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2월 27일 로동신문

 

[정세론해설]

조선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유린한 범죄행위

 

지난날 우리 나라를 강점하고 우리 인민을 노예화한 일본의 책동은 그 악랄성과 교활성, 파렴치성에 있어서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것이였다.

지금으로부터 142년전인 1876년 2월 27일 일본이 군사적위협과 공갈, 기만과 협잡의 방법으로 날조한 《강화도조약》을 통해서도 그것을 잘 알수 있다.

《명치유신》후 일본은 무력으로 조선을 정복하여야 한다는 《정한론》을 요란스럽게 떠들면서 조선침략전쟁준비를 미친듯이 다그쳤다.봉건적특권을 빼앗긴 사무라이들의 불만과 광범한 인민대중의 반정부기운을 눅잦히기 위해서였다.또한 자본축적을 위한 자금을 조선을 침략하고 략탈하는데서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조일국교수복》이라는 미명하에 《정한외교》에 달라붙었다.그러나 외교적방법으로 불평등적이고 예속적인 조약을 강요하여 조선침략의 문을 열어보려던 일본군국주의자들의 기도는 조선봉건정부의 완강한 항거에 부딪쳐 파탄을 면할수 없었다.하여 일본침략자들은 무력에 의한 위협공갈의 방법에 로골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하였다.

1875년 군함 《운양》호를 타고 불법적으로 부산항에 기여든 일본침략자들은 발포연습이라는 구실밑에 륙지를 향하여 함포를 마구 쏘아댔으며 동해안일대를 싸다니면서 각종 군사정탐행위를 감행하였다.지어 우리 나라 서해의 중요한 군사요새로서 사전허가없이는 드나들수 없는 초지진포대근처에까지 접근하여 돌아치는 도발을 감행하였다.초지진의 조선수비병들은 침범자들에게 세찬 불벼락을 들씌웠다.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침략자들은 항산도와 영종도에 침입하여 무고한 주민들을 살륙하였으며 야만적인 파괴략탈행위를 감행하였다.이것이 바로 력사에 기록된 《운양》호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조선봉건정부를 군사적으로 위협하여 불평등조약을 조작함으로써 우리 나라를 예속시킬수 있는 《법적근거》를 만들어놓으려고 책동하였다.

그후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침략무력을 끌고 강화도앞바다에 침입하여 조선봉건정부에 담판을 요구하였다.담판에서 일본침략자들은 조선봉건정부에 강압적으로 저들의 부당한 요구조건을 내리먹이고 1876년 2월 27일 끝끝내 《강화도조약》이라고 불리우는 12개 조항의 《조일수호조규》를 조작하였다.

당시 일본은 《강화도조약》에 치외법권적인 조항을 규정해놓음으로써 조선봉건정부의 주권행사를 제한하고 조선의 법에 구애됨이 없이 제 마음대로 침략과 략탈 그리고 온갖 만행을 다 할수 있는 법적담보를 만들어놓았다.또한 조선연해에 대한 일본의 측량 및 지도작성자유보장조항을 박아넣음으로써 군사적침략의 길을 닦아놓았다.

《강화도조약》은 조선민족의 자주권과 리익을 침해한 침략적이며 예속적인 불평등조약이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이 조약에 기초하여 정치, 경제, 군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조선에 침략의 마수를 깊숙이 뻗치였으며 1905년에는 《을사5조약》을 날조하여 무력으로 조선을 완전히 강점하고 40여년동안 가혹한 식민지통치를 실시하면서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불행, 재난을 들씌웠다.

대를 두고도 잊지 못할, 천추에 용납 못할 일본의 과거죄악이다.

일본이 조선민족앞에 저지른 과거의 죄과에 대해 성근하게 사죄하고 배상하는것은 법적, 도덕적의무이다.하지만 일본은 오히려 저들의 피비린 침략력사를 외곡하고 재침야망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놓고있다.

헌법개악책동, 군사대국화책동, 미국과 야합한 대규모군사연습소동…

그러나 이 부질없는 망동들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의 가소롭고 어리석은 추태에 불과하다.

조선민족은 자기를 지킬 힘이 없어 강도적이고 불평등한 조약을 강요당하고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감수하여야만 했던 지난날의 약소민족이 아니다.

우리 공화국은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수 없는 세계가 공인하는 군사강국이며 핵강국이다.

천년숙적 일본에 대한 조선민족의 대일적개심은 활화산처럼 타오르고있다.일본이 저지른 죄악의 대가를 기어이 받아내고야말려는 우리 천만군민의 의지는 날이 갈수록 백배해지고있다.

일본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불타는 대일증오심과 보복의지를 똑바로 알고 심사숙고하는것이 좋을것이다.

정원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