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6월 1일 로동신문

 

인민들속에서

우리 유치원에 찾아오신 수령님

오봉옥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생전에 늘 우리가 혁명을 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는것은 자라나는 후대들을 위해서라고 하시며 현지지도의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유치원과 탁아소에 자주 들리시여 어린이들의 생활을 친부모의 심정으로 돌보아주군 하시였습니다.

지금도 가끔 TV화면에서 어린이들속에 계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뵈올 때마다 40년전의 일이 떠올라 가슴뜨거워짐을 금할수 없습니다.

정말 그때 일을 되새겨보면 세상에 우리 수령님처럼 어린이들을 사랑해주신분이 또 어디 계실가 하는 생각에 잠을 이룰수 없습니다.

주체57(1968)년 3월 3일이였습니다.

당시 평양시 외성구역 련화1동의 한 유치원에서 교양원으로 일하고있던 저는 이날 어린이들에게 노래를 배워주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후 4시가 좀 지나 한 일군이 급히 방에 들어서더니 어버이수령님께서 곧 우리 유치원에 오신다고 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너무도 뜻밖의 일에 저는 한순간 어리둥절해졌습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 지구에 다층살림집들이 새로 일떠섰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이날 친히 련화1동을 찾으시였다고 합니다.

제가 어찌할바를 몰라 서성거리고있는데 어버이수령님께서 벌써 전실을 거쳐 교양실로 들어서시는것이였습니다.

그러자 어린이들이 막 달려나가 챙챙한 목소리로 《아버지 김일성원수님,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드리며 수령님의 옷섶에 매여달리는것이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됐다, 됐어.》라고 하시며 사랑어린 손길로 어린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면서 애무해주시였습니다.그러시고는 어린이들에게 《자, 그만하고 이젠 자리에 가 앉거라.》라고 하시고나서 저를 바라보시였습니다.

울렁이는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던 저는 그제서야 어버이수령님께 정중히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저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시였습니다.

저는 어린이들에게 《유치원동무들, 빨리 자기 책상으로 돌아가 아버지원수님께 노래를 불러드리자요.》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린이들은 《야!》 하고 손벽을 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미소속에 그 모습을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저에게 《유치원어린이들이 몇명이나 됩니까?》라고 물으시였습니다.

제가 18명이라고 말씀드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부드럽고 자애넘친 어조로 교양원은 몇명인가고 다시금 물으시였습니다.

교양원이 2명이라는 대답을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유치원어린이가 18명이면 많지 않으니까 교양원 2명도 되겠습니다라고 하시며 천천히 교탁이 있는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눈동자를 반짝이는 어린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시다가 노래나 한번 들어보자고 하시며 교탁옆에 놓인 보통의자에 허물없이 앉으시였습니다.

저는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피아노에 마주앉았습니다.

제가 노래반주를 시작하자 어린이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수령님께 인사를 드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원수님의 사진은 언제 봐도 기뻐요

우리들이 어느때나 보고싶은 원수님

어린이들은 두손을 높이 쳐들기도 하고 가슴에 포개기도 하면서 손세를 써가며 귀엽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린이들의 모습을 환한 미소를 짓고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노래가 끝나자 먼저 크게 박수를 쳐주시며 잘한다고, 노래를 잘 부른다고 치하해주시였습니다.

그러자 신명이 난 어린이들은 다시 노래를 부르며 춤까지 추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저에게는 항일의 나날 어버이수령님께서 나어린 아동단원들을 위해 온갖 사랑과 은정을 다 안겨주신 이야기가 가슴에 어려와 절로 눈굽이 뜨거워지는것이였습니다.

일찌기 어린이들을 잘 키우는것은 혁명의 장래운명과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라고 하시며 유격근거지에 아동단학교를 내오도록 하시고 일제를 반대하여 싸우다 희생된 혁명가들의 아들딸들을 안아키우신 어버이수령님, 너희들은 우리 조국의 꽃봉오리이며 앞날의 기둥이다, 너희들이 명랑할 때 우리도 명랑하고 너희들이 잘 자라면 우리도 기운이 솟는다, 어서 무럭무럭 커서 나라의 훌륭한 기둥이 되라고 하시며 아동단원들의 생활을 친부모의 심정으로 따뜻이 돌보아주신 우리 수령님이시였습니다.

제가 이런 생각에 잠겨 피아노를 타고있는데 노래에 맞추어 손수 손벽을 쳐주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노래가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서시며 노래를 아주 잘 불렀다고 다시금 칭찬해주시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또다시 칭찬해주시자 어린이들의 얼굴마다에는 행복의 웃음이 한껏 어리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런 어린이들을 잠시 둘러보시다가 맨 앞줄에 서있는 한 어린이앞으로 다가가시여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몇살인가고 물으시였습니다.

8살이라는 대답을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올해에 학교갈 나이가 되였구만.》라고 하시며 대견하신 눈길로 어린이의 키와 몸매를 하나하나 살펴보시고나서 만족하신 시선으로 어린이들의 모습을 둘러보시였습니다.

그러시던 수령님께서는 이번에는 교양실 뒤벽에 붙어있는 《별판》과 《자랑판》앞으로 발걸음을 옮기시는것이였습니다.

그때 《별판》에는 매칸에 어린이들의 사진과 함께 이름이 씌여져있었는데 하루생활을 총화할 때마다 글공부와 생활, 규률과 위생에서 모범적인 어린이에게 빨간 오각별을 달아주군 하였습니다.그리고 《자랑판》에는 그림그리기에서 가장 우수한 그림들과 글쓰기, 셈세기를 잘한 어린이들을 소개해주군 하였습니다.

《별판》앞으로 다가가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누가 빨간별을 많이 탔는가 보자.》라고 하시며 별을 많이 탄 어린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시였습니다.

그러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아주 착한 동무들이라고 하시고나서 이번에는 《자랑판》으로 눈길을 돌리시였습니다.

《자랑판》에 그려져있는 그림들을 하나하나 보아주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 어린이가 그린 돼지를 보시고 그림이 신통하다고, 잘 그렸다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기도 하시였습니다.

참으로 어버이수령님은 우리 어린이들의 다심하신 친어버이이시였습니다.

솔직히 말하여 그때까지 숱한 사람들이 우리 유치원에 왔다갔지만 우리 수령님처럼 그렇듯 어린이들과 한데 어울려 노래도 들어주시고 그들이 그린 그림도 구체적으로 보아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자랑판》을 다 보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번에는 칠판에 그린 꿩을 잠시 여겨보시다가 제가 그린 그림인가 물으시였습니다.

제가 그렇다고 말씀드리자 수령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교양원이 그림을 잘 그린다고, 그래서 아이들도 잘 그리는것 같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습니다.

순간 저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아이들은 나라의 왕이라고, 이 아이들의 미래이자 조국의 미래라고, 그런것만큼 유치원교양원의 임무가 중요하다고 하시며 앞으로도 아이들의 심리에 맞게 교양사업을 잘하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정녕 가슴뜨거운 말씀이였습니다.

후에 일군들을 통하여 들은 이야기이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유치원에 앞서 먼저 탁아소를 돌아보시였다고 합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도착하시는 길로 한 일군으로부터 가정부인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살림집아래층은 탁아소와 유치원으로 꾸렸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매우 만족해하시며 1층현관복도로 들어서시였습니다.

젖먹이방이며 놀이방, 잠자는방들을 하나하나 돌아보시며 탁아소어린이는 몇명인가, 온수난방은 되여있는가, 방안의 온도는 몇℃인가 일일이 료해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어느 한 방에 들어가시여 어린이침대에 있는 베개와 이불도 손수 만져보시고는 이런 이불포단이면 아이들이 저절로 잠이 오겠다고 하시며 못내 만족해하시였습니다.

그러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앞으로 이런 방법으로 다층살림집밑에 탁아소를 조직하고 운영하는것이 좋겠습니다.이렇게 하면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지 않고 녀성들의 부담도 덜어주니 얼마나 좋습니까라고 하시며 어린이들을 잘 키우는데서 나서는 구체적인 과업과 방도를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고 합니다.

참으로 해방직후 그처럼 어려운 속에서도 어린이들은 해방된 우리 조국의 보배이며 미래의 주인공들이라고, 후대들을 어떻게 키우는가 하는것은 나라의 흥망성쇠와 관련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하시며 이르는 곳마다에 탁아소, 유치원을 내오도록 하신 그 사랑으로 오늘은 《별판》, 《자랑판》도 보아주시고 어린이들을 더 잘 키우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가르쳐주시니 정녕 우리 나라 어린이들처럼 복받은 어린이들이 또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이렇듯 이날 오랜 시간 탁아소와 유치원을 돌아보시며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새로 건설한 살림집들을 돌아보시며 살림살이형편도 알아보시고 날이 어두워질무렵에야 마당으로 나오시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떠나시기에 앞서 탁아소와 유치원을 감개무량하신 시선으로 둘러보시면서 탁아소와 유치원을 이렇게 잘 꾸려놓으니 얼마나 좋은가고, 이젠 먼지도 나지 않는데서 아이들을 키우게 되였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습니다.

다층살림집 몇채를 합쳐서 아래층에 탁아소, 유치원을 만들어 녀성들이 아이들을 업고다니지 않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는 저의 마음은 끝없는 격정으로 끓어올랐습니다.

그때로부터 몇년이 지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6차회의에서 어린이보육교양법을 채택하도록 하시여 국가와 사회의 부담으로 어린이들을 키우는 조치를 또다시 취해주시였습니다.

정녕 어버이수령님은 우리 어린이들의 밝고 명랑한 모습에서 더없는 기쁨을 찾으시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는 자애로운 아버지이시였습니다.

하기에 이제는 어른이 되여 당이 맡겨준 초소를 굳건히 지키고있는 그날의 탁아소, 유치원의 어린이들은 물론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속에 세상에 부럼없이 자라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오늘도 수령님을 친어버이로 부르며 우러르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앞으로 우리 어린이들에게 돌려주시던 어버이수령님의 그날의 그 사랑과 은정을 언제나 잊지 않고 자식들과 후대들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를 더 잘 받들어나가도록 하는데 저의 적은 힘이나마 다 바치겠습니다.

주체97(2008)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