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헌신의 한평생
해마다 7월이면 꿈결에도 그리운 어버이수령님 생각으로 더더욱 심장을 불태우는 우리 군대와 인민이다. 한평생 인민의 행복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신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조국땅 방방곡곡에 정중히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찾아 끝없이 흐르는 충정의 대하, 자애로운 어버이를 우러르는 인민의 가슴마다에서 수십년세월 울려온 축원의 선률이 뜨겁게 메아리친다. … 찬이슬 맞으시며 농장을 찾으시고 눈오는 이른새벽 공장을 찾으시네 크나큰 그 은덕은 만대에 길이 빛나리 인민들은 심장으로 충성을 노래하네 …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혁명을 하고 수령님의 품속에서 끝없는 행복을 누리는 기쁨에 넘쳐 그이를 하늘땅 끝까지 따르고 해와 달이 다하도록 모셔갈 흠모의 송가를 불러온 우리 인민, 세월이 흐르고 산천이 열백번 변한다 해도 위대한 수령님을 영원한 주체의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모실 불같은 충정으로 심장을 끓이는 김일성민족의 후손들의 심장에서 이 노래의 선률은 인민의 어버이라는 부름과 더불어 끝없이 울리고있다. 인민의 어버이, 여기에 인민을 위한 위대한 헌신의 한평생을 수놓으신 우리 수령님의 거룩한 위인상이 얼마나 소중히 담겨져있는것인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한평생은 우리 조국과 인민을 품에 안으시고 보살피신 은혜로운 사랑의 력사였으며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헌신의 서사시였다. 조국의 최북단 온성으로부터 분계연선의 농장마을, 서해의 간석지건설장으로부터 동해의 자그마한 수산사업소에 이르기까지 우리 수령님께서 끊임없이 새겨가신 자욱들마다에 생겨난 감동깊은 이야기들이 그 얼마이던가. 언제인가 한 일군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가 되새겨진다. 주체50(1961)년 4월 어느날 신포시의 여러 단위를 현지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 식료품상점을 찾으시였을 때의 일이다. 그이께서는 매대에 진렬되여있는 반찬들의 질을 헤아려보시며 인민들의 식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며 일군들과 판매원들은 격정을 금치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상점을 다녀가신 때로부터 반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였다.한 일군이 급히 상점에 달려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매대에 진렬되여있는 그릇중에서 열세번째 그릇을 찾으신다는것이였다. 종일 매대앞에 서있으면서도 열세번째 그릇이 어느것인지, 그 그릇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알수 없었던 판매원은 난감해하다가 그릇을 차례로 세여보기 시작하였다. 순간 판매원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어버이수령님께서 반찬들을 보아주실 때 아주 좋다고 하시며 이런것을 많이 만들어 인민들에게 공급하라고 하시던 고추장이였다. 일군도 판매원도 설마 위대한 수령님께서 고추장을 찾으시였으랴 하는 생각으로 망설이였다. 되돌아간 일군은 하는수없이 자기의 생각을 위대한 수령님께 말씀드리였다. 그런데 그이께서 찾으신것은 분명 고추장이였다. 잠시후 그 일군이 다시 상점에 들어섰다.어버이수령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일군의 눈가에도, 고추장그릇을 두손에 받쳐든 판매원의 눈굽에도 뜨거운것이 고이기 시작하였다. 어촌마을인민들의 식생활향상때문에 얼마나 마음쓰시였으면 우리 수령님 크지 않은 식료품상점매대에 있는 고추장그릇을 보시고 그리도 기뻐하시였겠는가. 새 조국건설의 바쁘신 나날에도 인민들의 생활형편을 알아보시기 위해 시장까지 돌아보시였고 외진 산골마을의 비탈길도 걸으시며 황금산의 새 력사도 펼쳐주신 우리 수령님, 불비쏟아지는 전화의 나날에는 평원군 원화리의 평범한 농가를 찾으시여 농업협동화의 불길을 지펴주시였고 사회주의건설시기에도 나날이 커가는 인민의 행복에서 기쁨을 찾으시며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걸으신 어버이수령님, 우리 인민들을 남부럽지 않게 잘살도록 해주시기 위해 끊임없는 로고와 심혈을 기울이신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의 자욱은 온 나라가 즐거운 휴식의 한때를 보내는 일요일과 명절날일수록 더욱 줄기차게 이어졌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해방후부터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인 주체83(1994)년까지 무려 2 530여일의 일요일과 많은 명절날들을 인민을 위해 고스란히 바치시였다. 7년세월과 맞먹는 2 530여일의 일요일과 명절날들, 그 하루하루에 우리 수령님 인민을 위해 헌신의 낮과 밤을 이어가시던 숭고한 화폭이 얼마나 눈물겹게 수놓아져있고 이 나라 천만자식들을 위해 바치신 위대한 어버이의 성스러운 혁명생애가 얼마나 감동깊이 새겨져있는것인가. 그중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느해 일요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침일찌기 한 일군을 부르시여 강서와 룡강, 온천지구의 몇개 단위를 돌아보자고 하시였다.일군은 선뜻 대답을 올릴수 없었다.며칠째 계속 밤늦게까지 일을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잠시라도 피곤을 푸셨으면 하는 생각이 앞섰기때문이였다.그래서 일군은 위대한 수령님께 오늘은 일요일인데 오전만이라도 좀 쉬시고 오후에 떠나시였으면 하는 심정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언제 일요일이라고 하여 집에 있어본 일이 있는가고, 일요일에 가까운 곳에라도 나가 현실을 료해하고 인민들도 만나보고싶다고 하시며 자신에게 이이상 더 만족한 일요일은 없다고, 이게 자신의 휴식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식사도 미루시고 강서구역 청산리와 룡강군 옥도리를 비롯한 여러 단위들을 찾아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며 온 하루 인민들속에 계시였고 밤에는 또 밤대로 그해 당창건기념일에 즈음하여 당 및 국가기관 간부들앞에서 하실 강의 《우리 나라 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의 몇가지 경험에 대하여》를 집필하시느라 새날이 잡힐 때까지 정력적으로 사업하시였다. 정녕 위대한 인민적수령의 일요일과 명절날들은 인민을 위한 헌신적복무의 평범한 로동일이였다.그 나날에는 항일의 혈전만리길에서 젖은 행전을 말리울새 없이 헤쳐가시던 건국의 초행길도 있고 전화의 나날의 새벽길도 있다.우리 인민을 더 잘살게 하시기 위해 찬눈비를 맞으시며 넘고넘으시던 수많은 고개와 험한 령길들에 새겨진 눈물겨운 이야기들도 있고 생애의 마지막시기였던 주체83(1994)년 6월 19일 온천군 금당협동농장을 찾으시여 걸으시던 포전길도 있다. 이 세상에 정치가들은 많아도 이렇듯 인민의 행복을 위해 수천수백일의 일요일과 명절날들을 고스란히 바친 인민의 어버이가 과연 언제 있었던가. 인민을 위한 일에서는 피곤이 있을수 없고 인민의 행복에서 찾는 기쁨은 모든 휴식을 대신할수 있다는것, 이것이 우리 수령님께서 지니고계신 류다른 행복관이였다. 이런 위대한 행복관을 지니시고 한생을 불같은 헌신으로 수놓으신 어버이수령님, 우리 수령님의 생의 순간순간은 곧 전진하는 혁명의 한걸음한걸음이였고 높아가는 인민의 행복의 한치한치였다. 세상에 인민을 위해 바친 헌신성이 미덕으로 찬미된 례는 많다.그러나 우리 수령님처럼 인민을 위하여 탄생일마저 바치시였을뿐아니라 질쩍한 밭의 흙도 주무르시고 논에 모도 내시며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으신 령도자를 력사는 알지 못한다. 인민에 대한 육친의 정, 무한한 헌신성이 바로 우리 수령님께서 인민을 위해 바치신 진정이였다. 나는 동무들이 흰쌀밥만 먹을수 있다면 이런 눈비를 얼마든지 맞겠소라고 하시며 진눈까비내리는 캄캄한 밤에 몸소 홰불을 드시고 걸으신 삼석의 비탈길, 형식주의를 하려면 무엇때문에 여기까지 왔겠는가고 하시며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에 발목까지 빠지시면서 걸으신 신도의 감탕길, 인민들이 있는 곳에는 다 가보아야 한다고 하시며 몸소 승용차를 밀며 가신 우암의 진펄길… 온 나라 그 어디에나 한평생 인민행렬차의 기적소리를 높이 울리신 우리 수령님의 불멸의 자욱이 아로새겨져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다녀가신 곳입니다.》 백두산기슭의 어느 한 사업소 산판길과 뙤약볕에 달아오른 강선의 구내길에서도, 바람세찬 신포의 부두와 석수떨어지는 검덕의 지하막장에서도 어버이수령님의 로고를 못 잊어 목메여하는 사람들의 이런 절절한 목소리가 울리고있다. 자식들의 생활을 구석구석 보살펴주는 친부모의 심정으로 농촌집에 들리시여 가마뚜껑도 열어보시고 새집들이한 살림집에 가시여 방바닥도 짚어보시였으며 공장로동자들의 식당과 합숙에 들리시여서는 국맛도 보아주시고 이불두터이도 가늠해보시면서 우리 인민을 더 잘 먹이고 더 잘 입히기 위하여 끝없는 정과 열을 기울이신 인민의 어버이 우리 수령님. 잊지 못할 주체83(1994)년 7월 7일에 새겨진 눈물겨운 사실은 지금도 천만의 가슴을 적셔주고있다. 이날 조국통일문제와 관련한 문건에 력사적인 친필을 남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밤에는 또 밤대로 휴식없이 사업을 계속하시였다. 식사마저 제대로 들지 못하시며 무리하게 사업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는 일군들의 마음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한 일군이 그이께 식사를 좀 드실것을 간절히 말씀올리였다.일군의 목소리는 애원에 가까왔다. 하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자애에 넘치신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고맙소.하지만 우리가 인민들을 위해 할 일이 얼마나 많소.… 내가 일손을 놓으면 최고사령관에게 그만큼 부담을 더 주게 될것이요.김정일동지가 나라의 크고작은 모든 일을 혼자 걸머지고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있소.나는 김정일동지가 인민을 위하여 밤새워 일하는걸 보면 잠시도 쉴수가 없소.… 일군의 가슴속에서는 이름할수 없는 격정이 솟구쳤다. 무더운 한여름의 밤은 깊어만 가는데 80고령의 우리 수령님의 정력적인 사업은 계속되고있었다. 문건을 보시고 전화를 하시고 또 문건을 보시며… 정녕 조국과 인민을 위해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끝없는 로고와 열화같은 헌신의 세계에 사신 우리 수령님의 한생의 이야기를 어찌 천으로, 만으로 다 전할수 있으랴. 인민의 어버이, 력사의 진실한 체험에 뿌리를 둔 더없이 순결하고도 고결한 이 부름은 진정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수령영생의 메아리이다. 한 나라 인민이 대를 이어 자기의 수령을 어버이라 열렬히 흠모하고 신뢰하며 따르는것은 우리 조국에서만 펼쳐질수 있는 경이적인 현실이다. 이런 류례없는 일편단심으로 우리 인민은 다함없는 그리움과 영원한 충정의 맹세를 담아 끝없이 목메여 부른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인민의 영원한 어버이이시라고. 인민의 행복은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한평생의 리상이였으며 경애하는 원수님의 최대의 념원이다. 그 어디를 찾으시여도 위대한 수령님들의 령도사적부터 회고하시며 수령님과 장군님의 인민사랑의 뜻을 최상의 수준에서 꽃피워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 그이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우리의 생활과 투쟁은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들의 사상과 뜻으로 흐르고있으며 수령님들의 념원대로 인민의 행복은 나날이 꽃펴나고있다. 7월의 이 무더위에도 조국과 인민에 대한 불같은 사랑으로 위대한 헌신의 자욱을 새겨가시는 경애하는 우리 원수님, 그 거룩한 령도따라 위대한 수령님들의 념원인 인민의 행복이 더욱 꽃펴나고 사회주의강국건설의 최후승리의 날이 하루하루 앞당겨지고있다.
본사기자 김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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