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6월 11일 로동신문
고리형순환생산체계를 철저히 확립 화대군 읍협동농장 일군들의 사업경험을 놓고
동해지구의 바다가지방에 자리잡고있는 화대군 읍협동농장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크지 않은 단위이다. 농사조건이 시원치 못한데다 읍지구에 위치한것으로 하여 많은 경우 사회적지원에 의거하던 농장이였다. 그러하던 단위가 최근 몇해사이에 제힘으로 일떠서 해마다 알곡생산계획을 훨씬 넘쳐 수행하는 다수확단위로, 축산과 온실남새, 버섯생산 등 당정책관철에서 앞장선 힘있는 단위로, 농장원들의 분배수준이 높고 잘사는 농장으로 되였다. 《협동농장들에서는 농산과 축산의 고리형순환생산체계를 확립할데 대한 당의 방침을 일관하게 틀어쥐고 철저히 관철하여 축산을 활성화하고 알곡생산을 늘이도록 하여야 합니다.》 오늘 이 농장의 경험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 누구나 자강력으로 흥하는 농장, 본받을만 한 농장이라고 감탄과 부러움을 금치 못하며 다시금 심장깊이 새겨안는것이 있다. 농산과 축산의 고리형순환생산체계를 확립할데 대한 우리 당정책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과 함께 당정책결사관철의 길에 자력갱생, 자급자족의 확고한 담보가 있다는 철의 진리이다.
축산이자 알곡증산이다
농산과 축산의 고리형순환생산체계를 확립하여 축산을 활성화하고 알곡생산을 늘이는것은 당의 현명한 령도밑에 전국의 모든 협동농장들에는 축산작업반과 비육분조들이 조직되여있으며 어디서나 고리형순환생산체계를 확립하여 알곡과 축산물생산을 늘이기 위해 노력하고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같지 않다. 당정책을 무조건 관철하려는 결사의 각오, 더 구체적으로는 당정책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이 서로 다르기때문이다. 당정책을 교과서로만이 아니라 생활의 신조로, 자기 고리형순환생산체계를 확립할데 대한 당정책을 자기 근 10년전 화대군 읍협동농장 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되여 농장을 돌아보는 석호동무의 마음은 무거웠다. 지력이 낮고 정보당수확고가 높지 못하며 농장살림살이형편이 어려운것도 안타까운 일이였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더 아프게 자극한것은 일부
농장원들과 초급일군들의 머리속에 깊이 박혀있는 의존심이였다. 거름생산과 실어내기로부터 가을걷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농공정에서 지원을 받으면서도
읍지구에 위치하고있고 농장 농장에서 자체의 힘으로 지력을 높여 농사도 잘 짓고 살림살이도 활성화해나갈수 있는 방도는 무엇인가. 석호동무의 가슴속에 농산과 축산의 고리형순환생산체계를 확립할데 대하여 주신 당의 뜻대로 축산에 힘을 넣자. 축산이자 질좋은 거름생산이고 알곡증산이며 농장활성화의 위력한 담보이다. 석호동무는 축산작업반과 함께 남달리 이악한 녀성작업반장이 이끄는 제2작업반 비육분조를 먼저 추켜세울것을 결심하였다. 본보기를 창조하고 그 경험을 일반화하면서 온 농장에 축산열풍을 일으키자는데 목적이 있었다. 농산작업반에 묻혀있던 축산전문가가 제2작업반 비육분조에 새로 배치되고 돼지우리도 큼직하게 지어졌다. 하지만 쉽지 않은것이 축산이였다. 첫해 봄철에 작업반에 있던 한마리의 어미돼지가 낳은 12마리의 새끼중에서 10마리나 병에 걸려 죽었다. 그런데 가을철에도 그런 가슴아픈 일이 반복되였다. 몸둘바를 몰라하며 차라리 농사나 착실히 짓겠다고 눈물을 뿌리는 사양공에게 석호동무는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겠소? 돼지를 잘 기르는것이 곧 농사를 잘 짓는 길이 아니겠소.》 그러면서 그의 손에 축산기술도서들을 쥐여주었다. 그들은 다음해 14마리의 새끼돼지를 구입하여 기르면서 돼지우리소독과 예방접종사업을 주선으로 틀어쥐고 내밀었다. 여름에는 매일 물청소를 진행하고 10월부터 3월까지 기간에는 벼짚을 정상적으로 갈아주었으며 소금물과 소석회, 담배대를 리용한 소독도 자주 진행하였다. 그와 함께 돼지의 성장단계별로 예방접종을 빠짐없이 해주었다. 하나같이 튼튼하게 자란 돼지들을 보며 모두가 기뻐하였지만 그것도 순간이였다. 투자 대 실리를 따져놓고보니 손맥이 풀렸던것이다. 일부 초급일군들과 농장원들이 또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알곡생산계획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무슨 여유량곡이 있어 축산을 하겠는가. 그리고 농장이 읍지구에 자리잡고있는데 부디 힘들게 축산을 하면서 거름을 생산할 필요가 있는가. … 석호동무도 생각이 복잡해졌다. 물론 농장에서 생산하고 읍지구에서 지원해주는 거름량도 적지 않은 량이였다. 하지만 해양성기후의 영향을 세게 받는 농장의 실정에서 당이 제시한 알곡생산목표를 수행하자면 우선 지력부터 높여야 하였고 그러자면 뭐니뭐니해도 질좋은 거름을 더 많이 내야 했다. 그런데 해마다 남에게 의존해서야 어떻게 농장에 필요한 거름의 량과 질을 다같이 원만히 보장할수 있겠는가. 무거운 마음을 안고 관리위원회를 나서는 그의 눈가에 문득 농장현판이 새롭게 부각되며 안겨들었다. 화대군 읍협동농장! 크든작든 조국의 귀중한 한 부분이고 나라의 쌀독에는 우리가 채워넣어야 할 몫도 있다. 농장명칭만 있고 진정한 주인들은 없는 이런 농장이 열백개 있은들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죽으나사나 축산을 내밀어 이 땅을 기름지우며 기어이 우리 힘으로 다수확을 이룩하고 농장을 보란듯이 꾸려나가자. 새로운 결심을 가다듬은 그는 초급일군들앞에 나섰다. 이번에 제2작업반에서는 14마리의 돼지를 길러낸 대여섯달동안 근 70t의 질좋은 거름을 생산하였다. 이 거름량만으로도 축산에 들어간 원가는 보상했다고 생각하자. 우리가 이미 수의방역경험을 쌓은 조건에서 이제 좋은 종자돼지를 구하고 알곡먹이소비기준을 낮추기 위해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모든 농산작업반들에서 100마리이상씩의 돼지를 기를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농장자체의 힘으로 해마다 5, 000t의 질좋은 거름을 생산할수 있다. 이렇게 절절히 호소하고난 그는 제2작업반장 조금희동무를 비롯한 초급일군들을 이끌고 축산을 잘하는 전국의 여러 단위를 찾아 떠났다. 당정책을 자기 그들은 앞선 단위들의 경험대로 우량품종의 종자돼지를 구입하는것과 함께 3원교잡체계도 받아들였다. 그리고 돼지우리곁에 닭우리를 짓고 알낳이률이 높은 수백마리의 닭을 기르기 시작하였다. 뿐만아니라 작업반건물과 포전주변의 손바닥만 한 빈땅까지 모두 개간하고 두벌농사도 힘있게 내밀면서 여러가지 먹이첨가제들도 적극 도입하였다. 석호동무는 군당위원회의 지도밑에 이 경험을 모든 농산작업반들에 일반화하기 위한 사업을 더욱 진지하게, 실속있게 내밀었다. 작업반 통계원들이 비육분조장을 겸직하게 한 하나의 사실을 놓고서도 잘 알수 있다. 농장의 축산활성화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 비육분조장선정문제를 놓고 사색을 거듭하던 석호동무는 작업반 통계원들에게 주목을 돌리게 되였다. 농장에 인원이 긴장한 사정도 있었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작업반의 알곡과 재산을 등록 및 관리통제하는 통계원들이 비육분조장을 겸임하면 먹이보장과 투자 대 실리타산, 총화 등 모든 면에서 유리할것이라는 생각이 앞섰던것이다. 당조직에서도 그의 의견을 적극 지지해주었다. 이와 함께 그는 모든 비육분조들에서 축산담당제를 실시하여 분조원들의 생산의욕도 부쩍 높여주도록 하였다. 그의 이 발기와 실천은 현실에서 즉시 은을 내기 시작하였다. 모든 농산작업반들에서 축산이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비알곡먹이비중을 높이기 위한 사색과 실천도 끝없이 이어졌다. 실례로 제2작업반에서는 다른 작업반들에 비해 알낳이률이 높은 닭마리수를 1. 5배이상 늘여 닭 10마리로 돼지 1마리를 기르는데 필요한 알곡먹이를 보충해주게 하였다. 그리고 돼지가 30㎏이상 되는 시기부터는 알곡먹이를 50% 줄이고 대신 닭배설물과 남새부산물들을 균처리하여 먹이도록 하였다. 작업반에 알곡가공설비와 착유설비들을 갖추어놓고 여기서 나오는 부산물도 적극 리용하였다. 그런가 하면 제3작업반에서는 수백마리의 닭을 기르는것과 함께 단백함량이 높은 여러가지 먹이풀을 적극 재배하여 닭배설물을 리용하는것은 물론 콩깨묵소비률을 30%이상으로부터 4%아래로 낮추었다. 그리고 발효먹이에 3~5%정도의 뇨소비료도 첨가해주어 단백함량을 높여주었다. 결과 알곡먹이비중을 훨씬 낮추면서도 증체률을 높여 고기생산주기를 한달이나 줄일수 있었다. 이렇게 비육분조들의 투자 대 실리비률과 축산물생산실적은 날을 따라 일군들과 농장원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었다. 종자와 먹이보장, 과학적인 사양관리와 수의방역사업을 축산의 중심고리로 틀어쥐고 근 10년세월 주저없이, 쉬임없이 당정책을 결사관철해온 보람은 참으로 컸다. 어느 농산작업반들에서나 100여마리의 돼지와 수백마리의 닭이 우글거리고 거름더미가 높이높이 솟아났다. 축산을 하니 고기와 알도 나오고 지력이 높아져 쌀독이 넘쳐났으며 농장살림이 흥해졌다. 그 나날 농장원들의 주인다운 자각은 또 얼마나 높아졌던가. 일군들이 당정책을 교과서의 글줄처럼 외우는가 아니면 자기 단위를 위한 사활적인것으로 심장에 쪼아박는가에 따라 결과에서는 이처럼 뚜렷한 차이가 생기는것이다.
과학농사를 생명선으로 틀어쥐고
농산과 축산의 고리형순환생산체계를 확립할데 대한 당정책관철에서 이곳 일군들이 또 한가지 중요하게 틀어쥐고 내미는것이 있다. 과학농사이다. 축산의 덕으로 농장의 논과 밭은 한해가 다르게 기름지고 알곡수확량도 그만큼 늘어났다. 농장원들은 동해지구에서 이만큼 농사짓는것도 쉽지 않은 성과라고 누구나 좋아하였다. 하지만 농장일군들은 여기에 만족할수 없었다. 서해벌방에 못지 않은 다수확을 목표로 내세운 그들이였던것이다. 그리고 품들여 세워놓은 고리형순환생산체계를 더욱 활성화하여 보다 은을 내게 하자고 해도 알곡생산량을 늘여야 하였다. 농장일군들은 정보당수확고를 결정적으로 높일 방도를 찾아 사색을 거듭하였다. 바로 그때 전국농업부문분조장대회에 참가하여 농업에서 증산의 중요한 예비는 현대농업발전추세에 맞게 영농방법을 혁신하는데 있다고 하신 당의 뜻대로 이미 고리형순환생산체계를 확립하여 지력을 높인 조건에서 이제 영농방법만 대담하게 혁신하면 얼마든지 다수확목표를 점령할수 있다. 과학농사이자 다수확이고 축산활성화의 튼튼한 담보이며 농장이 비약할수 있는 지름길이다. 석호동무는 농장일군들과 힘과 지혜를 합치며 영농방법을 대담하게 혁신해나갔다. 군일군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어보고 농장의 과학농사경험을 투시해보는 과정에 우리가 다시금 절감한것이 있다. 당의 과학농사방침을 어떻게 접수하고 관철하는가에 따라 앞선 영농방법이 은을 낼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수도 있다. 한마디로 과학농사도 사상전이라는것이다. 몇해전 농장에서 소식재배방법을 받아들일 때의 일을 놓고보자. 앞선 영농방법인 소식재배방법을 받아들여 정보당수확고를 부쩍 높인 다수확단위들에 대한 자료를 알게 된 즉시 농장일군들은 이 방법을 적은 면적에서 시험도입해보았다. 역시 결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농장일군들은 신심에 넘쳐 다음해 이 방법을 전 면적에 도입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제의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농장원들과 일부 군일군들까지도 우려하며 점잖게 충고해나섰다. 물론 시험재배에서 성공한것은 좋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적은 포전에서의 시험에 불과하다. 땅이 좋고 온열자원이 풍부한 서해벌방에 맞는 방법을 앞선 영농방법이라고 하여 랭해가 심하고 적산온도와 해비침률이 낮은 우리 북쪽지대에 단번에 받아들였다가 한해 농사를 망치면 누가 책임지겠는가. 몇해 좀더 해보면서 경험을 쌓은 다음 안전하게 전 면적에 도입하자. … 일리가 있는 주장들이였다. 하지만 석호동무를 비롯한 농장일군들은 이 문제를 그렇게만 대하지 않았다. 물론 경험이 부족한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짜 부족한것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 당의 농업정책과 주체농법은 곧 과학이며 승리라는 확고한 관점과 립장이며 한목숨 기꺼이 내대고 결사관철하려는 각오와 의지이다. 《과학농사시대인 오늘날 앞선 영농방법을 받아들여야 할 지역과 농장이 특별히 정해져있는것이 아닙니다. 더우기 지금 우리는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오늘과 래일이 다르게 비상히 놀라운 속도로 전진하는 비약의 시대에 살며 투쟁하고있지 않습니까. 조건이 불리한 농장의 일군들이 다 우리처럼 〈안전하게〉라는 그럴듯한 외피속에 몸을 사리고 적당히 농사짓는다면 언제 어떻게 나라의 쌀독을 가득 채우고 인민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겠습니까.》 정신을 번쩍 차린 농장일군들이 경험주의, 보신주의를 불사르며 과학농사열풍으로 들끓는 시대의 벅찬 흐름에 대담하게 뛰여들었다. 당의 과학농사방침을 결사관철할 비상한 각오와 의지로 만장약된 일군들의 사업기풍에서 전환이 일어났다. 작전과 지휘가 전례없이 째이고 혁신적이였다. 농장에서는 앞선 영농방법을 받아들이기 위한 사업에서 두가지 문제를 중시하고 내밀었다. 하나는 소식재배방법을 농장의 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도입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초급일군들과 농장원들속에 앞선 영농방법을 원리적으로 인식시키는것이였다. 소식재배방법의 과학적원리에 대한 인식에 기초하여 튼튼한 모기르기, 평당 포기수와 포기당 대수설정, 비료주기 등 모든 영농공정에 창조적으로 도입하기 위해 농장일군들이 바쳐온 지혜와 정열과 노력을 어찌 다 전할수 있을것인가. 하지만 초급일군들과 농장원들을 과학농사의 참된 주인들로 준비시키기 위해 진행한 사업만 놓고보아도 당의 농업정책과 주체농법을 생명선으로 틀어쥐고 완강하게 실천한 이곳 일군들의 혁신적인 사업기풍에 대해 잘 알수 있었다. 아무리 우월한 영농방법이라고 하여도 농사의 직접적인 담당자들이 원리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집행하면 응당한 성과를 거둘수 없다. 며칠후부터 농장 문화회관에서는 청진농업대학 박사선생의 초빙강의가 진행되였다. 소식재배의 우월성과 도입에서 나서는 실천적문제들을 원리적으로 알기 쉽게 깨우쳐주는 강의는 초급일군들과 농장원들의 호기심과 열의를 돋구어주었다. 하지만 낡은 경험에 집착되여있는 농장원들의 눈을 번쩍 틔워주자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일군들은 과학기술소개판과 영농공정별 기술전습을 통한 다져주기에 품을 넣었다. 일군들은 제2작업반과 기계화작업반, 포전도로가 련결된 삼각지점에 과학기술소개판을 크게 세워놓고 씨뿌리기로부터 시작하여 영농시기별로 소식재배방법이 요구하는 기술규정과 원리들을 간단명료하게 소개해주군 하였다. 농장원들이 아침저녁으로 지나다니며 보고 또 보군 한 이 과학기술소개판이 과학농사도입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였는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영농공정별 기술전습도 실속있게 진행되였다. 종전에는 농장에서 조직한 기술전습회에 작업반장들과 기술원들만 참가하였었다. 수준이 서로 다른 그들이 되받아넘기는 기술적내용들은 마지막농장원에 이르기까지 정확히 전달되지 못하군 하였다. 이로부터 일군들은 기술전습을 보다 세밀하게 구체적으로 조직하였다. 우선 영농시기마다 농장적으로뿐아니라 작업반별로도 기술전습을 조직하였다. 여기에 분조장들과 모판관리공, 논물관리공을 비롯하여 시기별로 전문공정을 담당한 농장원들을 다 참가시켰다. 그리고 앞선 영농방법이 요구하는 기술규정의 중요성에 대해 원리적으로 반복하여 깨우쳐주었다. 뿐만아니라 농장에서는 농업과학기술보급실도 군적으로 제일먼저 꾸려놓고 그 운영조직사업을 실속있게 짜고들었다. 낡은 경험을 고집하던 농장원들의 눈이 점점 밝아지고 실천에 옮기기 위한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졌다. 과학기술은 기적을 낳는 힘이였다. 그해 가을 정보당 평균 800㎏이상, 최고 1. 5t까지 증수된 논벼다수확성과를 놓고 일군들과 농장원들은 다시금 확신하였다. 당의 과학농사방침을 한몸 내대고 결사관철하는데 다수확의 지름길, 비약의 열쇠가 있다는것을 뼈속깊이 새겨안았다. 농장일군들은 이런 당정책결사관철의 의지를 안고 앞선 영농방법인 감자긴싹모재배방법도 전 면적에 도입하여 단번에 정보당수확고를 종전의 2배이상으로 끌어올렸고 이른큰모도입에서도 성과를 거두었다. 지난해 농장에서는 정보당 평균 논벼는 8t이상, 최고 10t, 강냉이는 13t이상의 다수확을 냈다. 농사가 잘되니 축산도 날이 갈수록 흥해졌다. 고리형순환생산체계는 이렇게 확립되고 활성화되였으며 이것은 농장의 자력갱생, 자급자족의 확고한 담보로 되고있다. 지금 농장에서는 해마다 수십t의 고기와 30여만개의 알, 많은 량의 염소젖을 생산하여 농장원들과 탁아소, 유치원어린이들에게 정상적으로 공급해주고있다. 뿐만아니라 축산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농사에 필요한 영농물자들을 해결하고 마음먹은대로 건설을 내밀어 농장을 사회주의문화농촌으로 아름답게 전변시켜가고있다. 중앙의 일군들까지도 평양의 이름있는 유치원들에 못지 않다고 감탄하는 농장유치원과 달마다 혁신자축하모임이 성대히 진행되군 하는 성구원은 얼마나 희한하고 분배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는 농장원들의 자랑 또한 얼마나 흐뭇한것인가.
력사적인 당중앙위원회 4월전원회의 결정관철을 위한 투쟁이 힘있게 벌어지고있는 오늘의 벅찬 현실은 경제강국건설의 주타격전방을 지켜선 농업부문 일군들과 근로자들이 자력갱생, 자급자족의 구호를 더 높이 추켜들것을 요구하고있다. 자력갱생, 자급자족!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것도 아니다. 오직 당정책을 자기의것으로 받아들이고 끝까지 관철하는 바로 여기에 제힘으로 일떠서 잘살아나갈수 있는 근본방도가 있다. 동해기슭의 크지 않은 농장마을에 펼쳐진 자랑스러운 현실이 이에 대해 뚜렷이 확증해주고있다. 나라의 4천분의 1을 맡고있는 모든 협동농장 일군들이 이들처럼 고리형순환생산체계를 확립할데 대한 당정책을 신념화하고 근기있게 관철해나갈 때 우리의 사회주의농촌은 보다 흥하고 나라살림은 더욱 풍성해질것이다. 본사기자 장은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