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4월 14일 조선신보
【투고】 특별한 의미를 갖는 올해의 4.24교육투쟁 70돐 / 오형진 4.24의 정신과 전통을 이어 무상화투쟁의 승리를
올해는 8.15조국해방후 재일조선동포들의 민족교육권리옹호투쟁력사상 최대규모 사건의 하나로 전해지고있는 4.24교육투쟁(1948년4월24일) 70돐이 되는 해이다. 내가 10살때, 악몽같은 4.24교육탄압사건(教育弾圧事件)을 체험한 때로부터 7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조련시기는 물론 민전시기에도, 총련결성후에도 4.24기념행사들이 있을 때마다 참가하였고 때로는 《증언》과 《강연》, 《투쟁》도 해왔다. 내가 10살때 조선학교를 탄압한 장본인 맥아더에게 보낸 항의요청 엽서도 60여년만에 미국에서 발견되였다. 올해의 4.24교육투쟁 70돐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고있다. 그 리유는 크게 4가지이다. 첫째로, 올해는 김일성주석님께서 1948년 12월 23일, 즉 4.24교육투쟁이 일어난 해에 쪼각배로 풍파사나운 겨울철 동해바다 물결을 헤치고 주석님의 품, 조국의 품을 찾아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재일조선인경축단을 친히 접견하시여 재일동포들이 전개한 4.24교육투쟁의 력사적의의에 대하여 언급하시고 주체적인 투쟁방향을 밝혀주신 때로부터 70돐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때문이다. 《…재일조선동포들은 일본반동정부와 미제의 조선인학교탄압행위에 견결히 맞서 용감히 투쟁하였으며 이 투쟁을 통하여 자기들의 높은 민족적기개와 불굴의 투지를 시위하였습니다. 조국인민들은 재일조선동포들의 열렬한 애국정신과 용감한 투쟁에 숭고한 경의를 표하고있습니다.
자기 나라 말과 글로 자녀들을 교육하려는 재일조선동포들의 요구는 정당한것이며 그것은 그 누구도 시비할수 없는 민주주의적, 민족적 권리입니다. 재일조선동포들은 자기들의 이 신성한 권리를 끝까지 지켜나가야 할것입니다.》 70년전, 김일성주석님께서 재일조선인경축단에 주신 12월23일교시는 4.24교육투쟁의 불굴의 투쟁정신과 빛나는 전통을 대를 이어 계승발전시키며 신성한 민족적권익을 끝까지 지켜나가는데서 강령적지침으로 되였다. 둘째로, 올해는 1948년 7월에 있은 조련중앙위원회에서 매해 4월 24일을 4.24교육투쟁의 정신과 전통을 대를 이어 빛내여나갈 《영원한 승리의 기념일》로, 우리 말과 글, 민족교육을 지키기 위해 결사적으로 총궐기한 《투쟁기념일》, 《학교기념일》로 결정한 때로부터 70주년이 되는 의의깊은 해이기때문이다. 미제의 사촉밑에 일본반동정부가 1948년 1월 24일에 통첩한 조선학교페쇄령을 결사반대하여 일본각지 애국적동포들이 총궐기해나섰다. 그런 가운데 야마구찌현, 오까야마현에 이어 4월 24일, 효고현 동포대표들이 《불퇴전》의 완강한 투쟁을 벌려 효고현지사로부터 조선학교페쇄령의 철회와 체포자들의 즉시석방을 포함한 5항목의 합의를 쟁취한것은 커다란 력사적승리였다. 4월 24일 야밤에 미점령군(GHQ)이 처음으로 되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5항목의 무효화를 선언한것은 사실이나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결사적으로 투쟁에 궐기하여 5항목의 합의를 쟁취한 승리의 실적과 그 투쟁정신과 전통은 영원불멸한것이다. 《4.24교육투쟁》, 《4.24한신(阪神)교육투쟁》, 《4.24교육탄압사건》 등 4.24에 대한 여러 명칭은 다같이 그날의 력사적인 투쟁과 승리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씌여져왔다. 4.24교육투쟁에서 이룩된 투쟁정신과 전통의 유전자( DNA)가 대를 이어 계승되고있음으로 하여 4.24후에도 끊임없이 거듭된 탄압을 물리칠수 있었고 오늘까지 민족교육의 원점, 뿌리를 굳건히 지켜올수 있었다고 본다. 4.24교육투쟁이 얼마나 큰 규모의 투쟁이였고 치렬한 투쟁이였는가 하는것은 그 투쟁에 연 112만여명이 참가하고 사망자 2명, 부상자 150여명, 체포자 3,076명, 기소된 사람이 2,012명, 재판에 걸린 사람이 군사위원회재판 9명, 군사재판 29명, 일본재판 169명 나왔으며 남조선에 강제송환당한 사람도 많았다는 사실을 보아도 잘 알수가 있다. 4.24교육투쟁은 국내외 동포들과 일본민주인사들의 열렬한 지지성원을 받았다. 4.24교육투쟁은 희생도 많았으나 성과와 경험, 교훈이 더 많았던 력사적사건이였다고 할수 있다. 셋째로, 올해는 4.24교육투쟁에 참가하였다가 미일반동들에게 귀중한 생명을 빼앗긴 김태일소년(오사까, 당시 16살, 1948년 4월 26일 사망)의 70주기가 되는 잊지 못할 해이기때문이다. 4.24교육투쟁과정에 희생된 김태일소년과 박주범선생(당시 64살, 옥사, 조련 효고현본부위원장, 민족교육대책위원회 위원장)들은 민족교육, 민족문화를 목숨으로 지켜 싸운 영용한 투사로 높이 찬양되고 전조직적, 전동포적으로 《인민장》을 성대히 거행하고 조직적인 조치에 의해 도꾜 아오야마령원 무명전사의 묘(東京青山霊園無名戦士の墓) 에 합장(合葬)되여 오늘에 이르고있다. 당시 조직에서 교육상(教育賞)으로 《박주범상》, 《김태일상》을 제정하여 교육사업, 소년단사업 등에서 모범이 된 일군들과 소년단원들을 표창하였다. 또한 《4.24의 노래》, 《4.24교육투쟁의 노래》, 《우리 학교 지키자》, 《선생님 울지 마세요》, 《작별의 노래》, 《시극 4.24》 등을 널리 보급함으로써 4.24교육투쟁의 넋, 김태일소년과 박주범선생들의 뜻을 이어 그 어떤 복잡하고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민족교육을 끝까지 지켜나가도록 고무추동하였다. 넷째로, 올해는 일본정부가 70년전의 4.24교육탄압사건의 연장선상에서 감행하고있는 고등학교무상화차별, 조선학교보조금차별을 철페하기 위한 투쟁에서 새로운 전진을 이룩하여야 할 중요한 해이기때문이다. 4.24교육탄압은 일본반동들이 조선침략을 노리고있던 미제를 등에 업고 해방된 조선의 존재를 부정할뿐만아니라 또다시 조선말과 글, 문화와 력사를 빼앗고 조선을 재식민화하려고 한 천추에 용납 못할 범죄행위였다. 오늘 일본정부가 감행하고있는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정책도 70년전의 4.24교육탄압의 계속이며 엄중한 인권유린, 민족억압정책이다. 유엔에 가맹한 나라가 197개 있다고 하나 조선사람들에 대한 민족적차별이 세계에서 제일 혹심한 곳이 바로 일본인바 유엔인권위원회로부터도 권고를 받고있다. 력사는 타민족을 억압하는 민족은 스스로도 자유로울수 없고 같은 불행과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경고하고있다. 일본정부는 력사의 교훈을 똑똑히 찾아야 하며 무상화와 보조금제도에서의 차별을 즉각 시정하여야 한다. 과거를 허심히 사죄하고 조일국교정상화의 길에 나서야 한다. 우리 동포들, 청년학생들, 일본인사들, 남조선시민단체들이 벌리고있는 《금요행동》, 《화요일행동》은 민족의 자주권과 민족교육권을 지키며 사랑하는 후대들의 행복과 미래를 위해 반드시 승리해야 할 성스러운 투쟁이다. 4.24의 투쟁정신과 전통이 살아있는 한 우리들의 불굴의 투쟁은 승리하는 그날까지 계속될것이다. (재일조선인력사연구소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