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봉이여! 불멸의 그 업적 길이 전하라
해빛찬란한 사회주의 내 조국강산에 봄빛이 짙어가고있다. 대지를 어루만지는 따스한 봄바람도, 산촌에 쉬임없이 흘러내리는 작은 시내물소리도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한생에 대하여 끝없이 속삭이는것만 같아 격정을 금치 못해하는 우리 군대와 인민이다. 조국땅 그 어디에나 력력히 새겨져 빛나는 절세위인의 불멸의 자욱자욱을 감회깊이 더듬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가슴속에는 70여년전 몸소 문수봉에 오르시여 나무를 심으시던 우리 수령님의 거룩하신 영상이 숭엄히 되새겨진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 보통강개수공사의 첫 삽을 뜨시고 문수봉에 오르시여 친히 나무를 심으시며 국토건설의 원대한 구상을 펼치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손잡아 이끌어주시였습니다.》 문수봉! 그 이름 조용히 외워보느라면 내 나라의 푸른 숲에 어리여있는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애국의 력사가 우리의 가슴에 파도쳐온다. 해방후 제땅에서 마음껏 농사를 지어보려는 우리 농민들의 갈망은 비할바없이 높아졌다. 바로 그러한 시기 우리 수령님께서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풀어주기 위한 거창한 사업을 펼치시는 속에서도 방대한 산림조성사업을 구상하고계신줄 우리 인민은 미처 알수 없었다. 지금도 우리 군대와 인민의 가슴마다에는 우리 수령님께서 몸소 한조항 한조항 작성하신 《토지문제에 대한 결정》의 구절구절이 뜨겁게 새겨져있다. 일본제국주의자의 소유였던 산림, 하천, 소택은 일체 몰수하여 인민들의 소유로 하며 그 관리권은 지방정권기관에 위임한다.… 조국이 해방된 그해 10월에 발표하신 《토지문제에 대한 결정》에서 벌써 이렇듯 나라의 모든 산림을 국유화하기 위한 혁명적조치를 취하시고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시는 력사적인 협의회에서도 산림국유화를 중요하게 강조하신 어버이수령님, 해방된 이듬해 3월 몸소 모란봉에 오르시여 온 나라를 푸른 숲으로 뒤덮이게 할 웅대한 설계도를 무르익히신데 이어 며칠후에 발포하신 《북조선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에서 산림국유화를 정책화하심으로써 우리 인민들이 높은 애국적열성을 가지고 산림조성사업에 참가할수 있도록 걸음걸음 이끌어주신 우리 수령님의 령도는 얼마나 비범한것인가. 이렇듯 부강조국건설에서 산림조성사업을 중시하신 우리 수령님이시였기에 주체36(1947)년 4월 6일 문수봉에 력사에 길이 빛날 자욱을 아로새기신것이다. 력사의 그날 문수봉에 오르시는 어버이수령님의 가슴은 참으로 아프고 쓰리시였다. 예로부터 비단에 수놓은것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문수봉이라고 불리우던 산이 강도 일제의 수탈에 자기의 옛 모습을 잃고 벌거숭이가 되였으니 우리 수령님의 심중이 오죽하셨으랴.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우리는 조림사업을 잘하여 일제식민지통치가 남겨놓은 이 후과를 하루빨리 가셔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 중요성과 의의에 대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어느덧 어버이수령님께서 산중턱에 이르시자 문수봉은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로 진감하였다.해방된 조국땅에서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나무를 심게 된 평양시민들의 감격과 기쁨은 끝이 없었다.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환호하는 시민들에게 답례를 보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어 나무를 심으시려고 땅에 삽날을 박으시였다.그런데 삽날이 쉽게 들어가지 않았다. 지난날 나무가 무성하던 때에는 쌓이고쌓이는 락엽에 발목이 푹푹 잠기는 토질좋은 문수봉이였지만 험한 세월의 비운이 이곳을 불모의 땅으로 만들어버린것이다. 몇번이고 자리를 옮겨가시며 삽날을 박아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곡괭이로 굳은 땅을 파기 시작하시였다. 나무구뎅이를 다 파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 일군이 이깔나무모를 들고오는것을 보시고 나무모는 어린애와 같이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고 이르시며 뿌리 하나, 가지 하나 상할세라 그것을 두손으로 소중히 받으시여 구뎅이에 정히 들여놓으시였다.그러시고는 흙덩이들을 손으로 비벼 나무뿌리에 덮으시고 꽁꽁 다지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또다시 새 구뎅이를 파시였다. 일군들이 그만하실것을 말씀드렸으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그냥 곡괭이로 굳은 땅을 파시며 계속 나무를 심어나가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이렇게 여러 그루의 나무를 심으시였을 때 한 일군이 마실 물을 올리며 그만 휴식하실것을 간청드리였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그렇게 심어서야 조국의 산을 언제 다 푸르게 하겠는가고 하시며 자신께서 드셔야 할 물마저 어린 나무에 부어주시였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문수봉은 아주 좋은 곳에 자리잡고있다고 하시며 문수봉에 나무가 우거지면 참으로 좋을것이라고, 우리는 일제놈들이 못쓰게 만든 문수봉을 아름다운 공원으로, 수도시민들의 문화휴식터로 만들어 모란봉에서와 같이 여기에서도 근로자들이 즐겁게 휴식할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산림조성사업은 인민들에게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줄뿐아니라 후대들에게 풍만한 산림자원과 아름다운 조국산천을 넘겨주기 위한 만년대계의 사업이라고, 산림을 애호하는가 안하는가 하는것은 애국심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것과 관련되는 문제이라고, 참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부강한 새 조국건설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한그루의 나무라도 아끼고 사랑하며 산림을 잘 보호하기 위하여 힘써야 한다고 간곡히 강조하시였다. 흙먼지 날리는 문수봉에 오르시여 손수 나무를 심으신 어버이수령님! 70여년전 4월의 그날 문수봉에 나무를 심으시며 우리 수령님께서 그려보신것은 푸른 숲 우거진 조국강산이였다. 잊지 못할 4월의 봄날을 소중히 새겨안으시고 이 땅에 영원한 애국의 불길을 지펴주신분은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일찌기 어버이수령님과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와 함께 문수봉에 오르시여 나무를 심으시던 그날처럼 우리 수령님의 애국의 뜻을 현실로 꽃피우시기 위해 산림조성과 국토관리사업에 크나큰 심혈을 바치신 위대한 장군님. 전대미문의 재난이 겹쳐들던 고난의 행군시기 줄어드는 나라의 산림자원을 두고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며 애국의 더운 피를 끓이신분은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언제인가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 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국토관리사업은 국토의 면모를 주체사상의 요구대로 꾸리기 위한 자연개조사업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강조하시였다. 국토관리사업은 조국의 무궁한 번영과 후손만대의 행복을 위한 보람찬 사업이다.우리는 자신들뿐아니라 후대들을 위하여 투쟁하는 혁명가들인것만큼 후대들에게 아름다운 국토와 풍만한 자원을 물려주어야 한다. 국토관리를 단순한 실무적문제로가 아니라 조국의 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사업으로 중시하시였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산림조성사업을 잘할데 대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시고 그 방향과 방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던것이다. 온 나라의 수림화, 원림화를 위해 도, 시, 군들에 양묘장들을 꾸리도록 하시고 몸소 중앙양묘장의 터전까지 잡아주신분,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에도 중앙양묘장을 찾으시여 전당, 전군, 전민이 총동원되여 수림화, 원림화를 실현하기 위한 사업을 줄기차게 벌림으로써 후대들에게 수림이 우거지고 백화만발하는 아름다운 조국산천을 물려주자고 간곡히 교시하신 우리 장군님, 현지지도의 길에서 자주 정을 담아 푸른 산, 푸른 들이라고 조용히 외우시던 우리 장군님의 모습을 우리 어찌 잊을수 있으랴. 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애국념원은 또 한분의 절세의 애국자이신 경애하는 원수님에 의하여 이 땅에 자랑찬 현실로 꽃펴나고있다. 산림복구전투를 당과 국가, 군대의 중요한 과업으로 내세우시고 모든 력량과 수단을 총동원하여 힘있게 밀고나가도록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 산림복구전투는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중요한 정치적사업이며 내 나라, 내 조국의 부강발전과 후손만대의 번영을 위한 최대의 애국사업이라고 하시면서 전국도처에 양묘장들을 일떠세우도록 하시고 온 나라를 수림화, 원림화하기 위한 투쟁을 진두에서 이끄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령도아래 조국강산은 나날이 푸르러가고있다. 날로 변모되는 조국산천의 모습을 보며, 조국의 산들에 애국의 땀을 묻으며 천만군민은 더욱 확신하고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계시여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애국념원이 어려있는 이 땅의 모든 산들은 반드시 황금산, 보물산으로 전변될것이라는것을. 조국의 푸른 숲은 절세의 위인들의 숭고한 애국의 뜻을 길이 전하며 천만년 푸르러 설레이리라.
글 본사기자 정순학 사진 본사기자 김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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