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11월 22일 로동신문

 

못 잊을 사연 전하는 력사의 땅

토산군에 어린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불멸의 자욱을 더듬어

 

토산군은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못 잊을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혁명사적들이 어려있는 고장이다.그래서인지 토산군으로 들어서는 우리의 마음은 숭엄해졌다.이런 심정을 헤아린듯 군의 일군이 눈부신 해빛을 받아 빛나는 현지지도사적비앞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토산땅과 더불어 길이 전해지는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불멸의 자욱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일군의 목소리는 격정에 젖어있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천만년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주체의 태양으로 높이 모시며 수령님과 장군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끝없이 빛내여나가야 합니다.》

주체38(1949)년 9월 21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토산군에로의 현지지도의 길을 떠나시였다.

그때로 말하면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병환에 계시던 때였다.더우기 38゜선일대에서 매일같이 감행되는 적들의 도발책동으로 하여 정세는 극도로 긴장하였다.

일군들이 거듭 만류하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로 정세가 긴장하기때문에 그곳에 가보자는것이라고, 지난해 우리가 갔을 때 그곳 인민들과 다시 가겠다고 약속을 하지 않았는가고, 인민들이 기다리고 요구하는 길이라면 어데나 가보아야 한다고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나라없던 지난날 일제와 지주놈의 압박과 천대속에 시달리며 쪼들리는 농민들의 한숨소리 가실날 없던 토산땅이였다.그런 땅에서 사는 인민들의 생활이 너무도 가슴에 걸리시여 전해에 그곳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헤여지기 아쉬워하는 그 고장 농민들의 마음을 헤아리시여 후날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시였던것이다.

이렇게 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길을 떠나게 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때에도 여느날과 다름없이 문밖으로 나가시여 짙은 병색을 애써 웃음속에 감추시며 위대한 수령님을 바래드리시였다.김정숙동지께서는 서계시기조차 어려운 상태였다.하지만 언제 한번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신적이 없는 김정숙동지께서는 오직 위대한 수령님께서 먼길에 안녕하시기만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이를 바래드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또다시 모신 토산땅은 만세의 환호로 끓어번졌다.그이께서는 인민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하시고 마중나온 일군들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였다.그러시고는 먼길에 쌓인 피로도 푸실사이없이 조성된 긴장한 정세도 료해하시고 이 고장 인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부침땅을 늘여 알곡생산을 높이기 위한 문제, 논면적을 늘이고 벼의 수확고를 높이기 위해 국가자금에 의한 관개공사와 함께 농민들의 자체힘에 의한 관개공사를 힘있게 벌릴데 대한 문제, 누에고치생산을 늘이며 집짐승도 많이 길러 인민생활향상에 이바지하게 할데 대한 문제…

그 시각 김정숙동지의 병세는 더욱 위급해졌다.

위대한 수령님께 이 사실을 알려드려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는 일군에게 김정숙동지께서는 알리지 말라고, 내가 좀 아프다고 해서 장군님 사업에 지장을 드려서야 되겠는가고 만류하시였다.정녕 어버이수령님께서 곁에 계시였으면 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시였으랴.하지만 조국과 인민을 먼저 생각하신 조선의 위대한 혁명가, 항일의 녀성영웅이시였다.

일군이 더는 참지 못하고 송수화기를 들자 그이께서는 흐려지는 의식을 다잡으시며 정 전화를 걸겠으면 장군님께서 언제 돌아오실수 있는가 그것만 알아보아달라고, 내가 앓는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아달라고 이르시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 일군들은 평양으로 한시바삐 가시자고 안타까이 말씀드리였다.그러나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 중부지대는 우리가 밟아보지 못한 길이 많다고 하시면서 현지지도의 길을 또다시 이어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타신 차가 드디여 저택에 도착하였다.

연신 울리는 경적소리, 그 소리에 어김없이 정문으로 나오시며 위대한 수령님을 정중히 마중하시던 김정숙동지이시였다.하지만 그이께서는 이미 혼수상태에 있었다.얼마후 어느 정도 의식을 회복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어버이수령님께 장군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 저때문에 너무 근심마시고 어서 돌아가 보시던 일을 마저 보십시오라고 말씀하시였다.너무도 밝은 미소, 너무도 평온한 말씀이였다.

9월 22일 새벽 위대한 수령님을 위하여, 조국과 혁명, 인민과 동지들을 위하여 그토록 뜨겁게 고동치던 김정숙동지의 위대한 심장은 고동을 멈추었다.

근 70년전의 눈물겨운 사연을 이야기하는 일군의 눈굽은 젖어있었다.

토산군의 중심에는 사연깊은 삼지연못가에 서계시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모습을 형상한 모자이크벽화가 있었다.

벽화량옆으로는 아담한 살림집들이 늘어서있었다.어느 집을 가보아도, 그 누구를 만나보아도 지난날 그리도 못살던 토산군인민들이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은덕으로 잘살게 되였다고 말하면서 북받치는 격정을 금치 못하는것이였다.

일군은 우리에게 이런 가슴뜨거운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1960년대 초엽의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위대한 장군님과 함께 현지지도의 길에서 토산군을 찾으시였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차창밖을 내다보시며 갈리신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49년 9월에 토산군인민들의 생활을 추켜세우시려고 몸소 현지에 나오시였다가 어머님과 영결하시였다고, 그때 우리 어머님께서는 몸이 몹시 불편하시였으나 현지지도를 하시려고 토산지방으로 떠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문밖에까지 나가시여 바래워드리였다고, 그런데 그 바래움이 마지막바래움으로 될줄이야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고, 나는 그때 눈에서 피가 나도록 울었지만 그 설음이 일생 가셔질것 같지 않다고.

이윽고 어버이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시여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 고장은 내가 잊을수 없는 곳이라고, 내가 토산지방 인민들을 잘살게 해보려고 1949년 9월에 바로 이곳에 왔을 때 혁명에 무한히 충직하였던 김정숙동무를 잃었다고 나직이 뇌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 그때의 그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어머님께서 생전에 바라시던 그 뜻이 이 땅우에 현실로 꽃피게 하실 자신의 심정을 말씀올리시였다.

그날 김정숙동지에 대한 가슴저린 추억으로 시작된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 사이의 대화는 토산군인민들의 살림살이문제에로 이어졌다.정녕 김정숙동지께서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길을 흔연히 바래워드리신것은 하루빨리 우리 인민들이 잘살게 될 날을 바라서가 아니였던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 토산군의 인민생활을 높일수 있는 방도를 두고 자신의 생각을 말씀드리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문제해결의 근본방도를 옳게 찾았다고, 인민을 믿고 인민을 발동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장군님의 의사를 긍정해주시였다.

인민의 행복을 꽃피우시려는 어버이수령님의 그 념원을 이 땅우에 현실로 펼치시려 위대한 장군님께서 새 세기에 토산땅에 새기신 강행군의 자욱자욱은 또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주는가.

언제나 토산군을 마음속에 안으시고 베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하늘같은 그 은정은 토산땅에 충정과 보답의 열의가 대하마냥 굽이치게 하였다.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속에서도 군이 몰라보게 달라지고 후손들도 덕을 볼수 있는 귀중한 재부들이 마련되게 된것은 이곳 일군들과 근로자들의 심장속에 타번지는 수령의 유훈관철의 신념이 안아온 귀중한 결실인것이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뜻을 꽃피우는 길이라면 산도 떠옮기고 돌우에도 꽃을 피울 열화같은 신념으로 심장의 피를 끓이는 일군들과 근로자들, 이런 사람들이 굳건히 지켜섰기에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불멸의 자욱이 어린 력사의 고장은 날로 자기의 면모를 일신하고있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고귀한 유훈,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절절한 념원이 경애하는 원수님의 령도로 더욱 찬연히, 아름답게 꽃펴나고있기에 우리 조국은 날을 따라 번영할것이다.

본사기자 김성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