 파견된 정치공작원의 활동에 대한 반증자료…

그중에서도 참관자들의 눈길을 집중시키는 미술작품이 있었다.

부산과 시모노세끼를 오가는 관부련락선 《고안마루》 3등선실 천정에 씌여진 《조선독립대장 김일성》이라는 글발, 그밑에서 서로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무한한 흠모의 정으로 들끓는 인민들의 모습을 감동깊은 화폭으로 전하고있었다.

한 일본인의 회상자료도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주체33(1944)년에 남부조선의 어느 소학교에서 학생들을 모아놓고 강연을 한 그가 《너희들은 현재 … 누가 제일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있는가.정직하게 무기명투표를 해보라.절대로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말라.》고 안심시킨 후 받아본 무기명투표의 대다수에 김일성》이라고 씌여있어 놀라와하였다는것이다.

이와 같은 충격적인 사건들이 우리 나라뿐아니라 일본땅에서도 련이어 일어났음을 기록한 일제의 관헌자료들은 참관자들로 하여금 당시의 민심이 어떠하였는가를 잘 알게 해주었다.

위대한 수령님을 절대적으로 존경하고 항일의 전설적영웅으로 높이 우러르면서 인민들은 일제와의 판가리싸움에 떨쳐나설 불타는 결의에 충만되여있었다는 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다음벽면으로 걸음을 옮겼다.

민심은 천심이다.민심에는 인민들의 지향과 소망이 담겨져있으며 민심만 준비되면 그 어떤 대사든지 다 치를수 있다는것이 우리 수령님의 확고한 신조였다.

이러한 확신에 넘치신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한 영상을 중심에 모시고 전민항쟁준비가 본격적으로 다그쳐진데 대한 사건과 사실들을 보여주는 곳으로 강사는 우리를 안내하였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속에서도 전민항쟁준비가 조직화되고 각계각층 군중이 여러가지 형태의 반일투쟁에 광범히 떨쳐나설수 있은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의 결과이라는것이 직관적으로 안겨왔다.전시된 문헌자료들과 력사자료들의 유기적이며 정연한 구성은 참관자들로 하여금 강사의 해설이 없이도 벽면의 주제사상적내용을 명백히 깨닫게 하였다.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듯 강사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력사를 내용별로, 시기별로 직관적으로 생동하게 보여줄수 있게 학술체계구성을 잘할데 대하여 명철하게 밝혀주시고 박물관을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혁명력사와 불멸의 업적이 집대성된 대국보관으로 전변시키도록 걸음걸음 이끌어주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현명한 령도를 떠나 지금처럼 훌륭히 꾸려진 조선혁명박물관을 생각할수 없다고 절절히 말하는것이였다.

참관자들은 뜨거운 마음을 안고 전시된 자료들을 돌아보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시기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와 정치공작소조들이 파괴된 조국광복회를 비롯한 혁명조직들을 복구정비하고 그것을 확대하는 사업을 힘있게 벌려나가도록 하시였다는 강사의 해설과 함께 참관자들의 눈길은 어느 한 사진자료에 집중되였다.

연사군 상단산림시비밀근거지자리를 보여주는 사진이였다.

이곳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국조국광복회조직책임자회의를 소집하시고 전민족을 최후결전에 떨쳐나서게 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김일성이 후날 조선에 진공하는 경우에 이를 원조하기 위하여 청소년들로 〈민족조〉라고 부르는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일본내의 혼란기에 일제히 봉기하여 조선의 독립을 성취하는것…》

조국광복회 하부조직인 신천민족조가 결성된데 대하여서와 일본 오까야마6고등학교에 조직되였던 조선인학생친목회가 조국광복회조직으로 개편된데 대한 일제관헌자료들은 각계각층 인민들을 묶어세우기 위한 조국광복회조직의 활동정형을 립증해주고있었다.

강사는 또 다른 자료를 가리키며 보는바와 같이 1942년에 일제가 탐지해낸 국내의 반일지하조직만 해도 183개나 되고 조직적력량이 50만을 넘었다고 말하였다.

참관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조국광복회운동이 전국적판도에서 세차게 벌어지고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할수 있는 주체적혁명력량이 더욱 튼튼히 꾸려졌음을 절감하며 다음전시물들에로 시선을 돌리였다.

거기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32 (1943)년 7월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 소조 및 지하혁명조직책임자회의를 여시고 자력독립의 기치밑에 전민항쟁을 위한 무장조직을 도처에 내올데 대한 구체적인 과업과 방도를 제시하신 경흥군 록야리 곰산림시비밀근거지자리를 보여주는 사진이 전시되여있었다.

사진속에는 울창한 수림과 무성한 잡관목들뿐이였다.허나 그 하나하나의 초목들은 얼마나 많은 사연을 안고있는것인가.

일제의 삼엄한 국경경비진을 뚫고 조국에 진출하시였던 위대한 수령님의 자력독립의지를 전하며 오늘도 끝없이 설레일 그 나무들에서 참관자들은 눈길을 뗄줄 몰랐다.

처음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을 조직의 명칭에 모신 김일성대》가 조직된데 대한 일제의 관헌자료앞에서 강사의 해설은 계속되였다.서울에서 조직되여 제주도 모슬포와 국내각지 그리고 일본에까지 그 세력을 확대한 김일성대》는 목적이나 활동방식으로 보아도 항일혁명의 마지막시기에 활동한 주목할만 한 전민항쟁조직이였다.

그와 관련하여 전시된 자료들은 조직성원들이 《독립후의 조선의 최고지도자는 김일성》이라는것 등을 선전하면서 중요공장, 기업소, 군사시설장 지어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로동자들속에 조직망을 확대해나간 사실을 참관자들에게 전해주고있었다.

김일성장군과 련락 기도》, 《구월산중에서 폭탄제조 기도》라는 제목아래 평양에서 조직되여 우리 나라 중서부의 넓은 지역을 활동무대로 한 조국해방단에 대하여 대서특필한 《평양민보》, 수양산무장대 책임자였던 민덕원의 사진, 그밖에도 백두산회, 일철비밀결사, 구국청년회, 성대비밀결사, 결심대, 충성회가 조직되여 활동하였으며 수많은 비밀근거지들이 도처에 꾸려진데 대하여 웅변해주는 자료들…

조선사람이 살고있는 곳이라면 바다건너 일제식민지통치의 아성이고 심장부인 일본본토에까지 혁명의 포대가 련이어 쌓아졌던 사실들도 전시된 자료들은 전하고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참관이 이어질수록 온 강토에 거세차게 타번졌던 전민항쟁의 불길이 참관자들의 가슴속에서도 치솟고있었다.우리들은 1940년대 전반기의 폭풍속에서 숨을 쉬였고 그 시대의 격동적인 사변들이 참관자들의 눈앞에서 다시금 흘러가고있었다.

《전민항쟁조직은 일제침략군내부에도 있었습니다.》

강사의 이 말은 한껏 달아오른 우리들의 참관열의를 더욱 끓어번지게 하였다.

주체33(1944)년 진해해병단에 강제로 끌려간 조선청년들은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할 결의밑에 병영에서 집단적으로 탈출했고 평양에 주둔하고있던 일제침략군 30사단에서는 조선청년들이 반일학도병무장대를 뭇고 《목표 백두산, 김일성장군》이라는 구호밑에 혁명군과 합세하여 최후결전에 참가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세우고 활동하였다.이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된 곳에서 강사는 손을 높이 들어 참관자들의 눈길을 이끌어갔다.

벽면의 맨우에 부각된 김일성장군님께서 거느리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진격에 대중적무장폭동으로 합세하자!》라는 구호를 참관자들모두가 격동된 심정으로 함께 읽어나갔다.

전국도처에 여러가지 명칭을 가지고 수많이 결성된 무장대들이 이 구호를 들고 맹렬한 활동을 벌리였다고 말하면서 강사는 다음벽면에로 다가갔다.

《당창건준비 완성》이라는 글발이 부각된 벽면에서도 첫눈에 확 안겨드는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미술작품이였다.

주체32 (1943)년 2월 연사군 우적골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열린 전국당조직책임자 및 당핵심성원회의장면을 재현하고있었다.

전민항쟁력량에 대한 당적령도를 강화하는데서 나서는 구체적인 과업과 방도들을 제시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열정넘친 모습, 귀중한 가르치심을 한자라도 놓칠세라 적어나가는 회의참가자들, 그이를 우러르며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결전의 선봉에서 싸워나갈 만만한 투지와 필승의 신심에 넘쳐있는 투사들…

회의참가자들의 기백 그대로인듯 활기띤 강사의 목소리가 또다시 울리였다.

《청진제철소(당시)에 당분회가 나온것을 비롯하여 청진지구에 당조직들이 확대되고 청진지구당위원회가 조직되여 해당 지역의 조국광복회조직들과 전민항쟁조직들을 지도하였습니다.》

전시된 자료들을 짚어가며 하는 강사의 해설은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국내의 넓은 지역에 기층당조직들이 확대강화되였고 정연한 조직지도체계가 확립되였으며 당조직들의 전투적기능과 역할이 더욱 높아졌음을 참관자들에게 깊이 새겨주었다.

일제의 멸망이 다가옴에 따라 전민족적인 반일반전투쟁이 세차게 벌어진데 대한 자료들이 전시된 곳에서 우리의 눈길을 특별히 끈것은 따로 설치된 벽면을 가득 채우고있는 한장의 조선지도였다.

여러가지 그림표식들과 부호들로 뒤덮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전민항쟁준비완성을 위한 투쟁 주요지역도》였다.전민족을 일제와의 최후결전에로 총동원하기 위한 전민항쟁태세가 빈틈없이 갖추어졌음을 직관적으로 생동하게 보여주는 지도는 마치 온 강토에 거족적인 반일항전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는 거창한 화폭처럼 안겨오며 참관자들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기였다.

뜻깊은 화폭을 바라보는 우리의 뇌리에 우리 나라의 해방은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강력한 군사적타격을 안겨 그것을 밑뿌리채 뒤흔들어놓은 조선인민혁명군과 각계각층을 망라한 전민항쟁력량의 총동원으로 이룩된것이였다고 긍지높이 선언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글줄들이 어려왔다.

력사의 그 어떤 소용돌이속에서도 언제나 인민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지니시고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다시금 되새기며 우리는 다음호실에로 참관을 이어갔다.

글 본사기자 한영민
사진 본사기자 김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