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6월 12일 로동신문
공화국의 기치따라 승리와 번영의 70년 자랑찬 전변의 력사를 수놓아온 함경남도를 돌아보고
《나라의 경공업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서 함경남도가 차지하고있는 몫이 대단히 큽니다.》 나라의 경제발전에서 전환의 돌파구를 열어나가야 했던 그때마다, 조국이 준엄한 난국을 헤쳐나가야 했던 그때마다 우리 무엇을 하나 만들어도 우리 식으로 세계적인것을 만들어내고 무엇을 하나 일떠세워도 주체조선의 창조물답게 보란듯이 일떠세우며 부강조국건설을 앞장에서 선도해온 함경남도! 인민경제발전에서 큰 몫을 맡고있는 굴지의 대화학공업기지들과 기계제작기지, 유색금속광물생산기지, 전력생산기지, 전국적으로 이름난 과수와 축산, 수산기지들이 있는 이 력사의 땅에 대한 기행의 길에 오른 우리의 가슴은 마냥 설레였다.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준 함흥의 로동계급
함경남도소재지인 공업도시 함흥은 불도가니마냥 끓고있었다.시내의 곳곳마다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전원회의 결정관철에로 대중을 고무추동하는 구호판들과 선전화들이 나붙어있었고 방송선전차들의 힘있는 선동과 노래소리가 도시를 진감하였다. 역시 로동계급의 대부대가 사는 함흥이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끼며 우리는 도의 한 일군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찾아온 사연을 듣고난 그는 별안간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명작들의 제목을 꼽아나가는것으로 서두를 뗐다. 노래 《비날론 삼천리》, 《신고산타령》,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소》, 《아직은 말못해》 그리고 조선기록영화 《룡성사람들》, 텔레비죤련속극 《백금산》, 조선예술영화 《사과딸 때》, 《노을비낀 호수》… 사연도 많고 추억도 깊은 노래와 영화의 제목들을 꼽아내려가는 일군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느라니 함경남도만큼 해당 지역 인민들의 사상감정을 대변한 명작들을 많이 가지고있는 도는 아마도 있을상싶지 않았다. 건드러진 민요가락과 인상깊은 화면의 세계를 더듬어가느라면 이번 함남기행이 참으로 가슴벅찰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우리는 2.8비날론련합기업소로 향하였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난 이곳 일군은 기업소의 전변의 력사는 두상의 영상사진문헌에 다 어려있다고 하면서 우리를 혁명사적관으로 이끌었다. 비날론공장준공을 경축하는 함흥시군중대회에 참석하신 전후 3년이 되던 해에 국내원료에 의거하는 비날론시제품을 처음으로 내놓은 우리 인민은 그후 세인을 놀래우는 《비날론속도》를 창조하여 짧은 기간에 큰 규모의 비날론공장을 훌륭히 일떠세웠다. 해방전 옷 한벌 변변한것이 없어 한집안에서도 서로 돌려가며 입었던 우리 인민, 그 인민의 평생소원이 풀리게 된것이 얼마나 기쁘셨으면 추억도 깊은 8년전 3월 현대적인 비날론공장준공을 경축하는 함흥시군중대회에 몸소 참석하신 조국앞에 엄혹한 시련이 닥쳐왔던 지난 세기 90년대에 2.8비날론련합기업소도 생산의 동음을 일시 멈추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드디여 숨죽었던 기업소에서 16년만에 비날론솜이 나오게 된것이 그리도 기쁘시여 온 나라의 대경사로 불러주시며 시종 환한 미소를 지으시던 너무도 만족하시여 현대화된 비날론공장준공을 경축하는 함흥시군중대회를 진행할데 대한 은정어린 조치도 취해주시고 불편하신 몸으로 대회장에 서계시던 언제인가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던 한 외국인은 지난 조선전쟁처럼 한 민족의 생존자체를 완전히 부정하고 벌린 전쟁은 없었으며 그 가혹성과 참혹성은 년대와 세기를 이어 지금도 계속되고있다고 절규한바 있다. 흥남비료련합기업소에 대한 취재과정에 우리는 그것을 더욱 절감하게 되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적들의 야만적인 폭격에 의해 흥남비료공장(당시)의 하조장에 쌓여있던 비료가마니들이 한주일동안 불에 타 이곳 농민들이 땅을 치며 울었다는 이야기는 오늘도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응어리져있다.원쑤들은 전후에도 그렇고 새 세기에 들어와서도 흥남에서 비료가 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각방으로 책동하였다. 몇해전 흥남로동계급이 갈탄가스화에 의한 암모니아생산공정건설에 분투하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적들은 비렬하게도 필요한 설비들의 납입을 차단하였다.그렇게 하면 조선의 농업생산에 지장을 주고 나아가서 조선의 민심에 금이 가게 될것이라고 타산하였던것이다.그러나 원쑤들은 망상하였다. 조선은 결심하면 한다는 이 력사의 진리를 말로써가 아니라 과감한 실천력으로 보여준 영웅적사나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는 룡성기계련합기업소에 대한 취재길에서도 들을수 있었다. 해방전 흥남지구의 공장들에서 요구하는 몇가지 부속품들이나 생산하던 자그마한 공작소였다.해방직후 우리의 감동을 자아낸것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였다. 수백년의 기계공업발전력사를 자랑하는 나라들도 엄두를 못내는 기계설비제작을 주저없이 맡아나선 룡성로동계급의 담력과 배짱이였다. 1950년대말 룡성의 로동계급은 발전된 나라들에서도 2~3년은 걸려야 만든다는 8m타닝반을 불과 다섯달만에 제작하였다.1980년대에는 세계적으로 몇개 나라밖에 만들지 못한다고 하던 1만t프레스를 1년 남짓한 기간에 완성하는 기적을 창조하였고 2000년대에는 새형의 압축기와 지열설비 등을 제작하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만나보면 그지없이 소박하고 평범하지만 가슴속에는 억척바위도 녹일 뜨거운것을 안고사는 사람들, 무엇을 하나 만들어도 조선사람의 자존심을 걸고 단숨에 세계적인것을 설계하고 창조하는 사람들, 이것은
수산업과 과수업의 새 력사가 펼쳐진 곳에서
산과 들이 온통 푸른색으로 단장된 6월의 류다른 경치를 바라보며 우리가 신포원양수산련합기업소에 이른것은 동해의 아침해가 바다물면을 가벼이 어루쓸던 오전 8시경이였다. 보기만 해도 달아오른 몸과 마음을 식혀주는 동해바다는 낯설은 손님들을 반겨맞는듯 끝없이 설레이며 처절썩 부두가를 치고있었다. 바람 한점 없는 따스한 날에도 세찬 갈기를 일으키는 검푸른 바다를 보느라니 해도가 아닌 일반지도를 가슴에 품고 먼바다개척의 길에 용약 뛰여들었던 지난 세기 60년대 이곳 어로공들의 강인한 모습이 떠올랐다. 《신포의 전변에 대해 말한다면…》 부두에서 만나 이렇게 시작을 뗀 신포혁명사적관 관장 전태섭동무의 이야기는 또 그대로 우리에게 깊은 여운을 주었다. 예로부터 유명한 어장으로 일러왔다지만 해방직후만 해도 몇척의 고기배밖에 없어 제고장사람들에게조차 수산물을 제대로 먹일수 없었다던 신포였다. 그러하던 이곳이 어찌 신포뿐이랴.서호와 락원, 신창과 리원, 단천을 비롯하여 도안의 해안선을 따라 즐비하게 일떠선 현대적인 수산기지들은 나라의 수산업발전에서 한몫 단단히 하는 귀중한 밑천으로 되고있다. 3년전 5월 신포원양수산련합기업소를 찾으신 진정 고마워 노래로도 지어부르고 세대를 이어가며 눈물속에 이야기로도 전해가고있다고 하지만 조국과 인민을 위해 끊임없는 헌신의 길을 걷고 걸으신 절세위인들의 크나큰 로고에 대해 우리 어이 천만분의 일이나마 다 이야기할수 있단 말인가. 신포원양수산련합기업소를 떠나 과수의 고향 북청군에로의 기행길을 이어가는 우리의 가슴속에는 이런 뜨거운 격정이 차넘쳤다. 력사적인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북청확대회의에서 20만정보의 과수원을 새로 조성하여 나라의 과수원을 30만정보로 늘일데 대한 강령적과업을 제시하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들어 오늘도 눈물속에 외우는 북청군 룡전과수농장 일군들의 이야기가 있다. 아는가 사람들이여, 그날 우리 덕성과 허천을 비롯하여 오늘 함남땅의 곳곳에 솟아난 대규모과일생산기지들은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시며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초불처럼 한생을 깡그리 태우신 절세위인의 헌신에 받들려 인민이 맞고보낸 행복의 나날들이여!》 북받치는 격정을 누를길 없어 우리는 북청땅을 떠나면서 취재수첩의 갈피에 이런 글을 남기였다.
땅우에도 보화, 땅속에도 보화
《단천-대흥 76㎞》 북청군을 떠나 단천시까지 달려온 우리가 룡양광산으로 가는 갈림길어구에 들어섰을 때 나타난 이 리정표는 목적지까지 한참이나 취재차를 타고 달려야 함을 말해주고있었다. 고개뒤에 또 고개라고 2시간 남짓하게 취재차는 달렸으나 아아한 산발들은 기다리기나 한듯 연해연방 우리의 눈앞으로 다가들었다. 그동안 함께 동행한 도의 일군으로부터 이제야 절반길을 축냈을뿐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우리는 지루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땅우에도, 땅속에도 보화가 가득한 그 땅에 어이 쉽게야 들어설수 있으랴. 단천시내로부터 그렇듯 멀고도 먼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광부들의 인간됨에 마음속인사를 하고난 우리는 도의 일군으로부터 룡양광산에 대한 가지가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행길을 이어갔다. 텔레비죤련속극 《백금산》과 더불어 더욱 인상에 남는 그곳에 도착하면 련속극의 주인공들이 오르내리던 로천채굴장은 보게 되겠는지 그리고 련속극의 후기는 들을수 있겠는지… 이런 하많은 물음을 안고 룡양에 도착하니 아쉽게도 그날의 로천채굴장은 볼수가 없었다.미더운 룡양의 광부들이 그 거대한 로천채굴장의 광석을 다 채광하고 지금은 지하막장으로 들어갔던것이다. 다만 그곳에는 천리마시대 룡양의 광부들이 수십대의 굴착기와 대형화물자동차들을 끌어올려 세상사람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던 천수백m의 산발들이 푸른 숲을 펼치고 력사의 증견자마냥 서있었다. 함남땅 그 어디나 그러하지만 룡양광산에도 만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우리 안된다고, 언제 천정에서 돌이 떨어질지 모르는 험한 곳에 절대로 모실수 없다고 아뢰이며 막아서는 일군들을 만류하시며 그이께서 들어가시였던 6월5일갱, 절세위인의 헌신의 자욱을 떠나 갱내채굴의 대형화, 현대화가 실현된 오늘의 룡양, 세계굴지의 마그네사이트광산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고. 우리가 도착한 대규모유색금속광물생산기지 검덕은 또 얼마나 하많은 가슴뜨거운 사연들을 전하고있는것인가. 그가운데는 70고령의 우리 우리도 어디 가나 로동계급의 새 문화가 꽃펴나 광부들은 수천척지하막장에서 국가망을 통해 그날 신문도 보고 과학기술학습도 하면서 문명한 생활을 누리고있었다.제3선광장이 자리잡은 은룡덕에는 종합적인 편의봉사시설을 갖춘 선광원까지 일떠서 이곳 종업원들과 가족들은 도시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있었다. 예로부터 크게 흥하는 곳이라 하여 불렀다는 대흥, 량강도 백암군과 함경북도 길주군과 린접해있는 이곳에 우리 비록 깊고도 깊은 산골이지만 누구나 한번 와보면 대번에 정이 드는 고장이다. 맛좋은 농마국수를 눌러 봉사하는 국수집에 들려도 좋고 광산의 과학기술보급실과 체육관, 륙오원에 들려도 좋다. 그보다 퍽 인상깊은것은 이 고장사람들의 산자랑이야기이다.우리와 만난 인상좋은 광산지배인 역시 첫마디부터 산자랑이였다. 품위로 보나 채굴조건으로 보나 세계으뜸인 이 광산의 마그네사이트매장량은 줄잡아 수십억t에 달한다고 한다. 언제인가 광산을 돌아본 외국의 한 기업가가 이처럼 욕심나는 보물산이 왜 조선에만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가 코를 떼웠다는 이곳 지배인의 이야기는 오래동안의 기행길에 쌓였던 우리의 피로를 말끔히 가셔주었다. 마그네사이트뿐아니라 록니석과 비석, 붉은화강석 등이 풍부히 매장되여있어 보화로 가득한 내 나라의 축소판을 련상케 하는 광산의 여러곳을 돌아보느라니 대흥청년영웅광산은 알부자광산이며 흥하는 광산이라고 그토록 만족해하시던 우리 감회도 깊은 9년전 5월 광산을 찾으신 문득 심심산골의 공기를 헤가르며 들려오는 기적소리에 눈길을 돌리니 우리와 동행한 도의 일군은 그것이 바로 검덕과 룡양, 대흥의 정광들과 광석들을 굴지의 생산기지로 꾸려진 단천제련소와 단천마그네샤공장으로 실어나르는 화차의 기적소리라고 귀띔해주었다. 우리의 기행은 해마다 동해안농사에서 장훈을 부른다는 함주군 동봉협동농장과 가금업의 새 력사가 펼쳐진 광포오리공장 그리고 동해안지대에 처음으로 건설된 광명성제염소 등에로 이어졌다. 가는 곳마다에서 우리가 더욱더 절감한것은 절세위인들의 현명한 령도가 있어 함경남도의 오늘과 같은 기적적인 전변이 있다는 그것이였다. 한생을 기행길에 올라도 못다 쓸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나라없던 그 세월 망국노의 설음을 못살리 못살리 나는 못살리라는 《함경도애원성》의 구슬픈 곡조에 담아 부르며 살아가던 어제날의 막벌이군, 화전민의 후손들이 오늘은 자기들의 고장에서 태여난 시대의 명곡들을 자랑스럽게 부르며 세상에 부럼없는 행복을 노래하고있다. 《함경도애원성》으로부터 《신고산타령》,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소》, 《아직은 말못해》, 《비날론 삼천리》와 같은 행복의 노래에로! 이것은 곧 공화국의 70년력사와 더불어 나라의 손꼽히는 경제지대로 전변된 오늘의 함남에 대한 자랑인 동시에 자기들의 도를 전국의 도들가운데서 제일먼저 흥하는 도가 되도록 하기 위해 크나큰 로고와 심혈을 기울이신 절세위인들에 대한 이곳 인민들의 다함없는 감사와 칭송의 노래이다. 산은 산마다 황금산을 노래하고 벌은 벌마다 황금벌을 노래하는 함경남도, 동해연선 가는 곳마다 만선의 배고동소리 높이 울리니 세상에 예처럼 살기 좋은 곳 또 어데 있으랴. 오랜 나날의 기행을 마치고 이곳을 떠나면서 우리는 마음속으로 웨쳤다. 사람마다 정다웁고 거리와 일터마다 웃음꽃이 만발한 함경남도의 오늘도 좋지만 보다 번영할 래일은 더 좋으려니 우리 그날에 기행의 붓을 다시 들리라고. 글 본사기자 서남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