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6월 26일 로동신문

 

민족교육의 명맥을 지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민족교육사업을 총련의 중심과업으로 변함없이 틀어쥐고나가야 합니다.》

지금 각지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동포사회의 어제와 오늘, 래일을 애국의 피줄기로 굳건히 이어주는 민족교육의 보금자리인 우리 학교를 위해 지성을 바쳐가고있다.애국위업과 동포사회가 활기를 띠자면 우리 학교를 강화해야 하며 새 세대들을 민족의 넋을 지닌 참된 조선사람으로 키우자고 해도 우리 학교를 강화해야 한다는것이 동포들의 한결같은 의지이다.

 

후대들을 위해 바친 지성

 

언제나 애국과업수행에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총련 효고현본부산하 니시고베지부가 관할지역에 자리잡고있는 총련 니시고베조선초급학교를 위해 또 한가지 좋은 일을 해놓았다.교사가 지진에 견딜수 있도록 완벽한 대책을 세운것이다.이 학교교사는 원래 지진견딜성이 강하게 설계된 건물이였다.지난 1990년대 중엽의 한신대진재때 지역내에서 무너지지 않고 서있은 몇개 안되는 건물들중의 하나가 바로 이 교사였다.그래서 당시 우리 동포들과 일본사람들의 피난처로 리용되였었다.건물은 여전히 견고해보였으나 예상치 않은 강한 지진이 때없이 잇달으는 곳에서 사는 동포들은 결코 마음을 놓을수 없었다.

우리 학생들의 안전보장이 첫째이다, 아이들이 마음놓고 공부할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자.

학교보수공사에 착수할데 대한 총련지부의 결정에 지역상공회 리사장이며 학교 교육회 회장인 김석동동포를 비롯한 많은 동포들이 호응해나섰다.지부산하 각 단체 책임자들과 핵심동포들로 구성된 《니시고베조선초급학교 미래계획》이 발족되였고 기금운동이 벌어졌다.동포들은 생활형편이 어려운 속에서도 미래를 위해서는 아낄것이 없다고 하면서 모두가 지성을 바치였다.그러면서도 누구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민족교육의 요람인 우리 학교를 더 잘 지원하여 학생들에게 훌륭한 교육환경을 마련해주는것은 애국위업의 전통을 계승하고 동포사회의 밝은 미래를 개척해나가기 위한 더없이 중요한 사업이라는 생각이 그들모두의 가슴속에 차있었기때문이였다.그들의 이런 아름다운 후대관, 열렬한 애국심에 의해 학교보수공사는 성과적으로 끝났다.지부에서는 이 기회에 고령동포들을 위한 복지시설 《이어고베》도 교사로 이전하는 등 여러가지 조치도 취하여 학교를 명실공히 광범한 동포들이 리용할수 있는 종합적거점으로 만들었다.

총련을 둘러싼 엄혹한 정세로 하여 재일동포들의 생활은 의연히 어렵지만 그런 조건에서도 민족교육에 대한 동포들의 사랑과 지성은 이처럼 날이 갈수록 더욱 뜨거워지고있다.

아직은 철없는 나이의 학생들이지만 동포사회의 그 뜨거운 진정을 어찌 헤아리지 못하랴.해빛밝은 교실에서 배움의 글소리 랑랑히 울리며 믿음직한 민족인재들로 자라나고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동포들은 크나큰 보람과 긍지를 느끼고있다.

 

선대들의 넋을 이어가리

 

총련 히가시오사까조선중급학교 송원경학생은 연신 머리방아를 찧으며 한가지 생각에 몰두하고있었다.제40차 재일조선학생글짓기현상모집경연 《꽃송이》에 내놓을 작문의 주제를 놓고 며칠째 골머리를 앓는 그였다.문득 그의 눈앞에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여러해째 매주 화요일마다 일본반동들의 민족교육차별정책을 반대하는 《화요행동》에 꼭꼭 참가하군 하는 나의 할머니, 그 모습이 왜 오늘따라 사무치게 되새겨지는것일가.

처음 할머니가 《화요행동》에 참가하겠다고 하였을 때 온 가족이 놀라움에 입을 벌렸고 그다음에는 극구 만류하였다.80고령의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다니신다고 그러는가.

할머니의 대답은 간단하였다.

《우리 동포들의 민족적권리는 다 싸워서 쟁취한것이란다.》

(손자들의 재롱이나 받아주며 편안히 지내야 할 나이인데 왜 우리 할머니는 고생을 사서 하려는것일가.)

이것이 철없던 그때 원경이가 품었던 생각이였다.하지만 후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생각은 깊어졌다.할머니는 해방전 모진 민족적멸시를 받으며 일본학교에서 동화교육을 강요받다가 해방후 우리 학교에서 처음으로 우리 말과 글을 배웠다고 한다.4.24교육투쟁을 촉발시킨 일본반동들의 악명높은 《학교페쇄령》이 공포되였을 때에는 견결히 맞서싸웠다고 한다.이런 할머니이기에 몸은 비록 늙었지만 투쟁의 거리에 주저없이 나서는것이리라.

그때부터 할머니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변함없이 그 길을 이어갔다.이 길이 오래동안 우리 학교 교원으로, 총련본부 교육부장, 지부위원장으로 사업하였던 남편의 뒤를 잇고 후대들에게 밝은 미래를 열어주는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할 때마다 《아니다.〈화요행동〉에 참가하면서부터 더 건강해지는것 같다.정말 힘이 나는구나.》라고 흔쾌히 말하는 할머니, 다리가 불편하여 제대로 걸을수 없을 때에도 《가야 해.가야 해.우리 학교를 꼭 지켜내야 해.》라고 뇌이면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원경이의 가슴속에는 민족교육의 고수와 강화발전을 위한 길에 모든것을 바쳐가는 선대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그득히 차오르군 하였다.

(애국위업에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가는 선대들의 그 고상한 정신세계를 본받아야 한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원경이는 학습장에 작문의 제목을 또박또박 써넣었다.

《나의 할머니!》

본사기자 허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