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5월 12일 로동신문

 

혁명전통교양의 대전당 조선혁명박물관을 찾아서(27)

위대한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을 창조하시여

 

온 나라가 세차게 끓어번지고있다.천만군민이 당이 제시한 새로운 전략적로선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선 격동적인 시기에 조선혁명박물관 사회주의기초건설시기관을 참관하는 우리의 가슴은 마냥 설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탁월한 령도로 굳건히 다져주신 자립경제의 튼튼한 토대가 있기에 우리 인민이 오늘과 같이 강력한 사회주의경제를 일떠세우기 위한 힘찬 진군을 다그쳐나갈수 있게 되였다고 말하면서 강사는 우리를 안내하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는 심오한 사상리론과 비범한 령도력, 거창한 혁명실천으로 조국과 인민, 시대와 혁명앞에 불멸의 업적을 남기신 가장 걸출한 수령, 희세의 정치원로이시다.》

사회주의기초건설시기관에서 우리는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이 창조된 력사적사실을 보여주는 호실을 돌아보았다.

참관자들에게 강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회주의기초건설을 위한 투쟁을 이끄시던 나날에 우리 당의 전통적인 사업방법을 새로운 현실에 맞게 구현하고 발전시키시여 대중령도방법문제를 빛나게 해결하신데 대하여 감동깊이 해설하였다.

《위대한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 창조》라는 글발이 부각된 벽면앞에서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사진문헌들을 숭엄히 우러렀다.

력사의 땅 청산리와 더불어 길이 빛날 우리 수령님의 령도업적을 전하여주는 영상사진문헌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49(1960)년 2월 보름동안 강서군(당시)과 청산리를 현지지도하시면서 리와 군의 사업을 료해하신데는 사연이 있었다.

당시 우리 나라에서는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개조가 완성되고 천리마를 탄 기세로 혁명과 건설이 빨리 추진되고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의 요구에 맞게 당 및 국가, 경제기관들의 사업체계와 사업방법은 낡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군들의 조직지도수준이 발전하는 현실에 따라서지 못하고있었다.이러한 부족점은 농촌경리부문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나고있었다.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에서 이 문제해결의 절박성을 깊이 통찰하시고 전해에 진행된 1959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당, 국가, 경제기관들의 사업체계와 방법을 새로운 환경에 맞게 개선할데 대하여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서군을 새로운 사업방법을 창조하기 위한 시범단위로 정하시고 청산리와 군당위원회에 지도소조를 파견하신데 이어 몸소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였다.

이른새벽 숫눈길을 헤치시며 청산리에 오신 첫걸음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도소조의 보고를 받으시기에 앞서 농민들의 집을 찾으시여 그들의 생활형편부터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지난해에 로력공수는 얼마나 벌고 알곡과 현금은 얼마나 분배받았는가, 집짐승은 얼마나 기르는가, 김장은 넉넉히 담그었는가, 아침에 무슨 밥을 해먹었는가, 이부자리는 다 갖추었는가,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는가.…

당과 국가의 전반사업을 돌보시느라 분초가 새로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집에서 또 다른 집으로 옮겨가시며 평범한 농민들과 허물없이 자리를 같이하시고 생활의 구석구석을 헤아려주신 사실들은 우리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주었다.

참관자들에게 강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청산리초급일군들과 핵심당원들을 만나 담화도 하시고 리의 사업을 깊이 파악하신데 기초하여 군당과 군인민위원회사업을 료해하신 내용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들려주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는 그대로 지도사업은 사무실이나 회의장의 연탁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장악하고 포치만 하는것이 아니라 대중속에 들어가 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늘 사업도 토의하고 애로가 무엇인가를 알아내여 풀어주면서 실지로 아래단위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가를 우리 일군들에게 실천적모범으로 보여주신 뜻깊은 자욱자욱으로 아로새겨졌다.

주체49(1960)년 2월 8일 청산리당총회에서 연설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영상사진문헌을 우러를수록 잊지 못할 그날 회의참가자들이 하는 토론도 들어주시며 사회주의적농촌경리발전과 대중지도에서 지침으로 되는 강령적가르치심을 주시던 우리 수령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금시라도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관리위원장은 농사를 할줄 알아야 한다, 농사의 선생은 여기에 모인 조합원들이다, 때문에 관리위원장은 밑에 직접 내려가서 일도 같이하면서 물어도 보고 의논도 하고 자기가 아는것은 가르쳐도 주어야 한다, 나도 항일무장투쟁을 할 때 경험해보았는데 일을 잘하자고 하면 대원들과 늘 사업도 토의하고 그들의 애로도 풀어주며 그들을 교양하여야 하였고 군사정치훈련에서도 모범이 되여 대원들보다 총도 더 잘 쏘아야 하였다, 관리위원장은 농민들과 언제나 농사일을 토론하고 그들에게서 농사일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해야 밑의 실정을 정확히 알고 그에 맞게 분공을 줄수 있으며 해당한 대책을 세울수 있다고 하시며 대중지도방법을 일깨워주신 위대한 수령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로작 《사회주의적농촌경리의 정확한 운영을 위하여》의 친필원고를 보며 참관자들은 위대한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이 어떻게 창조되게 되였는가를 뜨겁게 새겨안을수 있었다.

청산리방법의 기본, 그것은 웃기관이 아래기관을 도와주고 웃사람이 아래사람을 도와주며 늘 현지에 내려가 실정을 깊이 알아보고 문제해결의 옳바른 방도를 세우며 모든 사업에서 정치사업, 사람과의 사업을 앞세우고 대중의 자각적인 열성과 창발성을 동원하여 혁명과업을 수행하도록 하는것이였다.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의 일반화》라는 글발이 부각된 벽면에서 참관자들은 당시 우리 조국의 벅찬 숨결을 느낄수 있었다.

청산리방법이 전당에 일반화되는 과정에 당사업은 창조로 들끓는 공장의 기대앞과 논밭머리에서 진행되는 사람과의 사업, 창조적인 사업으로 전환되였다.

국가, 경제기관들의 사업에서도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 모든 부문, 모든 사업에서 지도가 아래에 접근되고 우가 아래를 책임적으로 도와주는 체계가 정연하게 확립되게 되였다.

청산리방법이 전당에 일반화되여 당의 령도적역할이 더욱 강화되고 혁명적군중로선이 철저히 관철됨으로써 천리마운동이 한층 다그쳐지게 되였으며 경제사업에서는 놀라운 성과가 이룩되게 되였다.

다음호실에서도 참관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우리 조국땅에서 일어난 경이적인 기적들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였다.

강사로부터 《사회주의공업농업국가에로의 전변》이라는 글발이 부각된 벽면에서 인민경제발전 5개년계획수행기간에 이룩한 성과들과 사회주의기초건설의 력사적과업이 어떻게 빛나게 실현되였는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참관자들은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5개년계획이 수행된 결과 우리 나라는 자립적민족경제의 튼튼한 토대를 가진 사회주의적공업농업국가로 되였다.도시와 농촌에서 사회주의적생산관계가 전일적지배를 확립하게 되였으며 기계제작공업을 핵심으로 하는 중공업기지와 경공업기지가 닦아지고 농촌경리도 튼튼한 생산토대를 가지게 되였다.인민생활이 높아지고 모든 사람이 먹고 입고 쓰고살 근심걱정을 하지 않게 되였다.이리하여 우리 나라 북반부에서 사회주의기초건설의 력사적과업은 승리적으로 실현되였다.

력사의 그 나날을 추억하시며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는 구절구절 더듬을수록 전후 재더미만 남아있던 이 땅우에서 얼마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는가를 다시금 절감하게 하였다.5개년인민경제계획 현물지표별로 4년동안에 넘쳐 완수, 공업과 농업의 총생산액 1956년에 비하여 각각 3.5배, 1.4배로 장성.

호실에는 또한 위대한 수령님께서 국제혁명력량의 통일단결을 강화하시고 우리 공화국의 대외적권위를 비상히 높여주시기 위하여 정력적으로 활동하신 자료들도 전시되여있었다.또한 어버이수령님의 정력적인 혁명령도를 적극 보좌하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 선군혁명령도를 시작하신 불멸의 사적내용도 있었다.

강사의 해설을 들으며 참관자들은 사회주의기초건설시기관의 마지막호실에 들어섰다.

력사의 그 나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업하시던 당중앙위원회 집무실 모형을 비롯한 뜻깊은 사적물들과 전시된 자료들은 참관자들의 심금을 울려주었다.

호실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회주의기초건설시기 여러 부문 사업을 현지지도하시던 나날에 입으시던 군복외투가 소중히 보관되여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조선혁명박물관을 참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보았을것이지만 자신께서는 수령님께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실 때 늘 입으시던 옷깃이 다 닳아서 보풀이 일고 해여진 수수한 군복외투를 볼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군 한다고 하시며 보풀이 일고 해여진 군복외투의 오리오리에는 위기에 처했던 혁명의 운명,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고 우리 인민에게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련하여주려고 잠시의 휴식도 없이 인민을 찾으시여 수억만리길을 이어가신 수령님의 크나큰 로고와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깃들어있다고 감회깊이 추억하신 사연깊은 군복외투였다.

우리의 눈앞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42(1953)년 7월부터 주체49(1960)년 12월까지 진행하신 현지지도주요지역도가 안겨왔다.

현지지도주요지역도에 새겨진 지명들을 하나하나 꼽아보는 우리의 눈굽은 달아올랐다.우리 수령님께서 조국의 륭성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끝없이 이어가신 헌신의 길은 그 얼마였던가.그 자욱우에서 사회주의기초건설의 력사적과업이 빛나게 실현되였으며 우리 조국은 뒤떨어진 농업국가로부터 자립적민족경제의 공고한 토대를 가진 사회주의적공업농업국가로 우뚝 치솟지 않았던가.

사회주의기초건설시기관을 나서는 참관자들의 얼굴마다에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경모의 정이 어려있었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령도를 높이 받들어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새로운 기적과 혁신을 창조할 불타는 맹세가 비껴있었다.

글 본사기자 림정호
사진 본사기자 김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