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3월 31일 로동신문
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굴지의 대규모탄전이 자랑하는 제대군인탄부 2.8직동청년탄광 12갱 채탄1중대장 현경진동무
《오늘 우리 나라에는 한생을 궂은일, 마른일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진심을 바쳐 성실하게 일하며 외진 섬이나 심심산골에서 누가 알아주건말건 자기 초소를 묵묵히 지켜나가는 참다운 애국자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주인공이 찍어간 발자욱을 더듬으며 2.8직동청년탄광 12갱 채탄1중대의 막장으로 가는 길은 좀처럼 끝이 날줄 몰랐다. 2.8직동청년탄광의 갱들은 기본갱도를 따라가며 차례로 전개되여있었는데 그중에서 12갱은 제일 마감에 위치한 갱들중의 하나였다. 하여 목적지인 채탄1중대막장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12갱을 비롯하여 매 갱들에서 나오는 석탄은 장거리벨트콘베아로 운반하고있었는데 그 길이만 하여도 연 1만여m를 헤아리였다. 이러한 체험은 우리로 하여금 수천척 지하막장에서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조국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해가는 직동탄부들의 고결한 정신세계에 대하여 다시금 깊이 생각해보게 하였다. 바로 그 빛나는 삶들과 더불어 오늘 또 한명의 시대의 선구자가 배출되여 자랑을 떨치고있다. 이름은 현경진, 나이는 48살, 어느 탄전에나 있는 탄부이고 채탄중대장인 그의 삶을 우리 당은 어찌하여 그토록 값높이 내세워주는가.
제대병사의 맹세와 실천
현경진동무가 탄광에 제대배낭을 풀어놓은것은 주체88(1999)년 9월이였다. 가자! 탄광으로! 이런 불타는 지향을 안고 그는 수많은 제대군인들과 함께 2.8직동청년탄광으로 달려왔다. 개천시의 어느 한 농촌에서 나서자란 현경진동무에게 있어서 탄광은 생소하였다. 벨트콘베아에 실려나와 폭포처럼 쏟아지는 석탄, 시간이 다르게 높아지는 석탄산, 가락맞게 울리는 탄차들의 바퀴소리… 그의 눈앞에 펼쳐진 탄전의 모습은 장쾌하였다.그는 어서빨리 막장을 타고앉아 석탄을 꽝꽝 캐내고싶은 충동이 불끈 솟아올랐다.그의 발걸음은 탄광구내에 높이 모신 나라의 석탄생산문제를 놓고 그처럼 마음쓰시면서 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탄광에 몸소 찾아오시여 나아갈 길을 환히 밝혀주시고 탄부들에게 은정깊은 사랑을 돌려주신 현지교시비의 글발들을 우러를수록 우리 인민이 누려가고있는 생활의 한 토막에도, 행복의 한 갈피에도 탄광에 새겨진 불멸의 령도업적을 새겨가는 그의 가슴은 최전연초소를 지켜섰던 군사복무시절처럼 당이 바라는 초소에서 언제나 변함없이 총쥔 병사의 자세로 살려는 피끓는 맹세로 불타올랐다. (내 한생 막장을 지켜선 전초병으로 살리라.) 이 맹세를 심장속깊이 간직하고 그는 탄전으로 달려온지 얼마 안되여 채탄과 막장관리묘리도 남먼저 익히였다.매일 남보다 먼저 막장에 들어가 채탄공구들을 틀어잡을 때에도, 하루작업이 끝난 후 뒤늦게까지 채탄설비들의 운전조작방법과 동작원리를 파악해나갈 때에도, 동발드리우기묘리를 터득하느라 밤을 지새울 때에도 그의 가슴속에 가득 차넘친것은 막장의 전초병으로 살며 일하려는 불타는 지향이였다. 현경진동무는 막장일을 시작하여 1년만에 채탄소대장이 되였고 그로부터 몇해후에는 중대장으로 임명되였다. 그가 중대장으로 임명되였을 때까지만 해도 채탄1중대는 탄광적으로 앞선 축에 속하지 못하고있었다.하지만 그의 여문 일솜씨와 피타는 사색과 탐구, 끝없는 열정은 중대를 혁신에로 이끌어갔다. 그가 중대장이 되여 새로운 채탄밭을 타고앉았을 때였다. 채탄설비들을 새로운 막장에 옮겨 설치하고 채탄을 시작하는 날 그가 내놓은 《부채살식채굴방법》은 채탄공들모두를 의아하게 했다.그도그럴것이 그러한 채굴방법이 있다는 소리를 처음 들어보는것이였다. 중대원들앞에서 채굴해야 할 탄층의 특징이며 막장에 놓이게 될 콘베아를 비롯한 설비들의 합리적인 위치, 새로운 채굴방법의 우점 등을 하나하나 열정적으로 설명해나가는 그를 보며 대원들은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그러는 대원들의 눈앞에는 그가 채탄공의 첫 자욱을 떼던 때의 일들이 되새겨졌다. 제대군인들이 중대에 배치되여 기세좋게 탄벽을 밀고나가던 어느날 채탄막장에서는 뜻하지 않은 정황이 조성되였다.석탄을 나르던 사슬콘베아가 동음을 멈추었던것이다.모두가 석탄산을 높이 쌓을 불타는 맹세를 안고 힘차게 전진하던 때여서 한시간 아니 분과 초가 더없이 귀중하였다. 누군가 급히 수리공을 찾아 떠나려고 할 때 현경진동무가 용접면과 용접가위를 들고 설비곁으로 다가갔다.그가 용접불꽃을 날리기 시작하여 몇분… 막장에 설비의 동음이 다시 세차게 울리였다. 채탄공들이 그의 용접솜씨에 감탄을 금치 못해하며 언제 그런 재간을 다 배웠는가고 묻자 그는 헌헌히 대답했다. 《우리야 제대군인들이 아닙니까.병사가 자기 무기와 전투기술기재에 정통해야 고지를 굳건히 지켜낼수 있듯이 막장설비에 정통하고 수리기재를 다룰줄 알아야 전초병의 임무를 원만히 수행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채탄공들은 그가 작업의 짧은 휴식시간을 바쳐 수리기재를 다루는 법을 배우고 막장설비에 정통하고 동작원리를 파악하기 위해 교대후 집에 들어가서도 밤을 새워 도면도 그려가며 피타는 노력을 기울인 사실을 그때에는 미처 알수 없었다. 지금도 중대의 채탄공들은 한해밖에 캐지 못한다고 하던 채탄밭에서 4년을 타고앉아 해마다 년간계획을 넘쳐 수행하고 수많은 로력과 자재를 절약하던 때의 일을 두고두고 외우고있다. 제대병사의 맹세는 이렇게 실천으로 이어졌다.우리가 채탄1중대의 막장에서 채탄공들을 만날 때 그들이 자랑스럽게 자주 입에 올리는 채탄방법이 있었다.수평갱도붕괴식채굴법이였다. 바로 여기에도 현경진동무의 피타는 사색과 헌신의 구슬땀이 뜨겁게 슴배여있다. 지금으로부터 9년전 그는 수평갱도붕괴식채굴을 하자면 콘베아를 채굴막장가까이로 접근시키는 등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나라의 귀중한 석탄이 땅속에 묻히는것을 뻔히 보면서도 어렵고 힘들다고 주저한다면 어떻게 그의 결심은 제대군인탄부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수평갱도붕괴식채굴의 실현, 그것은 명령앞에서는 오직 《알았습니다!》라는 대답밖에 모르는것이 병사이다.병사와 같이 제복을 입은 탄부도 전투임무앞에서는 그 어떤 흥정을 몰라야 한다는것이 그의 드팀없는 의지였다. 군사복무시절처럼 굴함없는 공격정신으로 복무의 길을 이어가는 현경진동무의 불같은 헌신은 끝끝내 수평갱도붕괴식채굴법을 실현시키고야말았다. 두해전 충정의 70일전투에 이어 계속된 200일전투의 나날 직동탄전의 채탄막장들에서는 증산열풍이 세차게 일어번졌다.그러한 속에 채탄1중대의 채탄밭이 고갈되게 되였다.새 탄밭을 마련하자면 시일이 걸려야 했다. 그때 지체없이 이미전에 채굴하였던 갱으로 진출하여 200일전투계획을 110%로 넘쳐 수행할수 있은 비결도 수평갱도붕괴식채굴법에 있었다. 채탄1중대의 탄부들이 우리에게 터놓은 소대의 채탄법과 설비관리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에는 자기 중대장에 대한 자랑이 깃들어있었다. 보다 효과적인 붕괴권을 형성하여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많은 자재를 절약한다는 묶음식동발에 의한 쌍갱도굴진식채탄법이며 수평갱도붕괴식채굴도 다른 중대와는 달리 채탄밭깊숙이 콘베아를 놓아가면서 석탄을 말끔히 채굴한다는 이야기, 막장의 모든 설비들이 언제나 만가동하며 석탄생산에 적극 이바지한다는 이야기 등 그 모든것들은 병사시절처럼 조국과 인민을 위한 복무의 길을 힘차게 걸어온 현경진동무의 피타는 사색과 열정, 헌신의 산물이였다. 현경진동무는 지금까지 10여건의 가치있는 기술혁신안을 받아들여 석탄채취률을 1.5배로 높이였고 수많은 자재를 절약하여 국가에 큰 리득을 주었다. 우리는 채탄1중대의 막장을 돌아보았다. 석탄을 줄기차게 실어나르는 막장콘베아의 고르로운 동음, 전차에 끌리여 쉼없이 본선벨트콘베아운반선으로 향하는 탄차들… 치차처럼 맞물려돌아가는 그 모든 석탄생산공정에서 우리는 볼수 있었다.당에서 바라고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일이라면 그 무엇이든 결사관철의 정신으로 무조건 해내고야마는 제대군인탄부의 헌신의 자욱자욱을.
탄부들이 따르는 우리 중대장
우리는 10여년전 현경진동무가 중대장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함께 일한 탄부들을 중대에서 2명밖에 만날수가 없었다.현경진동무와 같은 해에 제대된 설비보전공 함량철동무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탄광에 뿌리내린 설비보수공 박형화동무가 전부였다. 중대의 기둥인 그들의 말에 의하면 탄광에서 12갱 채탄1중대는 일명 《간부양성기지》로 불리운다는것이였다. 의미깊은 말이였다.지금까지 중대를 떠나간 사람들은 현경진동무에게서 막장일을 배운 사람들인데 그들은 다른 갱, 다른 중대의 일군, 초급일군으로 일하고있었다. 그들모두가 탄광에서 첫걸음을 떼던 그 시절을 못 잊어 오늘도 현경진동무를 《우리 중대장》이라고 존경과 정을 담아 부르고있었다. 이 하나의 사실을 놓고도 현경진동무가 한명한명의 탄부들을 막장을 떠받드는 동발처럼 조국을 받드는 기둥감으로 키우기 위해 얼마나 품을 들이고 고심을 기울였는가 하는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는것이다.소대원 한사람한사람은 당이 맡겨준 혁명초소를 함께 지켜가는 전우, 동지이고 자기는 그들의 현재뿐아니라 먼 앞날까지도 책임져야 하는 지휘관이라는것이 현경진동무의 지론이였다. 언제인가 현경진동무는 막장에서 탄광의 한 일군과 마주앉은적이 있었다. 그때 현경진동무가 품들여 키운 탄부들을 다른 갱으로 소환시키는것이 미안하여 일군은 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새 사람들을 맡아 또 키우자면 힘이 들거요.》 그러는 일군을 말없이 바라보던 현경진동무의 입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오늘도 제대되여 중대를 떠나오던 그날을 잊을수 없습니다. 생사고락을 같이하던 전우들은 저의 손목을 꼭 잡고 자기들의 몫까지 합쳐 석탄을 많이 캐달라고, 우리 제가 아무리 일을 많이 한다고 해도 전우들의 그 기대에 어떻게 보답하겠습니까.다 우리 갱을 위한 일이고 우리 탄광을 위한 일이 아닙니까.》 그래서 자기가 맡은 채탄중대의 모든 탄부들을 혁신자로 키우고싶었다고, 중대에 새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군사복무시절 신입병사들을 맞이한것만 같았다고 진정을 터놓는 그를 보며 탄광일군은 가슴뜨거워짐을 금할수 없었다. 현경진동무는 중대원들 한사람한사람에게 이렇게 진심을 기울였다. 《나는 중대장동무와 오래동안 함께 일을 해오지만 그가 언제 한번 〈돌격앞으로!〉의 구령을 웨치는것을 보지 못했습니다.그는 말로써가 아니라 실천행동으로 중대를 이끌어나가고있습니다.》 설비보전공 함량철동무의 가식없는 말이다. 현경진동무는 채탄막장을 지나다가 잘못 세워놓은 동발을 하나 보아도 엄격하게 질책은 하였지만 그것을 퇴치하도록 누구에게 지시를 준적이 없이 자기가 먼저 두팔을 걷고 바로세워놓군 하였다. 언제인가 그는 작업도중 탄벽에 짐이 실리면서 서서히 금이 가는것을 발견하게 되였다.참으로 위급한 순간이였다. 이때 《피하라!》고 웨치며 기울어지는 동발에 비호같이 몸을 날리는 사람이 있었다.현경진동무였다. 그는 온몸의 힘을 다하여 동발을 억세게 버티였다.그리하여 동지들에게 닥치였던 위험을 막아내고 막장도 구원하였다. 현경진동무는 이런 희생정신과 불같은 동지적사랑으로 중대를 화목하고 전투력이 강한 대오로 꾸려나갔다. 지난해 11월 어느날 평성석탄공업대학을 졸업하고 자진하여 채탄1중대로 현실체험을 오는 사람이 있었다.현경진동무와 함께 일하던 소대장이였다.서로 얼싸안고 인사말을 나누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오래동안 헤여졌던 전우들의 상봉을 방불케 했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우리 중대에서 써먹고싶었습니다.저에게 하나하나 막장일을 배워주던 그때처럼 언제나 곧바로 갈수 있게 엄하게 채찍질해주십시오.그리고 많이 배워주십시오.》 혁명군대의 지휘관들처럼 중대원들 한사람한사람을 뜨겁게 품어안아 생사를 같이하는 전우, 동지들로, 참된 탄부들로 키우려는것이 현경진동무의 마음이다.사업에서는 엄격한 중대장이였지만 일단 생활에 들어가서는 한없이 인정이 많은 현경진동무이다. 그의 안해 최정희동무는 결혼후부터 두 아들이 다 자란 오늘까지 탄광지원의 길을 변함없이 걷고있다.바로 여기에도 동지들을 위하는 길에서 가정의 행복을 찾는 현경진동무의 뜨거운 마음이 깃들어있다. 《내가 탄광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많은 탄부가족들이 지원물자들을 안고 막장길을 걷군 하였소.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인상깊던지… 그들을 볼 때마다 전사들을 위해 진정을 바치던 군인가족들이 생각나더구만.동무도 그런 훌륭한 탄부안해가 되길 바라오.》 이것은 현경진동무가 결혼식날 저녁에 안해에게 한 말이다. 현경진동무는 이렇게 탄부는 자신뿐아니라 가정도 석탄증산을 위해 애써야 하고 자기는 한가정의 세대주이기 전에 중대의 맏형이고 가장이 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던것이다. 동지들의 기쁨, 그것은 진정 군사복무의 나날 혁명적동지애를 체질화한 현경진동무에게 있어서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보람이고 행복이였다.그는 한가마밥을 먹으며 전우들과 정을 나누던 군사복무시절처럼 별식이 하나 생겨도 중대원들과 함께 나누어먹어야 성차하였다. 중대원들의 생일을 잊지 않고 자기 집에서 생일상을 정성껏 차려주고 어느 누구의 얼굴색이 조금만 달라져도 걱정하면서 닭곰, 토끼곰을 만들어 안겨주는 현경진동무앞에서 중대의 탄부들과 그 가족들이 눈시울을 적신적은 그 몇번이였던가. 현경진동무가 동지들과 기쁨도 아픔도 함께 나누며 헤쳐온 투쟁의 나날에 중대는 2중3대혁명붉은기중대의 영예를 지니게 되였고 석탄전선의 앞장에 선 전투력있는 단위로 자라나게 되였다.
군인정신, 군인기질, 군인본때를 체질화한 제대군인들을 석탄전선으로 불러준 당의 믿음을 자나깨나 명심하고 당정책관철의 선구자, 동지적사랑의 거울이 되여 나라의 석탄산을 높이 쌓는데 적극 기여한 현경진동무에게 어머니당은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값높은 영예를 안겨주었다. 지금 사회주의강국건설의 들끓는 전투장 어디에나 조국보위초소에서 억세게 단련된 제대군인들이 서있다.우리 당은 다름아닌 그들이 모든 전구들에서 선봉투사가 되고 돌격전의 기수가 될것을 바라고있다.그들이 현경진동무와 같이 한덩어리의 석탄, 낟알 한알, 철근 한토막을 놓고도 제대군인의 본분을 자각하며 병사시절처럼 복무의 길을 억세게 걸어갈 때 내 조국은 얼마나 힘차게 전진할것이며 강해질것인가.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신현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