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6월 4일 로동신문
세기를 이어 메아리치는 승리의 총성 력사적인 보천보전투승리기념일에 즈음하여
경제건설대진군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선 천만군민의 힘찬 발걸음소리가 강산을 진감하는 때에 우리 군대와 인민은 력사적인 보천보전투승리기념일을 맞이하였다. 흐르는 세월속에 년대와 세기는 바뀌였어도 80여년전 삼천리강산을 뒤흔든 보천보의 총성은 오늘도 이 나라 천만군민의 가슴마다에 승리의 메아리로 높이 울리고있다. 《보천보전투는 우리 혁명력사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전투였습니다.》 력사의 땅 보천보, 그 이름 불러보며 우리는 못 잊을 추억의 갈피를 번진다. 이 나라에 망국의 비운이 무겁게 드리웠던 1930년대 중엽, 산천초목조차 비분에 떠는 조선은 하나의 철창없는 감옥으로 화하였다. 당시 일제는 우리 인민의 반일민족해방운동을 완전히 말살해버리기 위해 그 어느때보다도 군대와 헌병, 경찰망을 강화하는 한편 세상에 없는 갖은 악법을 다 만들어내여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잡아가두었다. 또한 일제는 《내선일체》, 《동조동근》, 《황국신민화》를 떠들면서 조선민족의 자주의식과 넋을 송두리채 뽑아버리기 위해 조선사람이 자기 나라 말은 물론 자기의 성과 이름까지 가질수 없게 하였다. 일제의 쇠사슬에 칭칭 휘여감긴 조선은 그야말로 암흑천지였다.바로 이러한 때에 백두산청년장군께서 조국의 북변땅 보천보에서 울리신 멸적의 총소리가 삼천리강토를 진감하며 울려퍼졌다. 보천보의 밤하늘에 울린 총성, 그것은 짓밟힌 겨레의 가슴마다에 민족재생의 서광을 안겨주고 해방전의 불길을 지펴올린 원쑤격멸의 뢰성이였다. 우리 인민이 일일천추로 갈망하던 거대한 사변을 안아오시기 위해 조국진군의 길에 오르시던 민족의 영웅, 절세의 애국자의 거룩한 자욱자욱이 숭엄히 되새겨진다. 조국에로의 진군, 그것은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혈전의 길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적들이 악을 쓰며 감행한 1936년의 《동기대토벌》을 물리치기 위해 사선의 고비를 헤치며 수많은 전투를 치르어야 했다. 곰의골어귀전투, 홍두산전투, 도천리전투, 리명수전투… 백두광야의 설한풍을 이겨내며 언 풀뿌리조차 없어 눈으로 창자를 달래며 한치한치를 피의 대가로 톺아나가야 했던 무송원정의 나날은 또 얼마나 간고했던가. 그러나 이러한 때인 주체26(1937)년 3월말 무송현 서강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소집하신 회의에서 이러한 정황에서 보천보는 당시 함경남도 갑산군의 면소재지였다.일제는 여기에 경찰관주재소, 면사무소, 산림보호구, 농사시험장, 우편국, 소방회관 등 폭압기구들과 략탈기구를 두고 인민들의 반일투쟁과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출을 가로막아보려고 발악적으로 책동하였다. 보천보는 적들의 국경경비 2선에 있는 중요군사요충지였고 국경일대에서 일제의 식민지통치와 략탈의 중심지들중의 하나였다. 보천보를 치면 일제침략자들에게 심대한 정치군사적타격을 주고 인민들에게 조국해방의 신심을 안겨줄뿐만아니라 조선인민혁명군의 위력을 과시할수 있었다. 주체26(1937)년 6월 2일 아침, 만단의 준비를 갖춘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얼마나 기다리고기다리던 조국진군의 길이던가. 6월 3일,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구시등판에 올랐다.구시등판에서는 조국산천이 한눈에 바라보였다. 타향에서 한시도 잊은적 없는 조국이였다. 구시물동에 떼목다리를 놓도록 하신 부대가 곤장덕에 올랐을 때는 주체26(1937)년 6월 4일 새벽이였다.떨기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곤장덕은 대부대가 휴식하면서 전투준비를 갖추는데 아주 유리한 곳이였다. 대원들은 곤장덕의 우묵한 곳을 골라 휴식하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조국땅의 구수한 흙냄새와 꽃향기가 대원들의 페부로 흘러들었다. 깊은 감흥속에 조국의 귀중함을 다시금 뼈에 새기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얼굴마다에는 결사의 각오가 어려있었다. 가림천기슭의 황철나무아래에 지휘처를 정하신 《땅!》 어둠이 짙게 드리운 보천보의 밤하늘을 헤가르며 전투개시를 알리는 백두산청년장군의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삽시에 시가지로 육박해들어갔다.우박치듯 기관총사격소리가 울리고 보총, 권총소리가 한데 어울려 온 거리를 들었다놓기 시작하였다.온갖 폭압과 만행의 아성인 경찰관주재소에 불벼락이 쏟아져내리고 이어 면사무소와 산림보호구, 농사시험장, 소방회관, 우편국, 료리점이 불소나기를 맞았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불의타격에 혼비백산한 적들은 비명을 지르며 살구멍을 찾으려고 헤덤벼쳤다. 사방에서 자지러지게 울리던 사격소리가 얼마쯤 지나서 잠잠해지고 그대신 불길이 솟구치기 시작하였다.처음에는 거리 한쪽구석에서 타오르던 불길이 여러개의 적통치기관들에서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치솟아오르더니 어느새 온 거리는 불바다가 되여 대낮처럼 밝아졌다. 여기저기에서 인민들이 달려나왔다.선전공작대원들이 뿌린 삐라와 격문들을 본 인민들은 만세를 목청껏 불렀다. 《조선독립 만세!》 그날 밤의 감동깊은 광경을 장편서사시 《백두산》에서는 이렇게 노래하고있다. … 밤바다같이 웅실거리는 군중 높이 올라서 칼짚고 웨치는 《동포들이여! 저 불길을 보느냐? 조선은 죽지 않았다! 조선의 정신은 살았다! 조선의 심장도 살았다! 불을 지르라- 원쑤의 머리에 불을 지르라!》 … 백두의 뢰성마냥 보천보의 밤하늘가에 울려퍼지는 보천보전투를 빛나는 승리로 결속하신 보천보전투에 이어 구시산전투와 간삼봉전투의 승전소식은 삼천리강토를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로 끓어번지게 하였다. 보천보전투의 의의는 조선사람은 죽지 않고 살아있으며 일제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싸우고있다는것을 보여줌으로써 민족수난의 시기에 우리 인민들에게 조국해방의 서광을 안겨준데 있다. 력사적인 보천보전투가 있은 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보천보의 총소리는 오늘도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가슴끓이며 신심드높이 나아가는 천만군민은 심장의 목소리를 터친다. 희세의 천출명장이신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일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