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4월 21일 로동신문

 

한없이 숭고한 혁명적사랑으로 빛나는 한생

 

력사에는 사랑과 헌신으로 자식들을 훌륭히 키워 내세워준 어머니들이 수없이 많다.

그러나 조선의 어머니 강반석녀사와 같이 숭고한 혁명적사랑으로 민족의 태양을 받들어올리시고 열렬한 애국헌신으로 한생을 빛내이신 위대한 어머니는 있어보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어머니의 온 생애는 그대로 나의 가슴에 참된 인생관, 혁명관을 심어준 하나의 교과서와도 같은 생애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갖가지 꽃들이 앞을 다투며 피여나는 1892년 4월 21일 칠골의 추녀낮은 농가에서 탄생하시였다.

녀사의 한생은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의 혁명사업을 도우시여 혁명가의 안해로서의 성스러운 임무를 다하시였으며 아드님들을 훌륭히 키워 조국앞에 내세워야 할 책임적이고도 무거운 의무앞에 무한히 성실하신 조선의 위대한 어머니의 고결한 한생이였다.

녀사께서는 낮이나 밤이나 김형직선생님을 찾아오는 수많은 동지들을 따뜻이 맞아주시고 그들을 위해 있는 성의를 다하시였으며 때로는 보초병이 되시고 때로는 련락원이 되시여 선생님의 사업을 적극 도우시였다.

어느날 한밤중에 김형직선생님께 손님 한분이 찾아왔다.

그밤에도 녀사께서는 부엌에서 손님을 위해 밥을 짓고계셨는데 방안에서 갑자기 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어머님께서는 그 예리한 소리가 총을 다루는 소리라는것을 륙감으로 느끼시고 토방에 나가 귀를 기울이시였다.방안에서 조심히 총을 다루는 소리가 그곳으로도 새여나왔다.

급히 부엌으로 들어오신 어머님께서는 김형직선생님께 사연을 말씀드리시고 방문에 이불보를 치도록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부뚜막에 놓았던 등잔도 사이문문지방모서리로 옮겨놓으시고 그우에 키를 엇비듬히 씌워 불빛을 막으시였다.

그래도 마음을 놓지 못하시여 밖으로 나오신 어머님께서는 집주변을 한바퀴 도시며 꼼꼼히 살피시였다.

이렇듯 강반석녀사께서는 김형직선생님께서 추켜드신 반일애국투쟁의 봉화가 료원의 불길로 활활 타번지게 하는데 자신의 열정과 뜨거운 지성을 다 바치시였다.

그 정성, 그 사랑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동지들에게 끼마다 별식을 해주시고 재봉일과 삯빨래로 모으신 돈도 혁명을 위하여 다 내놓군 하신 강반석녀사.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머님의 혁명생애에 대하여 회고하시면서 항일유격대는 어머니가 지어준 밥을 먹고 어머니가 지어준 군복을 입고 어머니가 만들어준 기발을 추켜들고 창건되였다고, 어머니가 항일유격대의 창건을 적극 도우신것은 나라의 독립을 간절히 바라시였기때문이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강의한 성품을 지니시고 모진 고난속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시던 강반석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갓 창건된 반일인민유격대의 첫 대오를 이끄시고 열병식을 진행하신 그날에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시였다.

그날 첫 무장대오의 장한 모습을 바라보시며 어머님께서는 내가 오늘 우는것은 슬퍼서 우는것이 아니라 기뻐서 울고있다고, 총을 멘 이 아들들을 조선의 어머니들이 본다면 얼마나 기뻐하겠는가고, 꼭 조선을 독립시켜 우리 어머니들의 피맺힌 원한을 풀어주어야 한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강반석어머님의 한생에서 제일 잊지 못하시고 절절히 추억하신 모습, 그것은 남만원정을 떠나시기에 앞서 보신 어머님의 마지막모습이였다.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으로 우리 혁명은 새로운 앙양기에 들어섰건만 강반석어머님의 병환은 점점 깊어갔다.모진 병마에 시달리시면서도 강반석어머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과 일가분들에게 언제나 가정보다 혁명에 충실할것을 요구하시였다.

남만원정을 앞에 두고 토기점골에 들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중환에 계시는 어머님을 두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미여지는 가슴을 달래실 때 강반석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이 오늘도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울려준다.

《…너의 효성이 지극하니 고맙기는 하다만 그만한것으로 위안을 받을 내가 아니다.부녀회를 늘이려고 무송에서랑 네 손목을 잡고 험한 령을 넘어다닐 때에 오늘 이런 위안이나 받자구 그랬겠느냐? 너에게는 더 큰일이 있다.아버지의 유언을 지켜야 하지 않겠니.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조선사람이 얼마나 많으냐.내 걱정은 말구 어서 네 갈길이나 빨리 가거라.》

강반석어머님의 뜻깊은 그 말씀, 그것은 짓밟힌 겨레의 당부였고 신음하는 조국의 당부였다.

이제 헤여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수 없는 사랑하는 아드님과의 작별은 어머님께 있어서도 참으로 참기 어려운 고통이였다.

하지만 어머님께서는 병색짙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시며 방문을 인차 닫으시였다.

손가락끝이 모지라지도록 삯빨래, 삯바느질로 저축해두시였던 돈 20원,

어머님의 체취가 뜨겁게 슴배여있는 그 돈을 손에 꼭 쥐시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집둘레를 돌고 또 돌기만 하신 위대한 수령님,

참기 어려운 아픔이 심장을 죄여드는 순간이였지만 어머님께서는 혁명을 위해 모진 마음을 먹으시고 방문을 열어젖히시였다.

《…너는 집안일을 걱정하기 전에 먼저 감옥에 계시는 삼촌을 생각하구 외삼촌을 생각해야 한다.빼앗긴 나라를 생각하구 백성들을 생각해야 한다.왜놈들이 나라를 강탈한지도 벌써 스물두해가 되여오는데 너두 조선의 사내라면 맘을 크게 먹구 걸음을 크게 떼야 할게 아니냐.네가 장차로도 이 에미걱정때문에 집으로 찾아올 생각이라면 아예 이 문앞에 얼씬도 하지 말아라.나는 그런 아들은 만나지 않겠다.》

바로 이날이 위대한 수령님께 있어서 어머님을 뵈온 마지막날이 될줄 어이 알았으랴.

조국과 민족을 위한 시련에 찬 길에서 혁명가의 신념을 검증하는 곡경에 처하실 때마다 그 어떤 리념이나 철학적명제를 생각하기에 앞서 남만으로 떠밀어보내면서 어머님께서 하시던 말씀을 되새겨보시며 의지를 가다듬군 하신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예로부터 훌륭한 제자의 뒤에는 훌륭한 스승이 있고 훌륭한 자식의 뒤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고 했다.

자식에 대한 사랑도 가정의 행복도 조국과 혁명을 위해 깡그리 다 바치신 강반석녀사의 고귀한 모습은 오늘도 위대한 어머니의 귀감으로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의 심장속에 깊이 아로새겨져있다.

정녕 조선의 태양, 인류의 태양을 숭고한 혁명적사랑과 애국헌신으로 받들어올리신 강반석녀사의 불멸의 업적은 부강번영하는 우리 조국의 모습과 더불어 길이 빛날것이다.

오영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