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4월 29일 로동신문
공화국력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지식인들 물리학부문의 첫 원사 도상록
《절세의 위인들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속에서 지난날 곡절많은 생활의 길을 걸어온 오랜 지식인들도 우리 제도에서 자라난 새 세대 지식인들도 다같이 보람찬 과학탐구의 한길을 걸으며 새 조선의 첫 기슭에서부터 나라의 과학발전을 위하여 공헌한 관록있는 학자들중에는 이름난 물리학자였던 도상록선생도 있다. 조선봉건왕조말엽에 함흥에서 출생한 도상록선생은 간악한 일제식민지통치밑에서 망국노의 설음을 겪으면서 성장하였다. 남달리 영특하여 어려서부터 신동이라고 불리운 도상록선생은 정의감이 강하였고 중학교시절에는 3.1인민봉기에 참가하였다는 리유로 상급학교에 진학할수 없었다.그러나 그의 불타는 향학열을 막을수 없었다. 그는 이역땅에서 고학으로 대학을 다니면서 민족적차별과 멸시속에서도 오직 높은 실력으로 민족적존엄을 지키리라 결심하고 학업에서 특출한 성적을 거두군 하였다. 그후 개성에 있는 한 중학교에서 교원생활을 하면서 그는 물리학과 관련한 론문들도 발표하였으나 그것은 식민지지식인의 설음만을 더해주었다. 나라없던 그 세월 방랑학자가 되여 다른 나라에서 대학교편을 잡고있을 때에도 그는 자기의 재능을 조국과 민족을 위해 써먹지 못하는 통분함을 금할수 없었다.더우기 해방후 서울에서 교편을 잡고있던 도상록선생은 나라의 물리학발전에 이바지하고싶은 자기의 희망을 도저히 이룰수 없었다. 이러한 그에게 재생의 봄을 안겨주시고 과학자로서의 참된 삶을 빛내여나가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신분은 선생은 물리수학부 초대학부장, 연구원 원장으로 사업하면서 주체41(1952)년 우리 나라 물리학부문의 첫 원사로 되였으며 우리 나라 물리학부문 특히 리론물리학분야를 개척하고 발전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도상록선생은 우리 나라의 첫 원자력부문 과학교육단위의 책임자로서 《핵구조론》, 《량자력학》, 《원자로물리》 등 수십종의 도서들을 집필하였으며 나라의 리론핵물리학을 세계적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도상록선생은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과학연구활동과 교수사업에 전심하여 수많은 과학일군들과 물리학전문가들을 양성하였다. 본사기자 공로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