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6월 16일 로동신문
공화국의 발전행로에 빛나는 우리 인민의 영웅적투쟁(1) 식민지노예로부터 나라의 당당한 주인으로! 해방후 새 조국건설의 격동적인 나날을 더듬어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더불어 인민이 걸어온 영웅적투쟁의 70년력사를 숭엄히 안아보는 우리 마음속에 먼저 떠오르는 격동의 나날이 있다.온 나라가 민족재생의 기쁨을 안고 새 조국건설에 산악같이 떨쳐나섰던 해방후 5년간이다. 《우리 인민은 불과 다섯해, 그 길지 않은 나날을 잊지 못하며 감회깊이 돌이켜보는것은 바로 그 시기에 우리 인민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
해방된 새 조선의 주인들
반만년의 유구한 세월 대대로 내려오면서 자기들이 과연 누구인지, 어떤 지위와 권리를 가져야 하는지 미처 모르고 살아온 우리 인민이였다. 주체34(1945)년 10월, 만경대고향집을 지척에 두고 찾아오신 《우리의 로동계급은 새 조선의 기둥이며 주추돌입니다.해방된 조선을 부강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로 건설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은 로동계급의 투쟁여하에 달려있습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뜻깊은 교시가 로동자들의 무쇠가슴을 쾅쾅 두드렸다.왜놈자본가의 악착스러운 채찍밑에서 마소와 같이 고역을 치르며 노예의 운명을 강요당했던 자기들을 공장의 주인, 해방된 새 조선의 기둥이라고 하시는 크나큰 감격속에 일제가 페허로 만든 제강소를 원상대로 복구해야 할 사람들도, 하루빨리 쇠물을 뽑아 새 조국건설에 이바지해야 할 사람들도 다름아닌 자기들임을 깨달은 그들은 너도나도 주인구실을 하기 위해 떨쳐나섰다.고향으로 떠날 차비를 하였던 로동자들은 서둘러 보짐을 풀어놓았다.일거리를 찾아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던 로동자들도 전기로복구에 떨쳐나선 로동자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 하였다.전기로안에 녹아붙은 쇠물을 정대와 함마로 까내고 수많은 내화벽돌을 구입하여 로벽을 다시 쌓은 로동자들, 자금과 자재가 부족한데다가 어려운 기술적문제들이 수시로 나섰으나 지혜와 열정을 합쳐 풀어나간 기술자들… 하여 끊어진 전기선들과 파괴된 변전소 등 생산공정들을 원상대로 복구하였으며 강선의 첫 쇠물, 정녕 그것은 어제날 천대받고 멸시받던 로동자들이 나라의 주인, 새 조국건설의 기둥으로 새롭게 태여났음을 알리는 힘찬 고고성이 아니였던가. 우리 로동계급이 파괴된 기계설비와 생산현장들을 복구하며 공장의 주인, 나라의 주인이 된 장한 모습으로 나설 때 민주조선의 새봄을 맞은 농촌들에서는 어떤 광경이 펼쳐졌는가. 토지개혁법령의 발포로 땅의 주인이 된 농민들은 청산된 지주와 반동들은 어디 지주없이 농사를 짓는가 보자, 너희들에게 소가 있느냐, 돈이 있느냐, 보습이 있느냐고 하며 미친듯이 발광했지만 농민들은 드높은 혁명적기세와 열정으로 온갖 애로와 난관을 이겨내면서 봄갈이를 제철에 진행하고 해방된 조국의 대지에 첫 씨앗을 뿌려나갔다.분여받은 땅을 기름지게 걸구고 곡식을 알심있게 가꾸어 소출을 높이였으며 로력이 모자라거나 종자가 없는 농민들을 도와주고 부림소와 농기구를 나누어쓰는것과 같은 집단주의정신을 적극 발휘하였다. 이 나날 전국적으로 근 8만개의 농촌생산반과 1만 7 000개에 달하는 농업증산돌격대가 조직되여 농민들을 농업증산투쟁에로 불러일으키고 농촌경리를 발전시키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해방된 조국땅에 첫 풍년이 들어 전국적인 알곡수확고가 1945년보다 340여만석이나 더 많은 1 450여만석을 바라보게 된 풍요한 어느 가을날 자기 집 마당가에 산처럼 높이 쌓인 벼가마니들앞에서 깊은 생각에 잠긴 재령나무리벌의 한 농민이 있었다. 해방전까지 지주집머슴으로, 일제의 간악한 《동척》의 소작인으로 피땀을 빨리워온 김제원농민이였다. 손끝에 피가 지도록 옥토벌을 가꾸어도 가을에는 땅없는 설음과 원한만이 가득 넘치던 나무리벌에 언제 이처럼 풍년이 들어본적 있었던가.나라를 찾아주시고 기름진 땅을 주신 그가 찾아온 사연을 아시고 우리 평강군의 평범한 녀성이 선구자로 나선 문맹퇴치운동과 정주철도종업원들이 발기한 애국적인 증산운동을 비롯하여 방방곡곡에 타오른 대중운동의 거세찬 불길들은 조국해방과 더불어 자기 힘을 자각한 우리 인민의 숭고한 혁명열, 애국열의 분출이였다. 재난의 강, 원한의 강, 눈물의 강이였던 보통강의 흐름을 바꾸어놓은 보통강개수공사는 근로하는 인민이 나라의 주인, 정권의 주인이 되여 민주건설의 꿈을 현실로 펼친 첫 대자연개조사업이였다. 력사적인 착공식날 이른새벽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기발들과 삽, 곡괭이를 들고 보통벌에 애국의 제방을 쌓자고 웨치며 공사장으로 모여왔다. 착공식에 참가하신 그 뜻깊은 착공식의 한 참가자는 후날 이렇게 말하였다. 《이날 나는 처음으로 이것이 어찌 그 한사람의 심정이겠는가. 패망한 일제가 조선에 남겨놓은것이란 파괴된 공장과 농촌, 텅 빈 금고뿐이였지만 우리 인민은 공장의 주인, 땅의 주인, 나라의 주인이라는 드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새 조국건설의 길로 보무당당히 나아갔다.
《인민공화국선포의 노래》를 높이 부르며
우리 조국력사에 금문자로 아로새겨야 할 뜻깊은 날이 밝아왔다.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됨으로써 우리 인민은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수 없는 자주독립국가의 존엄높은 인민으로 되였으며 당시 우리 인민들속에서는 뜻깊은 그해에 창작된 《인민공화국선포의 노래》가 널리 불리워졌다.
백두산천지에서 제주도끝까지 새 기발 높이여 삼천만은 나섰다 산천도 노래하라 이날의 감격을 조선은 빛나는 인민의 나라다 아 자유조선 인민공화국 해와 별 빛나라 조국의 앞길에 … 우리 공화국이 창건된지 며칠이 지난 어느날 사실 그때 철도를 전기화하는것은 제반 민주개혁이 실시된 후 나라의 경제가 급속히 발전함에 따라 더는 미룰수 없는 과제로 나서고있었다.공업 및 농업생산의 급격한 장성과 상품류통의 발전으로 1948년에는 철도화물수송량이 전해에 비해 141.5%로 늘어나고 1949년에는 다시 1.4배로 늘어날것이 예견되였던것이다. 모든것이 부족한 지금의 형편에서 구배와 곡선이 심한 구간부터 먼저 전기화를 하자고 하신 공사량은 방대하였다.연장거리가 근 200리에 달하는 철길로반을 다시 정리하고 침목들을 교체하며 구배와 곡선이 심한 구간에는 경량레루대신 중량레루를 바꾸어 깔아야 했다.그리고 전구간에 전주를 세우고 수십개소의 차굴을 정리하면서 전차선도 늘여야 했다. 건설자들은 돌격대를 뭇고 로반도 정리하고 침목도 교체하고 가파로운 산발을 타고 무거운 전주들을 메여날라다 세웠으며 모진 추위속에서도 높은 철탑우에 올라가 송전선을 늘여나갔다. 수많은 시련이 막아나섰지만 개고-고인, 양덕-천성철도전기화공사는 불과 70여일만에 승리적으로 결속되였다.하여 통과능력이 가장 긴장하였던 평원선과 만포선의 철도수송능력은 무려 2배로 높아지고 렬차운행회수는 1.4배이상 뛰여올랐다.당시 개고역과 양덕역에서 울려퍼진 전기기관차의 기적소리, 그것은 우리 나라에서 철도전기화의 새 력사가 시작되였음을 알리는 장엄한 서곡이였다. 나라의 첫 철도전기화공사의 시작과 때를 같이하여 이미전부터 준비해오던 평남관개공사를 본격적으로 추진할데 대한 문제가 내각결정으로 채택되였다. 공사를 전군중적운동으로 전개할데 대한 흔히 대자연개조사업은 기계의 동음이 요란하게 울리는것이 상례이지만 당시 평남관개공사의 첫 동음은 삽질소리와 꽹과리소리였다. 건설자들은 긴장한 로력투쟁을 전개하는 한편 여러가지 기술혁신안을 공사에 적극 받아들임으로써 수많은 로력과 자재들을 절약하였다.공사속도가 빨라지고 날마다, 시간마다 새 기록, 새 기적이 창조되였다. 대자연개조전투장과 건설장들에서 사람들을 놀래우는 기적과 혁신이 창조될 때 탄광과 광산을 비롯한 여러 일터들에서도 해방전에는 상상도 못한 성과가 이룩되였다. 당시 검덕광산에는 일 잘하는 모범로동자가 있었다.뼈도 채 굳기 전인 아홉살때부터 고역에 시달리다가 해방이 되여 난생처음 사람답게 살게 된 그는 자기에게 새 삶의 기쁨과 행복을 안겨주신 증산투쟁에 앞장선 그는 1948년초부터 선진착암기술을 배우기 시작하여 6개월만에는 완전히 습득하고 광산의 암질조건에 적합한 발파법과 채굴법을 도입하여 새 기록을 세워나갔으며 그해 인민경제계획을 9배로 넘쳐 수행하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1949년에 여러가지 형태의 증산경쟁에 참가한 로동자들의 수는 수십만명에 달하였으며 이것은 경제건설을 힘있게 추동하였다.이런 속에서 1949년에 품종별광물생산이 높은 수준에 이르렀고 1950년에 들어서면서 더욱 발전하여 월평균생산이 전해에 비하여 1.5배이상 늘어났다. 또한 기계생산은 1944년에 비해 246%이상이라는 압도적인 장성을 이룩하였다. 1949년에 국가적으로 수십개 대상의 관개공사를 벌려 많은 밭을 논으로 풀고 관개면적을 늘여나갔으며 결과 그해 가물이 심한 속에서도 대풍을 이룩하였다. 이 모든 성과들은 우리 인민이 공화국의 두리에 굳게 뭉쳐 비상한 창조력과 애국적헌신성을 높이 발휘한 결실이였다.그것은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공화국정권을 따르는 길에 행복한 삶과 창창한 미래가 있다는 진리를 깊이 심어주었다.
우리 인민이 새 생활을 시작한 해방후 5년의 력사적의의는 그 짧은 기간에 공업의 식민지적편파성을 없애고 민족경제의 토대를 닦는데서 세기적인 전진을 이룩하였다는데만 있지 않다. 온 나라 전체 인민이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자신이며 나라와 혁명의 주인도 자기자신이라는 새 인간들의 탄생, 그것은 우리 인민이 전쟁의 간고한 시련을 이겨내고 장구한 기간 그렇다. 우리 인민이 식민지노예로부터 자기 운명을 자기 손에 틀어쥔 본사기자 허명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