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7월 17일 로동신문

 

《모집이 아니라 랍치였다》

 

《징용과는 별도로 다른 모든 방법에 의한 출동도 랍치와 같은 상태이다.그것은 만약 사전에 이것을 알리면 모두 도망치기때문이다.그래서 야간습격, 유괴 등 각종 방책을 취하여 략탈, 랍치를 하는 사례가 많아지고있는것이다.》(일본내무성이 1944년에 조선에서 진행한 주민동향 및 읍, 면행정상황과 관련한 보고서)

《반도로부터 많은 사람들을 랍치하여 주로 군관련공장들에서 일을 시켰다.》, 《어쨌든 강제적으로 끌어와 가혹한 로동을 강요하기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도주자가 나왔다.》(일본 도다건설회사가 발행한 《사보》 1942년 9월 25일부)

《…군청직원, 경찰서 및 면직원을 총동원하여 잠자는 곳을 습격하거나 밭에서 일하는 사람을 리유에 관계없이 련행하는 등 상당히 무리한 방법을 취하여 22일의 출발날자에 겨우 맞추어 84명에 대하여 령장을 교부하고 수송시키는 사건이 있었음.》(《혹가이도와 조선인로동자-조선인강제련행실태보고서》)

《내가 직접 지휘하여 강제련행한 〈위안부〉만도 1 000명이 넘는다.어떻게 련행했는가.… 마을사람전원을 한곳으로 모이게 한다.마을사람 100~200명정도가 전부 모여도 〈정신대〉로 끌고갈만 한 부녀자는 네댓명에 불과했다.도망가는 사람들은 순사들이 사정없이 목검으로 내리쳤다.애기들을 업고나온 녀자들은 반광란상태였다.그런걸 애기를 녀자로부터 떼여내 로파에게 던져주고 머리채를 질질 끌어 무조건 호송차에 실었다.서너살쯤 돼보이는 어린애가 울면서 호송차를 뒤쫓아오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한마디로 〈인간사냥〉이였다.》, 《분명히 해둘것은 〈일본군위안부〉들을 모집한것이 아니라 강제로 랍치한것이라는 점이다.당시 〈정신대〉모집에 자발적으로 응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일본군위안부〉를 강제련행한 곳은 주로 조선이다.》, 《비명을 지르는 젊은 어머니를 때려 쓰러뜨리고 2~3살의 어린애들이 울면서 따라오면 애들을 들어 내동댕이쳤다.애원하는 할머니는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마을은 온통 수라장이 되군 하였다.이렇게 모은 녀성들을 화물렬차와 배에 짐짝처럼 실어 서부군사령부에 보냈다.》(당시 야마구찌현 로무보국회 책임자였던 요시다 세이지)

《가장 가혹한것은 로무의 징용이였다.전쟁이 점차 가렬해짐에 따라… 로무징용자의 할당이 상당히 엄하게 되였다.납득시켜서 응모하게 하려고 해서는 도저히 그 예정수자를 채우지 못하게 되였다.그래서 군청이나 면사무소 로무계원이 깊은 밤이나 이른새벽에 남정들이 자고있는 집을 갑자기 습격하거나 혹은 논밭에서 한창 일하고있는 때에 트럭을 들이대고 꺼리낌없이 잡아갔다.그다음에는 대오를 편성해서 혹가이도나 규슈의 탄광들에 보냈다.그렇게 해야 책임을 다한다고 하면서 란폭한짓들을 하였다.》(《조선신화》 가마다 자와 이찌로 1950년판)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