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3월 11일 로동신문
조선혁명의 성스러운 로정에 빛나는 력사의 분수령 왕재산회의 85돐을 맞으며
주체의 기치밑에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하며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전반적조선혁명을 가일층 발전시키는데서 전환적계기를 열어놓은 왕재산회의! 강도 일제를 격멸하고 이 땅에 해방의 밝은 봄을 안아오신 우리
국내에로
조국땅 북변의 두만강기슭에 솟아있는 왕재산! 해발고는 230여m밖에 안되지만 이 산은 항일의 성스러운 로정, 조선혁명의 빛나는 행로에 력사의 봉우리로 높이 솟아있다. 《우리는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키며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조선혁명을 급속히 앙양시키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1933년 3월 중순 함경북도 온성군 왕재산일대에 진출하였다.》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이것은 항일대전을 선포한 그날부터 일제는 날로 승승장구하는 조선혁명을 요람기에 압살하기 위하여 악랄한 정치군사적폭압에 광분하였다. 항일유격대의 국내진출이 제놈들의 식민지통치기반에 어떤 파렬구를 내고 조선땅에서 울리는 항일대전의 총성이 조선사람들을 얼마나 무섭게 일으켜세우는가를 잘 알고있던 일제는 국경경비진을 강화하는데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압록강, 두만강연안에는 적들이 펴놓은 경비망이 물샐틈없이 늘여지고 살기를 풍기는 포대와 총구들이 밤낮 유격대를 노리고있었다.여기에 혁명대오안에 기여든 종파사대주의자들과 좌경기회주의자들까지 편승하여 조선혁명가들이 조선혁명을 위해 싸우는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키는것을 집요하게 반대하여나섰다. 바로 이러한 때 국내에로! 신출귀몰의 전법으로 항일무장대오의 력사적인 국내진출의 자욱이 새겨진 그날은 안도의 밀림에서 항일유격대창건이 선포된 때로부터 1년도 안되던 1933년 3월 이른봄이였다.그 봄은 조국땅에 기필코 밝아오고야말 해방의 봄을 예고하며 두만강기슭에서 삼천리강토로 소리없이 퍼져갔다.
왕재산에서
주체22(1933)년 3월 11일, 국내진출대오를 친솔하시고 조국땅을 밟으시는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하시며 압록강을 건느시였던 때로부터 어느덧 8년! 그날 홀몸으로 떠나시였던 조국땅에 끌끌한 무장대오를 인솔하시고 들어서신 사랑하는 조국아, 그립던 고국산천아, 잘 있었느냐.너를 찾기 위해 우리 이렇듯 산과 강을 넘나들며 피땀을 뿌리거니 기어이 조국을 찾고 네 품에 안기리라! 무장대오가 조국땅에 새기는 한자욱한자욱마다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울리고있었다. 어머니의 품에서 어린아이를 떼여낼수 없는것처럼 그 무엇으로도 우리를 조국의 품에서 떼여낼수 없다.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며 그것을 찾기 위해 싸우고있는가.… 대원들에게 이렇게 절절하게 말씀하시며 앞장서 조국의 숲을 헤치시던 우리 애어린 참나무들이 빼곡이 서있는 왕재산마루에 거연히 서시여 조국산천을 한눈에 굽어보시며 그날 귀기울이면 조국땅에 위력한 유격활동의 거점을 형성하면서 혁명의 강력한 보루를 쌓고 적극적인 무장투쟁으로 강도 일제를 쳐물리칠 확고한 결심을 피력하시던 백두산장군이신 우리 우리 유격대가 국내에로 진출함으로써 이미 이룩한 성과를 공고히 하면서 아름다운 우리 조국을 강점하고 우리 인민에게 온갖 불행을 강요하고있는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만회할수 없는 정치군사적타격을 줄수 있으며 국내인민들에게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적영향을 강하게 주고 그들이 반일성전에 힘차게 떨쳐나서게 하며 나아가서 일제식민지통치의 아성을 종국적으로 청산할수 있습니다.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원쑤들의 책동이 악랄하고 정세가 아무리 어려워도 항일무장투쟁을 반드시 국내에로 확대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영원한 주체의 홰불
조선혁명가들이 조선혁명을 위해 싸우는것이 그 누구도 막을수 없는 신성한 임무이며 절대적인 권리이라는것을 힘있게 선언한 력사적인 왕재산회의! 왕재산대기념비는 대기념비를 평지도 아닌 산중턱에! 여기에는 건설장을 여러차례 찾으시며 진눈까비에 얼어붙은 미끄러운 모형받침돌우에까지 몸소 오르시여 친히 왕재산마루에까지 오르시여 답사생들이 왕재산대기념비는 조선혁명의 첫 기슭에서 타오른 주체의 홰불이 비낀 왕재산대기념비의 봉화는 천만군민의 심장속에 본사기자 림정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