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5월 30일 로동신문
공화국의 기치따라 승리와 번영의 70년 황북땅의 눈부신 전변은 로동당시대에 천지개벽의
《조국은 단순히 태를 묻고 나서자란 고향산천이 아니라 인민들의 참된 삶이 있고 후손만대의 행복이 영원히 담보되는 곳이며 그것은 동쪽의 아호비령산줄기와 그옆으로 뻗어내린 언진산줄기, 멸악산줄기의 굽이굽이를 지나고 황주긴등벌과 미루벌, 미곡벌 등의 논과 밭을 따라 달리는 황해북도기행길에서 시종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것은 출발에 앞서 만난 도혁명사적관일군의 이야기였다. 《지금은 우리 황해북도가 어디 가나 사회주의선경을 펼친 자랑많은 도로 되였지만 일찌기 그 옛날 사람 못살 고장이였던 황북땅의 천지개벽을 이르는 곳마다에서 현실로 절감한 우리였다. 기행의 나날 우리는 장장 70년간 인민을 품어안고 인민의 념원을 빛나게 실현해온 우리 공화국의 세기적변혁의 력사가 어디에서 시작되였고 어떻게 흘러왔는가를 다시금 깊이 새겨안게 되였다.
생명수 출렁이니 《풍년가》 울린다
하지만 오늘 황해북도는 수많은 인공호수와 저수지들이 생겨나 생명수 흐르는 땅, 관개면적이 많은 도의 하나로 되였다.하여 우리의 기행은 우리 나라 굴지의 관개체계인 서흥호관개의 기본수원지가 있는 곳으로 향해졌다. 동터오는 아침 봉산군의 구산에 이르니 화창한 봄날의 푸른 숲을 한폭의 그림처럼 품어안고 쉬임없이 출렁이는 산중의 호수가 나타났다.지난 수십년간 황해북도농업의 비약적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한 서흥호였다.봉산군, 서흥군, 린산군, 은파군과 접하고 눈뿌리 아득하게 펼쳐진 대인공호수는 황해북도의 《바다》라고 할만큼 과시 장관이였다. 아름다운 대자연에 그만 넋을 빼앗기였는데 그곳을 지나가던 한 길손이 하는 말이 서흥호의 넓은 수역과 물길을 다 돌아보자면 하루에 100리나마 걷는다고 해도 한달은 실히 걸린다는것이였다.수천개의 구조물들을 거쳐 끝없이 뻗어간 수천리에 달하는 물길로 이어진 서흥호관개체계는 지난 수십년간 봉산군, 은파군의 벌들과 미곡벌, 황주긴등벌, 연탄칠봉벌을 비롯한 도의 주요벌들에 실로 막대한 량의 생명수를 보내주어 알곡증산에 크게 이바지하였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느라니 가렬한 전화의 나날 최고사령부에서 작전지도를 펼치시고 황북땅의 젖줄기가 될 서흥호자리를 잡아주시였고 전후에는 현지에 나오시여 언제위치를 다시 확정해주신 《지난날에는 그 누구도 농민들에게 물을 줄수 없었습니다.그러나 우리 시대, 로동당시대에는 농민들에게 물을 주어야 합니다.》 하늘도 주지 못한 물을 로동당이 반드시 주어야 한다는 우리 마를줄 모르는 그 달디단 젖줄기는 깊은 땅속도 꿰지르고 높은 등판도 치달아오르면서 황해북도의 협동벌들로 만풍년의 서곡을 울리며 찾아가지 않았던가.사리원시 미곡협동농장에서 해마다 정보당 10t이상의 풍만한 결실을 이룩하는 비결도, 해방전에는 왕가물과 큰물로 농민들의 원망소리 그칠새없던 여러 벌들이 도의 손꼽히는 곡창으로 전변된것도 사시절 출렁이는 서흥호를 떠나 생각할수 없었다. 서흥호물줄기를 따라 차를 달리던 우리는 이름난 곡창지대의 하나인 황주긴등벌에 이르렀다. 황주군인민위원회 일군은 지난 기간 군에서도 서흥호덕을 톡톡히 보아왔다고 하면서 우리를 여러 농장들로 이끌었다.무성한 과일나무숲이 펼쳐진 황주과수농장의 풍경도 아름다왔지만 저 멀리 지평선과 잇닿은 사래 긴 벌에서 뜨락또르며 농기계들이 부지런히 오가는 룡천협동농장의 모습은 더욱 볼만 하였다.어떤 포전들에서는 밀보리가 한창이였다. 협동벌의 부근부근한 흙을 한웅큼 쥐여드는데 농장일군이 벌한복판의 등판에 건립한 《날아가던 황새들도 목추길 물이 없어 흙먼지속에 깃을 박고 숨지고말았다는 유래로 하여 황살메라 불리우는 저 등판에 황주군의 어느 리에나 우리 우리가 한 강냉이포전에 이르렀을 때 거기서는 한 로인이 한창 자라는 애어린 강냉이포기들을 어루쓸며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있었다.그곳에서 얼마간 떨어진 삼훈리에 사는 안정대로인이였다.이곳 농장에서 일하던 젊은 시절에 어느해 가을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네 금수강산으로 풍년이 왔네 지화자 좋다 얼씨구나 좋고좋다 … 그날의 사연깊은 《풍년가》를 부르는 로인의 눈가에 눈물이 그득히 고여올랐다. 나라의 중간지대인 황북땅에 생명수를 주시고 《풍년가》의 노래 높이 울리도록 하여주신 수많은 물줄기들이 합쳐지는 합수목에 만년제방을 쌓고 건설한 신곡저수지와 강원땅의 물줄기를 끌어 자연흐름식물길을 형성한 평암저수지를 비롯하여 미루벌을 적시는 관개수는 정녕 우리 그 하늘같은 은덕을 잊지 말자고 현지지도사적비의 천연화강석에 그날의 뜻깊은 교시를 깊이깊이 아로새긴 미루벌사람들, 해방전 하루갈이밭에서 극상해야 조 한섬을 내던 그들이 오늘은 가을이면 벌방의 곡창지대농사 부럽지 않은 수확고를 자랑한다. 최근년간 황해북도의 정보당 알곡생산량은 최고수확고를 기록한 1980년에 비해 1.2배나 높아졌다. 흔히 물은 생명의 원천이라고 한다.로동당이 안겨준 생명수 출렁이여 나라의 쌀독을 채워가는 로동의 보람과 희열 끝없고 한생토록 떠나고싶지 않은 행복의 대지, 영원한 삶의 보금자리가 바로 우리 공화국의 한 부분-꽃피는 황북땅이였다.
송림에는 철의 기지, 례성강엔 계단식발전소
황철의 본때, 례성강의 공격정신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해방전 락후한 농업지역에 불과했던 황해북도가 튼튼한 공업토대를 갖추고 자력자강의 기치높이 나아가는 영웅적 송림시는 대동강흐름이 퍽 완만해지는 하류기슭에 자리잡고있었다.소나무가 무성하여 그 이름 송림이라지만 자연의 송진내보다 더 짙은 철의 도시 쇠물내에 끌려 이곳으로 기행길을 재촉하였다는 우리의 말에 황해제철련합기업소 부지배인 라승남동무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야지요.우리 황철의 쇠물내야 주체철쇠물내가 아닙니까.》 가슴이 뭉클하였다. 주체철, 돌이켜보면 황철로동계급이 걸어온 길은 자력자강의 힘찬 진군로가 아니였던가. 우리는 련합기업소구내에 있는 승리봉으로 향했다.원래 이름없던 산언덕이였지만 조국해방전쟁이 끝난지 이틀만에 찾아오신 해방전 쇠돌을 녹이는 불을 지피고지펴도 식민지노예의 설음과 원한만은 녹일수 없었고 강괴를 밀어내기에 앞서 억울한 떼죽음을 당하기가 일쑤였던 그 저주로운 겸이포에 우리 공화국은 인민의 행복의 만년기둥인 강력한 주체철생산토대, 자력자강의 강철보루를 튼튼히 쌓아올리지 않았던가. 이런 생각에 가슴부풀며 련합기업소의 여러곳을 돌아보던 우리는 출선의 시각을 앞둔 산소열법용광로앞에 이르렀다. 《출선!》 구리빛얼굴의 로장이 내리는 엄숙한 구령에 따라 막혔던 물목이 터지듯 출선구가 뚫렸다.그러자 세차게 쏟아지는 쇠물폭포, 충천하는 화광… 흐르는것은 정녕 물인가 불인가.온통 붉고 눈부신것이 우리의 눈앞을 꽉 채우며 천갈래만갈래로 터져올랐다. 증산의 불길높이 더 많은 쇠물을 뽑아 력사적인 당중앙위원회 4월전원회의 결정관철에 떨쳐나선 나라의 방방곡곡, 거창한 창조와 건설의 전구들로 보낸다니 이 얼마나 가슴후련한가. 이런 믿음직한 철의 기지가 있어 황해북도는 지난 수십년간 기계공장들과 경공업공장들, 건재공업기지들이 일떠서고 채취공업, 제약공업, 목재가공공업 등이 조화롭게 발전하는 자립적인 도로 전변되였으며 조국의 강철기둥은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끄떡없는것이 아니랴. 우리의 기행은 평양-개성고속도로에 들어서서 금천, 토산방향으로 취재차를 달리며 우리는 조선대백과사전에 올라있는 례성강에 대한 기록내용을 머리속에 떠올렸다.우리 나라 강들가운데서 열다섯번째, 황해북도에서는 첫번째에 꼽히는 례성강은 곡산, 수안, 신계, 평산, 금천, 토산군 등 황해북도와 황해남도의 여러 지역을 지난다.… 이런 생각속에 우리가 다달은 곳은 례성강청년1호발전소였다.례성강발전소 기사장 신동주동무를 비롯한 일군들과 함께 자기 힘을 믿고 떨쳐나선 인민이 어떤 기적을 창조하는가를 새삼스럽게 절감하는 순간이였다.이런 발전소를 한두개도 아니고 2호, 3호, 4호에 이어 어느덧 5호발전소완공을 눈앞에 두고있다니 참으로 장하고 위대하다, 황북의 인민들이여라는 찬탄이 저절로 터져나왔다. 그 무궁무진한 힘의 뿌리는 정녕 무엇인가. 지금은 산에 들에 온갖 꽃이 만발하는 5월, 례성강청년1호발전소로 향한 길가의 수천그루의 아카시아나무들에서도 꽃들이 짙은 향기를 풍기고있다. 례성강발전소전기로 여러 광산들이 되살아났고 경암금속가공공장, 경암세멘트공장, 사리원닭공장을 비롯한 수많은 공장, 기업소들이 생산의 동음을 울리고있다는 기사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최근년간 황해북도인민들이 즐겨하는 말을 되새겼다. 《송림에는 철의 기지, 례성강엔 계단식발전소!》 정녕 그것은 70여년전 한숨과 눈물에 쩌들었던 황북땅이 자력자강의 대지로 전변되였으며 황북인민들은 불가능을 모르는
내 나라의 국화가 태여난 곳에서
황해북도사람들은 우리 나라의 국화 목란꽃이 사리원시 정방산에서 태여난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신록이 무르익는 정방산을 찾은 우리는 수십년전 《사실 목란은 예로부터 우리 나라 산들에 수많이 피여 인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평범한 꽃나무였습니다.그러던것이 절세위인들의 은혜로운 사랑속에 꽃중의 왕으로, 우리 나라의 국화로 다시 태여났습니다.》 강사의 이야기를 듣느라니 이번 기행길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그중에서도 제일 인상깊은 일군은 류명금 곡산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 위원장이였다.그가 바로 10여년전 청년작업반포전에 시험포전을 꾸리고 그날의 미루벌처녀가 오늘은 한개 군농사를 책임진 일군으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자랐으니 그의 아름다운 삶을 어찌 절세위인들의 축복속에 다시 태여난 향기로운 목란꽃에 비기지 않을수 있으랴. 이 땅의 한그루 꽃나무도 귀중히 여기시며 아름답게 빛내여주시듯 뜨거운 정을 기울이시고 하많은 품을 들이신 우리 나라 국화가 태여난 고장에 문명생활은 또 얼마나 아름답게 펼쳐졌는가. 우리 공화국력사에 향기그윽한 목란꽃의 화원이 끝없이 펼쳐지듯 날로 향상되는 우리 인민의 생활은 황해북도의 도소재지인 사리원시에도 비껴있었다.해방전에는 한개의 대학도 없던 사리원시에 우리와 만난 도의 한 일군은 황해북도가 지금도 좋지만 앞으로는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될것이라고 확신성있게 말했다. 우리도 믿었다.우리 조국의 국화가 태여난 땅에서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소리가 세세년년 더 높이 울려퍼지리라는것을. 황해북도기행을 마치고 붓을 놓자고보니 미처 다 터치지 못한 격정이 가슴속에 끓어올랐다.황북의 높고낮은 산발들과 농장벌, 강줄기들에 새겨진 절세위인들의 인민사랑과 헌신의 업적은 정녕 끝없어 설사 수천페지라고 해도 다 담지 못할것이다. 황북땅을 떠나는 취재차의 차창가에 정말 이런 멋에, 이렇게 순간에 속이 한번씩 뭉클해오는 행복에 도취되여보려고 힘들어도 웃으며 투쟁속에 사는것 같다고 하신 장장 70년을 이런 열화같은 정과 사랑속에 살아온 우리 인민이 아닌가.그 품을 떠나 어이 살랴.대대로 받아안은 크나큰 바로 이것이 우리 공화국의 영광스러운 70년력사를 돌이켜보는 황북인민들의 목소리 아니 온 나라 전체 인민의 심장의 토로인것이다. 글 본사기자 허명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