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11월 2일 로동신문

 

부모는 자식의 첫 스승

 

예로부터 훌륭한 자식의 뒤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고 하였다.이것은 결코 우연한 말이 아니다.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이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충실히 복무하는 역군이 되는가 못되는가 하는것은 학교교육, 사회교육과 함께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는가 하는데 따라 중요하게 좌우된다.

사람들은 부모와 형제를 비롯한 가까운 혈육들과 같이 한가정에서 생활하는 과정에 가풍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인사는 어떻게 하고 옷차림과 몸단장은 어떻게 하며 집안과 마을은 어떻게 꾸려야 하는가 하는것으로부터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그 모든것을 자식들은 부모의 교양과 실천적인 모범을 통하여 배우고 본받게 된다.그런 점에서 볼 때 부모는 누구에게나 첫 스승이라고 말할수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자녀들을 잘 키우는것은 부모들이 당과 혁명, 사회와 인민앞에 지닌 중요한 임무입니다.》

얼마전 우리는 리철민영웅의 담임교원이였던 리인숙동무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였다.

동지들을 위하여 21살의 꽃다운 청춘을 서슴없이 바쳐 터지는 수류탄을 몸으로 덮은 리철민영웅, 치명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가던 마지막순간에도 희미해지는 의식을 가다듬으며 멀리서 안겨오는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우러러 정중히 몸을 가누던 병사의 그 마지막모습을 어느 누구인들 잊을수 있겠는가.

10여년세월이 흘렀건만 리인숙교원은 생시와도 같이 제자의 모습을 떠올리였다.

동무들을 자기 형제처럼 위해주던 인정많은 학급장, 어디서나 막힘이 없던 팔방미인, 힘든 일에 늘 먼저 어깨를 들이밀던 그 헌신…

《철민학생과 함께 광복의 천리길답사행군을 갔던 교원들과 학생들은 지금도 늘 다른 동무들의것까지 배낭을 3~4개씩 메고 앞장에서 생눈길을 헤치며 대렬을 이끌군 하던 그의 모습을 잊지 못하고있습니다.》

리철민영웅을 원형으로 한 중편소설 《너와 나》까지 읽고나니 더욱더 영웅의 부모를 만나보고싶어 우리는 중구역 동흥동 40인민반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다.영웅의 아버지 리응화동무가 들려준 이야기는 참으로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리철민영웅이 중학교 1학년생이 된 어느해 가을이였다고 한다.

수업후에 주변산에 나무심기를 하러 갔다가 학급동무들과 함께 돌아오던 철민영웅의 곁에 차 한대가 멈춰섰다.아버지네 기업소차였다.운전사가 문을 열어주자 그는 차안에 재빨리 올라탔다.바로 그 일로 하여 리철민영웅은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되는 벌을 섰다고 한다.그날 영웅의 아버지는 이렇게 꾸짖었다고 한다.

《학급장인 네가 동무들을 버리고 혼자만 타고오면 함께 걸어오던 그 애들이 갑절로 힘들것이라는것을 생각해보았냐? 그리고 네가 그런 특세를 부리면 친하던 동무들과도 인차 멀어지게 된다.》

어려운것은 네가 도맡아하고 좋은것은 동무들에게 양보해야 한다.네가 웃을 때 동무가 울수 있다는것을 생각하고 네가 배부를 때 동무가 배고플수 있다는것을 헤아릴줄 알아야 진짜 좋은 사람이고 동무라고 말할수 있다.…

이것이 리철민영웅의 부모가 늘 아들에게 당부한것이였다.

사람들은 어려서 부모의 슬하에서 자라는 과정에 부모의 말과 행동을 생활의 거울로 삼으며 그것을 어른이 된 다음에도 잊지 않는다.

리철민영웅은 부모의 당부를 지켜 동지들에게 자기의 열과 정을 깡그리 바쳤다.좋은 모든것을 양보하였다.그러나 한가지만은 양보하지 않았다.

한발자국만 옆으로 비켜섰더라면 얼마든지 살수 있었지만 그는 그 위기일발의 순간을, 가장 위험한 그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동지들을 위하여!

리철민영웅이 남긴 유물들가운데는 입대하는 날 그가 부모와 동생들앞에서 다진 결의와 노래를 록음한 카세트가 있다.그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준엄한 시기가 닥쳐오면 장군님을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이 되겠습니다.

나를 낳아 정성껏 키워주며 남모르는 속을 많이 태우신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과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조국의 장한 아들이 되겠습니다.…》

동지들을 위해 값높은 청춘을 바쳐 조국과 인민이 기억하는 참된 아들이 된 리철민영웅, 그뒤에 서있는 훌륭한 부모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구장땅의 《영웅집》을 생각하게 된다.

김광철영웅이 희생된 후 영웅의 부모는 전사한 맏아들을 대신하여 초소의 숱한 아들들을 스스로 품에 안았다.

그들을 위해 가정의 모든것을 다 바쳐가리라 굳게 마음다진 영웅의 부모는 맏아들이 섰던 초소에 그의 동생을 세웠다.그 나날에 맏딸은 물론 둘째딸도 최전연초소군관의 안해가 되였다.

자식들모두를 최전연으로 떠나보낸 후에도 영웅의 부모는 원군사업을 더 힘있게 벌렸다.《영웅집》은 《원군집》으로도 불리우게 되였다.

영웅의 어머니는 70이 넘었지만 오늘도 석탄산을 높이 쌓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싶어 일손을 놓지 않고있다.

김광철영웅의 가정은 혁명화된 가정이라고, 동생을 형이 섰던 초소에 세우고 누이동생들까지 군관에게 시집보낸것을 보면 김광철영웅의 부모가 훌륭하다고 높이 평가하신 우리 장군님의 그 치하에는 얼마나 깊은 뜻이 담겨져있는것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오중흡동무를 놓고 가정혁명화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하시면서 오중흡동무가 그처럼 쇠소리가 나게 혁명을 할수 있은것은 일찌기 오씨가문의 어른들로부터 좋은 교양을 받은데 그 주되는 요인이 있다고, 오씨네 집안에서 숱한 젊은이들이 쟁쟁한 혁명가로 성장할수 있었던 그 배경에는 그들에게 정확한 인생행로를 그어준 오태희 등 4로인형제의 피어린 로고가 어려있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당시 왕청을 포함한 간도전역에서 첫 손가락으로 꼽은 애국혁명일가가 바로 오태희일가였다.이 가문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항일혁명에 참가하였다.지하공작원이나 인민혁명군대원으로 활동하다가 희생된 사람들만 하여도 20명가까이 되였으니 나라를 위해 바친 이 가문의 애국충정이 과연 어느 정도였겠는가.

오씨가문에서는 자녀들에 대한 교양을 매우 중시하였다고, 그 가문에서는 도덕교양을 잘하였다고 하시며 그것이 바로 애국주의교양, 반일교양, 혁명교양을 위한 튼튼한 기초로 되였다고 하신 우리 수령님의 금언같은 교시는 또 하나의 귀중한 생활의 철리를 가르쳐준다.

부모가 자식들을 미래의 훌륭한 역군으로 키워야 진정한 아버지, 어머니로 될수 있으며 그러한 사람만이 당과 조국을 위하여 자기의 본분을 다한 애국자라고 말할수 있다고!

그렇다.동지애도, 집단에 대한 애착과 헌신의 감정도, 향토애와 조국애도 다름아닌 가정교육을 자양분으로 하여 움트고 자라나는것이다.

자식의 첫 스승인 부모, 바로 그들이 훌륭할 때 자식들은 인생의 첫걸음도 훌륭하게 떼게 되는것이며 한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당과 조국의 훌륭한 아들딸이 되는것이다.

본사기자 조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