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7월 22일 로동신문

 

일본이 저지른 극악한 랍치범죄

성노예피해자는 고발한다

 

일본반동들은 과거 일본군이 저지른 성노예범죄에 대하여 한사코 부인하면서 돈을 바라고 자발적으로 응했다느니, 《매춘부》였다느니 하는 입에 담지 못할 악설로 피해자들을 모독하고있다.전체 조선민족은 후안무치한 섬나라 일본의 철면피성에 분격을 금치 못해하고있다.과연 어느 누가 치욕스러운 성노예생활을 하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선단 말인가.

여기에 이전 일본군성노예생존자였던 박영심녀성의 증언자료가 있다.

《하루는 어깨에 별 2개를 달고 옆구리에 긴칼을 찬 왜놈순사가 찾아와 돈벌이가 좋은 일자리가 있으니 함께 가자고 하면서 무작정 나를 끌고갔다.그때 옥경이라는 22살 난 처녀도 함께 끌려갔다.평양역으로 갔는데 거기에는 이미 20살안팎의 조선처녀들이 15명정도 모여있었다.그들도 모두 나처럼 아무런 내막도 모르고 속히워 끌려온 녀성들이였다.》

계속하여 그는 우리는 거기서 유개화차에 실려 일본군의 삼엄한 감시를 받으며 중국으로 끌려갔다, 놈들은 우리를 끌어가는 동안 서로 말도 못하게 하고 변소에도 보내지 않으면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엄하게 통제하였다, 나는 이렇게 죄인취급을 받으며 기차와 배, 자동차를 갈아타면서 중국 남경에 설치된 일본군《위안소》로 끌려갔다, 이때부터 나의 저주로운 성노예생활이 시작되였다고 폭로하였다.

사람들은 아마 여러 출판물들을 통해 만삭이 된 몸을 산비탈에 기대고 맥없이 서있는 녀성을 비롯하여 여러명의 조선인성노예들이 찍힌 사진을 많이 보아왔을것이다.사진속의 임신한 성노예가 다름아닌 박영심녀성이다.

그는 18살 꽃나이에 중국 남경의 《리제항위안소》에 끌려가 3년동안 고역을 치른 후 일본군의 전선이 남방으로 확대됨에 따라 또다시 먄마의 양곤과 중국 운남성 송산으로 끌려갔다.총폭탄이 튀는 격전장인 이곳에서 성노예생활을 강요당하던 가운데 1944년 9월 송산을 점령한 《운남원정군》(중미련합군)에 포로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되였다.

박영심녀성은 이에 대하여 2000년 도꾜에서 진행된 녀성국제전범법정에서 명백히 증언하였다.미국립공문서관에는 그의 심문기록이 그대로 보관되여있다.또한 2003년 11월 우리 나라와 중국, 일본의 활동가들로 무어진 공동조사단이 박영심과 함께 중국의 남경과 운남성을 방문하여 그가 끌려다닌 《위안소》건물과 그 자리를 확인하였으며 당시 박영심을 구원한 중국인 리정조를 만나 그때의 사실을 확인하였다.

우리 나라와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수많은 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이 생존해있었지만 박영심녀성처럼 성노예시기의 생동한 사진자료가 남아있고 성노예였다는것을 립증하는 당시의 문서들과 목격자들의 진술자료까지 확보된 피해자는 흔치 않다.그만큼 그의 증언내용은 객관적으로 보아도 신빙성이 철저히 보장된것이다.

박영심녀성의 증언자료에서 보는바와 같이 그가 일본군성노예로 되게 된 과정에는 자발적의사에 따른것이란 하나도 없다.반대로 경찰의 강박에 의해 끌려간 다음 군대에 의해 강제련행되였다는것이 웅변으로 실증되였다.한마디로 그는 본인의 의향과는 무관계하게 일제에 의해 유괴, 랍치된것이다.

이것은 박영심녀성 한사람만이 당한 일이 아니다.일본군성노예생존자들의 증언들을 종합해보면 일제에 의한 식민지통치시기 일본군의 성노예로 전락된 조선녀성들모두가 우와 같은 사기와 협잡, 강권의 희생물들이였다는것을 명백히 알수 있다.이것을 부정한다는것은 가랑잎으로 몸뚱아리를 가리우는것보다 더 어리석은짓이다.

인간의 초보적인 체면마저도 헌신짝처럼 내버린지 오랜 일본반동들은 오늘도 더러운 주둥이를 함부로 놀려대며 막무가내로 죄악으로 가득찬 저들의 성노예범죄력사를 미화분식하려 하고있다.천하의 비렬한들이란 바로 이런자들을 두고 하는 소리이다.

진실은 감출수도 가리울수도 없다.력사는 일제가 군권과 관권을 발동하여 조선녀성들을 조직적으로, 계획적으로 랍치하고 일본군성노리개로 전락시켰다는것을 만천하에 고발하고있다.

정조를 목숨보다 더 귀중히 여기는 20만명의 우리 조선녀성들을 강제적으로 유괴, 랍치하여 일본군의 더러운 수욕을 채워주는 치욕의 길로 내몬 과거 일본의 특대형반인륜죄악은 반드시 천백배로 결산될것이다.

본사기자 안철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