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2월 22일 로동신문

 

주체시대를 빛내이시며

우리의것이 제일이라고 하시며

김 종 집

 

우리 장군님께서 지니고계시는 위인적풍모의 여러 측면에 대하여서는 이미 출판물이나 방송을 통하여 수많이 소개되여 세상이 다 알고있습니다.하지만 저는 지난해 9월 우리 공장을 몸소 찾아오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몸가까이 만나뵙고 그이의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으며 심장으로 느낀 몇가지 사실만은 꼭 사람들에게 알리고싶어 펜을 들게 되였습니다.

주체88(1999)년 9월 23일이였습니다.

한낮무렵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곧 우리 6월1일청년전기기구종합공장을 찾아주신다는 감격적인 소식이 온 공장에 전해졌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여러 공장, 기업소들을 현지지도하셨다는 소식에 접할 때마다 우리 공장에도 그이를 모셨으면 하고 간절히 소원하던 우리들이였지만 영광의 그 시각이 정말로 이렇게 올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동안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황황히 정문으로 달려나갔습니다.

오후 1시 30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타신 승용차가 우리 공장 수자조종장치 수자분공장 함조립직장현관앞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중나온 도당의 책임일군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누신 그이께서는 인사를 올리는 나의 손도 따뜻이 잡아주시였습니다.

《지배인동무입니까.수고합니다.》

잠시후 나에게서 공장의 실태를 초보적으로 료해하고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서 공장을 돌아보자고 하시며 조립직장안으로 걸음을 옮기시였습니다.

건물안으로 들어가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립직장을 환하게 꾸리고 조립대도 군대식으로 전개했다고 못내 기뻐하시였습니다.

이어 조립대앞에 다가가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립중에 있는 제품들을 료해하시였습니다.

먼저 우리 공장에서 만드는 《가정용전압조절기》에 대한 해설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아주 잘 만들었다고 치하하시며 이렇게 절체기를 두개 달아 부하를 절반씩 감소시키면 과저전압의 《침입》을 받아도 텔레비죤이나 랭동기들이 심장마비에 걸리지 않을것이라고 웃음담아 말씀하시였습니다.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찌나 통속적으로 소탈하게 말씀하시는지 나는 어느새 긴장해졌던 마음이 스스로 풀리는것을 느꼈습니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한 전기제품을 가리키시며 이건 처음 보는건데 어디에 쓰자고 만들었는가고 물으시였습니다.그이께서 물으시는 제품으로 말하면 《비상전원안전기》라는 전기용품이였는데 이것은 정전이 되는 경우 여기에 충전되였던 직류전원이 교류(220V)로 다시 변환되여 하던 작업을 원만하게 할수 있게 하는 사명을 수행하고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료해하고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습니다.

《〈비상전원안전기〉를 공장자체로 연구하여 만들었다는데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것 같습니다.

병원수술장들에서 수술을 하는 도중에 정전이 되는 경우 이런 〈비상전원안전기〉가 있으면 수술을 계속할수 있을것입니다.모사전송기나 콤퓨터를 쓰는 단위들에도 이런것을 만들어주면 좋을것입니다.》

이어 외국에서 생산된다는 이 제품의 지속시간(불이 간 후 220V로 다시 방전되는 시간)에 대해서까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러면 우리의것이 더 우월하지 않은가고, 비록 외형이 수입제처럼 매끈하지는 못해도 내용이 좋으면 그만이라고 하시며 더욱 기뻐하시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 그이께서 우리가 만든 제품을 두고 왜 그렇듯 기뻐하시는지 그 뜻을 다는 알수 없었습니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걸음을 옮기시여 배전반과 분전함을 조립하는 로동자들에게로 다가가시였습니다.순간 나는 좀 당황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이께서 공장에 오시면 우리 공장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들을 다 보여드리고싶은 욕망에서 배전반과 분전함조립대도 차려놓았습니다.그런데 막상 전개해놓고보니 나자신도 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당시 강판이 걸려 빈 도람통과 자투리철판들을 잘라 만들다보니 정말 볼 모양이 없었습니다.

그런것을 그이께 보여드리자니 부끄러움에 앞서 죄송스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이께 이 사실을 말씀드리면서 내가 일을 쓰게 하지 못하여 제품이 볼품없다고 사죄의 말씀을 올렸습니다.

그이께서는 조용히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습니다.

《전기는 발전기에서 나오지 배전반이나 분전함에서 나오는것이 아닙니다.나는 중소형발전소건물을 요란하게 짓고 배전반같은 부대설비들이나 번쩍거리게 만들어놓고 자랑하는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시고는 자신께서 최근 어느 한 곳에 가보니 요란하고 번쩍거리는 수입제배전반이 있었다고, 그런데 고장이 나서 가동하지 못하고있었을뿐아니라 거기에 필요되는 부속들도 없어 수리기일이 막연하더라고 하시면서 그래서 자신께서는 뭐니뭐니해도 우리의것이 제일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습니다.

《배전반의 겉모양이 곱지 못한것은 일없습니다.

낡은 도람통을 쪼개여 배전반과 분전함을 만든것을 보고 겉모양이 좋다느니, 나쁘다느니 시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김책제철련합기업소가 돌아가 랭간압연강판이 나오면 분전함을 만들 소재같은것은 다 해결될것입니다.》

그제서야 나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볼 모양이 없는 우리의 제품을 보시면서도 왜서 기뻐하셨던지를 알게 되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비록 볼 모양은 없다 해도 우리 공장의 생산물들이 지금과 같이 어려운 때 로동계급의 심장속에 간직되여있는 자력갱생의 정신이 낳은 고귀한 결실이여서 그렇듯 기쁨에 넘치셨던것입니다.

가구손잡이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우리 공장에서는 기본제품을 만들고 남은 철쪼박들을 버리지 않고 8월3일인민소비품을 만들고있었는데 그 제품들중의 하나가 가구손잡이였습니다.조립대앞에 이르시여 누런빛을 띤 고대색가구손잡이를 보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문득 나에게 이렇게 물으시였습니다.

《지배인동무.가구손잡이를 나와 나누어쓸수 없겠습니까?》

그이께서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이였지만 그 의미를 미처 몰랐던 저는 심중한 표정으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무엇에 쓰시려는지 우리의것은 별로 좋지 못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아니라고, 잘 만들었다고 하시면서 이런 훌륭한것을 함흥사람들만 써서야 되겠는가, 나도 좀 가져가겠다, 가져다 평양시민들에게 주자고 한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습니다.

순간 나는 또다시 목이 메여오름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였습니다.

전기기구제품생산공정앞에 이르시여서는 조립중에 있는 개페기 한개를 손수 만져보시며 이것만 있으면 농촌문화주택들에서 밥을 지을 때에는 전기곤로에 련결하고 밥을 다한 다음에는 방을 덥히는데 쓸수 있겠다고 하시면서 몸소 쌍통개페기로 그 이름도 지어주시였고 저락차발전소타빈과 농촌문화주택에서 쓸 전기밥가마를 보아주시고서는 우리의것이 아주 훌륭하다고, 농촌실정에 맞게 잘 만들었다고, 외국제가 왔다가 울고가겠다고 높이 격찬하시였습니다.

정녕 그이는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이 낳은 우리의것을 가장 귀중히 여겨주시는 위대한분이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격정에 잠겨있는 나에게 앞으로 이런 훌륭한것을 많이 만들어 인민들에게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자신께서 앞으로 공장을 도와주겠으니 우리 함께 신심을 가지고 멋진 전기제품들을 만들어보자고 뜨거운 말씀도 해주시였습니다.

저는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우리의것을 얼마나 귀중히 여기시는가를 똑똑히 절감할수 있었습니다.

그이께서 무리등생산공정앞에 이르시였을 때였습니다.

갓 조립된 무리등들을 바라보시는 그이의 얼굴에는 자못 반가와하시는 표정이 어리였습니다.

《6월1일청년전기기구종합공장은 무리등을 잘 만들어 여러번 평가를 받은 공장입니다.이 공장은 오래전부터 일 잘하는 공장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자애에 넘친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신 그이께서는 조립중에 있는 가정용무리등 한개를 손수 들어보시며 확실히 이 공장은 무리등 만드는데서 전통이 있다고, 그래서 자신께서는 무리등 하면 이 공장부터 생각한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습니다.그이의 과분한 치하의 말씀에 제가 어쩔바를 몰라하고있는데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시였습니다.

《1970년대초까지만 하여도 중요대상건설에 필요한 무리등은 다 다른 나라에서 사다썼습니다.》

그러시고는 기억도 새로우신듯 나지막한 음성으로 그러던것을 금수산의사당에 설치한 무리등부터 이 공장에서 생산한것을 가져다썼다고, 그후에는 나라의 중요대상건설에 요구되는 무리등을 다 이 공장에서 만들어 보장했다고 하시면서 평양지하철도역들에 단 무리등들은 물론이고 함흥대극장과 신흥관에 단것도 다 이 공장 제품이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공장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라고 평가하고 다른 나라에서 무리등을 일체 사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참으로 우리 공장 로동계급에게 주시는 값높은 평가의 말씀이였습니다.

잠시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며 전기조작기구를 만드는 공정앞에 이르시였습니다.

여러가지 전기조작기구를 만드는 로동자들의 작업모습을 대견스럽게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생각키우신듯 일군들을 향하여 자신께서 지난해 희천공작기계종합공장에 500대의 공작기계를 만들데 대한 과업을 주었는데 이 공장 로동계급이 어려운 속에서도 전기조작기구를 원만히 생산보장하였기때문에 희천에서 공작기계를 다 만들수 있었다고 말씀하시면서 저에게 지금과 같이 어려운 때 어떻게 되여 생산을 정상화할수 있었는가고, 그 비결을 좀 들어보자고 하시는것이였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저는 그이께 사실그대로 말씀드렸습니다.어느 한 나라에 설비를 사러 갔을 때 우리를 허술하게 본 그놈들은 터무니없이 값을 엄청나게 올리더라는것, 그것이 너무도 괘씸하여 면담석상에서 우리는 너희들것을 사가지 않고 기어이 자체로 만들겠다고 했더니 어디 만드는가 보자는 식으로 코웃음을 치더라는것, 그래서 민족적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해내야겠다는 각오를 가지게 되였다고 말입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나의 대답이 만족하신듯 말을 잘했다, 그것이 자력갱생의 정신이다, 남을 넘겨다보는것은 망국의 길이라고 하시며 일군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시였습니다.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나 같습니다.》

정녕 혁명하는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이 대대손손 가슴깊이 새겨안아야 할 귀중한 가르치심이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공장 일군들과 로동계급이 민족적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달라붙은것은 대단히 훌륭한 일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습니다.

《확실히 6월1일청년전기기구종합공장 일군들이 이악합니다.이 공장 일군들처럼 높은 혁명적각오를 가지고 이악하게 달라붙지 않으면 이런 복잡한 공장을 운영할수 없습니다.》

그이의 거듭되는 높은 평가를 받고보니 불시에 공장이 걸어온 짧지 않은 로정이 더듬어졌습니다.

사실 우리 공장이 발전된 나라들에서만 만든다던 무리등을 척척 만들어내고 오늘과 같이 어려운 때에도 자존심을 잃지 않는 배짱을 가지게 된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습니다.

금수산의사당을 건설할 때였습니다.

그때 전문일군들은 금수산의사당에 설치하는 무리등은 그 형식에서나 질에서 최상의 품위가 보장되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발전된 나라에서 사들여오려고 수입신청서를 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가슴이 아프시여 다른 나라에서 만드는것을 왜 우리가 못 만들겠는가, 자신께서는 금수산의사당에 설치하는 무리등만은 꼭 우리의것을 달고싶다고 하시며 그 영예로운 과업을 우리 공장에 맡겨주시였습니다.그러시고 며칠후에는 책임일군들을 내려보내여 자신께서는 우리 공장 로동계급을 믿는다고, 그러니 수입제를 릉가하는 무리등을 꼭 만들어내길 바란다는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게 하여주시였습니다.

참으로 우리들에게 굳센 담력을 심어주시는 크나큰 믿음이였습니다.그 믿음을 받아안은 우리 공장의 로동자, 기술자들은 산악같이 일떠섰습니다.우리들은 종래의 방법을 초월하여 환강생산기지와 국내원료에 의거하는 구슬생산기지를 현장에 접근시키고 점용접기와 볼반, 사출기와 프레스를 비롯한 설비들을 제작설치하는 불꽃튀는 전투를 벌렸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여선지 헐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저앉지는 않았습니다.

고심어린 노력끝에 우리 공장에서는 단 몇달사이에 우리의 자재와 우리의 기술, 우리의 로력으로 금수산의사당에 필요한 무리등 전량을 다른 나라것보다 더 훌륭하게 만들어내게 되였습니다.

이렇듯 일찌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우리 공장 로동계급에게 그 어디에도 비기지 못할 배짱과 담력을 주셨기에 우리는 지금껏 외국것들앞에서 주접이 들지 않고 발아래로 내려다보면서 신심있게 걸어올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이께서는 우리들에게 이악하다고, 자존심이 강하다고, 애국자들이라고 높이 평가하여주시니 저는 송구스러워지는 마음을 바이 달랠 길이 없었던것입니다.

저의 이러한 심정을 다 읽으신듯 점도록 나를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자만하지 않고 계속 민족적자존심을 지켜나가기를 바라시며 중요한 과업을 주시였습니다.

절연물과 칠감문제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만든 절연물과 칠감의 조성이며 성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나서 지금 일부 사람들은 쩍하면 다른 나라의것을 사다쓰기를 좋아하는데 그래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만드는 절연물과 칠감을 우리라고 만들지 못할것은 없습니다.

6월1일청년전기기구종합공장에서 질좋은 절연물과 칠감을 생산하여 일부 일군들의 그릇된 관점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시고는 나에게 동무들이 한번 절연물혁명을 일으켜 질좋은 절연물을 만들어보라고,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절연물과 칠감을 수입제만 요구하는데 이 공장에서 이런 제품만 대량생산한다면 공장은 공장대로 좋고 절연물을 사와야만 된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의 정신도 번쩍 들게 하니 얼마나 좋은가고 하시면서 환히 웃으시였습니다.

다시금 현장안을 만족하게 둘러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오늘 기쁘게 생각하는것은 이 공장 일군들이 민족적자존심을 안고 사는 그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런 사람들은 아마 강행군을 열백번 해도 무서울것이 없을것이라고 다시금 높이 평가해주시였습니다.

《6월1일청년전기기구종합공장에서 최근 몇해동안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많은 제품을 생산하였습니다.

이 공장 일군들처럼 승리에 대한 신심을 가지고 일을 내밀면 못해낼것이 없으며 강성대국을 건설하는것도 문제없습니다.》

우리들에 대한 최상의 믿음이 담긴 말씀이였습니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강행군이 끝나면 큰 규모의 건설을 많이 해야 하는것만큼 무리등생산기지를 더 잘 꾸릴데 대한 문제, 공장의 전기조작기구생산설비를 갱신하고 현대화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앞으로 우리 공장이 틀어쥐고나가야 할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또한 남편도 없이 한직장에서 32년동안 일하는 한 녀성의 소행을 귀중히 여기시며 인민군대에 나간 아들앞에 떳떳하게 생의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는 믿음도 안겨주시고 수자조종장치설계사업소 성능실험실에 들리시여서는 과학자들의 생활을 친어버이심정으로 보살펴주시였습니다.그리고 땀흘리며 해설해드리는 저에게는 긴장하지 말고 천천히 말하라고 하시기도 하고 저의 나이를 알아보시고서는 62살이면 앞으로 15~20년은 더 지배인사업을 할수 있다고 격려해주기도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준비가 되지 않아 기념촬영을 하지 못하게 된것을 아시고 못내 서운해하시며 《고난의 행군》시기와 강행군시기에 일을 많이 한 이 공장 로동계급과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섭섭하게 됐다고, 다음번에 와서 꼭 찍겠으니 로동자들에게 량해를 시켜달라고 절절히 당부하시였습니다.

그러시고는 떠나기에 앞서 나의 손을 꼭 잡으시고 지배인동무의 결의대로 앞으로도 민족적자존심을 걸고 일을 잘하라고 거듭 부탁하시고는 못다 준 정이 있으신듯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습니다.

《이 공장 지배인이 대단한 일군입니다.…이런 사람이 일군입니다.》

저는 그이를 바래우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이는 참다운 조국애와 민족적존엄을 최상의 높이에서 체현하고계시는 위인중의 위인이시며 우리 일군들이 그이의 뜻을 안고 다소나마 성과를 거두었을 때 그토록 기뻐하신다고 말입니다.

그후 우리 공장 로동계급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전기조작기구와 함께 수입제에 못지 않은 질좋은 절연물과 칠감을 생산하여 여러 부문에 보내주고있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안겨주신 필승의 보검인 민족적자존심과 우리의것을 귀중히 여기는 정신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숨지는 순간까지 저는 이 땅우에 주체의 강성대국을 일떠세우기 위하여 온갖 심혈과 로고를 바치시는 그이의 숭고한 뜻을 충성으로 받들어나갈것입니다.

주체89(2000)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