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8월 19일 로동신문

 

조국이 영원히 기억하는 수령결사옹위의 혁명전사

만포시당 조직부장이였던 리응선동무의 영웅적인 삶과 투쟁을 전하며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혈전만리를 헤쳐 나라의 해방을 이룩한 첫 영웅세대인 항일혁명투사들의 뒤를 이어 수많은 유명무명의 영웅들이 세상을 격동시키는 위훈을 세우며 조국을 지켜내고 빛내여왔다.

그 많고많은 영웅중에서 조선혁명사는 자기의 성스러운 첫 페지에 과연 어떤 영웅을 아로새기였던가.어떤 위훈을 금빛대문자로 기록하였던가.

위대한 수령님의 전승업적을 빠짐없이 발굴고증하여 길이 빛내일데 대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높으신 뜻을 받들어가는 과정에 최근 력사의 땅 고산진에서 준엄한 전화의 나날 최고사령부를 결사옹위하는데 기여한 한 당일군의 투쟁자료가 발굴되였다.

이름은 리응선, 당시 만포군당 조직부장…

60여년세월의 이끼속에서도 그의 영웅적삶을 진주보석인듯 찾아주고 빛내주는 위대한 사랑을 가슴뜨겁게 안아보며 우리는 수령결사옹위의 위훈이야말로 혁명을 위하여 세운 가장 큰 위훈이며 그 공적을 조국은 영원히 잊지 않는다는 력사의 진리를 말하게 된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해방전쟁의 가렬한 불길속에서 우리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이 발휘한 수령결사옹위정신과 조국수호정신, 대중적영웅주의는 조국의 부강번영과 주체혁명위업의 승리를 위한 우리의 투쟁에서 더없이 귀중한 사상정신적재부로 됩니다.》

미제를 때려눕힌 우리의 전승사는 강철의 령장이신 김일성동지께서 전쟁국면의 근본적전환을 마련하신 고산진의 45일간을 떠나 론할수 없다.

주체39(1950)년 11월초, 조국해방전쟁은 이미 제3계단에 들어섰지만 수적으로, 기술적으로 우세한 적들은 아직 조국땅 깊숙이 들어와있었고 조선의 운명은 생사를 가늠하기 어려운 엄혹한 갈림길에 놓여있었다.

바로 그러한 때 고산진의 험준한 산발들과 깊은 골짜기들을 누벼가는 사람들이 있었다.최고사령부 선발대 성원들과 리응선동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 국가기관들과 많은 공장, 기업소들, 후퇴하여온 인민군부대들이 집결되여있는 전략적후방기지일뿐아니라 전선과의 지리적련계에 유리한 자강도에서 전쟁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한 사업을 조직령도하시기 위하여 최고사령부지휘처를 창성으로부터 고산진으로 옮길것을 결심하시고 선발대를 고산진에 파견하시였던것이다.

항일혁명투사 공정수동지를 책임자로 하는 선발대가 수령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과업은 현지인민들과 일군들에게 철저히 의거하여 최고사령부지휘처를 정하는것이였다.

그런데 선발대가 만포에 도착해보니 반당반혁명분자였던 군의 책임일군은 이미 가족과 함께 이웃나라에 피신가고 없었다.20대의 젊은 일군인 리응선동무가 군당사업을 책임지고 인민들에게 우리 사는 이 땅을 피로써 지켜내자고 사상교양사업을 앞세우면서 자체방위준비와 전시생산, 전선원호를 위한 투쟁을 이끌며 분망한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항일투사동지로부터 사연을 듣게 된 리응선동무는 아래일군에게 과업을 줄수도 있었지만 이 책임적인 사업을 솔선 자진하여 맡아나섰다.

긴말은 없었으나 그의 투철한 립장과 자세에서는 전쟁승리를 위하여 우리 일군들이, 인민이 하여야 할 일은 많고많으나 그것은 최고사령관동지를 잘 모시는 일보다 중요치 않다, 최고사령관동지만 계시면 조선은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고야만다는 신념이 울리여나오고있었다.날카로우나 열정을 뿜는 눈, 굳세여보이는 턱마저 리응선동무가 지닌 대쪽같은 신념에 대해 말해주고있었다.…

생소한 지역에 들어온 최고사령부선발대를 인도하여 리응선동무는 며칠동안 쉬지 않고 앞장에서 산발을 타면서 여러가지 정황과 조건을 타산하여 제일 적합한 장소를 찾아나갔다.밤이면 밤대로 등잔불심지를 돋구어가며 고산진의 주민구성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였다.매사에 깐깐하고 구체적이며 내밀성이 있는 일군인 그는 정성을 다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리용하실 최고사령부의 집무탁과 의자 등도 마련하였다.

모든것이 어렵고 시간이 촉박한 전시의 조건에서도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는 사업에서 조금이라도 미흡한것이 없겠는가를 따져보고 또 따져보며 면밀히 대책을 세워나가는 리응선동무의 순결무구한 충정의 세계에 최고사령부 선발대 일군들은 얼마나 감동되였던가.

그는 자기가 하는 사업내용을 군당일군들에게도, 사랑하는 안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최고사령부의 안전을 지키자면 그렇게 하는것이 옳다고 여겼기때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고산진에 도착하신 날은 주체39(1950)년 11월 4일이였다.열네살때 건느시던 그날엔 망국의 한으로 얼어붙었던 력사의 압록강이 지척에서 처절썩 기슭을 치고있었다.

며칠전 최고사령부 군관, 장령회의를 소집하시고 새로운 반공격준비를 갖출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면서 우리뒤에는 압록강이 흐르고있다고, 지난날 조선의 수많은 아들딸들이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피눈물을 뿌리면서 이 강을 건넜다고 하시며 우리는 선조의 백골이 묻혀있고 혁명선렬들의 붉은 피가 스며있는 조국땅을 떠나 또다시 압록강을 건늘수 없다고,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조국땅에서 원쑤와 싸워야 한다고 선언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필승의 기상에 넘치시여 고산진에 오시였다.

리응선동무는 먼길을 오신 그이께 정중히 인사드리였다.한 일군이 만포군당 조직부장동무가 최고사령부 선발대와 같이 고산진에 들어와 최고사령관동지를 모시게 될 이 집을 정하고 앞으로의 정황을 예견하여 림성골에도 자리를 잡아놓은데 대하여 보고드리였다.

그의 손을 굳게 잡으시며 《조직부장동무, 고맙소.》라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집과 주변을 둘러보시고 집도 좋고 위치도 좋다고 하시며 군당 조직부장동무가 우리 일을 도와주느라고 수고하였다고 거듭 치하하시였다.

리응선동무는 몸둘바를 몰랐다.오매에도 그리던 수령님을 뵈온것만 해도 영광은 끝없는데 한없이 자애로우신 그이께서 자기의 작은 소행마저 헤아리시며 과분한 치하를 주시니 송구스럽기 그지없었다.하여 그는 그저 백성된 도리를 하였을뿐이라고 진정을 터치였다.그리고는 최고사령관동지의 건강하신 모습을 뵈옵게 되니 정말 기쁘고 새힘이 솟구친다고,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건강하셔야 우리 군대와 인민이 이 전쟁에서 미국놈을 쳐부시고 승리한다고 아뢰이면서 부디 건강하시기를 간절히 말씀드리였다.

그것은 그만의 진정이 아니였다.전쟁이 간고해질수록 최고사령부에로 더욱 마음달려가며 수령님의 안녕만을 바라고있는 온 나라 인민의 간절한 소원이였다.원래 말수더구가 적은 리응선동무였지만 인민을 대변하여 이 말만은 꼭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그의 진심을 감사히 받아주신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말씀하시였다.

《나도 동무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니 기쁩니다.당과 수령을 지지하여 싸우는 훌륭한 인민이 있는 한 이 전쟁은 반드시 우리 인민의 승리로 끝날것입니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시여 조국해방전쟁승리는 시간문제이며 우리는 강력한 반타격력량을 편성하고 재진공작전준비를 마감단계에서 끝내가고있다고 하시면서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줄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리응선동무는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군안의 일군들에게 알려주고 철저히 집행하겠다고 아뢰이고 최고사령부가 고산진에 있는 기간 군당에서 선차적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할 사업에 대한 자기의 결심을 보고드리였다.

그가 떠난 다음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처음으로 만나신 리응선동무에 대하여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만포군당 조직부장이 좋은 사람입니다.그가 나에게 큰 고무와 힘을 주었습니다.오늘처럼 엄혹한 정세속에서 우리 당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따르는 사람이 진짜애국자이며 충신입니다.

그러시고는 깊은 감회에 잠기시여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로상에서 락동강까지 나갔다가 최고사령부로 찾아오는 인민군군인들과 강원도 법동농민에게서 큰 고무를 받았는데 오늘 국경지대 고산진에서 군당 조직부장을 만나 그에게서 다시한번 새로운 신심과 큰 고무를 받았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평가, 그것은 곧 당과 조국의 평가, 력사와 인민의 평가이다.

하다면 우리 조국의 간고한 시기에 수령님께 신심과 힘을 드린 리응선동무의 장한 소행은 과연 어디에 뿌리를 두고있었던가.

민족수난의 세월 심심산골인 초산군 구평리에서 태여난 그는 잔뼈도 굳기 전에 징용으로 발전소건설장에서 고역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였다.망국민의 설음과 고초가 생의 자욱마다에 피눈물되여 고이던 시절이였다.

그에게 삶의 보람과 희열을 안겨준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펴주신 전민항쟁의 불길이였다.그는 만포지구에 조직된 전민항쟁조직인 만포청년결사대에 망라되여 항일유격대를 돕고 반일투쟁에 직접 참가하는 과정에 위대한 수령님이시야말로 조국해방의 구성, 민족의 태양이심을 심장으로 절감하게 되였다.해방후에는 초산군의 초대공청위원장, 군당 부부장을 거쳐 만포군당 조직부장으로 건국사업에 열중하면서 수령님은 우리 조선의 힘이시고 백승의 기치이심을 신념으로 간직하게 되였다.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귀중한 생활체험과정에 우리 수령님은 곧 조국이시고 수령결사옹위에 자기자신과 가정과 민족의 휘황한 래일이 있다는 진리를 뼈에 새긴 리응선동무였다.

하기에 그는 지체없이 군안의 일군들을 모여놓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정중히 전달하였으며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 한 우리는 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교양을 더욱 심화시켜나갔다.특히 군당위원회사업의 주선을 최고사령부의 안전을 보장하는데로 지향시키고 무장자위대를 직접 지휘하여 최고사령부의 주변호위임무를 수행하였다.

만포에서 고산진은 60리길이다.리응선동무는 군안의 인민들을 전쟁승리에로 떠미는 사업을 조직해놓고는 압록강안으로 뻗은 도로를 따라 고산진으로 향하군 하였다.그는 최고사령부근처에 스스로 정한 초소를 지키며 순간의 해이도 자기자신에게 허용치 않았다.눈은 충혈지고 입술은 부르텄다.잠시 쪽잠에 들었다가도 소스라치며 권총을 잡고 용수철인듯 튕겨일어나군 하는 그였기에 어느날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놋그릇들에 정히 담아 이고 온 안해마저 깜짝 놀래운적도 있었다.

새벽을 맞을 때면 그의 옷섶과 바지가랭이는 언제나 북방의 찬이슬에 푹 젖어있군 하였다.

리응선동무는 전사로서의 도리를 다해가기 위해 애썼다.위대한 수령님의 안녕을 바라며 옥백미를 알알이 고르고고를 때에도, 산천어와 산나물, 록두와 기장쌀, 절인 송이버섯들을 품들여 마련해갈 때에도 전사의 마음은 진할줄 몰랐다.

그러던 11월 7일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그날은 우리 대오안에 잠입한 간첩도당의 책동으로 고산진이 적비행대의 대공습을 받은 다음날이였다.미제의 공중비적들이 만포로부터 고산진까지 주단식폭격을 들이댄 그날 만포에 있던 리응선동무의 집도 허물어졌다.적들이 뿌린 나팜탄에 삼단같이 치솟는 불길속에서 안해와 어린 아들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때에조차 그는 고산진을 지키고있었다.

최고사령부 집무실에서 리응선동무를 만나주신 수령님께서는 림성골에 같이 가보려고 불렀다고 하시면서 다음의 내용으로 교시하시였다.

어제 갑자기 적비행대가 달려들어 고산진에 폭격을 가한것은 적들이 최고사령부의 현 위치를 알고있다는것을 의미한다.우리가 여기에 그냥 있으면 적비행대의 폭격에 서문거리가 파괴되고 인민들의 생명재산에 큰 손해를 줄수 있다.…

자신의 신변안전에 앞서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념려하시는 수령님을 우러르는 리응선동무의 가슴은 격정으로 달아올랐다.진정 그이는 최고사령관이시기 전에 자애로운 인민의 어버이이시라는 생각이 밀물처럼 차올랐다.그럴수록 리응선동무는 최고사령부를 빨리 안전한 곳에 옮겨야 한다는것을 뼈저리게 자각하였다.

림성골은 우리 선발대와 같이 만포군당 조직부장동무가 이미 예비적으로 잡아두었던 곳이라고 일군들에게 알려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직부장동무, 림성골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시오라고 하시며 그를 내세우시였다.

리응선동무는 림성골은 주변에 높은 9개의 봉우리가 둘러싸여있고 골짜기막바지는 막혀있으며 오른쪽에 닭알모양의 봉우리가 솟아있는 좁은 골짜기이기때문에 적비행대가 달려들지 못하며 골짜기어귀만 봉쇄하면 외부성원들도 들어오지 못한다는것을 설명해드리였다.여러차례의 편답과정에 그 묘한 지세에 절로 감탄하면서 절세의 위인을 위해 조선의 하늘이 마련한 자리라고까지 생각하였던 리응선동무였다.

수령님께서는 조직부장동무가 최고사령부위치를 정하기 위해 수고가 많았다고 하시며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요즘 일부 비관주의자, 패배주의자들은 마치도 나의 안전을 생각하는것처럼 하면서 최고사령부가 국경넘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쓸개빠진 소리를 줴치고 적들은 내가 압록강을 넘어간다고 거짓나발을 불어대고있습니다.

방안을 드르릉 울리는 백두령장의 그 음성을 듣고 리응선동무는 저도 모르게 분격하여 우리 인민들은 적들의 거짓나발에 침을 뱉고있으며 장군님만 믿고 전쟁승리를 위해 모든 힘을 다하고있다고 말씀드리였다.

우리 수령님께서 평범한 당일군과 뜻깊은 이야기를 나누신 날의 전날 저녁에 이런 일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외국의 중요손님과 자리를 같이하신 저녁식사도중에 박헌영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리고 자기는 능력도 없고 자격이 없기때문에 외무상을 못하겠으니 해임시켜달라는 제기를 감히 내뱉았다.

위대한 수령님의 안광에 푸른 섬광이 일었다.그이께서는 쾅 밥상을 치시며 혁명이 어려운 때에 혁명을 못하겠다고 하는것은 변절이다, 변절자는 우리에게 있을 자리가 없다고 단죄하시였다.…

혁명위업에 대한 충실성, 당과 수령에 대한 충정심은 결코 직급의 높낮이에 따르는것이 아니였다.나라의 외무상과 한 지방당조직의 부장, 그사이에는 현격한 직급상차이가 있으나 충신이 누구이고 간신, 배신자가 누구인가를 전쟁의 엄정한 현실은 명명백백히 갈라내고있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크나큰 믿음과 정을 안으시고 군당 조직부장을 새삼스레 여겨보시였다.

그날 인민에 대한 한없는 존경과 고마움을 우리 수령님께서는 다음의 소박한 말씀으로 리응선동무에게 표현하시였다.

고산진인민들은 참 좋은 사람들이라고.

다음날 최고사령부지휘처는 림성골로 옮겨지게 되였다.

며칠후부터 림성골뒤쪽의 한 골짜기에서는 연기가 피여올랐다.처음 산불로 여기고 달려간 최고사령부 경위대원들은 놀랐다.심산속 산중턱에 눈에 잘 뜨이게 여러동의 위장건물을 지어놓고 연기를 피워올리고있는 리응선동무를 만났던것이다.림성골상공으로 날아드는 적비행대를 유인하려는 의도가 헤아려졌다.경위대원들인 자기들마저 생각 못한 문제를 앞질러 포착하고 말을 앞세우기 전에 실천해가는 군당조직부장이 더없이 미더웁고 돋보여 그들은 리응선동무를 와락 부둥켜안았다.

력사의 땅 고산진에서 우리 수령님 그으신 붉은 화살표따라 전 전선에 멸적의 뢰성이 울렸다.재진격하는 인민군대의 사단, 군단들이 울려가는 만세의 함성이 전선천리에 메아리쳤다.마침내 12월 6일에는 평양이 해방되였다.

이곳을 떠나시던 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산진은 전쟁의 승리가 마련된 잊지 못할 고장이라고 하시면서 만포군당 조직부장의 신세를 많이 지고 간다는 교시도 남기시였다.

조국의 가장 어려운 나날에 최고사령부를 목숨걸고 보위해나섰던 리응선동무는 삼가 몸가짐을 바로하고 우리 수령님 가시는 평양하늘을 우러렀다.조국과 전쟁의 운명을 책임지시고 또다시 준엄한 싸움길을 헤쳐가시는 그이께서 부디 안녕하시기를 전사는 간절히 소원하였다.

참된 혁명전사 리응선동무는 삶의 목적이 수령결사옹위에만 있은듯 불같은 생을 살고 27살의 너무도 젊은 나이에 우리곁을 떠나갔다.전쟁이 끝난 다음해 혁명대오속에 잠입한 원쑤들을 추적하던 길에서 희생되였던것이다.

 

* *

 

우리는 또 하나의 례사롭지 않은 사실도 전하게 된다.수령결사옹위의 혁명전사 리응선동무가 혁명투사 공영동지의 딸인 공국옥녀성의 남편이라는 사실이다.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을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로, 우리 수령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모시는 혁명의 려명기에 그분들의 손길아래 성장하면서 뚜렷한 공적을 세운 결사옹위의 혁명전사 공영동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영동지를 꿈에도 잊을수 없는 사람이라시며 늘 추억하시였을뿐아니라 해방직후부터 20여년간 200여차례의 교시를 하시며 투사의 일점혈육인 공국옥녀성을 애타게 찾고찾으시였다.

전화의 나날 창성을 떠난 최고사령부가 고산진으로 들어가며 벽동땅을 지날 때마저 벽동땅에 오니 공영이 생각이 난다고 하시면서 그전에 우리가 항일혁명투쟁을 할 때 장수처럼 힘이 세고 격술을 잘하는 공영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나와 아버지의 신변호위를 도맡아했다고, 여기 어디에 공영의 가족들이 살고있겠는데 찾을길 없다고 안타까와하시던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바로 그 시각부터 얼마쯤 시간이 흘러 고산진에 도착하신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리응선동무였다.그때만이 아니라 고산진에서 여러차례나 수령님의 접견을 받는 영광을 지닌 그였다.

만약 리응선동무가 한번만이라도 자기의 장인이 공영동지이고 안해 공국옥이 현재 만포에 살고있음을 이야기해드렸더라면 우리 수령님 얼마나 기뻐하시였으랴.변심을 모르는 진짜애국자인 리응선동무가 바로 공영동지의 사위임을 아셨더라면 어버이수령님 얼마나 대견해하시였으랴.

하지만 최고사령부결사옹위의 참다운 전사 리응선은 가정사를 국사와 섞지 않았다.그에게는 어떻게 하면 최고사령관동지를 더 안전하게, 보다 잘 모시겠는가 하는 오직 한생각뿐이였다.

추호의 사심도 모르는 충신, 바로 이것이 리응선렬사가 보여준 수령결사옹위의 혁명전사들이 지닌 또 하나의 성격적특질이다.

령도자결사옹위의 첫 세대인 공영동지가 장백의 이름모를 바위밑에 쓰러지면서 남긴 뜻이 무엇이였던가.주작봉마루에서 영생하는 항일혁명투사들이 세기를 이어 들려주는 심장의 메아리는 무엇인가.

그들은 수령결사옹위를 자기 가문의 후대들만이 아닌 이 나라의 후세들모두에게 부탁하고 위임하였다.

수령결사옹위정신은 어느 한두 집안이나 세대가 아니라 백두산식솔이 대를 이어 목숨처럼 지켜가는 이 나라의 유산으로 되였다.

수령결사옹위, 그것은 오늘날 더더욱 우리 조국과 백두산식솔의 운명문제로 나서고있으며 혁명의 성패를 좌우하는 근본중의 근본으로 되고있다.

미제의 무분별한 제재압박과 도발광증을 짓부시고 혁명의 최후승리를 위한 오늘의 전인민적인 총결사전에 산악같이 떨쳐나선 새 세대 결사옹위전사들에게 혁명의 전세대들의 영웅적인 삶은 참으로 귀중한 인생의 교과서로 되고있다.수령결사옹위의 위훈은 영원히 영광의 꽃다발우에 빛난다.참다운 수령결사옹위전사를 조국과 이 땅의 후손만대는 영원히 기억할것이다.

본사기자 박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