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4월 3일 로동신문
주체의 태양이 솟아오른 혁명의 성지 만경대고향집을 찾아서
화창한 봄빛, 싱그러운 대기, 꽃나무들에서 뾰족뾰족 움터나는 싹들… 조용히 불러만 보아도 마음 경건해지고 숭엄한 격정으로 가슴젖어드는 우리 인민의 마음의 고향 만경대, 언제 어디서나 인민의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되여있는 곳, 그리워 달려오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 세상 한끝까지 이어져있는 태양의 성지는 봄의 정취를 한껏 머금고있었다. 《만경대는 반만년민족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먼발치에서부터 수려한 만경대의 경치가 우리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였다. 만경대는 예로부터 평양8경과 함께 명승지로 일러왔다. 일만가지의 아름다운 경치를 한눈에 다 볼수 있다고 하여 만경대라고 부른 이 고장의 이름은 원래 만경봉을 가리켜서 한 말이였다. 이 봉우리에 올라서면 앞이 확 틔여 100리안팎의 자연풍치를 한눈에 다 부감할수 있고 봉우리모양이 하나의 정교한 루대를 방불케 한다고 하여 옛적부터 만경봉을 가리켜 만경대라고 불렀다. 이것이 점차 이 고장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되였다. 옛날 평양의 재능있는 한 향토시인은 시에서 비취색구름속에 솟은 만경대의 자태를 시에 담자고 하니 보면 볼수록 더더욱 아름다와 차마 시구절을 찾을수 없다고 격찬하였다. 성지에 넘쳐흐르는 화창한 봄기운에 심취되여있는 우리의 귀전에 불후의 고전적명작 《사향가》의 은은한 선률이 들려왔다. 간고한 항일전의 나날 고향 만경대를 소중히 안고사신 잊지 못할 만강의 봄날에 하많은 추억을 불러일으켜주며 마음의 금선을 울려주는 《사향가》였다.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 우리는 고향집뜨락으로 향하였다. 만경대고향집! 보면 볼수록 위인의 생가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소박하고 수수한 추녀낮은 초가집이다.하지만 누구나 태양을 알듯 세계가 아는 혁명의 성지, 태양의 성지였다. 경건한 마음으로 우리는 사립문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만단사연이 어려있는 사립문이였다. 돌이켜보면 우리 나라를 망국의 비운속에 몰아넣은 근대력사의 파도는 만경대고향집 사립문안으로도 사정없이 쓸어들었다. 하지만 만경대혁명일가분들은 그 위협앞에서 절대로 굴복하지 않았으며 고향집사립문을 나서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 서슴없이 한몸을 내대시였다.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께서 지원의 사상을 내놓으시고 풍파사나운 력사의 새벽길을 헤쳐가신것도, 김형권동지를 비롯한 일가분들이 혁명의 길에 나서신것도 오로지 조국의 해방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서였다. 고향집사립문을 바라볼수록 사생결단의 의지를 안으시고 결연히 광복의 천리길에 오르시던 그날의 만경대고향집 사립문을 나서신 때로부터 장구한 기간 걸출한 사상과 탁월한 령도, 불같은 애국헌신으로 시대와 력사앞에 영원불멸할 업적을 쌓아올리신 그이께서 헤치신 항일혁명의 길은 뼈를 깎고 살을 저며내는 고통과 슬픔, 지어는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험로역경의 피어린 가시덤불길이였다. 이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하직하고 고향을 떠날 때에는 모두들 나라를 찾고서야 돌아오겠다면서 씩씩하게 사립문을 나섰다.그러나 그들가운데서 조국으로 돌아온것은 나 하나뿐이였다.… 언제인가 만경대를 찾으시여 고향집 사립문앞에 이르신 이 력사의 집에 들어설 때면 할머니의 심정이 그처럼 비통할진대 만리타향에 무주고혼이 되여 누워있는 선친들의 유해마저 모시지 못하고 고향집사립문에 홀몸으로 들어선 내 마음이야 어떠했겠는가고 절절히 쓰시였습니다. 이윽고 사립문을 지나 고향집뜨락에 들어서시여 수난많던 이 나라 력사의 흔적이 력력한 사적물들을 일일이 돌아보신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강사 허은정동무는 말하였다. 《우리 강사의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만경대에서 탄생하시여 부모님들의 애국주의교양을 받으시며 나라찾을 큰뜻을 키우신 우리 만경대시절에 체험하신 3.1인민봉기도 우리 어리신 나이에 어른들과 함께 시위대렬에서 독립만세를 부르시며 만경대에서 보통문앞에까지 가신 그때의 잊을수 없는 체험에 대해 우리 3.1인민봉기는 나를 인민의 대오속에 세워주고 나의 망막에 우리 민족의 참다운 영상을 새겨준 첫 계기였다.내 마음속에 우뢰가 되여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던 독립만세의 메아리에 귀를 기울일 때마다 나는 우리 인민의 백절불굴의 투쟁정신과 영웅성을 두고 다함없는 자부심을 느끼군 하였다. 3.1인민봉기후 우리 이런 생각으로 가슴을 적시며 우리는 만경대고향집을 돌아보았다.원상대로 보존되여있는 사적물들이 더없이 소중히 안겨왔다. 만경대혁명일가분들이 겪어오신 가난한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농기구들과 회땜한 물동이, 쭈그러진 독과 닳아진 망돌, 몇대를 두고 내려온듯싶은 등잔… 그 사적물들에 비낀것은 고된 로동의 흔적만이 아니였다. 돈이 없이는 살수 있어도 인덕이 없으면 살수 없다는 후더운 인정의 세계, 모진 가난속에서도 조국과 인민에 대한 사랑을 가풍으로 삼고 세월의 모진 풍파를 꿋꿋이 이겨내신 만경대일가분들의 애국의 넋이 슴배여있었다. 강사는 만경대일가분들이 간직하고계신 고결한 인생관을 보여주는 하나의 이야기를 감동깊이 들려주었다. 해방후 김구가 만경대고향집을 방문하였을 때의 일이다. 그가 집에 들어섰을 때 할아버님께서는 예나 다름없이 수수한 농민복차림으로 남새밭에 둘러칠 수수바자를 엮고계시였고 할머님께서는 부엌토방에서 마늘종자를 고르고계시였다.그 모습을 보며 너무도 감동된 그는 손자님을 한 나라의 그러자 할아버님께서는 내 손자는 할아버님의 말씀에서 김구는 강사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여운을 새겨주었다. 우리의 가슴속에서는 애국으로 한생을 빛내이신 만경대일가분들에 대한 한없는 경모의 정이 그득히 차올랐다. 세상에는 지금으로부터 수십년전 어느날 시간이 흐를수록 다함없는 흠모의 정으로 끓어번지는 그리움의 물결이 만경대고향집으로 끝없이 흐르고있었다. 조선의 새봄도, 글 본사기자 김일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