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7월 6일 로동신문
주체의 건군사와 더불어 빛나는 첫 무장조직 조선혁명군결성기념일에 즈음하여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우리 혁명을 주체의 한길로 이끌어오신 절세위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더더욱 사무쳐오는 7월 조선혁명군결성 88돐을 뜻깊게 맞이하는 천만군민은 주체적건군위업의 개척자이시며 우리 혁명무력의 창건자이신 지금도 조선혁명군이 결성되던 력사의 그날 백두산청년장군을 우러러 신념의 맹세를 다지던 열혈투사들의 열띤 목소리가 쟁쟁히 들려오는것만 같고 첫 무장대오가 울리던 원쑤격멸의 총성이 세차게 울려오는듯싶다. 돌이켜보면 일제의 야수적인 폭압과 강도적략탈에 굴종하여 노예의 운명을 계속 강요당하느냐 아니면 침략자들과 맞서싸워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되찾느냐 하는 생사존망의 갈림길에서 결연히 일떠서 여러가지 형태의 반일투쟁을 과감히 벌린 우리 인민이였다. 하지만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하여 독립운동자들도 화승총을 땅속깊이 묻어버리고 뿔뿔이 흩어지고있었다. 삼천리강토가 강도 일제를 몰아내고 나라를 독립시킬 자기의 진정한 무장력의 탄생을 학수고대하고있을 때 시대의 요구를 한몸에 체현하시고 성스러운 무장투쟁의 길에 나서신분은 력사적인 카륜회의에서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신 그때 새 세대 혁명가들에게는 무장투쟁을 벌리는데 필요한 지식도 별로 없었으며 본보기로 삼을만 한 군사교범이나 경험도 없었다. 무장투쟁을 전개해나갈수 있는 밑천이라고 할수 있다면 독립군출신 몇명과 화성의숙을 다닌 얼마간의 사람들이 있었고 몇자루의 권총이 전부였다. 오직 조선혁명가들자체의 힘으로, 자기의 혁명적무장으로 강도 일제를 쳐물리치고 조국을 해방하여야 한다. 카륜회의후 불과 며칠사이에 카륜과 고유수일대를 활동거점으로 삼으시고 조선혁명군결성을 준비하시던 나날 우리 주체19(1930)년 7월 6일 조선혁명군의 결성을 알리는 력사의 날이 밝아왔다. 조선혁명군결성식은 고유수의 삼광학교 운동장에서 진행되였다. 연설에서 조선혁명군의 기본사명은 도시와 농촌에 들어가 인민대중을 교양하고 각성시켜 그들을 항일의 기치아래 묶어세우면서 무장투쟁의 경험을 쌓고 장차 본격적인 무장대오를 결성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어나가는것이였다. 혁명의 무기를 억세게 틀어잡은 조선혁명군 대원들은 백두산청년장군의 두리에 어깨성을 쌓고 투쟁의 구호를 소리높이 웨치였다. 반만년민족사에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하는 조선혁명가들의 첫 혁명적무장조직은 이렇게 태여났다. 조선혁명군결성! 이것은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에서 획기적전환점이였다. 조선혁명군이 결성됨으로써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을 조직적인 무장투쟁단계에로 발전시키기 위한 준비사업을 더욱 힘있게 다그쳐나갈수 있게 되였으며 조선의 혁명가들과 인민들은 조선혁명군결성후 조선혁명군은 김형권동지를 비롯한 조선혁명군의 무장소조원들은 이르는 곳마다에서 악질적인 일제놈들과 그 주구들을 처단하고 인민들에게 조국해방의 신심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준비밑에 얼마나 바라고바라던 우리의 혁명무력인가! 정녕 조선혁명군의 결성은 혁명적무장력의 기틀을 마련한 력사적사변이였다. 하기에 항일의 빛나는 전통을 구현하여 해방된 조국땅에서 불과 3년도 안되는 때에 정규적인 혁명무력을 건설하신 오늘도 잊지 못할 이야기가 되새겨진다. 주체37(1948)년 5월 1일 평양시군중대회와 함께 조선인민군의 열병식이 진행되였다. 이날 행사에는 남북련석회의에 왔던 남조선대표들도 많이 참가하였다.행사를 앞두고 인민군장병들의 열병식이 진행된다는 소식에 접한 한 남조선대표가 그가 의혹을 품고있는 그에게 그날 그렇다.주체의 기치를 높이 드시고 인민의 참다운 혁명무력을 마련하신 년대와 세기를 넘어 백전백승만을 떨쳐온 우리 혁명무력의 자랑스러운 전통은 오늘 더욱 줄기차게 이어지고있다. 백두의 천출명장이신 본사기자 강원남 |