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4월 14일 로동신문

 

인민의 태양 영원히 빛난다

 

푸르싱싱한 소나무들과 갖가지 아름답고 진귀한 꽃나무들로 숲을 이룬 만경봉, 그밑으로 억만구슬을 굴리는듯 한 대동강, 푸른 주단같은 벌판과 높고낮은 산봉우리들이 기묘한 조화를 펼치고있는 아름다운 풍치…

봄의 훈향에, 성지의 일만경치에 한껏 매혹된 우리는 사람들의 물결에 섞이여 만경대혁명사적관으로 향하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만경대는 반만년민족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어버이수령님께서 탄생하시여 어린시절을 보내신 우리 인민의 마음의 고향이며 세계 혁명적인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은 태양의 성지, 혁명의 성지입니다.》

만경대혁명사적관 강사는 사적관에 들어선 우리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리신 나이에 만경대고향집을 나서신 때로부터 언제나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을 걸으시였다고, 마음은 때없이 그리운 고향집으로 달리시였건만 인민의 행복을 위한 사랑과 헌신의 길을 묵묵히 이어가시였다고 격정에 젖은 목소리로 말하는것이였다.

우리는 참관자들과 함께 사적관의 첫 호실에 들어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만경대에서 탄생하신데 대하여 보여주는 감명깊은 자료들이 전시되여있었다.

나라를 빼앗긴 겨레의 곡성이 하늘에 닿았던 바로 그러한 시기 민족의 태양을 일일천추로 갈망하는 인민의 숙원을 안으시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여기 만경대의 추녀낮은 초가집에서 탄생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탄생하신 4월은 민족의 새 기원을 알리는 대통운의 봄이였다.수난많던 민족사에 종지부를 찍고 인민이 주인된 새세상을 안아오실 천출위인께서 탄생하신 민족의 대경사를 참으로 감명깊게 새겨주는 호실이였다.

다음호실에는 대대로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만경대혁명가문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증조할아버님이신 김응우선생님과 증조할머님이신 김씨녀사의 모습앞에서 참관자들은 오래도록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여기에서 강사는 참관자들에게 만경대에 터전을 잡으신 김응우선생님의 애국애족의 력사를 실감있게 들려주었다.

김응우선생님께서는 미제침략선 《셔먼》호를 격침시키는 투쟁의 앞장에 서시여 인민들을 이끄시였다.산당지기로 살아오신 평백성이시였지만 조국을 지키는 길에서는 불굴의 용사가 되여 애국투쟁에 나서군 하신 김응우선생님이시였다.우리는 김응우선생님께서 심으신 소나무를 보여주는 사진도 보았다.선생님께서 심으신 소나무는 선생님의 애국의 세계를 전하며 오늘도 푸르러 설레이고있다.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린시절 무지개잡이를 하시였다는 나무가 바로 그 소나무였다고 한다.

만경대에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비끼군 하였다.그러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찬란한 무지개를 보시며 그 빛나는 한쪼각을 어두운 집안에 걸어놓는다면 얼마나 좋을가 하고 생각하시였다.

쭈그러진 장독을 보여주는 사진은 또 얼마나 참관자들의 눈굽을 적셔주는것인가.증조할머님이신 김씨녀사가 독을 사러 장에 나가시였을 때 수중에는 2전밖에 없었다고 한다.독을 구울 때 열을 골고루 조절하지 못하면 쭈그러지게 되는데 그래도 독장사는 다른 독들과 함께 행여나 하여 그 독도 내놓았었다.그런데 누구도 쳐다보지 않아 나중에는 그 독을 깨버리려고 하였는데 김씨녀사가 사시였던것이다.그 독을 사시는 김씨녀사의 가슴속에서는 피눈물이 흘러내리였다.그때의 일을 회억하시면서 후날 김씨녀사는 독이 찌그러졌다고 장맛이야 변하겠는가고, 이다음에 이 독옆에 보기 좋은 독들을 가지런히 장만해놓고 이 독에 담긴 피눈물나는 이야기를 두고두고 하면서 살아갈 그런 세상이 꼭 올것이라고 하시였다고 한다.

그처럼 어렵게 살아오시였지만 만경대일가분들은 나라를 찾는 성스러운 길에 자신들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해방된 조국에서도 나라에 조금이라도 부담을 줄세라 손에서 일감을 놓지 않으시고 근면하게 사신 혁명일가분들에 대한 이야기는 참관자들의 심금을 울리였다.특히 김보현선생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도 밭을 가꾸시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은 우리의 가슴을 더욱 뜨겁게 울려주었다.

다른 한상의 사진앞에서도 참관자들은 쉬이 걸음을 옮기지 못하였다.주체8(1919)년 고모사촌과 함께 계시는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의 모습이였다.김형직선생님께서 남기신 사진은 그 사진 한장뿐이라고 한다.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한 길에서 너무도 일찌기 생을 마치시였건만 김형직선생님의 모습은 그 뜻깊은 사진과 더불어 우리 인민의 심장속에 깊이 새겨져 빛나고있다.

우리는 참관자들과 함께 위대한 태양을 안아올리신 강반석어머님의 한생과 조국해방위업에 생을 기꺼이 바치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권동지와 김철주동지를 비롯한 일가분들의 생애를 보여주는 사진들을 깊은 감동속에 보고 다음호실로 참관로정을 이어갔다.

호실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유년시절과 소년시절의 혁명활동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전시되여있었다.위대한 수령님께서 유년시절부터 비범한 천품을 지니신데 대하여, 부모님들로부터 받으신 애국적영향과 생활체험에 대하여 들으면서 우리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위대한 혁명가로 성장하실수 있은 근본바탕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절감할수 있었다.3.1인민봉기를 보여주는 사진앞에 서니 시위군중과 무장경찰의 격투로 불꽃을 일으키던 보통문앞거리에서 나의 세계관은 새로운 단계에로 도약하였다고, 어른들의 틈바구니에서 발돋움을 하며 독립만세를 부르던 그 시각에 나의 유년시절은 벌써 끝났었다고 말할수 있다고 쓰신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의 글줄이 되새겨졌다.

위대한 수령님의 소년시절은 타향살이, 이국살이로 시작되였다.그 시절에 벌써 망국노의 뼈아픈 처지를 체험하시며 타향인 중강으로 가시였고 그후에는 또다시 이국땅 림강으로 가시며 가장 큰 불행이 나라잃은 슬픔이고 조국을 떠나는 슬픔이라는것을 통감하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그때부터 수령님께서는 고향 만경대를 늘 그리움속에 안고사시였다.만경대는 우리 수령님께 있어서 나서자란 고향만이 아니였다.사랑하는 혈육과 나라잃고 신음하는 겨레가 사는 조국이였다.

대동강물 아름다운 만경대의 봄

꿈결에도 잊을수 없네 그리운 산천

광복의 그날 아 돌아가리라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치시던 나날 우리 수령님의 가슴을 조국애로 뜨겁게 불태워주던 노래의 선률이 우리의 귀에 쟁쟁히 울리는것만 같았다.

다음호실에서 참관자들의 눈길을 류달리 끈것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위대한 혁명가로 성장하시던 시기를 보여주는 주요로정도였다.

참관자들은 그 로정도를 유심히 바라보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린시절부터 빼앗긴 조국을 찾기 위해 얼마나 간고한 길을 걸으시였는가를 페부로 절감하였다.

강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방후 처음으로 고향 만경대를 찾으신 날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그날은 주체34(1945)년 10월 14일이였다.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신 우리 수령님께서 스무해만에 조국으로 돌아오실 때 감회가 얼마나 깊으시였으랴.

한시바삐 한달음에 찾고싶으신 고향집이였다.허나 새 조국건설을 앞에 놓으시였기에 고향집을 찾는 일을 뒤로 미루시다가 인민들과 조국개선의 인사를 나누신 다음에야 만경대고향집에 들어서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버이수령님과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와 함께 만경대를 찾으신것은 해방된 이듬해의 1월 1일이였다고 한다.

그날 리보익녀사께서는 소박한 상을 차려주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동지께 산에서 싸우느라고 큰상도 받지 못하였는데 이 상을 큰상으로 알고 받으라고 하시였다.그리고 어리신 장군님께 이 상을 만경대집에서 차려주는 첫돌상으로 생각하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날 김보현선생님께서는 소중히 보관해오신 벼루를 꺼내놓으시였는데 우리 장군님께서는 먹을 듬뿍 찍으시여 김일성장군 만세!》라고 큼직하게 쓰시였다.큰 웅지가 안겨오는 글발을 바라보시던 김보현선생님께서는 과시 만경대의 혈통을 타고났다고 하시면서 어서 커서 아버님을 잘 받들어 우리 나라를 빛내여나가라고 하시였다.

대대로 애국의 가풍을 이어오시고 혁명의 한길을 걸어오신 만경대혁명일가분들에 대한 가슴뜨거운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다음호실에 들어섰다.

우리는 주체61(1972)년 4월 22일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의 로투사들과 함께 계시는 사진문헌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언제나 마음속에서 떠난적 없는 만경대였지만 우리 수령님께서는 고향집에 자주 들리지 못하시였다.새 조국건설시기는 물론 조국해방전쟁과 전후복구건설 그리고 사회주의건설을 이끄시느라 늘 그리움속에 만경대고향집을 안고계시였다.

나서자란 고향집이지만 아직까지 여기에서 동무들과 함께 기념사진 한번 찍을 기회가 없었다고 하시면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투사들과 함께 고향집사립문앞에서 뜻깊은 사진을 찍으시였다.

그날의 자리에는 피바다, 눈보라만리를 헤쳐온 항일혁명투사들과 함께 새 세대 혁명의 지휘성원들도 있었다.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해야 할 중대한 시기에 만경대를 찾으시여 새 세대들이 혁명의 계주봉을 굳건히 이어가도록 하신 우리 수령님.

잊을수 없는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백두밀림에서 개척된 성스러운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완성할 의지를 다시금 선언하시였다.

진정 사적관에 전시된 사적물들은 억만금에도 비길수 없는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영광스러운 혁명력사와 불멸의 업적을 길이 빛내이실 의지를 안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우리는 만경대를 태양의 성지로 더 잘 꾸려 수령님의 위대성과 불멸의 업적을 대대손손 전해가며 이 땅우에 수령님의 혁명력사가 영원히 흐르게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뜻을 받드시여 사회주의강국건설을 승리에로 이끌어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계시여 혁명의 성지 만경대에서 시작된 위대한 태양의 력사는 이 땅우에 끝없이 이어지고있다.

유서깊은 혁명의 성지에 자리잡은 만경대혁명사적관에 대한 참관을 통하여 우리는 4월의 봄이 있어 승리와 영광으로 빛나는 우리 조국의 어제와 오늘이 있고 이 땅에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의 뜻이 활짝 꽃펴나기에 인민의 천하제일강국은 반드시 일떠설것이라는 확신으로 가슴부풀어오름을 금할수 없었다.

그렇다.위대한 충정의 화신이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숭고한 애국헌신의 력사와 더불어 은혜로운 태양의 력사는 무궁토록 흐를것이다.

본사기자 최유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